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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부모 자격증 / 김학

부흐고비 2021. 4. 6. 08:43

나는 지금까지 평생 자격증 하나와 면허증 하나밖에 딴 일이 없다. 자격증은 대학 졸업 때 땄던 ‘중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이고, 면허증은 88서울 올림픽 때 땄던 운전면허증이다. 나는 그 두 가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교사자격증은 제대 후 H고등학교에서 6개월 간 교사생활을 할 때나 필요했지 지금은 무용지물이고, 운전면허증은 앞으로도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증명서다. 승용차를 타고 외출할 때 혹 주민등록증은 빠뜨려도 상관없지만 운전면허증은 꼭 가지고 나가야 한다.

국가가 공인하는 운전면허증을 땄지만 20여 년 동안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자잘한 접촉사고를 많이 냈다. 두 번째 구입한 지금의 승용차도 여기저기 긁혀서 싸움개처럼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내가 운전을 잘못하여 긁히기도 했지만, 남의 실수로도 긁혔고, 원인불명의 상처도 없지 않다. 그것이 내 승용차의 현실이다. 돈 내고 자동차학원에 다니면서 운전을 배워 면허증을 땄는데도 실제 운전을 하다보니 이렇게 잦은 실수를 하게 된다.

자격증이나 면허증도 없이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되었다. 내가 운전학원에 다니면서 운전연습을 했던 것은 안전한 운전사가 되려는 준비과정이었다. 정식으로 운전면허증을 딴 뒤 운전을 해도 그렇게 실수가 잦았는데, 아무런 준비나 연습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된 내가 과연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아빠들도 나와 대동소이할 것이고, 엄마들도 다를 바 없을 줄 안다. 우리는 준비도 하지 않고 경험도 없는 초보 부모이자, 공인 자격증이나 면허증도 없는 무자격 무면허 아빠 엄마다. 이 세상에는 무면허 운전사를 단속하는 교통경찰은 있지만 무자격 무면허 아빠 엄마를 단속하는 경찰은 없다.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는 2남 1녀를 두었다. 그 아이들 모두 이미 결혼하여 저마다 둘씩을 낳아 기르고 있다. 물론 큰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딸 내외도 준비 없이 어느 날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우리 부부나 크게 다를 바 없다. 내 아이들은 자라면서 내 말 한마디와 행동 한 가지를 허투루 보지 않고 귀담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그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보여준 행동이 모두 제대로 된 가르침이었고, 시범 조교 같은 본보기였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세 아이에게 교육적 목적으로 말과 행동을 하기보다는 내 기분, 내 생각대로 했던 게 더 많았을 성싶다. 그 당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던 적도 더러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범했으리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선생님을 양성하는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 등 교육기관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교사자격증을 받는다. 그러고서도 또 임용시험에 합격해야 학교에서 선생님의 자리에 설 수 있다. 그런데 그 선생님들보다 더 자녀들에게 영향력이 막중한 부모들에게는 왜 그런 교육절차가 생략된 것일까? 부모 자격증이나 부모면허증을 주는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결혼만 하면 아무런 준비 없이 부모가 될 수 있다니, 이건 진짜 모순이 아닌가?

무자격무면허 부모들이 우글거리는 이 세상에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깊게 혹은 멀리 들이대면 별의별 희한한 일들이 참으로 많다. 12살 난 자기 친딸을 유흥업소에 팔아넘긴 엄마가 있는가 하면, 아들딸을 부모의 전유물처럼 여기고 고층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내던져 목숨을 잃게 하는 부모도 있다. 어린아이의 손발을 묶어놓고 때리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은 채 방에 가둬두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자기 아이를 굶겨서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게 하기도 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동반 자살 부모도 없지 않다. 동물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온갖 잔혹한 일들을 태연히 저지르는 부모들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정부가 이러한 아동학대 부모들의 친권을 박탈하려 하겠는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큰아이보다는 아래로 내려가면서 더 부모가 사랑을 쏟는다는 말이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무자격 무면허 부모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준비나 경험도 없이 부모가 되니 큰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롭게 배우고 익히며 실습할 수밖에 없다. 연습 삼아 낳아서 기르는 게 큰아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큰아이보다는 둘째나 셋째로 내려가면서 숙달된 부모, 자녀 양육 전문 부모가 되어 훨씬 수월하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초보운전자가 번잡한 거리에서 충분히 주행연습을 하여 노하우를 쌓아 유능한 운전자가 되듯, 초보 부모도 그런 실습 과정을 거쳐 진짜 능력 있는 부모가 되지 않았을까.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아들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오래 전의 가족계획 구호를 다시 활용해야 될 실정이다. 오죽하면

“결혼한 지 1년 안에 임신하고, 두 아이를 서른 살 안에 낳아 기르자!”

며 정부가 123운동을 시작했을 것인가? 그런데 그에 앞서 부모교육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일부 종교기관에서 부모 교육을 시키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부모가 된 사람들, 즉 기혼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보수교육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처녀총각들을 대상으로 결혼 전에 부모로서의 바람직한 소양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제도마련이 더 화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정부가 부모교육 기관을 만들어 그곳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처녀 총각들에게는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주어 결혼하도록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존경받는 유능한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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