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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부부인연 / 청정심

부흐고비 2021. 4. 7. 08:40

인연 중에 부부인연만큼 소중한 인연이 또 있을까. 부부, 어느 생에 어떤 인연으로 만났었기에 금생 부부가 되었을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 중에 오직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예를 올리고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것.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위하여, 한 여자는 한 남자를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특히 여자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부부 중에는 선연도 있고 악연도 있다. 부부라는 낱말을 떠 올릴 때면 나는 먼저 친정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19세에 아버지를 만나 부부가 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부부라는 인연을 맺었으면 누구나 한방을 쓰고 함께 일을 하며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지만 우리 부모는 달랐다. 한방도 쓰지 않고 식사뿐만 아니라 한 자리에 앉아 대화하는 것조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완전히 남남이었다. 어머니는 늘 외로웠고 대가 없이 일만 하는 삶을 사셨다. 그 시절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어떤 일이 있어도 친정에 갈 수가 없었다. 죽어도 그 집 울타리 안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시집에서는 개한테도 ‘개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을까.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젊은 후배들이 아파트 이름을 어렵게 지은 이유가 시어머니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했다. 같이 웃어넘기기는 했지만 뒷맛은 좀 씁쓸했다.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고 살았던 옛일이 생각나서였다. 물론 내 어머니 시집살이와는 비교도 안 되지만 내 몫의 시집살이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결혼 전 친정에서 받은 교육은 엄격했다. 시집에서는 아무리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무시를 당해도, 시댁식 구들에게 얼굴을 붉혀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가끔 새댁시절을 떠 올릴 때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참 보살이었지 싶다. 고된 시집살이에도 참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며 미워하는 마음이나 싫은 내색조차 감히 못해 보았다. 시집이란 으레 그런 것이려니 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만약 그때 내가 신세대의 사상을 가진 여성이었다면 친정으로 돌아가 어떻게 해서라도 중단한 대학공부를 계속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을 기도와 믿음으로 참아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고된 시집살이는 여리디 여린 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냈다. 가슴에는 울렁거리는 병이 오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수심과 노란 색깔이 깊게 배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내 마음에 병이 들어갔지만 식구 중에 누구도 알아차리는 이가 없었다. 설과 추석에만 친정 나들이를 했는데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보고는 명랑하고 깍쟁이였던 아이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 역시 아내가 어떤 고통으로 병이 들어가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편에게 시집살이 이야기를 했다가는 더 큰 풍파가 일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 옛날 어른들은 시집을 가면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을 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벙어리 5년, 장님 5년, 귀머거리 5년을 살아야만 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이 시작된다. 삶의 주체가 자신임은 분명하지만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고 인생 궤도가 바뀐다. 특히 여자가 부부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삶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만남들 속에서 기쁨과 슬픔으로, 사랑과 미움으로 때로는 눈물과 원망으로 각자가 하루하루를 엮어간다. 삶이 고행의 연속일지라도 묵묵히 인내로 지키고 살아가면 반드시 그 인내의 열매로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이제 와서 나는 알았다.

순진하고 바보스러웠던 과거의 삶 속에서도 기도하는 삶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부처님은 나를 어여삐 보아 주셨기에, 건강도 회복시켜 주고 모든 소원 하나하나를 알게 모르게 이루어 주고 계신다. 남편과의 인연으로 주신 자식들과, 주위에 동기간 같은 마음씨 고운 분들로 인해 이렇게 복된 노후를 살게 하고 아팠던 상처를 조금씩이나마 글로 풀 수 있게 기회를 주셨다.

이제 내 가슴에 있었던 어떤 미움도 원망도 상처도 다 치유되었고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움만 가득하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고 다시 태어나는 윤회의 그물에 걸려 미혹을 거듭해 온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라.’ 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해 기도 드린다.

‘전생의 안 좋은 인연으로 금생에 아버지와 부부 인연을 맺었어요. 그 인연으로 일생을 아프게 살다 가신 한을 풀어야 인연의 수레를 다시 안 타실 겁니다. 아버지와 만난 인연으로 세세생생 지은 빚과 모든 악연을 풀은 것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아버지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기도 해요. 어머니가 지은 업보는 어느 생에 받아도 받아야 하거든요. 부처님 궁전에서 좋은 법문 들으시고 참된 보살이 되어 아버지를 제도 시켜 다시는 그런 부부 인연으로 만나지 말고 도반으로 만나 성불하시기를 빌어요.’

오늘 아침도 남편과 다투었다. 별것도 아닌 것으로 우리부부는 종종 토닥거린다. 그러나 남편은 친정아버지와 비교하면 부처님이다. 성품도 순하고 요즘은 내 부탁을 거절하는 적이 없다. 바깥에 나가서는 아내의 기도 은혜로 오늘 이렇게 건강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을 다스려도 중생이기 때문에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섭섭한 것이 많다. 그 시절에는 일에 지쳐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와도 귓전으로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 같은 바보는 없는 것 같다. 공부하는 중에 시집을 왔으니 세상물정도 모르고 순수하기만 하여 부부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 시어머님하고 한방을 쓰기를 원했던 것이다. 크게는 후회를 안 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미울 때도 있다. 젊은 시절 남편은 나와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제는 모두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옆에서 남편의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금생에는 부부인연으로 만나 일생을 토닥거리며 살지만 내생에는 좋은 도반으로 만나 성불하여 부처님 법을 세계로 전하고 모든 중생 제도시킬 수 있는 큰 인연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오늘도 나는 새벽기도를 드렸다.

 




청정심 수필가:  「월간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대표에세이문학회, 음성문인협회 회원.

불교청소년 도서저작상 수상.

수필집 : 『청향당의 봄 『내 마음에 피는 우담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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