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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별을 찾아서 / 정목일

부흐고비 2021. 4. 20. 08:28

나는 별을 찾는 법을 모른다. 성좌(星座)를 찾는 법도 모른다. 밤하늘은 신비 무한의 미지(未知)라는 것만 알 뿐―. 내가 아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설명도 붙일 수 없다. 별을 보고 있으면 지금까지 기껏 지상의 일만 생각하고 티 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진다.

마음에 드는 별 하나를 골라 '나의 별'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다. 사람이 태어날 때 자신의 별이 탄생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제한적 운명을 가진 인간이 별과 마음으로나마 관계를 지음으로써 영원한 세계를 가지려는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들 중에 어느 한 별을 택해 나의 별로 정하고 싶다. 생각하면 이 일은 가장 손쉬운 일이다. 지상에서는 어떤 물체이든 주인이 있어 함부로 가질 수 없지만, 하늘에 가득 뿌려 놓은 보석들, 사라지지 않는 영원의 보석들 중 어느 하나를 택한다고 할지라도 상관하려 들 사람이 없다. 하늘의 보석들인지라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마음의 소유밖에 없다.

나는 아직 그 많은 별들 중에서 어느 한 별에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내 별은 그 많은 별무리 중에 어느 곳에 숨어 있을까. 애써 내 별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지상의 일에만 빠져서 하늘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영원을 향한 하늘과도 통신을 끊고 지내왔던 게 내 생활이었다.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떤 별이 나에게 가장 알맞은 별일까. 큰 별은 나의 별일 수가 없을 것 같아 욕심을 내지 않는다. 유난히 반짝거리며 다가서는 별들도 많건만, 그 별들은 나의 별이 아닌 듯하다. 작고 호젓하고 그리운 별 하나가 어디엔가 있을 것 같아 찾아본다. 너무 멀리 있어서 모습조차 잘 띠지 않는 별 하나가 필시 나의 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아본다. 수많은 별들 중 나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나의 별은 가시권(可視圈) 밖에 존재하여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반짝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별은 일생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별일런지 모른다. 나는 좀 욕심을 가지고 가장 빛나고 찬란한 별 하나를 차지해 저 별은 '나의 별이야'라고 선언해 버리자고 생각한다.

20대에 나는 한 별과 친했다. 백조자리의 한 별이다. 백조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테네브'라는 별이다. 여름철에 이 성좌(星座)를 가만히 바라보면 나도 어느새 영원 속의 백조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원의 시·공간 속에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백조의 모습을 떠올려 보곤 했다. '테네브'는 영원 속을 헤엄치는 백조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였다. 나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하늘의 신비와 영원을 꿈꾸었다. 이 지상에서 보는 별빛은 이미 몇만 광년 전에 떠난 것이라 한다. 내가 한 별과 눈 맞춤하는 순간이야말로 몇만 광년의 시·공을 거쳐 이뤄지는 만남인 것이다. 알고 보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별을 보고 있으면 영원과 찰나, 공간과 시간, 지상과 천상,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이 또렷이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그것은 상반(相反)의 세계가 아니라 일치(一致)의 세계이며 조화와 순환의 세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별을 바라보면 그리운 말들이 떠오른다. 어머니·아버지·추억, 그리고 사랑―. 이런 말들이 떠오르며 하나씩 별이 되는 것을 느낀다. 그런 말들이 모여서 그리운 나의 별로 떠오르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 별은 어디에 있을까. 무한의 공간 속에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무한한 공간 속에 가득찬 별들 중에서 어느 것이든 하나만 택할 수조차 없는 막막함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나에게 꼭 맞는 별이 필시 있을 법하건만, 아무리 눈을 뜨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가시권의 별들과는 친할 수 없게 돼버렸을까. 내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별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지만, 그 별은 항상 미지의 세계에 반짝이고 있을 뿐 내게 다가와 다정히 손짓해 주지 않는다. 너무 떨어져 있더라도 무한의 공간 어디에 떠돌고 있지 않으랴.

어쩌면 내 별은 궤도를 잃고 끝없는 공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 않을까. 빛마저 잃고 어둠 속에 빠져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찬란한 것만이 '별'이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 아닐까. 고뇌하는 별, 길 잃은 별, 절망에 허우적거리는 별도 있을 것 같다. 그 별들 중 어느 한 별, 길을 잃고 무한의 공간에 떠도는 어느 한 별이 나의 별일지도 모른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묻고 싶다. 별은 왜 빛나는가. 무엇 때문에 빛나는가. 심신을 태워 희미한 빛줄기를 던지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가. 안식을 얻지 못하고 몇만 광년의 시·공간을 떠돌아야 하는가. 가혹하고 벗어날 수 없는 형벌―. 뼈와 살을 태우면서 발광(發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절대의 고독과 고통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둠에 얼굴을 묻고 편안히 잠들 수 없는가. 영원히 공간에 찰나로 사라지는 유성이 아름답기만 하다.

나는 별을 볼 줄 모른다. 성좌를 찾는 법도 모른다. 지상의 일에도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처지에, 하늘을 바라보면 그저 막막한 두려움과 경외의 세계를 생각해 볼 뿐이다. 별과 별의 관계를 나는 알 수 없다. 별이 지나는 궤도, 별의 자리, 별의 일생, 별의 존재를 까마득히 모른다. 그것은 음악이 아닐까. 탄생도 죽음도 모두 우주음(宇宙音)의 한 가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나의 별이여. 어떻게 편지라도 쓸 수 있으랴. 닿을 길조차 없는 미지의 어느 공간에 너는 호젓이 반짝거리고 있나. 하늘에 무수히 반짝거리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보이지 않는 별 하나를 생각한다. 만날 수 없는 별 하나를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만날 나의 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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