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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꿈속의 춘향전 / 김학

부흐고비 2021. 4. 19. 06:28

때때로 꿈을 꾼다. 잠깐 조는 사이에 꿈을 꾸기도 하고, 긴 밤 내내 꿈을 꾸기도 한다. 졸면서 꾸는 꿈이 단편소설이라면 밤새도록 꾸는 꿈은 대하 장편소설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떤 꿈은 깨어나는 게 아쉽고 또 어떤 꿈은 깨고 나면 시원할 때가 있다.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에겐 노팅검 성(城) 방문이 필수 관광코스로 되어 있다. 5백 년의 역사를 지닌 노팅검 성에는 의적( 義賊) 로빈후드의 동상과 로빈후드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로빈후드 기념행사가 요란하게 열리곤 하는데 이 무렵에는 관광객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또 베로나의 한 낡은 교회에는 세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줄리엣의 무덤이 있다.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가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그려낸 가공의 인물 줄리엣의 무덤을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그곳엔 무덤 관리인까지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그곳으로 배달되는 편지에 꼬박꼬박 답장을 보내는 전문 직원도 두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오슈에는 '삼총사'의 주인공중 한 사람인 달타니앙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멎게 하고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꾸며낸 소설 '삼총사'의 주인공 중 하나인 달타니앙이 역시 오슈라는 고장의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셈이다.

춘향골 남원이 관광의 보고(寶庫)라는 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영국의 노팅검 성이나 베로나 그리고 네덜란드의 오슈와 견줘보아도 결코 손색이 없는 곳이 바로 춘향골 남원이기 때문이다. 베로나에 줄리엣의 무덤이 있듯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산기슭에는 춘향의 무덤이 있다. 오슈에 달타니앙의 기념비가 세워져 잇듯이 춘향의 무덤 앞에는 '만고열녀 춘향지묘(萬古烈女 春香之墓)'라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노팅검 성에 로빈후드의 동상과 박물관이 있듯이 광한루원에는 춘향사당과 춘향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네며 월매집도 고풍스런 자태를 뽐내고 있고, 광한루 누각도 옛 모습 그대로다. 한 번 건너면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진다는 오작교(烏鵲橋)는 선남선녀들의 발자국에 밟혀 이끼가 벗겨져 있고, 삼신산(三神山)의 대바람 소리에서는 이 도령과 춘향의 밀어를 엿들을 수 있다. 연못에서 노니는 잉어들의 수중 발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춘향과 이 도령의 사랑의 유희를 연상케 한다.

음력 4월 초파일을 전후하여 남원에서 열리는 춘향제는 전국적인 규모의 전통 민속축제로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이 기간 중 특별열차가 운행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관광버스가 줄지어 몰려드는 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밤 나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춘향뎐'이 하와이 국제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게 되었다는 뉴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춘향전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폴투갈어. 아랍어. 러시아어. 인도어. 아프리카어 등 세계 각국의 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춘향문화 선양회가 지방 자치단체와 합심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출판 기념회를 갖게 되었다. 그 무렵에 춘향전을 소재로 한 연극. 영화. 드라마. 판소리. 뮤지컬. 오페라 춘향전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선보인다. 세계인의 눈과 귀와 가슴에 진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소설 '춘향전'이 영어로 번역 출간되니 영어권 나라에서, 중국어로 번역 출간되니 중국에서 이런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한국의 춘향축제가 열린 것이다. 한국의 고전 소설 '춘향전'이 세계의 고전으로 우뚝 자리매김 되는 과정이다. 춘향선발대회에서 뽑힌 미인들이 예쁜 한복 차림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 책에다 사인을 해주자 책을 사려는 외국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보기만 하여도 절로 흥이 나는 광경이다. 그런 식으로 세계 각국을 돌고 나자 해마다 춘향제 때가 되면 세계 각국의 연인과 부부들이 손에 손을 잡고 남원 국제공항으로 날아온다. 남원은 세계적인 인종전시장이 되고 있었다."

자명종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이날처럼 자명종이 얄밉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며 간밤의 꿈을 되새겨 보았다. 허황한 꿈이긴 해도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었다.

그렇다. 춘향제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춘향전'의 번역사업이 먼저 추진되어야 한다. 올해는 영어로, 내년에는 불어로 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남원의 춘향제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의 민속축제가 되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지금 내 책장에는 미국의 디즈니랜드에서 사 온 '미키 마우스' 한 쌍이 놓여 있다.1달러를 주고 산 엄지손가락 크기의 마스코트다. 이 '미키 마우스'에 눈길이 멎으면 미국이 떠오른다. 디즈니랜드도 생각나고, 미국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추억들이 줄지어 떠오른다. 남원에서도 이런 마스코트를 개발하여 팔면 어떨까? 춘향과 도령, 방자와 향단, 월매와 변사또 등 춘향전에 나오는 주인공을 모델로 마스코트를 만들어 팔자는 이야기다. 춘향전의 해학적인 장면을 그림엽서로 만들고, 춘향제의 멋진 장면을 연하장에 담아 판다면 남원 시민은 물론 전북 도민들도 애용할 수 있으련만...

21세기는 도덕과 윤리가 사라져 가는 시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신혼부부 1,000명당 2,5명이 이혼을 한다는 통계다. 프랑스나 일본보다 높은 수치다. 이럴 때 '춘향전'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어야 하리라 믿는다. 온갖 유혹에도 굽히지 않는 춘향의 절개와 부귀영화를 다 갖췄어도 한눈 팔지 않는 이몽룡의 의리가 어우러진 춘향전의 숭고한 사랑, 그 사랑은 세계인을 감동시킬 우리의 값진 문화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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