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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껍데기 / 김기자

부흐고비 2021. 4. 5. 09:08

처음에는 몰랐다. 굽은 몸을 간신히 기댄 채 밀고 가는 유모차에 왜 아기를 태우지 않았는지. 상황파악이 된 후로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다리에 힘이 없으니 유모차 바퀴의 힘을 빌어서라도 더딘 걸음을 옮겨야 하 는 노인의 처지를 보면서 먼 훗날의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되었다. 나도 저렇게 변할지 모른다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혼란스런 마음은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은 아니더라도 그렇게나마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스런 일이다. 늙고 약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일 뿐더러 아예 바깥출입이 제한될 경우 얼마나 절망이겠는가. 노인의 알맹이는, 건강과 청춘은 어느 때 어디로 사라져 간 걸까.

시장에 가보면 사람이 지나는 곳 어디서든 조그만 좌판을 만난다. 앉은자리에서 고작 몇 뼘 정도를 차지한 채 물건을 팔고 있는 노인을 볼 수 있다. 푸성귀이거나 홉으로 파는 곡식 따위가 전부다. 집에서 편히 지낼 연세이건만 더운 날 추운 날 가리지 않고 장사를 나오는 이유가 궁금하다. 일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꼭 돈을 벌어야만 하는 걸까.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라면 고생스러운 모습이 애처롭다. 더 늙고 병이 라도 들면 어떻게 하나. 그 분의 자식들은 이 상황을 알고나 있는지, 아니면 그도 저도 드러낼 수 없이 방관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지 궁금하다.

이곳저곳에서 만나게 되는 노인의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분들의 젊은 날이 궁금하다. 뜨거운 여름날을 지나 가을날의 추수를 거치듯 나름대로 인생의 묘미에 빠졌던 시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굽어진 등허리에 세월의 무게가 자리한 채 그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지나간 무수한 날들은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 뒷바라지에 출가시키느라 아마 세월 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퇴색된 젊음이 삶의 훈장인 양 귀하게 여겨진다. 바스라질 정도의 낡은 육신을 이끌고도 내색 않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마지막까지 숭고하다. 그것만이 내가 던질 수 있는 깊은 위로이다.

노인의 모습은 마치 껍질을 두른 고목 같다. 자식들을 지켜내기 위해 온갖 시련을 이겨낸 몸은 이제 메마르고 작아지기에 바쁜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람한 거목의 형상으로 다가오고 있음에 내 마음은 놀라게 되었다. 울퉁불퉁 갈라지면서까지 수분과 영양을 모두 몸속으로 흡 수해오며 견뎌온 모습은 보기에도 존경스런 삶이 아니던가. 이제는 푸르던 삶을 모두 내려놓은 듯 차분함마저 엿보인다. 얼굴에 내려앉은 세월 의 흔적이 말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열심히 살아왔다. 이제는 자연스레 껍데기로 치닫고 있을 만큼의 길 위에 서기 시작했다. 머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고 있다. 집안에는 나를 닮은 손녀가 생겨나와 구석구석 웃음을 선물하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보다 더 좋은 날은 없을 것이다. 알맹이를 지키기 위해 살아왔던 날들은 비록 지금의 나에게 껍데기라는 별칭을 준다 해도 전혀 거북하지가 않다. 한층 인생의 깊은 맛에 빠져들고 있는 시간이다. 내 스스로 알게 된 부모의 본성은 주고 또 채워주어도 아쉽기만 한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릇되고 맹목적인 방법은 늘 조심하고자 한다.

탐스런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하얀 속살은 상큼한 맛과 함께 머릿속까지 향기를 전해준다. 이런 맛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햇볕을 견뎌냈을까. 마치 부모가 자녀를 기르며 양육하는 과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장성한 아들과 딸을 바라보며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크거나 작게 겪어 왔던 삶의 애환이 조용히 물결 되어 밀려온다. 돌아볼수록 감사할 뿐이다. 거친 세상에서 힘들었던 날들을 이겨내며 살아온 것은 바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자부한다. 부모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모든 생물은 껍질을 보유하고 있다. 각양각색으로 저마다의 특성을 지닌 채 순간순간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대응해 간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단단해지기 위하여 비바람에도, 뜨거운 태양에도 자신의 속을 지켜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결과는 인생의 늦은 길에서 노을처럼 황혼이란 빛으로 다가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조용히 사색에 빠져든다. 무엇엔가 의지해야만 걸어가는 노인을 보며 지나가 버린 그분의 젊음을 함께 아쉬워한다. 또 다른 내 인생의 그림자를 지켜보는 듯하다. 사위어 가는 내 젊음이 아깝다 한들 붙잡지 못하는 사실 앞에 서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거다. 육신을 거느리는 껍데기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세상 사람 모두들 그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허망하다기 보다 내려놓는 가벼움을 터득하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껍질이라 하여도 두려워 않고자 한다. 하지만 내 안의 알맹이들 은 이런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생명 을 주신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야 내가 알맹이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스스로 껍데기의 역할에 자랑을 싣는다. 지나온 날의 회한에 빠진다 해도 인생의 석양빛은 아름다운 것이다. 진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비록 육신은 낡아지지만 삶에 담긴 지혜는 나날이 알차게 변하여 가고 있음을 흡족해한다. 남은 시간 동안 껍데기의 몫이라 할지라도 충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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