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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도요(陶窯)속의 꽃 / 윤자명

부흐고비 2021. 4. 21. 12:14

새삼 하루해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흙을 만지고 있으면 한나절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어떤 순간은 눈을 뜨고 잠이라도 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나를 두고 어느 분은 선(禪)을 들먹인다.

선이란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일체의 번뇌를 끊고 무아정적(無我靜寂)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감히 그런 높은 정신세계에 비할 수 없어서 고개를 흔든다. 도예실에서 작업에 몰입 할 수 있는 현상이 신기하다. 보통의 정신세계를 가진 나로서는 선의 경지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청자를 만드는 흙, 백자를 만드는 흙, 막사발을 만드는 흙은 제각기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 성질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다루기가 힘든 백토가 있는가 하면 시골 논두렁에서 만난 농군처럼 소박하고 편안한 진흙도 있다. 마치 각양각색의 성품을 지닌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듯, 흙도 저마다 다른 특성을 살리며 비위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흙을 처음 만질 때는 모래가 많이 섞인 산청 흙이 좋다. 비교적 까탈을 부리지 않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주무를 수 있다.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두드리며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하면서 두꺼비집을 짓던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다.

차츰 흙의 성질을 손으로 터득하고 나면, 붉은 흙과 검은 흙을 만지게 된다. 그 중 제일 미세하고 섬세한 것이 백자를 만드는 검은흙이다. 유백색의 백자가 검은 흙으로 만든다는 것이 경이로운 탄생의 비밀처럼 느껴진다. 백자 흙을 만지고 있으면 처음 모심기를 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모포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꽂으면, 한없이 보드라우면서도 쏙 당겨들이는 듯한 그 때의 느낌이 감지된다. 허나, 정작 마음대로 형태를 잡아 완성도를 이뤄내기는 어렵다. 백자 흙은 다루기가 쉬운 듯 하지만 까다롭기가 열일곱 살 소녀 같다.

한 동안 찻잔 만들기에 빠져 있었다. 여러 개를 만들어 놓고 보면 똑 같은 것이 없다. 아무리 똑 같이 만들고 싶어도 겨우 엇비슷할 뿐이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다른 생김새를 지닌 것처럼.

가까이 지내는 선배가 시골에 황토 집을 지어 놓고 초대했다. 가로 세로가 사람 키와 맞먹을 크기의 토방이었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커다란 항아리 속에 들앉는 기분이었다. 사방 벽에는 붉은 흙이 그대로 만져졌다. 누워보니 편안했다. 흙냄새를 맡으며 차츰 어두워지는 방안에 누워서 명당자리에 안치된 사자(死者)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주지역에 분포된 옹관묘는 타원형의 자궁 속에 있던 인간이 자궁 속으로 돌아가는 회귀를 의미했을까. 아니면 아담의 창조신화처럼 흙으로의 귀소본능을 드러낸 것이었을까.

물레를 쓰지 않고 도자기를 만들 때는 주로 코일링 기법을 쓴다. 흙을 떡가래처럼 밀어서 한 겹씩 쌓아 올리는데 곡선의 각도에 따라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선이 조금 가파르면 새침데기가 되고, 완만하게 흐르면 풍만하고 넉넉한 아낙이 된다. 특히 배 부분이 불룩 나온 도자기는 임산부(姙産婦)같다. 손바닥으로 가만히 쓸어 보면 태동이 손끝에 잡힐 것만 같다. 작업실의 진열대에 죽 늘어선 도자기를 보면 할머니, 외숙모, 고모, 이모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물· 불· 공기· 나무의 조화를 빌어 흙을 다시 돌로 환원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만드는 과정은 손끝의 의도 대로지만 마지막 소성은 자연의 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사람살이도 이와 같을 것 같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겪는 희로애락을 자연의 순리로 여긴다면 애면글면 속 태우지 않고 한세상 살 일이다. 어차피 세상을 화택(火宅)이라 하지 않았던가. 초벌, 재벌, 구워지고 볼 일이다.

도자기가 초벌에서 깨어졌을 때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회생활에서 처음으로 겪는 시련을 당해내지 못하고 그만 무너져 버린 심정과 같다. 의욕을 잃고 한 동안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열을 잘 견딘 백자 흙은 분홍빛으로 변해있다. 고난을 너끈히 이겨낸, 그래서 더욱 성숙한 얼굴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뿌듯해진다. 다시 천 삼백 도의 재벌 불길을 잘 승화시키면 드디어 환골탈태한다.

막 문을 연 가마 안에 내가 만든 청자 병이 보인다. 숨막히는 열기 속에서 꽃잎 몇 개 웃고 있다. 화택에 핀 꽃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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