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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상속세 없는 유산 / 김경희

부흐고비 2021. 3. 30. 15:37

국제적인 시간과 세상의 표정은 어둡다. 망명정부 비밀 결사대같이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갑을 낀 데다 선글라스까지 걸쳤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한 사람은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고 불법체류자 같이 어설프고 불안하다. 풀씨엔 막힌 통로가 없다. 곳곳의 들풀과 하나의 자연이 되기 위해 날아간다. 코로나19의 위험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풀씨를 보면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수필가 박연구 씨는 ‘바보네 가게’ 저자이다. 1973년 ‘범우사’에서 나온 그의 책 표지를 보면 화가 이중섭이 스케치한 ‘바닷게가 어린이 고추를 물고 있는’ 그림이 있다. 박연구 씨는 그가 범우사에서 주간을 맡고 있을 때 나와 두어 번 만났다. 그런 그가 ‘속담에세이’에서 ‘부자유친’의 글을 내비쳤다.

“막내인 아들이 자기 닮아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게으름이 있다. 그래서 일요일만이라도 같이 등산을 하러 가기로 약속했다. 어느 날 아침 아들과 마을 뒷산을 오르면서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는 사람치고 성공한 사람 못 보았다’고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말했다. 그런데 아들은 ‘나는 보았어요. 아빠가 있잖아요’라고 말하더라는 내용이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성공한 아버지로 인정받아 기분 좋게 산행을 마쳤다”고 하였다.

그때도 나는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걱정되었다. 결혼 당시에도 아내에게 ‘부모님 잘 모셔야 한다’고 했지 아이들과의 행복을 앞세우지 못했다. 나는 해방 이듬해 태어나 한국전쟁을 아버지 등에 업혀 피난살이로 시작하였다. 교실 없는 텐트 안에서 초등학교 공부를 시작했고 청소년 시절에는 애국과 반공, 군부독재에서의 민주화가 사회적 큰 문제이었다. 그 길에서 김구 선생과 만해 한용운 선생만이 존경스럽고 거룩한 분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만해 한용운 선생이 3·1운동으로 인하여 3년 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왔을 무렵, 위당 정인보 선생은 ‘인도에는 간디가 있고 조선에는 만해가 있다’고 하였으며, 임꺽정의 홍명희는 ‘7천 승려를 합해도 만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더불어서 ‘만해 한 사람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한 글을 읽었다. 이러한 정신을 머릿속에 담고 한눈팔지 않고 곧게 살겠다고 다짐해 왔다.

어느 해, H신문사 논설실장을 석정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만났다. 그 뒤 그의 칼럼을 읽고 나는 다시 깜짝 놀랐다. 그는 멀리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빠가 회사에서 어떻게 해서든 여름방학 동안 한 달 휴가를 얻을 테니 너도 시간을 내 아빠와 함께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언론사의 바쁨을 핑계로 딸아이와 ‘추억유산’ 만들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도 나는 네 아이들은 생각하면서 권투경기에서 어퍼컷으로 공격당하고 휘청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나는 이 땅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간서치(看書癡) 같은 삶을 살아왔다.

자고 나면 억! 억! 하면서 아파트와 땅값이 치솟는데 아비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 줄 수 있단 말인가. 가슴 시릴 뿐이다. 아들아 미안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래도 네 아이에게는 물질적인 것도 좋지만, 부모가 떠나간 뒤에도 행복했던 날들의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추억의 복주머니’를 생각해보면 어떻겠니. 상속세 걱정할 일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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