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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ㅇㅇ 이다'라는 명제의 수필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지만 망설여진다. 아무리 궁리해도 ‘(수필가)이다’를 써넣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 수필가로 평생을 살아왔으나, 독자들의 기억에 남을 수필 한 편이라도 있을지 알 수가 없어 부끄러움이 남아 있긴 하다.

수필로 문단에 데뷔한 것은 1975년 한국문인협회가 발간하는 종합문예지 『월간문학』을 통해서였다. 신인 작품 모집에 응모하여 수필부문 최초의 등단 수필가가 되었다. 그때의 연령이 서른 살이었다. 수필가들의 평균 연령이 5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가장 연소한 수필가가 등장한 셈이다.

당시에 ‘수필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폄훼하는 경향도 있었고, 주변에서 다른 장르를 택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1976년 『현대문학』지 편집장이었던 조연현 선생으로부터 수필추천을 받았다. 「어둠을 바라보며」라는 작품으로 수필부문 첫 추천자가 되었다. 이로써 『월간문학』과 『현대문학』지의 최초 수필추천자가 되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진주에 살고 있었기에, 문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도 되지 않았다. 작품을 쓰면 우편으로 보내고, 문학지에 게재될 날만을 기다리곤 했다. 서울과 진주는 천리 길이었지만, 수필부문 최초의 등단 수필가였기에 발표 지면이 많았다. 작품 발표의 기회가 많았기에 수필 문학에 빠져들 수가 있었다.

‘나는 이다’에 ‘수필가’를 써놓을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텅 빈 속에 서슴없이 ‘수필가’를 써놓을 수 있어서 가슴이 뛰고 삶의 길이 펼쳐지는 듯했다. 비어 있는 괄호 안에 무엇을 채워넣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수필가가 되어 수필 쓰기에 골몰하면서 ‘나의 삶, 인생’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렀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음에 묻은 ‘탐욕’이란 때를 씻어내고, ‘이기’라는 먼지를 털어내고, ‘어리석음’이란 헛됨을 닦아내야함을 느낀다. 마음에서 향기가 나야 인생에서 향기가 나지 않을까 한다. 문학 갈래 중에서 하필이면 알아주지 않는 ‘수필’에 매달려있는가를 자책하는 사람도 보았지만, 나는 ‘수필’이 있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시, 소설, 희곡 등은 픽션이어서 ‘지어낸 글’이지만, 수필만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이어서 자신에겐 더없이 소중한 영원장치가 아닐 수 없다. 수필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인생을 망각 속으로 흩날려 보내지 않고, 간직함으로써 삶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을 꽃피워낼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침략을 물리치는 전쟁 중에도, 밤이면 촛불을 켜고 그날에 벌어졌던 전투의 내용을 시발에서 종료까지 기록하면서, 반성과 함께 새로운 전술을 구상하곤 하였다.

‘수필’을 예사롭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문학’ 중에서도 가장 무게가 있는 장르가 아닐까 한다. 시나 소설, 희곡은 꾸며낸 픽션이지만, 수필만은 진실의 세계인 ‘논픽션’이기 때문이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 하는 것도 ‘나의 삶, 나의 인생’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생 경지’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수필가’라는 이름은 예사로운 이름이 아니다. 수필의 경지는 곧 인생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인생에서 향기가 나야 수필에도 향기가 나리라. 마음이 향기로워야 인생에서 향기가 풍길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닦지 않으면 수필에도 향기를 낼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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