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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울릉도의 멋 / 이창옥

부흐고비 2021. 4. 22. 09:09

「길을 걷자면 중도보고 소도 본다」는 말이 있다. 살다 보면 많은 경험에서 온 연륜을 말함이 아닌가 한다. 나는 여행을 즐기는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자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즐긴다는 뉘앙스가 다를 뿐이다.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잘 터득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활인으로써 인생은 하나의 여정 행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죽음으로 치닫는 과정이 긴 여행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 나이 중년이 되고 보니 이정표가 이제 바르게 서 있어 자그마한 경험을 축적한 것이 모두가 여행과정에서 얻은 덕택인가 싶다.

그래서 나의 인생과정을 윤나게 하기 위하여 올 여름에는 좀 먼 여행을 하였다. 철부지 어린 아이 마냥 마음이 설레면서 침구에다 제반 필요한 물건을 배낭에 가득 채운 짐덩이는 제법 짐짝이 크다. 어린 시절 아버지 따라 부산엘 다녀온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아마도 여행이란 즐거운 공감대가 있는가 한다.

동해 푸른 물결을 헤치며 망망한 바다에 도전하는 양 굳은 용기와 정돈된 마음의 자세로 가득하다. 비취빛 하늘은 반공에 맑고 코발트빛 바다에는 백운이 푸짐하게 여름을 더욱 세차게 일게 한다. 백파 밀리는 소리 청량하고 바다 밑 하늘은 더욱 운치 있는 멋으로 이끈다.

창망한 수평선 위에는 갈매기가 시새움에 물장구로 퍼덕대고 멀리 울릉도는 마냥 그리움이 서먹이는 마음을 파아란 빛으로 씻어만 간다. 물은 맑다 못해 검은 빛으로 온통 바다를 덮치고 있다. 바다는 말이 없고 물새 떼는 하늘을 가르는데 어디에서 통통배 작은 거룻배가 눈 안에 서린다.

울릉도는 동해의 신비를 가득히 싣고 있다. 북위 37도 30분, 경도 130도 50분에 위치한 국토의 막내다. 육지에서는 백사십 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고, 72점 18평방의 면적과 2만 8천의 인구분포를 이루고 주 생업은 오징어잡이다. 화산의 분출물로 이룬 섬이라서 여객선에서 내린 첫 대면이 바로 화산암의 반겨옴이다. 섬 중앙에 울릉도의 상징인 성인봉(聖人峰:984미터)을 세 시간 여를 터덕대며 상봉에 올랐다. 상봉에는 십여 평 남짓한 요철의 반석이 깔려 있고, 사방은 울처럼 천연 숲이 향나무로 가득하고 골짜기를 낀 울창한 숲은 저만큼 수평선 건너의 세계가 보이는 듯 가슴이 탁 트인다.

북녘 땅 원산 명사십리의 훌쩍 뛰어 내 조국 내 땅 내음을 흠뻑 맡고 싶고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 금강산이 눈에 오는 듯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오던 길로 바꾸고 말았다. 사나운 산길을 따라 상봉을 작별하자니 섭한 마음이 앞선다. 산 중턱에 널따란 나리(羅理)분지가 있어 울릉도는 화산암으로 이뤄진 것은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웅장한 소리를 울리며 펼치는 폭포는 선학이 나래를 펴면서 송림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 동해에 이런 선경이 있다는 것을 진정 몰랐다. 계곡이 물줄기는 지하 암벽에서 솟는 차갑기 얼음 같고 수질이 좋아 섬의 자랑이고 또한 세계적인 것을 일행 중 길잡이가 귀띔해 준다.

이 섬은 3무(三多 : 監·乞·蛇) 5다(五多 : 香·風·美·水·石)의 섬이라 부른다. 그만치 인심이 좋고 풍치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울릉도를 옛날에는 무릉(武陵), 우릉(羽陵) 또는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는데 삼국유사에 신라 지증왕 13년에 명장 이사부(異斯夫)가 정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울릉도의 미가 신비에 가깝다는 인상을 짓게 해 준다.

이제 일행은 저동항에서 배를 빌려 타고 섬의 일주에 올랐다. 일렁이는 파도 위에 낙엽 마냥 둥실 떠 극동에 서 있다는 자부심도 가지면서 군데군데 보이는 죽도·관음도가 멀찍이 서 있고, 세 신선이 자리했다는 삼선암의 전경이 마치 신선만이 산다는 선경이 아니고 무엇이랴.

통통배는 추산 앞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그 유명한 공암(孔岩)이 바다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석포(石圃)의 일선암, 학포(鶴圃)의 만물상, 태하동의 솔나무, 통구미의 향나무, 사동의 흑비둘기 등 어느 하나 보물 아닌 것이 없다. 배에서 잠시 내려 봉래 폭포에서 더위를 씻고, 그 차가운 천연수를 뒤로 한 채, 해안 길로 접어들어 해안을 안고 도는 차도는 유일한 관광로의 수기가 아닌지. 사자암 나루턱에 자그마한 주막에서의 몇 잔의 술맛은 잊을 수가 없다.

파도에 밀리는 환석(丸石)은 뒹굴고 와글거리는 크고 작은 돌은 이 섬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듯 여인의 살결 마냥 보드랍기만 하다. 아마도 십리만큼이나 길게 뻗은 판석밭이다. 천해의 고도 울릉도는 해식 동굴도 있지만 화산구의 동굴이 더욱 신비롭다 컴컴하고 흑해의 바닷물이 철렁이는 소리가 동굴 속을 더욱 장엄스럽게 만들고 머리털을 섬찟하게 한다. 이 굴을 바다용이 살았다는 용굴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또한 흑해의 바다에서 불야성을 이루며, 만선의 기쁨을 낚아 오징어잡이의 부푼 꿈은 외화획득에 한 몫을 한다니 이 어찌 충성이 아니랴. 맛을 지닌 울릉도의 오징어는 세계적이며 우리가 고가의 돈을 주어야 맛을 볼 수 있는 오징어는 오히려 멀리서만 느껴진다.

역사의 산에는 향나무 숲을 이루고 군데군데 묵은 고목은 알몸으로 꺾이고 그 그윽한 향기는 지금도 콧등에 물씬거린다. 동해의 신비가 가득한 울릉도는 확실히 동해의 선도임은 틀림이 없다. 오늘도 나는 존재하는 생의 보람을 느끼고 여행을 통한 인간을 배우자고 속으로만 다짐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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