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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걸레의 미덕 / 조주희

부흐고비 2021. 4. 7. 08:42

커피를 따르다 조금 쏟아졌다. 옆에 있는 걸레를 집어 당겨 방바닥에 커피를 닦는다. 순식간에 커피 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닥이 전처럼 말끔해지는 것을 응시하면서 순간 나는 그처럼 깨끗이 닦아지는 걸레의 역할에 대해 새삼 놀라운 경의를 느낀다. 어쩌면 이렇듯 말끔히 지워지게 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일까에 대하여 일순간 경탄이 터져 나온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사용을 하는 걸레이고, 그때마다 걸레가 감쪽같이 자국이 난 부문이나 더럽혀진 자리는 처리해 내는데 마치 방금 세상에 태어나 걸레라는 물건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놀라며 경탄하게 되는 나 자신을 곧바로 돌아보게 된다. 인간관계 안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흠집이나 추한 면을 걸레처럼 닦아주는 역할을 못 하는 나의 인품을 순간 되돌아보는 모습이다. 남의 흠이나 부족한 부분을 구태여 들춰서 흉으로 삼으려는 의도야 품어본 적이 없지만 좋은 의도에서라는 입장에서 타인의 흠이나 잘못을 입바르게 지적해 왔던 나의 삶이 걸레에 대조되어 내게 비쳐나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걸레처럼 사용되어 그들이 흠을 지니고 나를 불러대면 그 흠집을 말없이 닦게 하고,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면 거기 가서 그들 스스로 나를 통하여 자신들의 치부를 닦아내게 하는 역할을 못 하는 것 같다. 남의 탓을 불러일으켜 나 자신에게 이롭거나 즐거움을 맛보려는 부정적인 마음이야 결코 없었지만 사람들의 흠을 날카롭게 지적해 내는 통에 엄청난 밉상을 받으며 살아온 것 같다. 왜 그렇게 밖에 되지 않나 돌이켜 보면 난 걸레의 속성을 전혀 본받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보니 걸레는 본받아야 할 점을 많이 그의 속성 안에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걸레는 찬연하고 위대하다고까지 나의 눈에 비쳐온다.

걸레는 그처럼 오염된 것들을 세상에서 깔끔하게 처리해 내는가 하면 침묵하는 덕을 지녔다. 먼지라던가 더러운 것이나 필요 없는 것들을 말끔히 닦아낼 수 있음에도 나를 좀 사용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구석에 처박히면 처박힌 대로 바닥 한복판에 놓이면 거기서 그대로 잠자코 있으면서 누가 필요해서 갖다 쓰면 그제야 제 실력을 다 발휘하여 사용자가 요구하는 것을 처리해주는 순응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사람들이 더더욱 자주 그를 불러다 쓰게 되는 상황을 빚어내고 있다. 걸레 같은 역할을 인간관계에서 하고 싶었으나 나는 걸레 같은 침묵의 미덕을 터득하지 못한 채 나를 좀 불러다 닦아내는 데에 쓰라고 떠들었다고 여겨진다.

걸레는 그렇지만 겸손의 자존심을 한껏 내보이고 있다. 세상의 물건들 중에 가장 낮은 곳에서 늘 떠돌며 사람들로부터는 가장 천한 것으로 내돌림을 받는다. 발밑에 짓밟히고 더러운 무엇과 상대하는 존재라고 한구석으로 밀쳐지기 일쑤다. 그러나 걸레는 제가 임무를 해야 할 상황이 오면 아무 불평도 없이 제 역할을 너끈히 해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걸레가 제 자존심을 지키는 노릇이다. 그의 임무는 발아래 밟히면서 세상에서 더럽고 흉한 것들을 말끔히 닦아내는 과업을 소임 받은 것이니까 그것을 묵묵히 해내고 있을 뿐 어떠한 항거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제 자존심을 가장 잘 지켜가는 태도이다. 소위 3D 업종이라고 일자리를 피하면서 무위도식하는 이들에게 걸레는 자존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상황에 던져진 상태에서 그것을 피하는 것이 오히려 삶의 자존심을 스스로 짓밟는 행위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그런 비천한 일을 어떻게 할까 하고 나는 도사렸던 예가 언뜻언뜻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 참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하고 나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한 자존심을 스스로 잘 닦아가고 있기에 걸레의 세계에도 서열이 있다. 행주는 부엌의 부뚜막 위에서만 놀고 바닥으로 내려오지 않으며 바닥 걸레는 결코 싱크대 위로 올라가는 법이 없다. 젖은 걸레의 소임이 있고 마른걸레의 할 바가 따로 있다. 그래도 걸레의 본분은 먼지 따위나 때를 닦아내는 데에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다. 마른걸레가 젖은 걸레보다 그 소임이 더 깔끔하다고 젖은 걸레의 위치보다 더 가치가 더 있느니 더 보람이 있다는 둥 따질 것이 있을까. 행주는 행주로서의 소임이 있고, 땅바닥 걸레는 땅바닥에서 수임해야 하는 과업이 있는 것뿐이다.

방바닥에 떨어진 커피 자국을 닦아낸 걸레의 천 조각을 보니 그것은 지난날 내가 잘 차려입고 지인들 앞에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던 멋졌던 옷의 한 귀퉁이 조각이다. 그때 내심으로 뽐내며 차려입고 나서던 의복의 천 조각이 걸레로 이젠 전락되어 있다. 세월의 무상함을 걸레 조각에서도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이 천 조각은 걸레로 전락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전락이란 단어는 한층 고상한 위치에서 보다 비천한 위치로 내려앉았다는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걸레의 조각이 지난날 내가 그것을 나들이옷으로 걸치고 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보다 나에게 있어 그 용도의 가치가 격감한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 난 이 천 조각을 걸레로서 더욱 요긴하고 유익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화려했던 의상은 걸레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이제 긴요하게 사용되는 걸레 조각으로 변신하여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변신한다고 해서 늘 더욱 좋은 상황으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헌데 나의 의상 조각은 걸레로 변신하여 여전히 당당히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어쩌면 지난날에 뽐내던 의복일 때보다 나의 생활에 더한층 가까이서 유익한 구실을 한다고 여겨진다. 고급 옷감과 걸레 조각의 차이에 대한 가치를 새삼 되씹어보면서 걸레의 미덕을 가지는 존재로 변신하는 꿈도 제대로 품어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더욱더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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