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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와> <과> / 서순옥

부흐고비 2021. 3. 19. 08:45

지난가을 장 선생<과> 덕수궁 현대미술관에 갔다. 이중섭 ‘백 년의 신화전’이었다.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 발자국이 긴 줄에 엮여 백 년의 신화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과> 속도를 맞춰 지난날의 이중섭<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대표작 ‘소’ 그림을 시작으로 여러 방을 관람하는 도중, 장 선생이 무엇인가 발견한 듯 입을 열었다.

“응, 그래! 바로 그거였어. 이제야 알겠군.”

“무엇을요?”

“그림의 제목을 좀 봐. 저 제목<과> 이 제목, 저기 저 제목도.”

“아, 그러네요. 제목마다 <와> <과>로 되어있네요.”

이중섭은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일이 인생의 목적이었다. 그랬던 그가 가난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하여 그리움의 세월을 살아야만 했다. 그런 탓인지 그림에 유난히 가족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가족 대신 해, 달, 게, 닭, 까마귀, 물고기 등 자연의 가족들이 소재로 등장하는 그림도 많았다.

이중섭은 그림 속에서만은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다. 무엇인가<와> 손을 잡고 다른 것들<과> 이어져 있었다. ‘닭<과> 가족’ ‘가족<과> 비둘기’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화가<와> 가족’ ‘달<과> 까마귀’ ‘해<와> 아이들’ ‘파란 게<와> 어린이’…….

수십 편의 작품 제목 안에서 이중섭은 <과> <와>로 이것<과> 저것을 이어주는 끈이 되고 있었다. 장 선생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요즘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남편이 떠나간 뒤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세 아이들, ‘아이들<과> 나’, ‘나<와> 아이들’ 그림도 막내딸의 결혼으로 내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결혼식이 끝난 후 장미꽃으로 장식된 자동차가 딸을 데려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 걸어두고 살았던 나<와> 아이들<과> 의 그림이 온몸으로 녹아내렸다. 남편이 떠나간 자리에 세 아이들<과> 빈자리를 메우며 살아온 세월이 안개처럼 아스라하다. 하객들이 내 어깨를 토닥거리고 안아준 몸짓은 그동안 내 삶의 힘이었던 또 다른 <와> <과>들이었다.

막내딸은 가족의 포옹<과> 하객들의 덕담을 안고 새로운 <와> <과> 인생길에 올랐다. 나는 차가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바람에 흩날리다 떨어진 나뭇잎 하나처럼.

나에게 남편은 가뭄에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존재였다. 남편은 자신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먼길 떠날 사람처럼 자주 식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온전치 못한 조각 시간도 가족을 위해 마른 논에 물 대듯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부었다.

나는 단비 같은 남편의 소나기에 흠뻑 젖고 싶었다. 오래 그 안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우리 둘 사이에 숙성되어가는 <와> <과>의 시간을 오래 나누지 못하고 훌쩍 떠나가고 말았다.

<와> <과>가 끊어진 외줄타기 같은 삶을 혼자 버텨낸 날들이 얼마였을까. 나<와> 남편<과> 사이에 떨어져 나간 <와> <과>의 그리움은 가슴 깊숙이 묻어둔, 펴보지 못한 아픈 시(詩)가 되었다.

막내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아파트 문을 열고 혼자 들어갔다. <와> <과>가 모두 빠져 나간 익숙하지 않은 공기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니는 것 같았다.

‘이리 와서 간 좀 봐 줄래?’

어깨너머로 딸을 부르던 내 텅 빈 목소리만 허공 속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이 떠올랐다. 이중섭이 원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두 아들<과> 아내<와> 함께 뒹굴고 싶었다.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손으로 꼽을 만큼 짧았다. 가족<과> 그림만이 삶의 전부였던 이중섭은 헤어져 사는 동안 감질나는 만남을 그림에다 <와> <과>로 표현했을 것이다. 빈곤에 시달린 이중섭이 바다 건너에 있는 가족<과> 만나지 못하는 외로움의 고통은 점점 헤어나지 못하는 깊은 병으로 굳어갔다. 머리맡에 놓인 아내가 보낸 편지는 그리움에 지쳐 뜯지도 않고 쌓여만 갔다.

만나지 못하는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이 있을까. <와> <과>는 절대로 저 혼자 존재하지 않았다. 늘 누구와 함께 있어 주었다. 이중섭이 <와> <과>가 끊어진 텅 빈 병실에서 혼자 싸늘히 죽음을 맞는 사십의 나이가 애처롭게 가슴을 울린다.

덕수궁 밖에는 아직도 긴 줄이 끝나지 않고 있었다. 저 수 많은 사람들이 바로 하늘의 별이 된 이중섭의 새로운 <와> <과>가 아닐까.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 삶에 <와> <과>가 아직 남아있을까? 장 선생이 살며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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