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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동화(童話) / 김소운

부흐고비 2021. 3. 22. 13:10

‘잭 런던’의 2부작 ‘황야의 부르짖음’과 ‘흰 엄니’는 둘 다 개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하나는 주인을 잃은 집안 개가 전전유리(轉傳遊離)하던 끝에 마침내 알래스카의 이리떼들과 휩쓸려서 차차 그 본성으로 돌아가는 스토리이고, 또 하나는 그와 반대로 이리 새끼가 사람의 손에서 길러지는 동안에 본연의 야성을 떠나 사람과 친화해가는 경로를 그린 것이다. 소설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 한두 번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구절들이 있다. 우리말로도 번역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내가 바라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개에 대해서 무관심한 이, 개를 싫어한다는 이도, 한번 이 작품을 읽으면 심경이 일변해버릴 것이다.

충무로 3가의 K당(堂)은 단것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연 두터운 과자집이다. 그 댁에 테리어 한 마리가 있다.

단골손님 B는 그 테리어가 새끼를 낳았을 때 솔선해서 그중 한 마리를 예약했다. 어린놈들이 개 한 마리를 원하던 터였다.

“두어 달은 둬두어야 합니다. 젖을 떼야 하니까요.”

B씨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에게 강아지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어미는 어떻게 생겼느니, 크기는 얼마나 하느니, 강아지의 빛깔은 무어고, 이름은 무어라고 부르자느니… 아마 별의별 수다스런 질문이며 기획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벽에다 줄 60개를 그린 종이를 붙여두고 하루 한 줄씩 날이 새면 지우고 했다. 그 두 달을 기다리는 동안이 얼마나 고되고 지루하면서도 즐거웠으랴.

B씨는 가끔 K당에 들러서는 강아지를 데리고 갈 날을 고대했다. 그럭저럭 그 지루하고 길던 두 달이 지나갔다. 일요일 날, 아이들을 데리고 B씨는 집을 나왔다. 오늘은 강아지를 데리고 올 날이다. 전차를 내려서 동일백화점에 먼저 들러 제일 작은 개목걸이와 줄을 샀다.

K당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와보니 강아지는 이미 없어진 뒤다. 하루 먼저, 바로 어제저녁에 어느 국장님이 오셔서 강아지를 보고 기어코 가져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그쪽에 뺏겨 버렸다는 이야기다.

눈물이 비오 듯 하는 아이들을 간신히 달래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B씨는 그 길로 국장님을 찾아갔다. 서로 친면이 있는 사이였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고 강아지를 돌려달라고 하자, 국장은 손을 내저으면서 “안 될 말일세. ” 한다.

“어린애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는 자네니까 말일세. 자네 집 아이들은 육십일을 두고 기다렸지마는 직접 보아서 정든 것은 아닐 거 아닌가…. 내 집 아이놈들은 이미 하룻밤을 같이 자면서 한집에서 밤을 새웠네. 단 하룻밤이지마는 그 정분은 만리장성일세. 그것을 도로 찾아가다니. 그럼 내 집 아이들 마음은 어떻게 되겠나?”

조리(條理)가 있는 듯 없는 듯, 국장님의 이 아전인수격의 동심론(童心論)에는 B씨도 더 싸울 말이 없어 고소(苦笑)를 짓고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왔다.

바로 그 K당 한구석에 마주 앉아서 화가 E군이 들려준 이야기다. B씨는 나도 잘 아는 분이다. 일간 어디서 잘생긴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서 B씨 집 아이들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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