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詩 느낌

최승호 시인

부흐고비 2021. 4. 9. 08:56

북어(北魚)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공터 / 최승호

아마 무너뜨릴 수 없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빈 듯하면서도 공터는/ 늘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공터에 자는 바람, 붐비는 바람,/ 때때로 바람은/ 솜털로 싸인 풀씨들을 던져/ 공터에 꽃을 피운다/ 그들의 늙고 시듦에/ 공터는 말이 없다/ 있는 흙을 베풀어주고/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뿐./ 밝은 날/ 공터를 지나가는 도마뱀/ 스쳐가는 새가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그렇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늘의 빗방울에 자리를 바꾸는 모래들,/ 공터는 흔적을 지우고 있다/ 아마 흔적을 남기지 않는 고요가/ 공터를 지배하는 왕일 것이다.//

대설주의보 /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만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레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밀려드는 눈,/ 다투어 몰려드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열목어 / 최승호

서울에서 나는 저녁의 느낌들을 잃어버렸다/ 스타빌딩에서 큰 네온별이 번쩍거리면/ 초저녁이다/ 저녁 어스름도 땅거미도 없이/ 벌써 발광하는 거리, 발광하는 간판의 불빛들로/ 눈은 어지러워진다/ 수정체가 조금씩 찢어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눈에서 열이 날 때/ 열목어를 생각한다/ 눈이 태양처럼 벌게졌을 때/ 안과의사가 벌건 눈을 까뒤집고 들여다볼 때/ 의사 선생님,/ 제 눈이 매음굴처럼 벌게졌나요?/ 아니면 정육점 불빛처럼 불그죽죽합니까?/ 눈의 피고름을 짤 때/ 붕대로 공 같은 안구를 눌러대고 있을 때/ 열목어를 생각한다/ 서늘한 계곡에서 눈 식히는 열목어/ 그 적막 깊은 골짜기에서/ 멋모르고 얕은 서울로 내려왔다면/ 열목어야, 네 눈구멍에서/ 붉은 연기와 그을음 조각들이 치솟았으리//

뭉게구름 / 최승호

나는 구름 숭배자는 아니다/ 내 가계엔 구름 숭배자가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구름 아래 방황하다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구름들의 변화 속에 뭉개졌으며 어머니는/ 먹구름들을 이고 힘들게 걷는 동안 늙으셨다/ 흰 머리칼과 들국화 위에 내리던 서리/ 지난해보다 더 이마를 찌는 여름이 오고/ 뭉쳐졌다 흩어지는 업의 덩치와 무게를 알지 못한 채/ 나는 뭉게구름을 보며 걸어간다/ 보석으로 결정되지 않는 고통의 어느 변두리에서/ 올해도 이슬 머금은 꽃들이 피었다 진다/ 매미 울음이 뚝 그치면/ 다시 구름 높은 가을이 오리라//

전집(全集) / 최승호

놀라워라, 조개는 오직/ 조개껍질만을 남겼다//

세속도시의 즐거움·2 / 최승호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곡하던 여인은 늦은 밤 손익을/ 계산해 본다.//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고/ (큰 도적에게 큰 슬픔 있으리라)/ 누워 있는 알거지의 빈 손,/ 죽어서야 짐 벗은 인간은/ 냉동실에 알몸거지로 누워 있는데/ 흑싸리를 던질지 홍싸리 껍질을 던질지/ 동전만한 눈알을 굴리며 고뇌하는 화투꾼들,/ 그들은 죽음의 밤에도 킬킬대며/ 잔돈 긁는 재미에 취해 있다.// 외로운 시체를 위한 밤샘,/ 쥐들이 이빨을 가는 밤에/ 쭉정이 되는 추억의 이삭들과 침묵 속에서/ 냄새나는 이쑤시개를 들고 기웃거리는/ 죽음의 왕.//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홑거적 덮은 알몸의 주검이/ 혀에 성에 끼는 추위 속에 누워 있는 밤,/ 염장이가 저승의 옷을 들고 오고/ 이제 누구에게 죽음 뒤의 일을 물을 것인지/ 그의 입에 귀를 갖다댄다/ 죽은 몸뚱이가 내뿜는다 해도/ 서늘한/ 허(虛)//

나의 착각 / 최승호

깊어 고적한 밤/ 조용하게 내리는 비/ 그 처연함 안쓰러워/ 마루에 나앉아 비와 주고 받는 술잔/ 거나해져 다시 보니/ 아니다/ 처연한 것은/ 아직도/ 오욕칠정에 잠긴 이 사람의 마음일 뿐/ 도통하여 마음없이 내리는 비가 아니다.//

죽뻘 / 최승호

1// 죽뻘에서 죽는다는 것은/ 배설물처럼 죽뻘에 반죽이 되는 것이다/ 죽뻘에는 무덤이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무덤들은 죽뻘에서 뭉개져 죽뻘이 되었을 것이다/ 죽뻘에서 죽는다는 것은/ 썰물과 밀물, 그 반복되는 바다의 애무 밑에서/ 침대 없이 잠자는 것이다/ 죽뻘에는 비석이 없다 그러나 나는 게를 위해 묘비명을 쓴다;/ - 한 평생 옆으로 걸었노라!// 구멍에서 나왔다가 구멍으로 들어가는/ 얇은 흔적들은 뭉개지고 지워진다/ 죽뻘에서 죽는다는 것은/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혼돈의 반죽 같은 상태로/ 바다의 부드러운 애무를 받는 것이다 베개도 없이//
2// 젖무덤들의 만다라처럼/ 끈적끈적한 죽뻘에서/ 배를 밀며 기어다니고 꿈틀거리는 것들,/ 어디가 입구멍이고 어디가 똥구멍인지/ 그 구멍이 그 구멍 같을 때/ 앞장서는 구멍에 끌려가는 구멍이 항문 아닐까// 광활한 갯지린내 속의 갯가재, 아무르불가사리,/ 가시닻해삼, 큰구슬우렁이, 서해비단고둥,/ 만약 뻘이 만물의 어머니라면/ 우리는 족보 어지러운 뻘家의 자식들인가?//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 최승호

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를/ 무슨 무슨 주의(主義)의 엿장수들이 가위질한 지도 오래되었다./ 이제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엔/ 가지도 없고 잎도 없다/ 있는 것은 흠집투성이 몸통뿐.// 허공은 나의 나라, 거기서는 더 해 입을 것도 의무도 없으니/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라진 신목(神木)의 향기 맡으며 밤을 보내고/ 깨어나면 다시 국도변에 서 있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귀 있는 바람은 들었으리라/ 원치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들이/ 내 앙상한 몸통에 매달려 나부끼는 소리,/ 그 뒤에 내 영혼이 소리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 봄기운에/ 대장간의 낫이 시퍼런 생기를 띠고/ 톱니들이 갈수록 뽀죽하게 빛이 나니/ 살벌한 몸통으로 서서 반역하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여/ 잎사귀 달린 시를, 과일을 나눠주는 시를/ 언젠가 나는 쓸 수도 있으리라 초록과 금빛의 향기를 뿌리는 시를/ 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어/ 지저귀지 않아도//

해바라기에 두 팔이 있었더라면 / 최승호

해가 중천에 솟아 있는데, 키가 껑충한 해바라기는 넘어져 있다. 해바라기에 짧게나마 두 팔이 있었더라면, 저렇게 땅에 얼굴을 처박듯이 쓰러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로 누워 있는 해바라기의 얼굴, 석가도 저런 자세로 열반에 드셨다. 길 위에서의 열반, 그곳에 와서 그곳으로 가는, 길 위에서의 죽음, 그러나 오로지 한자리에 서 있는 삶을 고집하던 해바라기는, 뿌리 밑에 늙은 얼굴을 파묻을 듯이, 긴 여름의 해를 등진 채 넘어져 있다.//

인어人魚에 대한 상상 / 최승호

지하철 양재역에서/ 말죽거리 시장 쪽으로/ 하반신을 통째 고무가죽으로 싼 한남자가 포복한다/ 동전 몇 닢 담긴 그릇을/ 보도블록으로 밀고 가는/ 그 느림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兩棲類的 상상력에서/ 인어들이 태어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반신이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물고기대가리에 인간의 하체가 달린 인어도 있다./ 그 두 인어가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상상해 보라/ 기념 사진을 찍어도 그 부부만큼/ 그로테스크한 고독이 있을까//

거울 / 최승호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요귀지 사람이랴/ 거울공장 노동자들은/ 늘 남의 거울을 만들어 놓고/ 거울 뒤편에서 주물처럼 늙는다// 구리거울을 만들던 어느 먼 시절의 남자를/ 훤히 비추던 보름달 하나/ 곰팡이도/ 녹도/ 이끼도 없이/ 빌딩 모서리 스모그 위로 솟고 있을 때// 문득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껄껄껄 웃을 만큼/ 낙천적인 해골은 누구인가//

회전문 속에 떨어진 가방 / 최승호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 속에서, 가방을 놓치고, 회전문 밖으로 나와서 가방을 본다. 이것은 죽음의 한 경험인가. 옷 가방을 떨어뜨린 채, 회전문 밖으로 밀려나오는 알몸이 죽음이라면, 옷 가방 끈을 어깨에 걸친 시절이 삶이었다는 말인가. 회전문 밖에서, 회전문 안에 떨어진 가방을, 남의 가방 보듯 들여다본다. 내용물은 별것도 아니지만, 나 없으면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지금 잃는다면, 슬픔도 꽤 따를 것이다. 장례식에는 산 자들의 슬픔의 총체보다도, 죽은 자의 더 큰 슬픔이 있다.//

물 위에 물 아래 / 최승호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水夫는 시체를 건지려/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가/ 호수 밑바닥에 소리 없이 점점 불어나는/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버려진 태아와 애벌레와/ 더러는 고양이도 개도 반죽된/ 개흙투성이 흙탕물 속에/ 신발짝, 깨진 플라스틱통, 비닐조각 따위를 먹고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갈수록 시체처럼 몸집이 불어나는 무덤을/ 본다 폐수의 독에 중독된 채/ 창자가 곪아가는 우울한 쇠우렁이를/ 물가에 발상했던 문명이/ 처리되지 않은 뒷구멍의 온갖 배설물과 함께/ 곪아가는 증거를// 호수를 둘러싼 호텔과 산들의 경관에/ 취하면서 유원지를 향해/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밤의 자라 / 최승호

긁어댄다, 대야를/ 내 청신경을 긁어댄다/ 시마詩魔에 끄달리며 무슨 글을 쓰는 것이냐고/ 내 글쓰기를 긁어댄다/ 밤늦도록 잠자지 않고/ 대야를 긁어댄다/ 벅벅 긁어댄다, 긁어댄다,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간다/ 대야의 자라는/ 목을 딱딱한 등딱지에 집어넣고/ 나를 관찰한다/ 자물통처럼 생긴/ 자라야/ 네가 껍질을 벗어놓고 글을 써볼래?/ 나는 네 대신 늪으로 들어가/ 흐린 물 속을 알몸으로 헤엄칠테니//

무지개 / 최승호

흰 대머리바위들을 적시며/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인왕산 위에/ 무지개 떴다// 동물원 우리에서 보았던/ 앞뒤가 영 딴판인 공작새/ 부채 같은 꼬리 깃털들 떠오른다// 굳이 새삼스럽게 말하자면/ 내 몸 안에도 무지개가 있는데/ 다름아닌 오욕칠정(五慾七情)이 나의 무지개// 찬연할 때도 있다/ 음울할 때도 있다//

먼지흡입열차 / 최승호

지하철 운행이 모두 끝난 한밤중/ 캄캄한 지하에서 캄캄한 지하로/ 먼지 흡입열차가 웅웅거리며 돌아 다닌다/ 아무도 없는 철길에/ 널려있는 쇳가루와 먼지와 케케묵은 침묵/ 그것들을 힘차게 빨아들이며/ 고독한 기관사가 어둠속을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사막으로/ 텅 빈 해골이되어 굴러 다니고/ 누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침묵에 둘러 싸여/ 글을 쓰는 밤/ 벽돌같은 언어들도 결국엔/ 흩날리는 먼지일까/ 침묵으로 돌아가는 침묵의 눈보라일까/ 백지에 고요가 내려 앉는 밤/ 나도 먼지 덩어리다 나도 고독한 기관사다/ 아가리를 벌리고 먼지를 퍼먹으며 공허속으로 달려간다//

몸의 신비, 혹은 사랑 /최승호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스스로 꿰매고 있다./ 의식이 환히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헛것에 싸여 꿈꾸고 있든 아랑곳없이/ 보름이 넘도록 꿰매고 있다./ 몸은 손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몸은 손이 달려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구걸하던 손, 훔치던 손,/ 뾰족하게 손가락들이 자라면서/ 빼앗던 손, 그렇지만/ 빼앗기면 증오로 뭉쳐지던 주먹,/ 꼬부라지도록 손톱을/ 길게 기르며/ 음모와 놀던 손, 매음의 악수,/ 천년 묵어 썩은 괴상한 우상들 앞에/ 복을 빌던 손,/ 그 더러운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몸은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자연스럽게 꿰매고 있다./ 금실도 금바늘도 안 보이지만/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이 몸의 신비,/ 혹은 사랑.//

골계 / 최승호

오골계탕을 먹는다/ 검은 뼈 검은 살을 바르다보니/ 먹은 게 없다/ 뚝배기를 휘저어본다/ 건더기를 건져본다/ 먹을 게 없다/ 국물과 분노만 남는다/ 계산과 분노만 남는다/ 펄펄 끓는 마음을 식히면서/ 대낮의 거리를 걷는다/ 한참 걷다 되돌아보니/ 오, 골계/ 골계가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대운하 / 최승호

건설업자에게/ 산이란 모델하우스 같은 것// 대운하의 물길을 따라서/ 산들이 떠내려간다// 화물선을 댐 위로 들어 올리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 골리앗크레인은 백두산도 들어 올린다// 건설업자에게 강바닥은/ 금광 같은 것// 로봇물고기는 녹조라떼를 마시는데/ 죽은 물고기는 모래톱에 빨래를 넌다// 

 

썩는 여자 / 최승호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간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상가의 많은 물건들을/ 방에다 가득 채우는 그녀의 머리에/ 끈끈한 음지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그녀는/ 지하생활자가 되어간다 습기와 시멘트 냄새,/ 하수구의 악취,/ 그녀의 살가죽은 눅눅하고 퀴퀴하게/ 속으로부터 썩으며 곪고 있지만 아직/ 구멍이 난 것은 아니다 새끼들을 치고/ 부엌에 나타나 뻘뻘거리는/ 쥐며느리, 바퀴벌레, 그리마/ 축축한 벽지를 들고일어나는 곰팡이와/ 그녀의 싸움은 결국 곰팡이들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밤이면 관 속에 누워 있는 여자,/ 천장 위에 이사온 사람들이 못질하는 소리,/ 그녀는 조금씩 시체를 닮아가는 모양이다/ 발가락들은 헐어 진물을 흘리고/ 화장품은 더 이상 그녀의 주름살을/ 덮어주지 않는다 때때로 그녀도 책을 읽는다/ 늙은 학자의 흰 수염처럼 하얀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책을/ 그러나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중얼대다 잠든다/ 컴컴한 문명 속의 이 문둥이 여자를/ 그 어디/ 햇볕 좋은 땅 위로 데려가/ 그녀의 머리에 끈끈하게/ 거머리처럼 자라난 음지식물들을 말려 죽여야 할까//

 

수소 / 최승호

저놈은 수소다./ 눈썹이 검고/ 불알은 크고/ 머리엔 도깨비의 뿔이 솟아올랐다./ 저놈은 수소다./ 콧구멍이 내뿜는 콧김은/ 증기 기관차의 증기처럼 거세고/ 다리는 다리의 다리처럼 튼튼한데/ 쯧쯧, 저런!/ 숫소가 쿵 하고 드러눕는다./ 빼빼 마른 백정 앞에서/ 덩치 큰 숫소가 드러눕는다./ 드러누워/ 버둥거리다가/ 도살장 천장 향해 검은 울음을 게우다가/ 저것 봐, 숫소가 일어선다./ 도끼와 뿔의 박치기다./ 아니다./ 도끼와 급소의 박치기다./ 숫소는 글썽글썽한/ 큰 눈알을 부릅뜬 채 죽어간다.//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 / 최승호

수달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 고라니 멧밭쥐 다람쥐 관박쥐 검은댕기해오라기 중대백로 쇠백로 왜가리 원앙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비오리 조롱이 새홀리기 꿩 깝작도요 멧비둘기 집비둘기 소쩍새 물총새 청딱다구리 가막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쇠딱다구리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 직박구리 때까치 물가마귀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오목눈이 쇠박새 진박새 곤줄박이 박새 동고비 멧새 쑥새 노랑턱멧새 어치 까치 큰부리까마귀 자라 아무르장지뱀 도마뱀 누룩뱀 무자치 구렁이 능구렁이 유혈목이 대륙유혈목이 살모사 쇠살모사 까치살모사 산줄점팔랑나비 뿔나비 푸른부전나비 암먹부전나비 먹부전나비 부전나비 작은멋쟁이나비 수노랑나비 제일줄나비 왕세줄나비 별박이세줄나비 애기세줄나비 네발나비 큰멋쟁이나비 사향제비나비 산제비나비 긴꼬리제비나비 호랑나비 꼬리명주나비 대만흰나비 큰줄흰나비 배추흰나비 노랑나비 남방노랑나비 각시멧노랑나비 굴뚝나비 물결나비 노랑누에나방 넉점물결애기자나방 두줄물결자나방 포플라잎말이명나방 뜰길앞잡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빨간먼지벌레 노랑선두리먼지벌레 오이잎벌레 쑥잎벌레 열점박이잎벌레 풀색꽃무지 목하늘소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장수허리노린재 깜보라노린재 얼룩대장노린재 큰광대노린재 광대노린재 참나무노린재 끝검은말매미충 늦털매미 말매미 애매미 호박벌 나나니 검은물잠자리 물잠자리 날개띠좀잠자리 깃동잠자리 밀잠자리 묵은실잠자리 명주잠자리 콩중이 벼메뚜기 왕귀뚜라미 모메뚜기 실베짱이 참밑들이 산느타리 잣버섯 노란갓벚꽃버섯 넓은솔버섯 애기낙엽버섯 흰삿갓갈때기버섯 자주졸각버섯 밀버섯 밤버섯 뽕나무버섯 그늘버섯 붉은꼭지버섯 못버섯 알광대버섯 암회색광대버섯아재비 독우산광대버섯 흰주름갓버섯 갈색먹물버섯 노랑먹물버섯 족제비눈물버섯 검은비늘버섯 비늘버섯 다색끈적버섯 젤리귀버섯 황소비단그물버섯 붉은비단그물버섯 접시껄껄이그물버섯 황금무당버섯 젖버섯아재비 새털젖버섯 잿빛젖버섯 노루궁뎅이 담자고약버섯 분홍껍질고약버섯 바늘버섯 갈색꽃구름버섯 구름버섯 옷솔버섯 아까시재목버섯 치마버섯 기와소나무비늘버섯 해면버섯 털목이 아교뿔버섯 붉은목이 먼지버섯 말불버섯 좀말불버섯 애기방귀버섯 작은주발버섯 긴대주발버섯 녹청균 콩버섯 콩꼬투리버섯 다형콩꼬투리버섯 구실사리 개부처손 물쇠뜨기 속새 산고사리삼 꿩고비 고비 황고사리 고사리 고비고사리 부싯깃고사리 청부싯깃고사리 개면마 만주우드풀 십자고사리 낚시고사리 관중 바위족제비고사리 뱀고사리 개고사리 거미고사리 일엽초 은행나무 일본잎갈나무 잣나무 소나무 측백나무 향나무 가래 말즘 실말 조릿대 실새풀 숲개밀 포아풀 갈대 용수염풀 그령 쥐꼬리새 잔디 강아지풀 금강아지풀 바랭이 주름조개풀 기장대풀 띠 큰기름새 조개풀 개솔새 솔새 옥수수 대사초 길뚝사초 산거울 그늘사초 넓은잎천남성 천남성 닭의장풀 꿩의밥 골풀 주걱비비추 큰원추리 애기원추리 산달래 산부추 참산부추 달래 털중나리 참나리 비짜루 각시둥굴레 둥글레 층층둥굴레 진화정 풀솜대 애기나리 선밀나물 청미래덩굴 청가시덩굴 마 도꼬로마 국화마 각시붓꽃 꽃창포 붓꽃 범부채 개불알꽃 병아리난초 제비난초 은대난초 타래난초 옥잠난초 홀아비꽃대 사시나무 은사시나무 이태리포플러 왕버들 분버들 버드나무 능수버들 호랑버들 키버들 가래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개박달나무 물박달나무 오리나무 까치박달 서어나무 난티잎개암나무 개암나무 참개암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참느릅나무 비술나무 왕느릅나무 당느릅나무 시무나무 느티나무 산팽나무 검팽나무 산뽕나무 뽕나무 혹쐐기풀 모시물통이 개모시풀 꼬리겨우살이 겨우살이 쥐방울덩굴 족도리 애기수영 수영 개대황 참소리쟁이 소리쟁이 왜개싱아 이삭여뀌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 고마리 미꾸리낚시 여뀌 바보여뀌 기생여뀌 개여뀌 마디풀 취명아주 명아주 댑싸리 자리공 석류풀 쇠비름 털좀나도나물 쇠별꽃 별꽃 벼룩나물 술패랭이꽃 대나물 동자꽃 장구채 종덩굴 요강나물 자주조희풀 개버무리 큰꽃으아리 외대으아리 으아리 참으아리 할미밀망 사위질빵 동강할미꽃 할미꽃 노루귀 미나리아재비 꿩의다리 연잎꿩의다리 큰제비고깔 흰진범 진범 백부자 진돌쩌귀 노루삼 승마 촛대승마 눈빛승마 동의나물 으름 꿩의다리아재비 댕댕이덩굴 함박꽃나무 오미자 생강나무 애기똥풀 피나물 금낭화 산괴불주머니 무 갓 배추 유채 황새냉이 왜갓냉이 미나리냉이 속속이풀 꽃다지 장대나물 바위솔 세잎꿩의비름 꿩의비름 기린초 바위채송화 노루오줌 돌단풍 바위떡풀 괭이눈 물매화 말발도리 물참대 매화말발도리 고광나무 산수국 까마귀밥나무 가침박달 쉬땅나무 조팝나무 떡조팝나무 당조팝나무 꼬리조팝나무 갈기조팝나무 참조팝나무 국수나무 뱀딸기 가락지나물 양지꽃 민눈양지꽃 세잎양지꽃 물양지꽃 딱지꽃 큰뱀무 뱀무 산딸기 곰딸기 멍석딸기 복분자딸기 줄딸기 터리풀 오이풀 긴오이풀 짚신나물 찔레꽃 생열귀나무 개살구나무 귀룽나무 올벚나무 개벚나무 산사나무 아광나무 야광나무 아그배나무 산돌배나무 마가목 차풀 고삼 다릅나무 조록싸리 참싸리 싸리 큰도둑놈의갈고리 도둑놈의갈고리 갈퀴나물 네잎갈퀴 광릉갈퀴 노랑갈퀴 나비나물 활량나물 칡 돌콩 콩 새콩 낭아초 땅비싸리 아까시나무 벌노랑이 족제비싸리 황기 붉은토끼풀 토끼풀 전동싸리 활나물 쥐손이풀 이질풀 괭이밥 병아리풀 산초나무 소태나무 광대싸리 흰대극 회양목 개옻나무 화살나무 참회나무 버들회나무 참빗살나무 푼지나무(청다래넌출) 노박덩굴 미역줄나무 고추나무 신나무 고로쇠나무 당단풍 복자기 노랑물봉선화 물봉선 갈매나무 짝자래나무 왕머루 새머루 담쟁이덩굴 피나무(달피나무) 연밥피나무 뽕잎피나무 찰피나무 수박풀 수까치깨 개다래 쥐다래 다래 물레나물 고추나물 남산제비꽃 태백제비꽃 둥근털제비꽃 잔털제비꽃 고깔제비꽃 제비꽃 흰털제비꽃 알록제비꽃 뫼제비꽃 졸방제비꽃 콩제비꽃 노랑제비꽃 아마풀 보리수나무 부처꽃 달맞이꽃 음나무 오갈피 두릅나무 시호 참반디 사상자 개사상자 미나리 참나물 노루참나물 개발나물 바디나물 참당귀 구릿대 신감채 강활 묏미나리 큰참나물 기름나물 어수리 산딸나무 층층나무 노루발풀 꼬리진달래 진달래 산철쭉 철쭉꽃 산앵도나무 좁쌀풀 참좁쌀풀 까치수영 큰까치수영 고욤나무 감나무 노린재나무 쪽동백나무 때죽나무 물푸레나무 쇠물푸레 쥐똥나무 개회나무 자주쓴풀 구슬붕이 용담 칼잎용담 박주가리 산해박 백미꽃 애기메꽃 메꽃 새삼 실새삼 지치(지초) 꽃마리 작살나무 누리장나무 누린내풀 조개나물 황금 산골무꽃 골무꽃 참골무꽃 배초향 벌깨덩굴 개박하 꿀풀 익모초 광대수염 쉽사리 향유 꽃향유 산박하 속단 배풍등 까마중(까마종이) 독말풀 참오동 현삼 밭뚝외풀 논뚝외풀 절국대 알며느리밥풀 애기며느리밥풀 나도송이풀 송이풀 파리풀 질경이 큰꼭두서니 꼭두서니 갈퀴꼭두서니 솔나물 갈퀴덩굴 개갈퀴 딱총나무 덜꿩나무 가막살나무 백당나무 병꽃나무 인동 괴불나무 각시괴불나무 올괴불나무 돌마타리 금마타리 마타리 뚝갈 쥐오줌풀 산토끼꽃 체꽃 하늘타리 노랑하늘타리 수원잔대 자주꽃방망이 잔대 초롱꽃 더덕 도라지 금불초 바위구절초 뚱딴지 담배풀 솜나물 단풍취 돼지풀 도꼬마리 골등골나물 등골나물 벌등골나물 미역취 버드쟁이나물 가새쑥부쟁이 쑥부쟁이 갯쑥부쟁이 개미취 옹굿나물 까실쑥부쟁이 참취 눈개쑥부쟁이 개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개망초 망초 머위 붉은서나물 쑥방망이 우산나물 톱풀 산구절초 구절초 제비쑥 더위지기 참쑥 산쑥 쑥 멸가치 진득찰 가막사리 삽주 지느러미엉겅퀴 큰엉겅퀴 엉겅퀴 지칭개 각시취 큰각시취 빗살서덜취 사창분취 당분취 구와취 톱분취 은분취 서덜취 분취 산비장이 뻐국채 큰수리취 국화수리취 수리취 절굿대 흰절굿대 조뱅이 쇠서나물 민들레 조밥나물 벋은씀바귀 벌씀바귀 씀바귀 왕고들빼기 이고들빼기 고들빼기//
「동강 유역 산림생태계 조사보고서」/ (1998. 12. 산림청 임업연구원)를 읽으면서/ 내가 아무르장지뱀이나/ 용수염풀,/ 아니면 바보여뀌나 큰도둑놈의갈고리나 괴불나무로/ 혹은 더위지기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랬더라면 내 이름이 어떻든/ 이름의 감옥에서 멀리 벗어나/ 삶을 사랑하는 일에 삶이 바쳐졌을 것이다./ 무덤에 핀 할미꽃이거나/ 내가 동굴에서 날개를 펴는/ 관박쥐라 해도…….//


 

 

최승호

도시 환경에 대한 사람의 정서적 반응은 체험 내용과 삶의 배경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생태계의 훼손과 파괴, 왜곡으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부정적 양상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와 종말론

100.daum.net

최승호 시인
1954년 강원 춘천 출생. 1977년 “현대 시학”에 ‘비발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세상의 모습을 죽음의 불길한 상징으로 읽어 내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드러낸다.

시집으로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 도시의 즐거움” “고해 문서” “회저의 밤” “달맞이꽃에 대한 명상” “반딧불 보호구역” “북극 얼굴이 녹을 때” 등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이산 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토요인터뷰] 최승호 시인 “내 시가 출제됐는데, 나도 모두 틀렸다”

최승호(55·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 시인이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 문제를 풀어 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고 18일 말했다. 그가 풀어 본 문제는 2004년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

news.joins.com

 

'시詩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민복 시인  (0) 2021.04.13
나해철 시인  (0) 2021.04.12
전봉건 시인  (0) 2021.04.08
하상욱 시인  (0) 2021.04.07
박이도 시인  (0) 2021.04.0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