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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헌의 <상쾌한 덫>을 읽고 -

우선 수필 제목의 의외성이 눈길을 끈다. 덫이란 짐승(또는 특정, 불특정의 대상)을 꾀어 잡으려는 장치나 수단이 아닌가. 이 의심스럽고 기분 나쁜 물건에 ‘상쾌한’이란 수식어를 붙였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덫이란 부정적 징표에 작가가 산뜻한 그 무엇을 숨겼을 것 같은 생각에 잔뜩 호기심이 발동한다.

아침에 화자가 출근하려고 차 문을 여는 순간 편안해야 할 공간 머리맡에 거미줄이 흔들린다. 순간 화자는 덫에 걸린 느낌을 받는다. 유년 시절 이후 거미에 대해 형성된 부정적 인식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난다. 화자는 거미줄을 자신의 삶속에 무수히 놓였던 덫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 거미의 공략을 관찰해 보자.

‘먹이가 파닥거리다 힘이 빠지면 독침을 놓는,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먹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진액을 쪽쪽 빨아먹는, 먹잇감을 집요하게 기다리는, 정자집을 흔들어대며 상대에게 교태를 부리는, 먹잇감을 다리로 톡톡 건드리며 희롱하는,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엉너리 치는, 포획 후 상대의 턱을 물어뜯는, 먹이를 보쌈하듯 칭칭 동여매는, 잡은 먹잇감으로 짝의 마음을 후려내는, 죽은 먹잇감을 줄에 매달아 속임수를 쓰는, 간교하고 음흉하며 흉악한....., 이러한 흉계가 어찌 거미뿐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방천지가 거미줄인데.’

면밀하고도 놀라운 관찰이다. 거미와 거미줄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인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모두가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삶에서 마주치는 위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침 햇살에 영롱하게 빛나는 거미줄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에는 차츰 시각의 변화가 일어난다. 거미줄이 간교한 덫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 것이다. 밤새 거미줄을 직조한 거미의 내공에 생각이 머물자 그 생존방식을 이해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거미의 흉계를 알뜰하게 고발한 화자는 거미줄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거미가 ‘숨어서 나를 먹잇감으로 노려보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며 관대한 마음을 갖는다. 그와 함께 '이제까지 거미에 대한 기억은 피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는지 의구심까지 든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거미는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서만 거미줄을 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무뜩 들기 시작한다. 거미가 정성 들여 그물을 치는 것은 치열한 삶의 자세인지도 모른다. (중략) 어둠 속에서 밤새 내 그물을 쳤을 생존의 진지한 태도와 섬세한 그 내공이 과연 내겐 있었던가를 곱새겨본다. (중략) 경계해야 할 것은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이 아니라 스스로 내 마음속에 쳐놓은 삿된 그물이다. 정작 걷어내야 할 것은 저 거미줄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얼크러진 그물이다.’

거미줄은 이미 화자에게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거미에게서 치열한 삶의 자세를 엿본 화자는 자신의 지난 삶을 반추하고 스스로 마음속에 쳐놓은 나쁜 그물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한다. 이러한 대승적인 자세는 화자를 비롯하여 독자들이 자연의 이치에서 긍정의 힘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표본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오늘 아침 화자의 출근길은 활기차고 거미와의 동승이 전혀 불편하지 않을 모양이다.

마침내 <상쾌한 덫>이란 제목의 반의적 이중성이 주는 의문이 산뜻하게 풀렸다. 거미와 거미줄에 대한 집요한 관찰의 미학과 전혀 의외의 반전(낯설게 하기)을 통한 의미화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혐오의 대상이던 미물의 삶에서 빛나는 가치를 찾아내는 가슴이야말로 진정 보석이 아닐 수 없다.

 




최태준 수필가는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영문과 졸업 △《에세이스트》 수필·평론 등단

△대구수필가협회 이사 △대구문인협회, 《수필세계》 수필사랑문학회, 북촌시사(北村詩社) 회원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 △수필집 『골프와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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