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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꽃고무신 / 김정화

부흐고비 2021. 4. 5. 09:04

어른이 되어서도 격에 맞지 않게 꾸는 꿈이 있다. 냇물에 신을 떠내려 보내고 안타까움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꿈이다. 그런 꿈을 꾸는 날엔 내 가까운 사람 누군가와 어김없이 작별을 고하게 된다. 어젯밤에도 또 꽃고무신을 잃은 꿈을 꾸었다. 어찌나 꿈속에서 안타깝던지 물속에 풍덩 주저앉았다. 그랬더니 나마저 고무신과 함께 둥둥 떠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기겁을 해서 깨어났다.

오늘은 아들 녀석을 서울로 떠나보내는 날이다. 언제나 이별에는 당차지 못한 여린 가슴인지라 더구나 아이를 처음으로 떼어내는 아픔을 감당 할 수 없을 것 같은 염려로 오래 전부터 고심했었다. 아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지 못하고 골목길로 사람을 피해 걸으면서 엊저녁 꿈을 생각했다.

그놈의 고무신. 내 의식 저 밑바닥에 음울하게 웅크리고 앉았다가 발동만 하면 내 눈에서 눈물을 빼는 그놈의 고무신. 아이 녀석이 떠난 것이 꿈속의 고무신 탓인 양 원망하다 혼자 씁쓰레하게 웃었다.

어린 시절 나는 기차역 뒷마을에서 살았다. 기차역과 마을 사이에는 대인천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시커먼 구정물이 흐르는 지저분한 곳이지만 그때는 개울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이 흘렀다.

달이 뜨는 밤이면 어머니는 고무통 가득 빨랫감을 담아와 밤이 이슥하도록 빨래를 했다. 나는 물속에 비치는 달을 건지노라 밤이 깊은 줄도 몰랐었다. 송사리, 미꾸라지, 눈쟁이, 가재, 다슬기까지 살았던 그곳은 우리들이 학교 갔다 오면 가방을 팽개치고 모이는 우리들의 낙원이었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이라든가 오래 장마가 계속되어 큰물이라도 나는 날엔 도로 가까이까지 찰랑거리며 흐르는 냇물엔 오만 잡동사니가 다 떠내려 왔다. 돼지, 닭, 고양이, 집오리, 개 등의 가축도 떠내려오고, 바가지, 솥단지, 장롱, 초가지붕의 용머리까지도 떠내려 왔다. 어떤 때는 사람도 떠내려와 다리 난간에 걸쳐 있다며 아이들은 정말 살판이라도 난 양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무서운 장마가 휩쓸고 지난 후 오래지 않아 냇물은 차츰 줄어들어 우리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큰물이 지고 난 후엔 상류에서 떠내려 온 큰 고기들이 많았고 가재, 다슬기도 훨씬 흔했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들은 학교 파하기가 무섭게 냇가로 달려가 고기 떼를 쫓고 돌멩이를 들어내 가재를 잡는다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엊그제 새로 산 꽃신 때문에 물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물가에서 구경만 했다. 그러나 구경만 하기엔 너무 좀이 쑤셨다. 가만가만 한 발씩 물에 담그고 냇가에 있는 돌멩이를 뒤집었다. 그런데 그곳에 가재 두 마리가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꽃신에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가재를 잡는 재미는 나를 물속으로 자꾸만 유혹했다.

그렇게 한참을 휘젓고 다니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 통에 내 발에서 벗겨져 둥둥 떠내려가는 꽃고무신.

죽을힘을 다해 쫓아갔지만 평소보다 불어난 물은 속도마저 빨라져 꽃고무신은 금세 소용돌이 소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소沼에서 들락거리는 고무신을 보며 안타까움으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몇 번 자맥질하던 꽃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너무 안타깝고 속상해서 목이 터져 라 울었지만 내 꽃신은 영영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한 달 전에도 미꾸라지 잡는다고 뛰어다니다 검정 반고무신을 잃었었다. 남자인 오빠도 그런 일이 없는데 번번이 신을 잃어버린 칠칠한 내게 아버지는 잔뜩 화가 나셔서 맨발로 다니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한번 말씀하시면 거의 거두시는 법이 없는지라 할머니께서는 뉘 집에선가 헌 신을 얻어 오셨다.

그것마저 신고 까불다 찢어져서 할머니가 안으로 천을 대고 꿰매어 주셨다. 창피하고 불편한 거야 말할 나위 없었으나 워낙 내 잘못이 큰지라 달포 가까이 그걸 끌다시피 신고 다녔었다. 꿰맨 자국이 터질세라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할 때도 난 노상 맨발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신발 안으로 몰려든 흙물. 그 흙물이 들어 온 신발이 미끄러워 엉거주춤 걸으면서 아마 나는 주워온 아이일 거라고 눈물 콧물 빗물 범벅되어 섧게 울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 안쓰러운 모습이 얼마나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지 엄마는 다음 날 참으로 고운 꽃신을 사다주셨다.

그런데 그 아까운 내 꽃신. 아직 분粉도 채 가시지 않은 내 꽃신을 또 떠내려 보냈으니. 집에 갈 생각도 잊은 채 꽃신을 삼켜버린 그 소沼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할머니에게 팔목을 잡혀 끌려오면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고운 꽃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신발을 잃을 때마다 안타까웠던 그 마음은 내 의식 밑바닥 에 고스란히 가라앉았던 모양일까? 예나 지금이나 꽃고무신을 떠내려 보내는 꿈을 꾸며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꽃신 꿈을 꾸는 날엔 어김없이 누군가와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어제 저녁 꿈은 20년 동안 내 품에서 고이 자란 큰아이를 떠나보내는 꿈이었나보다. 어느 땐가는 우리 모두 헤어져야 하거늘 난 너무 이별을 겁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김정화 수필가: 전남 광주 출생, 『월간문학』 등단,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졸업, 광주문인협회, 남도수필 문학회 회원. 수상 : 신곡문학상, 광주문학상. 수필집 :  『왜 우리에게 도돌이표는 없는가』, 『우리는 무엇에 길들여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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