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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떤 화해(和解) / 김학

부흐고비 2021. 4. 7. 14:22

오해는 미움을 낳고 화해는 사랑을 낳는다. 오해는 서로를 해치지만 화해는 서로를 돕는다. 오해는 서로의 마음을 닫지만 화해는 서로의 마음을 열어 준다. 오해와 화해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극과 극이다.

새천년의 첫봄, 나는 C교수와 화해를 했다. 돌이켜 보면 20년만의 화해인 셈이다. 20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세월이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같은 시내에 살면서 소 닭 보듯, 개 바위 보듯 지내야 했다. 말이 그렇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공·사석에서 마주치면 마지못해 겨우 목례나 할 뿐 손 한 번 잡아본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개운하지가 않았다.

나와 C교수는 가까운 사돈 사이다. C교수와 사촌간인 나의 내종형은 중학교 시절부터 C교수 댁에서 하숙 생활을 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 세월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집을 드나들면서 서가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을 구경하고 책 부자인 C교수를 못내 부러워했었다. 책이 귀하던 나의 학창 시절, C교수 댁의 서가는 나의 도서관이나 다름없었다. 시집이며 수필집, 또는 소설집 등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일찍이 문학에의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C교수 댁을 드나들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C교수는 시조시인이요, 수필가로서 크게 문명을 떨치고 있는 분이다. 저서만 해도 수십 권에 이른다. 우리 문단의 원로이시다. 오래 전부터 그분이 가꿔 오신 종합문예지는 어느덧 지령이 2백 호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동인지다. 나도 오해의 수렁에 빠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그 문예지에 동인으로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G수필문학회를 창립하면서 사이가 벙그러지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처럼 문학이 장르별로 활성화되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니 C교수가 수필문학회 창립을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그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필문학회를 창립했으니 그분의 노여움을 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여러 차례 찾아뵙고 용서를 빌었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렀다.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그 동안 C교수는 대학에서 정년을 맞이하셨고 연세도 어느덧 고희에 다다랐다. 나 역시 정년이 코앞에 이르렀고, 이럴 때 메시아가 나타났다. G사장이 구세주였다. C교수의 문하에서 문학 공부를 하는 G사장의 주선으로 화해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고, 옛날처럼 C교수 댁으로 옮겨 정배주를 더 마셨다. 20년 묵은 체증이 시원히 내려간 느낌이었다.

세월이 약이었다. 옳고 그름도 없었다. 조상이 맺어 준 인연은 쉽사리 끊어지는 게 아니었다. 지나가 버린 20년 세월이 가르쳐 준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C교수는 우리 고장의 문인들이 하나로 뭉쳐 자신이 펴내는 동인지를 키우고 싶었을 터이고, 나는 셋방살이하는 수필 가족들을 묶어서 수필의 집을 마련하여 오순도순 살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20년 세월이 훌쩍 흐르고 나니 이제사 다시 잘잘못을 따진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굽일어 올 뿐이다.

C교수가 만드는 동인지는 어느덧 지령 2백 호에 이르고, G수필문학회가 발간하는 동인지도 지령 50호를 넘어 이순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두가 성공적인 결과가 아닌가. 새천년 새봄을 맞아 나의 마음은 날아갈 듯 상쾌하고, 나의 발걸음은 뛸 듯이 가볍다. 20년만에 족쇄를 풀고 달리는 기분이다.

나의 큰고모부께서 돌아가신 지도 어느덧 해가 바뀌었다. 그 큰고모부께서 생전에 몇 번이나 나에게 강조하시곤 하셨다. C교수와 가깝게 지내라고…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네, 네." 하고 대답은 하였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내가 나섰다가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머무적거리는 사이에 큰고모부는 세상을 하직하시고 말았다. C교수와 만나는 자리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C교수의 작은아버지인 나의 큰고모부께서 C교수에게도 나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은 말씀을 자주 하셨던 모양이었다. 이제사 큰고모부님의 유언을 따르게 되는 셈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저승에 계시는 큰고모부께서도 한시름 놓으셨으려니 싶어 흐뭇하다.

나이가 가르친다고 했던가. 이순이 눈앞에 다가오니 옛날이 돌이켜지고 때로는 뉘우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G사장이 아니었더라면 우물쭈물하다가 영 화해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나의 첫 수필집 서문 때문에 C교수 댁에 갔다가 처음 만났던 J선생이 떠오른다. 동기간처럼 다정하게 지냈던 그 친구도 오늘따라 더 보고 싶다. 우리의 관계도 결국 C교수가 맺어 준 인연인 것을…….

사람이 세상을 사노라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인연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인연의 끈은 내 뜻대로 당기거나 놓을 수 없는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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