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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장정일 시인

부흐고비 2021. 5. 9. 09:24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장정일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누가 와서 나의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사랑이 되고 싶다.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라디오가 되고 싶다.//
*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하여 ‘사랑’을 풍자했다.

시 / 장정일
당신 팬티를 백 번 내리고/ 거기에 천 번 입맞춘다// 내 팬티를 천 번 내리고/ 당신이 주는 만 번의 매질을 받는다// 독자는 시를 건성으로 읽는다/ 그렇지 않다면/ 방금 읽은 시에 나오는 숫자의 합을 대 보라//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 장정일
길안에 갔다./ 길안은 시골이다./ 길안에 저녁이 가까워 왔다, 라고/ 나는 썼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서두를 새로 시작해야 했던가?/ 타자지를 새로 끼우고, 다시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은 아름다운 시골이다./ 그런 길안에 저녁이 가까워 왔다./ 별이 뜬다.//
이렇게 쓰고, 더 쓰기를/ 멈춘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나는 끼워진 종이를 빼어,/ 구겨 버린다. 이놈의 시는/ 왜 이다지도 애를 먹인담. 나는/ 테크놀러지와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갈등을 추적해 보고 싶다. 종이를 새로/ 끼우고, 다시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길안에 택시가 오지 않는다./ 모든 도시에서 나는 택시를 잡았었다./ 그러나 길안에서 택시잡기 어렵다.//
쓰기를 다시 멈춘다.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 모든 문장이, 다./ 로 끝나는 것이 이상하게도 번역투의/ 냄새를 풍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그런 지적을 많이 들었지 않은가?/ 쓰던 종이를 빼어 구기고, 한 장의 종이를/ 다시 끼웠다, 나는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에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모든 도시에서 쉽게 택시를 잡았건만/ 길안에서 택시잡기 어렵고/ 어느새 어두워진 길목마다 별이 쏟아진다./ 문득 길안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다시 쓰기를 멈추었다. 좀더/ 매끄럽게, 좀더 구체적인 풍경묘사로부터/ 서두를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길안의 시골풍경을 묘사한 다음/ 택시가 서지 않는 곳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여행자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묘사해 내야 한다./ 나는 종이를 빼어 구기고, 새로운 종이를/ 끼워, 이렇게 쓴다.//
길안에 산이 높고/ 그 물이 맑다. 길안에 나무가 푸르고/ 나뭇가지 위에 비둘기떼가 지어올린 흰구름은/ 마치 건축같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멀리서 바라봄이 아니라 길안 가운데 있을 때/ 길안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행자는 독일빵같이 커다란 슈트케이스를/ 길가에 내려놓고, 택시를 기다린다.//
이쯤에서 쓰기를 잠시 멈춘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시작으로서는 적당히/ 내 구미를 돋우는 것 같고, 독자로 하여금/ 계속 읽어내려 가게 할 만큼 경쾌하다./ 이제 길안에 밤이 내려오며, 나는 이 여행자를/ 존재론적 자기인식에 이르게 할 작정이다. 나는 쓴다.//
웬일인지 꽤 오랫동안 택시가 오지 않고/ 택시를 기다린 시간만큼, 저녁이 가까워 왔다./ 이름모를 잎새들의 흔들림,/ 여행자는 자신이 혼자임을 느낀다./ 이름모를 새떼가 햇빛 한 조각씩을 물고/ 서쪽으로 지고, 연이어/ 모래단지를 엎지른 듯 이름모를 별들이 흩어졌다./ 사십 년간의 도시생활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익힌/ 동식물과 별자리 이름을 깡그리 잊게 했다. 모두가/ 이름 모를 것들. 여행자는 갑자기/ 심한 부끄럼에 휩싸인다.//
쓰기를 더 멈춘다. 여행자의 고독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그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인가? 사십 년간의 도시생활이,/ 생경스레 튀어나온 것은 아닌가? 나는 출판사의 사장이자/ 시인인 한 선배로부터, 비약이 심하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구체적이지 않은 시는/ 내 자신이 질색이다. 지금껏 쓴 것을/ 빼어버리고, 다시 종이를 끼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쓸 결심을 한다. 나는 쓴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사십년간 살았던/ 한 오십대가 있어 오랫동안 찾아보지 않았던/ 고향에 온다. 길안... ....//
나는 한숨을 쉰다. 종이를 홱/ 빼어 던진다. 이놈의 시가 나를 골탕먹이는군./ 모순성을 갈파하고자 한다. 즉 테크놀러지를 이용할/ 때의 편리성, 그로 인해 그것에 종속되어가는/ 현대인들을. 그리고 덧붙여, 테크놀러지에/ 노예화됨으로서 테크놀러지를 이용할 수 없는/ 자연적인 상황에 부딪쳤을 때 보이는 현대인의/ 초조한 반응을 묘사하고 싶었다. 어떻게 될까?/ 그런 상황 앞에서 비로소 테크놀러지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겠고, 도리어 테크놀러지화 되지 않은/ 자연에 대해 신경질 부릴 수도 있겠지./ 새로운 종이를 끼우고, 나는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이 아름다워 나는 울었다./ 길안에 어둠이 내렸다./ 길안에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길안 바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 생각을 한다./ 길안이 불편해진다./ 길안이 내 모든 약속을 퍼지르고 앉았다./ 길안이 불안하다.//
연을 띄우고, 잠시 멈춘다. 이 어조로 쓰는 거야./ 독하게 마음먹는다. 누가 뭐라건 말건/ 이런 생각을 한다. 우표를 모으는 우표수집가가/ 자신의 스토크 북 속에 우표를 수집해 두는/ 일같이, 시쓰기 또한 내 가슴속에/ 시를 모아 두는 일일 것! 새로운 시를 쓰고 싶은/ 열망은 우표수집가가 자신의 스토크 북 속에/ 없는 볼리비아산 나비 우표를 간직하고 싶어하는/ 그 열망 이상의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표/ 수집가가 아무리 구하기 어려운 귀한 우표를 구해/ 간직한다한들, 그 때문에 세상이 바뀌지 않듯/ 시인이 아무리 좋은 시를 쓴들, 또한 세계는 변함/ 없는 것. 우표수집가와 시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위대한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우리는 우표수집가의/ 그, 성취의 기쁨을 위해 시를 써야 하낟. 이렇게/ 밑도끝도 없는 생각을 하곤, 나는 다시 타자기를/ 두드려 갔다.//
길안의 바깥에 있을 때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빼먹던 생각을 한다./ 길안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길안 벗어날 수단이 없구나./ 길안이 불쾌하게 느껴진다./ 길안의 산과 물이 역겨워진다./ 길안의 나무들이 유령같이 곤두섰다./ 아아 상종못할 자연/ 이해 못할 자연이다./ 길안의 비문명이 공포스럽다.//
연을 띄우고, 잠시 쉬기로 한다. 여행자는 이미/ 충분히 불안해졌고, 그는 테크놀러지화되지 않은/ 길안의 자연상태에 대하여 추악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 이쯤에서/ 그가 가야할 곳에 대한, 현대인의 회의를/ 끄집어 내면서 이 시를 마무리하자. 나는/ 쓴다.//
그러나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가?/ 내가 가야할 거기가 어딘가?/ 택시를 쉽게 잡기 위해/ 택시잡기 어려운 이곳으로부터 빠져나가야 할/ 그곳은 어딘가?/ 과연, 길안을 떠나 다시 길안으로 돌아올 수 있겠는가?/ 길안에서 처음으로/ 길안 바깥이 불안으로 닥쳐온다./나는, 너는, 모든 길들은/ 어디로 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 있을 데가 없다.//
다 썼다, 3연의 시./ 나는 그것을 읽어 본다. 엉망이구나./ 한숨을 쉰다. 이렇게 어려운 시./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일을 하며, 한평생/ 사는 것이 내 꿈이였다니! 나는/ 방금 쓴 3연의 시를 찢는다. 커피를 한/ 잔 끓여 마신다. 생각이 이어졌다. 유년시절에/ 계집애들이 하던 고무줄놀이가 아닐까, 시 같은/ 것은. 점점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것. 자꾸/ 고무줄 높이를 높이면서 고통을 즐기는 것,/ 고통을 즐기는 것! 이 밤 기어이,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쓰고야 말겠다. 나는 무섭도록 새하얀/ 종이를 끼운다. 다시 쓴다.//
풀이 우거진 자리에/ 한 무전여행가가 검은 슈트케이스를 든 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늬엿늬엿 해가 지고 있었지만/ 택시는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여행가가 쉽게 포기할 것 같지도 않았다.//
여기까지 쓰자 아침이 밝고, 나는 세수를 하러 일어선다./ 하룻밤 꿈을 꾼 듯. 밤샘한 어제가/ 어릿하다. 더운물에 찬 물을 알맞게/ 섞는다. 생각이 떠올랐다./ 물과 물이 섞인 자리같이/ 꿈과 삶이 섞인 자리는, 표시도 없구나!/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눈 속의 구조대 / 장정일
눈이 푹푹 쌓이는 날/ 반쯤 읽은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파혼한 애인을 평생 사랑하게 될 그는 모르리라/ 교회는 왜 자꾸 마을로 내려오고/ 도서관은 왜 자꾸 산마루로 올라가는지//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비탈길 입구는/ 눈의 나라가 아니었다/ 119 구급차가 비탈길을 가로막은 골목은/ 새로 생긴 동네의 정육점 진열대 같았다/ 갑작스러운 시험은 날씬한 이들만 웃게 한다//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자/ 어지러운 발자국과 바퀴 자국이 보였고/ 정돈되지 않은 무전기 교신음이 들렸다/ 형광 옷을 입은 네 명의 구조대원은 산소통을 둘러매고/ 바퀴 달린 접이식 들것을 끌고 있다//
이 월급쟁이들은 곧 누군가를 구하게 되리라/ 병마개를 삼킨 어린아이를/ 의붓아버지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했던 여중생을/ 비트코인에 등록금을 털어 넣고 연탄을 피운 대학생을/ 연예인에게 악플을 달고 고소를 당한 실직자를/ 고양이에게 물린 개, 개에게 물린 고양이를/ 슈퍼마켓 주인은 이 사건이 극적이기를 원한다//
가져간 책을 반납했다/ 이제 누군가는 구조되었으리라/ 한 명의 약혼녀와 파혼했던 자의 책을 반납하고/ 세 명의 약혼녀와 연이어 파혼했던 자의 책을 빌렸다/ 이들만큼 애타게 구조를 바랐던 이들은 또 없으리라/ 이들에 비하면 우리는 참 잘도 쉽고 거뜬하게 구조된다/ 청와대보다 우수한 건양대학교 응급구조학과가 있으니!//
양대 응급구조사 국가시험 3년 연속 100% 합격/ 건양대는 응급구조사 국가시험에 응시한 응급구조학과 수험생 전원이 합격했다고 9일 밝혔다./ 첫 졸업생부터 3년 연속 100% 합격 신화를 이어 오고 있다./ 이 학과는 각종 국책사업을 통한 교육역량 중점 학사일정을 운영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학기 중 건양대병원 10개 과에서 임상실습으로 현장역량 중심교육을 하고 있다./ 또 평생패밀리제도를 통한 학생 및 진로 상담, 재학생 전원 취업반 운영을 통한 진로 준비, 방학 중 토익몰입교육 등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펼치고 있다./ 동문회도 지난 2016년과 2017에 걸쳐 600만 원의 동문회 발전기금을 모으면서 학과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내려오는 길에/ 눈 속에서 두런거리는 구조대를 다시 만났다/ 쫑긋 세운 귓등으로 구조대와 마을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어디를 찾습니까?”/ “현대빌라요.”/ “현대빌라는 저긴데.”/ “거기는 신현대빌라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우리도 모르는 신현대빌라가 이 동네에 있어요?”//
우리가 사는 현대/ 그 잘난 현대가 행방불명이다/ 죽었다는 신이 자꾸 새로 생겨나/ 구조대가 찾지 못하는 것은 현대다/ 소리 없는 경광등이 눈발을 뒤집어쓴다//
* 유순상, 「건양대 응급구조사 국가시험 3년 연속 100% 합격」, 《뉴시스》, 2018. 1. 9.

우스운 하이쿠 / 장정일
식탁에 펼쳐진 바쇼오 시집에/ 냉잇국이 튀었네/ 앗,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힙합 / 장정일
약 좀 주소/ 약 좀 주소/ 신약 좀 만들어 주소/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가/ 먹었던 그런 시시한 약은 말고/ 죽었던 사람도 다시 살아나는 약//
날아갈 준비 다 된 내 인생/ 활주로에서 뒤로 달리게 하지 말고/ 약 좀 줘, 씨발놈들아/ 먹고 죽게 약 좀 줘/ 아무도 괴롭히지 않고/ 물이 되어 하수구로 흘러갈게/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을게//
달에도 가고/ 복제 양도 만들고/ 가죽공예 장인도 만드는데/ 한 알만 먹으면 헬륨 먹은 목소리로/ 자지러지게 웃다가 잠드는 약/ 그 좋은 약은 왜 못 만드나//
보건복지부와/ 청와대는/ 출산율만 걱정하지/ 어서 죽고 싶은 사람들의 복지는 너무 몰라/ 그만 살고 싶은 내 마음은 너무 몰라/ 그래서 우리는 메스꺼운 구공탄을 피워 놓고 애쓴다고/ 면도날로 동맥을 끊고 피칠갑이 된다고/ 고소공포증을 참고 옥상까지 기어올라가 떨어진다고/ 씨발놈들아 그 좋은 기술로/ 신약 좀 만들어!/ 자판기로 콘돔을 팔 듯이/ 신약 좀 먹어 보자 씨발놈들아!/ 같이 먹자고 안 할게//
Mnet은 보건복지부의 청탁을 받고 쇼미더머니를 만들었지/ 우리가 미치는 것을 막아보려고/ Mnet은 국가 정보원의 청탁을 받고 고등래퍼를 만들었지/ 화염병 던지는 것을 막아 보려고/ 청와대는 나쁜 약 대신 가짜 약을 만들었지/ 방시혁과 함께 방탄소년단을 만들었지//
힙합은 필요 없어/ 방탄소년단도 꺼져 버려/ 더 나쁜 약을 줘/ 진짜 약을 줘/ 내 청춘 박멸한다//

불탄 집을 교대로 지킨다 / 장정일
집 앞의 버스 정류소에 내리면/ 불 냄새가 난다/ 너와 나는 그만 헤어져야 해//
내 발걸음을 이끄는 건/ 들리지 않는 소방차 소리/ 골목에서는 언제나 환영을 보았지/ 어지러운 소방 호스와/ 나를 손가락질하는 낯선 이웃들/ 까맣게 타 버린 창에 늘어진 혀처럼 보이는 것은 그냥 커튼일 테지//
누구도 알지 못할 우리 집 비밀번호/ 너는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나와 똑같은 꿈을 꾸다가 일어났어/ 서로 겸연쩍은 얼굴을 교환하고/ 물 잔을 앞에 놓고 식탁에 마주 앉았어/ 이미 불탄 집인데//
이튿날 아침엔 네가 먼저 사라졌어/ 동물원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알바일 테지/ 나는 가스레인지를 껐다, 켰다, 껐다, 켰다/ 하지만 이 집은 우리 게 아니야//
저녁에 너는 불 냄새를 맡으러 돌아올 테지/ 물에 젖은 커튼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을 테지//

내 애인 데카르트 / 장정일
그이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집어쳐요, 그딴 말/ 생각하지 않고 사랑할 순 없어요?// 그러자 그는 심각해졌다// 방금 그 말, 생각해 볼 문제야//
* 데카르트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헤이그 클럽 / 장정일
어느 날, 헤이그 클럽 한 병을 주며 당신은 말했지//
너는 내게 할 수 있니? “그만 헤어져”, “이제는 사랑하지 않아” 혹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라는 말을? 너는 그 말을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해. 이 술을 네 책장의 책 뒤에 보관해. 그리고 언젠가 그 말을 해야 할 때, 이 술을 돌려줘.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아무 말 안 해도 나는 알아들을 거야. 내가 준 술을 돌려바다고, 나는 너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할 거야. 너는 내가 모르는 다른 우주로 사라지겠지. 네 혀, 네 항문, 네 오줌, 네 겯랑이의 털, 네 배꼽, 네 어깻죽지, 네 발가락, 네 머리카락, 네 귓바퀴, 네 눈동자, 네 심장의 박동…….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던 사람은 이제 하나밖에 없는 또 다른 사람이 되겠지. 네 신체의 각 부분은 새로운 사람과 더불어 새로운 이름과 의미를 얻게 되겠지. 나는 집으로 돌아와 병째 술을 마실 거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을 거야. 위스키 한 병은 사람을 뇌사시킬 수도 있지. 너를 잊기 전에 나를 잊는 거야. 크게 K2의 노래를 따라 부를 거야. 잃어버린 너를.//
어느 날, 집 앞의 어린이 놀이터로 당신이 나를 불렀지. 싸구려 술내를 풍겼지//
우리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해야 하겠니? 깨버려, 죽음이 우리의 새끼손가락을 풀어 주는 것처럼! 깨버려, 함께라는 의무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나는 다른 우주에서, 당신은 또 다른 우주에서, 우리는 또 다른 동물이 되는 거야. 깨 버려! 언제든지 깨 버려! 영원히 사랑하자는 약속, 영원한 폭력, 지금 당장이라도 깨 버리자!//
나는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는 당신을 꼭 껴안았어. 비로소 불안이 사라지며, 너를 계속 사랑해도 괜찮겠다는 결심이 섰어. 내가 당신에게 매달리자, 그네는 중심을 잃고 홀랑 뒤집혔어. 라일락 향기가 크게 웃는 두 사람의 폐 깊숙이 스며들었어. 우리는 헤이그 클럽이야.//

그림자 / 장정일
해가 지면/ 내 몸통에서 돋아나는 손과 발/ 그림자// 내 그림자는/ 보디가드가 지키고 있는/ 당신을 찾아 달려간다/ 내 손은/ 몸속에 갇혀 있는 당신의/ 손과 발을 어루만진다// 해가 지면/ 그림자가 그림자를 부른다/ 당신의 그림자 위에/ 내 그림자를 포갠다//

충남 당진 여자 / 장정일
어디에 갔을까 충남 당진 여자/ 나를 범하고 나를 버린 여자/ 스물세 해째 방어한 동정을 빼앗고 매독을 선사한/ 충남 당진 여자 나는 너를 미워해야겠네/ 발전소 같은 정열로 나를 남자로 만들어준/ 그녀를 나는 미워하지 못하겠네/ 충남 당진 여자 나의 소원은 처음 잔 여자와 결혼하는 것/ 평생 나의 소원은 처음 안은 여자와 평생 동안 사는 것/ 헤어지지 않고 사는 것/ 처음 입술 비빈 여자와 공들여 아이를 낳고/ 처음 입술 비빈 여자가 내 팔뚝에 안겨주는 첫 딸 이름을/ 지어주는 것 그것이 내 평생 동안의 나의 소원/ 그러나 너는 달아나버렸지 나는 질 나쁜 여자예요/ 택시를 타고 달아나버렸지 나를 찾지 마세요/ 노란 택시를 타고 사라져버렸지 빨개진 눈으로/ 뒤꽁무니에 달린 택시 번호라도 외워둘 걸 그랬다/ 어디에 숨었니 충남 당진 여자 내가 나누어준 타액 한 점을/ 작은 입술에 묻힌 채 어디에 즐거워 웃음 짓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두 사람이 누울 자리는 필요 없다고/ 후후 웃던 충남 당진 여자 어린 시절엔/ 발전소 근처 동네에 살았다고 깔깔대던 충남 당진 여자/ 그래서일까 꿈속에 나타나는 당진 화력 발전소/ 화력기 속에 무섭게 타오르는 석탄처럼 까만/ 여자 얼굴 충남 당진 여자 얼굴 그 얼굴같이/ 둥근 전등 아래 나는 서 있다 후회로 우뚝 섰다/ 사실은 내가 바랐던 것/ 그녀가 달아나주길 내심으로 원했던 것/ 충남 당진 여자 희미한 선술집 전등 아래/ 파리똥이 주근깨처럼 들러붙은 전등 아래 서 있다/ 그러면 네가 버린 게 아니고 내가 버린 것인가/ 아니면 내심으로 서로를 버린 건가 경우는 왜 그렇고/ 1960년산 우리 세대의 인연은 어찌 이 모양일까/ 만리장성을 쌓은 충남 당진 여자와의 사랑은/ 지저분한 한 편 시가 되어 사람들의 심심거리로 떠돌고/ 천지간에 떠돌다가 소문은 어느 날 당진 여자 솜털 보송한/ 귀에도 들어가서 그 당진 여자 피식 웃고/ 다시 소문은 미래의 내 약혼녀 귀에도 들어가/ 그 여자 예뻤어요 어땠어요 나지막이 물어오면/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 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내 말이 그 말이야 / 장정일
나는 당신의 발가락을 빨았지/ 하나, 하나씩 묵주처럼 빨면서/ 우리 관계가 영원하기를 빌었어// 그리고 당신의 항문을 핥았지/ 뾰족하게 세운 혀로/ 우주의 비밀을 감춘 앙다문 문을 두드렸지/ 음침한 매력 속에 허우적댔지// 그리고 당신이 만든 물을 마셨지/ 당신의 두 다리 사이에 꿇어앉아/ 당신이 내민 질구에 입을 갖다 댔지/ 당신은 하느님이고/ 나는 당신이 오줌을 먹여 키우는 피조물이었지// 그리고 나는 허리를 굽히고 두 손으로 발목을 잡았지/ 당신은 내 엉덩이에 매질을 했지/ 메트로놈 박자처럼 메말랐던 매질/ 주위가 하얗게 변해가고 있어// 섹스가 사라진다/ 사랑이라는 악무한도 사라진다/ 나는 사라진다 나는/ 그가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안다/ 흠씬 두들겨 맞고, 못질까지 당했지만/ 가슴 터질 듯이 행복했던 자/ 그는 그때 완전히 죽었던 거야// 하지만 당신은 마음속으로 내 간절한 사랑을 비웃었지/ 나는 깨끗한 것만 골라 입 맞추는 당신의 혀가 미웠는데/ 나는 당신이 꿈꾸는 산업이 더 역겨웠는데// “그러니까 J, 간절한 접점이 없으니, 그냥 친구로 지내자는 거지?”//

​철강노동자 / 장정일
받아쓰십시오. 분위기 있는/ 조명 아래 끙끙거리며/ 좋은 시를 못 써 안달이 나신/ 시인 선생님.// 나의 직업은 철강 노동자/ 계속 받아쓰십시오. 내 이름은/ 철강 노동자. 뜨거운 태양 아래/ 납덩이보다 무거운 땀방울을/ 흘리는 철강 노동자//
당신은 생각의 남비 속에/ 단어와 상상력을 넣고 끓인다지요/ 눈물 방울은 넣었나요. 그리고/ 달콤한 향료는?/ 망설이지 말고 당신 이모님과의/ 사랑 이야기도 살짝 섞으십시오.//
여보세요 시인 선생/ 나는 남비에 시를 끓이지는 않는다오./ 적어도 내가 시를 쓸 때는/ 거대한 용광로에 끓이지요/ 은유와 재치 따윈 필요도 없다오.//
내가 좋은 쇠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한 동이의 땀과/ 울퉁불퉁한 근육. 그것만 있으면/ 곡마단의 사자처럼 쉽게/ 온갖 쇠를 다를 수 있지요.//
조금더 받아쓰십시오./ 내가 얼마나 쓸모있는 시를 쓰는지/ 지금 끓이는 한덩어리의 주석이/ 바로 당신이 받을/ 원고료 한 닢!//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써/ 주시겠오 시인 선생?/ 써 주신다면 나도 가만 있을 사람은/ 아니라오. 그 댓가로/ 영원히 닳지 않을 펜촉을 만들어 드리지요./ 그 일은 아무 풋나기나 할 수 없는/ 무척 어려운 일이랍니다//

그녀 / 장정일
그녀는 차차를 춰요/ 그리고 왈츠를,/ 기분이 좋을 땐 룸바/ 화가 날 땐 탱고/ 심심하면 삼바를 추지요.//
그녀는 춤의 대명사./ 열다섯에 사교춤을 익히고/ 열여섯에 탈춤의 어깨짓을/ 디스코에 응용하려 했지요/ 그리고 방년 열일곱에/ 제1방송국 전속무용수가 되죠//
그녀에겐 애인이 있어요/ 매일 수염 자라나는 스무 살의 남자가./ 어느 날 종로를 걸어가는데/ 그가 다가와 한마디 한 거예요/ 이것 봐 하룻밤 놀지 않겠어?/ 그리고 칙, 담배를 피워물었지요.//
그것뿐이예요/ 요사이는 구질구질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그가 좋았어요/ 둘이 팔짱 끼고 걷는 중에도/ 얼마나 많은 여자애들이/ 그를 찝적거리는지/ 한눈이라도 팔면 금방 그를/ 놓쳐버릴 듯했죠.//
그녀는 열여덟 살!/ 작은 아파트를 얻어/ 방금 말한 그 남자와 살림을 차려요./ 하지만 생활비는 그녀가 벌어오죠./ 왜냐하면 그이는 직장을 갖지 않아요/ 구속당하는 걸 싫어하는 성미거든요.//
눈꺼풀이 내려앉은 그녀는 삼십 세./ 고급 술집의 밀실에서/ 스트립 춤을 추며 그녀는 아직/ 그 남자와 살고 있지요.//
몰래 도망쳤다가 번번이/ 머리끄댕이가 잡혀 돌아오고/ 죽지 않은 만큼 주먹다짐을 받으며/ 매일 욕설을 얻어먹으며/ 그렇게 사랑을 갈취당하면서/ 얼쩔 수 없이, 당연하게//
그녀는 차차를 춰요/ 그리고 왈츠를/ 기분이 좋을 땐 룸바/ 화가 날 땐......//

세일즈맨의 죽음 -속, 안동에서 울다 / 장정일
당신은 여수에서 죽은 사내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는가, 새파란 분말의 쥐약을/ 삼키고 개처럼 죽어간 - 40년을 개처럼 살았던/ 삶이다 - 세일즈맨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는가? - 모른다면, 당신은 신문을 읽지/ 않는 얼마 되지 않는 정의로운 시민 가운데/ 한 사람일 것이다 -//
신문 사회란에 실린 사내의 약간 심약해 보이는/ 얼굴을 보고 당신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아, 하고서 – 왜냐하면/ 그 역시 당신과 똑같이, 흰 수건을 가슴에/ 달고 다닌 코흘리개 국민학생이었고,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으니 말이다. 또 꿈 많은/ 대학노트를 옆에 끼고 - 가끔은 노트 대신/ 새침한 여학생의 팔짱을 끼고 - 4년 간 대학/ 생활을 했고, 풀기 먹은 육군 병장으로 제대를 했다./ 같은 학교를 다닌 동문이었거나, 한 축구팀의/ 선수였을지도 모른다.//
여수에서 죽어버린 사내 - 왜 한 많은 사내들은/ 여수에 가서 죽는 것일까? - 그 사내의// 약간 우수에 잠긴 긴 얼굴은 보고 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그를 기억해낼 것인가 – 전국의/ 모든 유곽에서, 일제히! - 그는 살아 생전 자신의/ 신세를 혀로 핥고, 주무르고, 사정해대었으니/ 그리고 알 만한 창부들은 알 것이다./ 그가 얼마나 다정다감했던 줄을 - 비록 향수값을/ 거웃한 그곳에 더 얹어주진 못했어도-//
파란 쥐약을 먹고 여관방 쓰레기통을/ 안은 채 새우처럼 등이 굽어버린 사내에/대하여 들은 적이 있는가. 커다란 첩보원 가방에/ 월부책 카다로그를 가득 넣고, 전국을 개처럼 돌아다닌/ 그의 말없는 가죽구두에 대하여 - 그의 가죽구두는/ 네 짝 - 그 외롭고 큰 네 발에 대하여 당신은/ 들은 적이 있는가? 가족을 지척에 두고 간이역과/ 간이역을 내쳐 뛸 때, 그느 깨달았다. 날이 갈수록/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렵다는 것을./ 하여 그는 끝장냈다. 더는 울지 않고 - 언젠가 초라한/ 여관의 꿉꿉한 이불 위에서 그는 울먹인 적이 있다./ 끝? 끝? 이라고 - 스스로의 목구멍을 막았다. 견디지/ 못하여! -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그의/ 생을 우리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그 때문에,/ 우리가 목격하는 자살은 언제나 타인의 몫이 된다./ 결국, 그것이, 그렇다 -//
해버리면, 그것으로 일이 끝난다면/ 얼른 해버리는 게 좋은 것이다. mama I love you./ 오늘도 死神을 못 보고 잔다. 아마도 죽음은/ 꿈이 없는 잠. 여보, 용서하구료. 회한 속에 몸부림/ 쳤고 매일매일 더 잘해보자고 자신을 격려/ 했었소. 박과장, 더러운 새끼! 휴식과 알콜에/ 넘친 어둠. 숙아 아빠가 불쌍하지? 전화 52,/ 2158…… ― 그의 검은 수첩 여기저기에 적힌 말들―//
그 밖에 사철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좋습니다.//

햄버거 먹는 남자 / 장정일
냉장고 문을 열자 희미한 야간등이 비친다/ 그는 채소더미 속에 묻힌 햄버거를 꺼내고/ 코카콜라 캔을 하나 꺼낸다 그리고/ 티브이를 보던 방으로 돌아와 햄버거를 싼/ 폴리에스터 곽을 쓰레기통에 넣고/ 조심스레 은박지를 벗긴다 깡통고리도 따서/ 쓰레기통에 곱게 넣는다// 콜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그는 약간/ 딱딱해진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문다 추풍령/ 저쪽에서는 비가 내리는지 티브이에서는/ 삼성과 해태의 우중경기가 보여진다 그는/ 천천히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먹어치우고/ 방바닥에 흘린 소스를 휴지로 닦아 깡통과/ 은박지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린다// 오늘 저녁에도 어머니는 잊지 않고 햄버거를 사 오실까/ 그는 어머니가 계시는 아케이드로 전화를 한다/ …… 엄마 …… 나야 …… 많이 팔았어? …… 집에 들어올 때/ 햄버거 사 와 …… 그래 …… 집엔 아무 일 없어……/ 전화세가 나왔어 …… 기본요금이야 …… 그는/ 발밑으로 기어들어오는 집게벌레를 신문으로 덮어/ 눌러 죽인 다음 쓰레기통에 넣는다// 저녁이 되어 어머니께서 햄버거 두 개를 사서/ 돌아오셨다 그는 한 개를 먹고 한 개는/ 냉장실에 넣어둔다 …… 어머니 …… 삼성이 해태를/ 6대 4로 눌러 이겼어요 …… 밤이면 그는 이빨을 닦고/ 자신의 방을 깨끗이 쓸고 닦은 후 이불을 펴고/ 눕는다 천정에 달린 형광등이 길로틴처럼 뿌옇게/ 빛난다 나는 내일도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겠지//

햄버거에 대한 명상 ―가정 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 장정일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사/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 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 작은 술/ 상추 4앞/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 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 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 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 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 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 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추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 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추를 깔아 마요네즈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요리사와 단식가 / 장정일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 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 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 거나 쉴 새 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 늘은 무슨 요리를 해 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 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 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에다 멋/ 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 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 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 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땅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 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들을 끊임없이 문/ 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어느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까지 미친/ 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 먹는다. 물론 외로움/ 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 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나, 실크 커튼 / 장정일
나는 그 남자를 본다. 수돗가를 향해/ 조그만 창이 나 있는 골방 속에 들어 있는 남자를/ 나는 본다. 그는 심한 기침을 해대며/ 나, 실크 커튼이 쳐진 작은 창이 달린/ 골방 속에 산다. 그는 입을 오물거려 껌을 씹고/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가끔 하이드라지드를/ 입에 털어넣고 주전자째로 물을 마시는 남자./ 정말이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사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본다. 그 남자를 보고, 또 한 여자를/ 나는 본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차례씩/ 비누를 들고 나와 수돗가에서 발을 씻는다./ 발가락 사이 사이와 발꿈치 복숭아뼈를 거쳐/ 종아리와 정강이, 무릎에다 잔뜩 비누칠을 하고서/ 거친 수건으로 그것들을 세심히 문지르는 그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녀는 마치/ 씻기 위해 사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본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외로운 노래를,/ 나, 실크 커튼은 본다. 수돗가에서 스테인레스 대야가/ 햇빛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그 남자가/ 나, 실크 커튼 앞에 바짝 다가서는 것을. 나는/ 본다. 여자는 두 허벅지 사이에 치마를 끼운 채 발을 씻고,/ 그 모습을 보며 남자가 수음에 열중하는 것을. 나, 실크 커튼은/ 하염없이 본다. 클클거리며 수음하는 남자를,/ 기침이 달겨들 때마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떠는 남자를./ 그럴 때 그의 몸뚱이는 거대한 기침이 그를 뱉았다,/ 다시 집어삼키는 것 같고 그때 그는/ 커다란 기침 속에 들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본다. 그 남자의 깊은 땀샘으로부터, 이마/ 밖으로 솟아나는 땀방울을. 그래, 그는 땀을 흘리며/ 손을 움직인다. 그것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도 무척 힘겨워 보이고, 그것은 그 남자의/ 외로움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시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남자의 행동은 해변의 모랫벌에서 모래성을/ 짓는 순수의 소년들이 하는 허망한 짓을 닮았다./ 그렇지 않은가?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수음은 금세 부서질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나는 본다. 수돗가에서 발을 씻는 여자를./ 그녀 가슴 또한 얼마나 외로움이 사무친 것일까./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녀는, 저 골방 속에서/ 한 남자가 나, 실크 커튼을 통하여 비치는 자신의/ 각선을 훔쳐보며 수음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그녀는 그 남자가 골방 속에서 뛰쳐나와/ 그녀를 비누 묻은 채 거칠게 수돗가에 쓰러뜨리기를/ 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의 욕정을 유발시키고 있는 중이고, 강간당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나, 실크 커튼이 보기에/ 처녀들의 결벽증은 그녀들의 욕망과 비례하는 듯이 보인다.//
나는 본다. 매일 방안에서 벌레처럼 꼬물거리는/ 남자와, 하루에도 수차례 발을 씻어야/ 마음이 놓이는 여자를 나, 실크 커튼을 통해/ 보고 있다. 나는 그 여자가 발을 씻을 때마다/ 나, 실크 커튼을 통해 그녀의 모습을 훔쳐보며/ 수음에 열중하는 남자를 보고, 그 남자가/ 모래 흩어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것을 본다./ 그래, 그는 정말 모래성같이 풀썩/ 쓰러졌다. 단 한 번의 가래침으로 만들어진 우리들./ 계속해서 나는 본다. 그녀가 마른 수건으로 손과 발을 닦고/ 흘낏, 골방 쪽의 창문을 바라다보는 것을, 그러나/ 그녀는 나, 실크 커튼 뒤에 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나는 본다. 방바닥에 웅크린 남자를./ 아무 책장이나 죽, 찢어 그 남자가/ 자신의 손가락 사이와 방바닥에 끈적이는 점액질을/ 닦아내고 있는 것을 나, 실크 커튼은 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모래처럼 흩어져 있다가/ 다시 하나의 모래성으로 모이는 것을 볼 것이다./ 그녀는 몇 시간 뒤 수돗가에서 다시 발을 씻을테고/ 그때 그는 나, 실크 커튼 앞에 서서/ 나, 실크 커튼을 통해 안전하게 보여지는 그녀의 자태를/ 훔쳐보며 굳은 모래성을 쌓을 것이기에.//
결백증에 걸린 뜨거운 여자이자/ 한 줌의 모래 1과/ 욕정이 절정에 달한 결핵 3기의 남자인/ 한 줌의 모래 2의/ 서로 만나지 못하는 연극./ 나, 실크 커튼으로 가로막힌//

삼중당 문고 / 장정일
열 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 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 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 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 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으쓱러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 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 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 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 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 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 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빧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 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뱃대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냉장고 / 장정일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없는 사이에 이모가 와서 내/ 햄버거와 과실과 콜라를 먹어치우고 있구나/ 편도선에 걸려 며칠을 누워 있는 동안 어머니는/ 냉장고 가득 햄버거와 과실들을 채워주셨지/ 그런데 이모가 와서 내것을 다 먹어치우는구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잡고 부엌으로 갔다/ 그녀는 엎드려 믹서기 플러그를 꽂고 있었다/ 그가 등뒤에서 기척을 내자 그녀가 올려다보았다/ "너에게 주려고 토마토 주스를 만들려는 참이야"/ 그녀의 두 다리 위로 치마가 약간 올라가 있었다/ "빨리 가서 누워라 넌 지금 많이 아파"/ 나는 부끄러워서 뛰듯이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잔혹한 실내극 / 장정일
1/밤 열 한 시, 단칸방, 어머니와 아들이 누워 있다.//
어머니 일찍 자자꾸나, 나는 벌써 잠이 오는구나./ 아 들 어머니 그런데 저 소리는 무엇일까요. 낮고 은밀하게/ 우리 주위를 배회하는 소리./ 어머니 얘야, 나는 소리 듣지 못하는 굴껍질 발끝에서 머리까/ 지 전신이 울퉁불퉁하단다./ 아 들 쥐인가 봐, 내 머릴 밟고 가네요./ 어머니 ……그럼 먼저 잔다./ 아 들 그러세요, 야옹 소린 제가 내지요 야옹, 야옹,//
2/ 하늘 가운데서 몰래 움직이는 북극성, 움직이며 미확인의 볼/ 륨 높일 때 불안과 마주앉은 아들은 더 큰 소리 공중에 풀어/ 놓는다.// 아 들 야옹, 야옹, 야옹,/ 어머니 아직 그러고 있니, 나를 자게 버려 두어라 선잠 깨면/ 다시 못 잔다./ 아 들 어머닌 안 들리세요, 우리 지붕 갉아 먹는 소리./ 어머니 ……저 소리 말이냐. 그거라면 나도 수없이 들었다./ 약을 놓을테니 야옹 소리 필요없다./ 아 들 아니예요 제 몫은 제가 쫓아야 해요. 어쩌면 쥐소리가/ 아닌 듯도 한데, 야옹, 야옹,/ 어머니 네 마음대로 하려므나.//
3/ 어머니는 다시 잠들고 초조해진 아들은 벌떡 일어선다.// 아 들 야옹! 야옹! 야옹! 꺼져 이 쥐새끼들아, 꺼지란 말야!/ 어머니 깜짝이야, 도대체 왜 그러니!/ 아 들 이젠 들리시죠, 우리 삶이 톱질당하는 소리./ 어머니 ……너는 떨고 있구나, 저것은 세월가는 소리. 아직/ 몰랐니?/ 아 들 아니예요 시간은 지금쯤 시냇물을 따라 어둠속을 떠다/ 니고 있을 걸요, 나는 알아요 시계 가는 소리보다 더/ 완강하고 부드러운 저 소리./ 어머니 엄마는 하나도 못 알아 듣겠구나, 왜냐하면 나는 곧/ 자게 될 것이니까.//
4/ 돌아누운 어머니는 먼 들판이 되어 있고, 아들 홀로 불안을/ 늘어뜨린다.// 아 들 무서워요, 누가 내 목을 내리친다면 나는 목 없는 고/ 양이…… 아니 벌써 되어 있나요? 야아아옹, 야아아옹,// 이때, 아들이 늘어뜨린 불안의 꼬리를 밟으며 자꾸 방문 두드/ 리는 소리. 쿵쿵/야아아옹/쿵쿵/야아아아오옹/쿵쿵…… 쿵쿵……//

즐거운 실내극 / 장정일
1/ 밤 열 한 시, 단칸방, 어머니와 아들이 누워 있다.// 어머니 이젠 자자꾸나, 나는 지쳐 버렸다./ 아 들 저 소리를 두고 벌써 지치다뇨, 놈들을 진압해야지요./ 어머니 얘야, 내 머리칼을 봐, 잘 때가 되잖았니./ 아 들 저놈들, 또 모여들어 두런거리네./ 어머니 …… 난 …… 지쳤어 …… 혼자해 봐 …… 지켜볼 테니./ 아 들 그러세요, 야옹 소린 제가 내지요// 야옹, 야옹,//
2/ 아들이 야옹 소리를 내는 만큼 천정에서 뛰는 쥐들은 더욱 분/ 주해지고, 불안과 마주앉은 아들은 더 큰 소리 공중에 풀어 놓는다.// 아 들 야옹, 야옹, 야옹,/ 어머니 네 목소리엔 힘이 들어 있지 않구나/ 아 들 힘껏 소리치고 있어요./ 어머니 그 소리 가지곤 어림없다. 자, 따라해 봐/ 야, 옹, 야, 옹,/ 아 들 야, 옹, 야, 옹,//
3/ 야, 옹, 야, 옹, 외치는 구령에 잠시 조용해지는 천정. 그러/ 나 더 커진 천정의 부스럭거림이 야옹 소리를 짓누른다.// 아 들 저, 저것들이 이제 달아나지도 않네./ 어머니 찍소리 못하고 고분고분하던 것들인데……// 아 들 어머니, 다시 힘을 모아 외쳐 봐요./ 야, 옹, 야, 옹,/ 어머니 야옹 소리 필요없다, 이것으로 저놈들의 정의가 입증된/ 거야./ 아 들 닥쳐요 방금 한 그 말, 국보법 위반! 국보법 위반!//
4/ 어머니의 그림자는 교수대 위에 대롱거리고, 아들 혼자 자신/ 없는 야옹 소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아 들 무서워라, 저 저 소리가 더욱 담대히 다가오네./ 야아아옹, 야아아아옹,// 발악하듯 외치는 고양이의 울부짖음을 짓누르며 군중의 환호/ 같은, 웅장한 음악 같은, 흡사 밀물같이 거역할 수 없는, 노/ 크 소리가 자꾸 방문을 두르린다. 쿵쿵/야아아옹/쿵쿵/야아아아/ 오옹/쿵쿵…… 쿵쿵……//

늙은 창녀 / 장정일
입을 맞춰...음...됐어...이젠...내...보×를...핥아...아...기분이/ 좋아...이리와...너의 성기를 빨고 싶어...냄새가 좋아...이젠 너의/ 것을 내 항문으로...집어 넣어...그렇게...아...이번엔...가죽혁띠를/ 가져와...나의 등을 때려...더...세게...세게...세게...넌...네...어/ 머니의...젖을 빨고 자랐을테지...오늘은...내 젖무덤에...오줌을 갈/ 겨...아...따뜻해...아...됐어...네가 더렵혔으니...깨끗하게...네 입/ 술로 닦아 줘...그래...그래...젖처럼...달지...꼭...어린시절로...돌/ 아가는 것...같지?...나도...엄마나 된...듯...기분이 좋아...이젠.../ 뭘...할까...그래...동전을 한 움큼 가지고 와...그걸...보×에 넣어/ 봐...그래...하나...둘...셋...다섯...열...끝없이 넣어 줘...끝없이/ ...그런 다음...우리 다시 한 번...하는 거야...그런데...넌...왜.../ 꼼짝도 하지...않는 거지...미안하다고...미안해서...시키는 대로.../ 할 수 없다고?...멍청이...미안한 부분마저 나를 사랑해 줄 수는 없어/ ?...사랑은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미안함을...미안하다는 뜻의/ 추악함을...하나씩 없애가는 거야...자...해봐...해...난...사랑을 확/ 인하고 싶은 거야...얼마만큼 네가...나를...사랑하는지...아마...네/ 가...나를...끔찍히도 사랑하고 있다면...내가 말한...모든 것들을.../ 너는...맛 볼려고...들 거야...해...하라니까...난...괜찮아...난.../ 난...멍들거나...찢어져도...좋아...자존심 같은 거...옛날에 팽개쳤/ 어...그런데...넌...못하는구나...진정으로...날...사랑하지...않는구/ 나...넌...바지 지퍼만 내리고...간단히...하고 싶은 거지...벽에 세/ 운 채...나의 치마를 들쳐 놓고...빨리...한 번만 하고 나서...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지...그렇지?...개새끼...너는 개새끼야...그래...난/ ...너 같은 놈들을...알아...잘 안다구...흐흐...좋아...빨리해...그/ 리고...꺼져...꺼져...(여자, 개처럼 짖는다.)멍멍...꺼져...멍멍.../ 가...멍멍...멍멍...(하늘에는 달, 어둔 골목에는 개. 그 막막한 사이/ 를 바라보며, 여자 혼자 운다.)//

달리고, 주저앉고, 죽다 / 장정일
인간이란? 그리고/ 인생이란?/ 그것은/ 달리고, 주저앉고, 죽는 것!// 별안간, 갑자기, 그는, 시내 한가운데를,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벌에 쏘인 개같이, 그는, 별안간, 갑자기, 냅다, 뛰어, 달리기 시작/ 했다. 외롭게, 슬프게,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이, 단독자인 그는,/ 헉헉, 거리며, 숨이 가쁘도록, 냅다, 뛰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마에 송글송글 열리는 땀방울은, 바람에 휘날리고, 뜨겁/ 게 쏟아져 나오는 거친 숨은, 공기와 섞이며, 얼굴에 들러붙는다. 헉/ 헉헉, 그는 지금 멈출 수가 없다. 헉헉헉, 그는 지금 쉴 수가 없다./ 캬바레를 지나, 약국을 지나, 학교와 법원을 지나, 국기게양대를지/ 나, 민정당사를 지나, 경향신문 보급소와, 서점을 지나, 그는, 별안/ 간, 갑자기, 냅다, 눈 질끈 감고, 뛰어, 달리기 시작했다. 오, 외로/ 워, 오, 슬퍼, 그의 폐는 불탈 듯이 뜨겁고, 목까지 차오른 거친 숨/ 으로 그의 머리는 어지럽다. 그러나,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이 단독/ 자인 그! 헉헉, 거리며, 아아아, 소리치며, 그는, 냅다, 눈 질끈 감/ 고, 이 악물고, 뛰어달린다. 방송국도, 조산원도, 미술관도, 음악당/ 도, 그를 도와줄 수 없다. 그는 너무나 외롭고, 슬프다. 지금 그는/ 너무나 바쁘고, 다급하다. 누구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이, 누구에게/ 사랑을 줄 틈도 없이, 바쁜 그! 그는 뛰고, 달려, 들판으로 간다./ 그는 뛰고 , 달려, 넓디 넓은, 푸른, 들판으로 간다. 그는 뛰고, 달/ 려, 넓디 넓은, 푸른, 들판을 찾아간다. 인간이란? 그리고 인생이란/ ? 그는 들판을 찾아,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벗어내린다. 항문은 더/ 이상, 용변을 막아 놓을 수 없다. 숨이 찬다. 하늘의 푸른 것이 땅/ 으로 내려오고, 들판의 푸른 것이 하늘로 올라간다. 무릎까지 바지/ 가 내려오기도 전에, 애써 막아 놓은 용변은, 항문을 열고, 흘러내/ 린다. 동시에 그는, 별안간, 갑자기, 냅다, 뛰어, 달린, 심장의 긴/ 장을 견디지 못하여, 푸르락, 푸르락, 크고, 거친 숨을, 몇 번, 내/ 어쉬다가, 무릎을 꿇듯이, 푸른 잔디 위에, 주저앉아, 한 사람의 심/ 장을, 고요히, 정지시킨다. 하늘 높직이서 보기에――인공위성?――/ 그의 육체와, 영혼과, 용변은, 푸른 잔디 위에, 놓인, 하나의, 정구/ 공처럼, 구분되지 않는다. 그는, 미소를 띤다. 비로소, 부끄럽지 않/ 게, 되었다.//

<중앙>과 나 / 장정일
그는 <중앙>과 가까운 사람/ 항상 그는/ 그것을 <중앙>에 보고하겠오/ 그것을 <중앙>이 주시하고 있소/ 그것은 <중앙>이 금지했오/ 그것은 <중앙>이 좋아하지 않소/ 그것은 <중앙>과 노선이 다르오/ 라고 말한다// <중앙>이 어딘가?/ <중앙>은 무엇이고 누구인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중앙>으로부터/ 임명을 받았다는 이 자의 정체는 또 무언가?/ <중앙>을 들먹이는 그 때문에/ 자꾸 <중앙>이 두려워진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아주 먼 곳에/ <중앙>은 있다고/ 명령은 우리가 근접할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서부터 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번 근무가 잘 끝나면/ 나도 <중앙>으로 간다고/ 그는 꿈꾼다// 그러나 십년 세월이 가도/ <중앙>은 그를 부르지 않는다/ 백년 세월이 그냥 흘러도/ <중앙>은 그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중앙>은 왜 그를 부르지 않는가?/ <중앙>은 왜 그를 기억하지 않는가?//

석유를 사러 / 장정일
싸늘한 지폐 한 장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초단파 수신기를 타고 칼립소 뱃노래가 들린다/ 그러나 여기는 추워/ 타오르지 않을 때는 난로마저 손과 발을 얼린다./ 그럴수록 눈을 냉정히 닦고 바로 보기로 해/ 책상 위에 하얀 타자기/ 자판은 고른 옥수수알같이 박혀 있고/ 그것들보다 더 단정한 모습으로 지폐는 누워 있다./ 아침에 나는 저것으로 쌀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어떡하지 이 밤은 겨울도 참지 못해/ 큰 바람 소리로 신음하고/ 눈물만큼의 기름이 저 난로에는 없다.//
점점 한기는 예리한 창을 갈아 내 허리께를 찌른다./ 예수의 죽음 확인하던 로마의 병정처럼/ 두 번 ...... 세 ...... 번 ...... 나는 빨리 결정해야 한다/ 석유를 사기 위해 아침을 굶기로 할 것인가/ 굶어죽기보다 먼저 동사할 것인가에 대하여./ 원래 선택이란 좋은 잔을 마련하고 결정을 요구하지 않는 것/ 네 앞에 놓여진 잔 가운데 최선의 것을 택하면 되리라/ 그렇다면, 그래. 석유를 사서 갈등이 끝난다면/ 당장 사버리는 게 좋지 않은가/ 약간의 석유가 겨울을 유예하고/ 따뜻함이 이 저녁의 동사를 몰아낸다면/ 만사 그것으로 즐겁지 않겠는가//
석유를 사기로 한다. 그러자 신의 둥근 후광인 듯/ 얼었던 방은 생각만으로 더워지고/ 될수록이면 상상이 식기 전에 양말 하나를 더 신고/ 때 묻은 목도리를 한다./ 기름통은 신발장 근처에 버려져 있었고/ 거미줄이 쳤다. 손잡이에 묻은 먼지를 닦고 들어올릴 때/ 가득 채워지기 위해 한층 가볍게 들리는 기름통의 무게/ 여간 즐겁지가 않다.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별들과 가로등 사이로 난 희미한 길을 더듬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나는 주유소가 바라보이는 신작로 앞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천천히 보내주었다.//
좀더 오래 기다리며/ 가슴속에서부터 더워지는 공기를 느끼고 싶기에/ 느릿느릿 걸어 유리로 만들어진 집/ 붉다란 입간판이 주인집 문패보다 큰 주유소 마당에 서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부른다/ 그러면 유리에 묻은 성에보다 두터운 외투를 입은/ 소년이 나오지. 졸면서 기름 호스를 잡지/ 나는 기름이 통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얼마나 빨리 소년의 작업은 끝나는 것일까/ 계기는 오백 원이 가리키는 숫자쯤 해서 멈추고/ 돈을 치른다. 하지만 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유다가 스승을 팔기 위해 고심한 만큼/ 또한 내게 결정하기 어려웠던 몫/ 등을 돌리고 성에를 풀어놓은 거대한 누에 속으로/ 재빨리 소년이 사라지면/ 나는 올 때보다 천천히 걷는다//
난관을 모면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시도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내일 굶주린다 해도, 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은/ 꿈꾸는 일보다 중요하다./ 처음보다 질긴 채찍으로 바람은 내 등을 후려치지만/ 난로가 있어 기름통을 가지고/ 밤 늦게 걸을 수 있는 자는 또 얼마나 행복한가?/ 어느 틈에서인지 한 방울씩의 석유가 새고/ 몇 개 전주 너머의 너의 방이 별보다 밝게 반짝일 때/ 그때인가. 나는 끝없이 걷고 싶어졌다/ 끝없이 걸어,//
동쪽에서 떠오르고 싶었다./ 대지를 무르게 녹이는 붉은 해로 솟아나고 싶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복숭아씨 같은 입을 딱딱 벌리며/ 무서운 대머리다, 불타는 기름통이다./ 아아 매일 아침 내 가슴에 새겨지는 희망의 시간들을/ 무어라고 부를까.//

구더기 / 장정일
캄캄한 항문을 보여줘/ 당신의 가장 감추고 싶은 것/ 당신이 줄 수 없는 것/ 당신이 아닌 것을 줘/ 침과 오줌과 똥// 당신이 뻐기고 싶은 미모/ 담배를 사야 할 때마다 내보여야 하는 주민등록증/ 세상을 제압할 때 꺼내는 학위/ 말가죽 지갑 안에 모신 패스포트/ 대문 밖의 포르쉐/ 그 많은 보디가드들// 나는 어두운 문을 두드렸지/ 당신 속의 난지도에 코를 박았지/ 당신도 가보지 않은 절벽에 매달렸지/ 그러자 항문을 내맡긴 주인/ 용서할 수 없는 배반자를 향해/ 보디가드가 일제히 총을 쐈지/ 공기인형처럼 당신은 길 위에 쓰러졌어// 내가 맡은 냄새를 당신에게 옮기고 싶어/ 침과 오줌과 똥/ 우리는 창조해야 돼/ 입맞춤이 거부당한 곳에서 생겨나는/ 꼬물거리는 구더기/ 구더기들//

X / 장정일
너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칫솔보다는 확실히 달콤했지만, 칫솔만큼 내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일까? 이것은?/ 혀는 입안을 숨 가쁘게 돌아다니며 잇몸을 훑고 입천장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직 사랑니가 나지 않은 내 이빨을 하나씩 헤아렸다/ 처음 숫자를 배우는 아이처럼/ 아이에게 숫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네 혀는 길게 늘어나며 내 목구멍 깊숙이 들어왔다/ 깊숙이 쳐들어와 내 갈비뼈를 하나씩 씻어 주었다/ 마치 앞서 배운 숫자를 복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은 그 숫자들로 마작을 놀 듯이/ 그러고 나서 혀는 내 오장육부를 간질이며/ 온몸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그렇게 한 사람을 달뜨게 한 혀는/ 이윽고 그 자신에게 되돌아가기 위해/ 나올 구멍을 찾았다//
제일 먼저 혀는 오른쪽과 왼쪽 콧구멍으로 번갈아 나왔다가 출구가 아닌 것을 알고 다시 들어갔다/ 나는 처음으로 남의 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혀는 다시 양편 귓구멍으로 나왔다/ 내 귀는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고 쫑긋거렸다/ 세상은 음악이었다/ 혀가 두 눈을 출구로 오해하고 비집고 나왔을 때는 아파서 눈물이 났다/ 젖은 눈앞에 온통 새로운 것이 펼쳐졌다//
나오는 구멍을 찾지 못한 혀는 내 온몸을 들쑤신 끝에/ 항문을 삐죽이 뚫고 나와/ 그 주위를 오래도록 핥았다/ 나는 내 이름을 잊었다//
오랫동안 항문을 빨고 나서/ 다시 내 속으로 들어온 너의 혀는 드디어 출구를 찾았다/ 네 혀는 힘차게 내 성기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길게 늘어지며 너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감쌌다/ 뾰족해진 너의 혀는 너의 가랑이를 더듬었고/ 너는 네 자신의 절정을 탐닉했다//
사랑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 사랑은 자신을 더욱 잘 사랑하는 것//

양계장 힙합 / 장정일
자정이면 멍해질 거야. 양계장의 닭들은 너무 바보같이 살아서 자기가 알인지 닭인지도 모를 거야. 나만 그런 줄 알고 옆을 둘러보면,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바보 같은 놈들이 수천 수만 마리나 줄지어 서 있는 거야. 하나같이 바겐세일로 산 싸구려 모피 코트를 입고, 누군가가 쓰레기통에 쑤셔 넣은 우산처럼 우두커니 섰지.//
잠을 재우지 않고 알만 낳게 하려고 형광등을 줄지어 빼곡하게 켜놓은 양계장의 좁다란 닭장 속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 있어야 하는 닭들은 자기가 뭐 하는 놈인지 진짜 모른다. 그런데 어느 할 일 없는 놈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쓸데없는 질문을 만들었을까. 내가 병아리였을 때,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이모가 눈치 없이 물었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나는 진실을 지키려는 안간힘으로 눈을 까뒤집고 기절을 했지. 이후로 평생 양자택일에 시달렸다.//
새벽 세 시. 밤새도록 불을 켜놓은 닭장에서 알을 낳으려고 끙끙거리는 닭처럼 나는 눈을 말똥거리고 있다. 제길, 항문으로 말이야. 어쩌다 잘못하면 피똥을 싸게 되는 줄도 모르면서 무엇을 써보겠다고 작심하고 밤새도록 책상 앞에 앉은 꼴이라니. 아니, 내가 심한 암치질에 걸렸다는 얘기 안 했던가요? 마음껏 피똥을 싸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답니다.//
당신은 지금 멍해. 홍콩 가려고 플라스틱 막걸리 병에 짜넣은 본드를 들이마신 중딩이 같아. 히로뽕 대신 감기약을 한 통씩이나 물 없이 주워 삼킨 행려병자 같아. 그리고 당신 골통 속에 거꾸로 서 있는 아랫도리가 쑤시듯이 아픈 거야. 누가 함부로 범한 그레이 하운드 레그혼의 똥구멍처럼. 아, 이뻐라! 이처럼 쓸데없는 자의식이라니, 예찬해야 하지 않을까?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는 이미 쾌차한 것이겠지. 담당의사는 나를 오랫동안 그루밍해 왔지만, 나는 손바닥 위에 있는 빨간약과 파란약이 아무 약효가 없다는 것을 알아.//
북극성도 보이지 않는 희끄무레한 밤. 서울 하늘 아래 그 많은 노새족, 당나귀족들은 귓전에 철렁거리는 방울 소리도 없이 그저 내달린다. 그저 죽어라고 자기 주인을 싣고 달린다. 목마에게 불온하거나 음란한 노래를 들려주지 마라. 목마의 앞길을 가로막지 마라. 우는 목마의 목을 껴안고 뺨을 부비지도 마라. 그냥 달리고 달리다가 경첩이 빠져 고갯길에 나뒹굴게 놔둬라. 그러니 어찌할거나. 계속 좆뱅이 쳐라, 씨발놈들아! 이런 식으로 대중을 싸그리 욕해본들 기분은 나아지지 않아. 좆뱅이 칠 당신은 나. 내가 닭이야. (그런데 이 연은 패러디로도 별로야. 그 사람은 박인환에게 잔인했지. 하지만 오등성, 육등성이 있어야 일등성도 있는 거지. 그 사람이 스타가 된 건, 전적으로 박인환의 공로야. 이건 세상의 이치)//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쯤. 뿌연 형광등이 켜진 방 안에 들어앉아 열 시간째 컴퓨터 자판을 타닥거리고 있으면 저절로 자신이 수간 당한 닭 같다고 느껴질 거야. 혹은 새로 나타난 우두머리 혹은 오래전부터 그놈이 약해지길 기다려왔던 경쟁자가 쪼아놓아 형편없이 너덜너덜해진 볏을 녹슨 단검처럼 달고 있는 아스팔트 위의 수탉. 여기까지 읽었으니, 이마트에서 좋은 닭고기를 고르는 팁을 줄게.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일수록 좋은 닭고기야. 간단명료하지. 나는 문예지를 볼 때(2019년 기준) 시인들의 약력부터 보고, 1990년생 아래 태생이라면 거들떠도 안 봐. 등단한 지 10년만 되면 모조리 폐닭, 쉰내 나는 쉬인이지.//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얼만데 아직도 닭장 같은 술집에서 술을 빨며 뇌세포를 죽이는 거야, 거냐고?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러시아 게이와 입 속에 든 맥도널드 햄버거를 서로 나눠 먹고 오면 안 되나? 리우 데 자네이루의 삼바 축제에 가서 다리가 꼬일 때까지 춤을 추다가 오든지, 케냐 같은 데 가서 표범이나 그 비슷한 고양잇과 동물을 사냥하는 흉내라도 내어보면 안 되나? 한국 작가들은 물신과 만나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복수로 끔찍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만 잔뜩 써대는 거라고. 그런 상상력을 High Modern인 양 착각하지만 사실은 gothic fantasy처럼 구리고 구려. 생계가 없고 생활이 없으니 모던이 생겨날 리 없다.//
우리는 70년 넘도록 이견을 가진 사람에게 빨갱이 낙인을 찍어왔어. 그랬던 한국인의 DNA가 민주화 시대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형질변화를 일으키진 않았겠지. 옛날과 달라진 점이라면, 고작 정치적 올바름 말고는 아무런 변변한 이념도 없는 것들이 자기 심사에 들지 않는 이들을 향해 자유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랄까. 예, 예, 꼴리는 대로 부르셔요. 나는 김수영 장정일입니다. 포르노 작가라고 비웃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올시다. 나는 세상의 항문을 빨겠습니다. 당신 혀가 닿지 않는, 당신이 빨지 못하는 항문을 빨아드리겠습니다. 진한 커피 향이 올라오는군요. 이제 내 혀를 당신 입에 넣어 드리지요. 기절을 하든 죽은 체를 하든 편한 대로 하셔요. 아침이다.(“꼬끼오” 소리를 놓쳐버렸어. 닭대가리!)//

​내가 없는 세상 / 장정일
고추잠자리가 몰려다니는 흰 등대/ 풍뎅이가 기어가는 방파제/ 입이 쩍 벌어지도록 하품을 하는 수평선/ 누군가가 바람에 날려 가지 않게/ 자신의 밀짚모자를 한 손으로 꾹 누르고 있다// 헤드라이트가 수분을 섭취하는 숲/ 경적을 울리자 갑자기 나타난 저수지/ 아코디언을 켜는 애인이 사는 마을/ 화투장에 흠집을 내는 도박꾼처럼/ 시인은 자신이 고른 말에 침을 바른다//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는 극장/ 트위터를 보고 몰려든 식당/ 벤치가 모자라는 공원/ 주인을 끌고 다니는 포메라니안/ 도시는 쉬지 않고 쌓이는 인내/ 새로 생겨나는 질병// 고소한 양고기 냄새가 가득한 주방/ 욕실 앞에 떨어져 있는 팬티/ 창 안을 훔쳐보는 붉은 데보시아나/ 대낮에 하는 두 남자의 섹스/ 이 모든 것이 보기에 좋지 않은가?// 오, 빨리 사라져 버려라/ 나는 사라져 버려라/ 내가 없는 완벽한 세상/ 내가 없으면 더욱 아름다운 세계!//

약속 없는 세대 / 장정일
우리들은 약속 없이 만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언제나 약속을 하고서야 만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미 약속없이 만날 수 있는 영감이 사라진 지 오래니까. 하므로 우리에게 약속 없이 만나는 갑작스런 기쁨이 선사되는 일이라곤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하기나 했다는 걸까. 우리들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고, 우연히 극장에서 만났는데. 그리고 디스코 텍과 맥주 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또, 한 잔 더 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포장집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래, 이런 일들이 정말 어떤 약속하에 이루어진 것일까, 정말 어떤 약속하에? ―――믿기는 어렵다.//
우리들이 만나기 위해 더는 약속이 필요치 않다. 우리들은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예민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티 브이를 켜면 만나지는 얼굴같이, 너와 내가 만나는 것은 타성이다. 우리들은 그 습관 위에서 만난다.//
진정 사랑할 만한 그녀를 공들여 찾아내고, 전화번호를 훔치고, 그녀가 있을 만한 시간을 점쳐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전화를 하고, 실랑이 끝에 만날 약속을 하고, 어렵게 장소를 정한 그날부터 만날 날을 손꼽으며 하루 또 하루를 보내고, 가슴 아프게 기다리고, 수첩을 확인하고, 달력을 보고, 또 보고, 그날이 되어 아껴둔 셔츠를 입고, 정성들여 구두를 닦고,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두 사람몫의 커피값을 비는 일은 이제 할 필요가 없다.//
깨끗이 씻은 두 손으로 고급한 요리를 차례대로 먹듯, 그런 약속된 형식을 누리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우리들은 버려진 고아같이 약속 없는 거리에서 만난다. 우리들은 두 손을 호주머니 깊이 찌르고 거리를 걷다가, 첫눈에 서로 반한다.//
우리들은 첫눈에 반하기를, 너무 잘하는 세대. 남자들은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잡아 강간을 하고 여자들은 잘난 사내를 애태우며, 그 완강한 근육 속에 천천히 잡혀들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혼음으로 젊음을 다 떠보낸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 노상에서 태어나 노상에서 자라고 결국 노상에 죽는다. 하므로 우리들은 진실이나 사랑을 안주시킬 집을 짓지 않는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발끝에 끝없이 길을 만들고, 우리가 만든 그 끝없는 길을 간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다. 하므로, 만났다 헤어질 때 이별의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헤어질 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거리를 쏘대다가 다시 보게 될텐데, 웬 약속이 필요하담!> ―――그러니까 우리는, 100퍼센트, 우연에, 바쳐진, 세대다.//

아파트 묘지 / 장정일
홀린 듯 끌린 듯이 따라갔네/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또박거리는 하이힐은 베짜는 소린 듯 아늑하고/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는 엉덩이는/ 항구에 멈추어 선 두 개의 뱃고물이/ 물결을 안고 넘실대듯 부드럽게 흔들렸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그녀의 다리에는 피곤함이나 짜증 전혀 없고/ 마냥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점심시간이 벌써 끝난 것도/ 사무실로 돌아갈 일도 모두 잊은 채/ 희고 아름다운 그녀 다리만 쫓아갔네/ 도시의 생지옥 같은 번화가를 헤치고/ 붉고 푸른 불이 날름거리는 횡단보도와/ 하늘로 오를 듯한 육교를 건너/ 나 대낮에 여우에 홀린 듯이 따라갔네/ 어느덧 그녀의 흰 다리는 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 공동묘지 같은 변두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네/ 나 대낮에 꼬리 감춘 여우가 사는 듯한/ 그녀의 어둑한 아파트 구멍으로 따라들어갔네/ 그 동네는 바로 내가 사는 동네/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그녀는 나의 호실 맞은편에 살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며 경계하듯 나를 쳐다봤다/ 나 대낮에 꿈길인 듯 따라갔네/ 낯선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게릴라 / 장정일
당신은 정규군/ 교육받고 훈련받은/ 정규군./ 교양에 들러붙고/ 학문에 들러붙는/ 똥파리들!/ 그러나 고지점령은/ 내가한다!/ 나는 비정규군/ 적지에 던져진 병사/ 총탄을 맞고 울부짖는 게릴라!//

낙인 / 장정일
티 브이를 켜니 서부극인 모양이다/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카우보이가/ 밧줄 올가미를 휘휘 휘둘러/ 마구 뛰어달리던 야생마를 낚아채뜨린다/ 그런 다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뜨거운 부젓가락을/ 버둥대는 말 엉덩이에 사정없이 눌러찍는다/ 양키들은 잔인하구나!/ 채널을 다른 방송으로 돌리자 광고가 흐르는데/ 말같이 튀어나온 한국 아가씨의 엉덩이에/ 리바이스 청바지 상표가 빨갛게 눌러찍힌다//

거미 / 장정일
거미줄 위에서/ 해치울 상대가 있을 때/ 거미보다 더 빠른 것은 없다/ 보라, 연애와 학습을 잊고/ 인간의 학교에는 다니지도 않았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가 어둠 속에서/ 생각의 모두를 여덟 개 다리 끝에/ 집중시키는지를/ 그렇다, 그가 위대하다는 것은/ 자신의 함정을 재빨리 피해 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지력을 여덟 개 다리 끝에/ 균등히 나눌 줄 안다는 것/ 그리고 단지 하나의 판단 속에/ 자신이 뛰쳐 나가야 할 순간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길 잃은 사람들 / 장정일
가락국수같이 어지러이 풀린 국도 위로 벌레같이 작은 시외버스가 달렸다./ 길안 10km. 길가에 선 도로 표지판은 옷벗긴 마네킹같이 무표정하다. 버스/ 는 달린다. 간이 정류소마다 기침하듯 멈추면서 버스는 달린다. 얼마나 달/ 렸을까. 버스는, 길안사 방향. 이라고 쓰여진 흰 이정표 앞에 뽀얀 먼지를/ 털어내며 다시 멈추었다. 빠꼼히 승강문이 열리고, 등산복차림의 두 남녀가/ 내려서고, 호로롱, 버스는 저 혼자 달려갔다.//
여기서부터는 걷는 거야, 응?/ 그래, 걷는 게 싫어 응?/ 얼마나 걷는데, 응?//
남자는 말없이 여자의 뺨을 톡, 쳐주고 그녀의 가려린 등에 그녀 몫의 배낭/ 을 메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등에도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울러메곤. 가자,/ 한다. 그래 간다. 도시에서의 삶은 여러 가지 환멸 가운데 그들 사랑을 있게/ 했다. 목이 아픈 공해와 귀가 먹먹하던 소음들. 그리고 시시각각 쏟아지던/ 어두운 범죄. 그들은 그런 도시를 벗어나, 한 일주일쯤을 길안사에서 보내려고 한다.//
공기가 신선하지, 응?/ 그래 정말 좋다, 응?/ 이런 데서 살고 싶지, 응?/ 정말 살면 안돼, 응?//
남자는 좁은 오솔길 사이로 늘어진 싸리나무며 아카시아 가지 옆으로 척척/ 걷어주며 앞장을 선다. 그 뒤를 바싹 붙어 따라오는 여자. 사내는 한 여자의/ 앞길을 책임진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말이고 길을 안다는 말이/ 다. 그런 생각이 남자의 기분을 턱도 없이 즐겁게 한다. 휘파람을 분다. 이/ 렇게 기분좋게 가면 금세 길안사에 닿을 수 있으리라. 거기서 마당 빌어 버/ 너에 불붙이고 호르륵, 밥을 해 먹어야겠다.//
형 배고프다, 응?/ 많이 고프니, 응?/ 난 아침 못 먹었단 말이야, 응?/ 길안사 가서 먹자, 응?//
길안사 어디 있나. 갈림길에서 내리면 금방이러던 길안사가 뵈지 않는다./ 분명 저 산길과 바위로 덮인 계곡속에 법어가 있고 각오가 있을텐데. 남과/ 여는 많은 시간을 걸었고 발가락이 부르텄는데 새끼발가락이 없습니다. 인/ 내로 마주 손잡을 힘조차 이제 없습니다. 이게 무슨 심보인가. 길안사는 머/ 리카락을 꼭꼭 숨겨버린 것 같았습니다.//
못 찾으면 어떡해, 응?/ 정성으로 빌어, 응?/ 길 잃고 못 나오면, 응?/ 너와 내가 길안사 되겠지, 응?//
빌어도 길안사 보이지 않는다. 제길, 버림받은 기분이다. 아니면 정성이 부/ 족한 탓일까? 혹은, 진여란 아무에게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단 뜻일까?/ 에잇, 길안사를 찾을 수 없구나! 남자는 비탈길 가운데 여자를 쓰러뜨린다./ 그리고 과도로 꽂듯 그녀의 깊은 문을 콱, 찔러 버린다. 피! 이것을 목적으/ 로 원하였던 바는 아니나 그녀도 후회하진 않는다.//
널 갖고 싶었어, 이해하지, 응?/ 그런데, 형은 날, 사랑해, 응?/ 응...... 사랑해...... 좀, 움직여줄래, 응?/ ......응...... 이렇게? 응?/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주말등산 혹은 여름바캉스에 와서 이렇듯 허망한/ 사정을 이루는 것일까. 여자는 무릎을 굽히고 자신의 막, 유린된 그곳을 두/ 눈 뜨고 본다. 막, 갔구나! 여자는 울고 남자는 무안해서 길가의 들꽃을 꺾/ 어 벌려진 그녀의 입으로 들이민다. 그 맛이 쓴지, 단지 훌쩍이며 여자는 웃/ 어 버렸다. 산 너머 어디선가, 깨어진 듯 상처입은 범종이 들려온다.//
그래, 잘 된거다, 응?/ 몰라, 형이 책임질 거지, 응?/ 그래, 부모님부터 만나자, 응?/ 응.//
약간의 식료품과 약간의 의약품들. 그리고 트랜지스터 라디오, 화투장, 옷/ 가지 등속을 잔뜩 처넣은 배낭을 다시 메고 두 사람은 왔던 길로 되돌아온/ 다. 추방인가? 공해와소음과 범죄뿐인 땅으로? 발도 디뎌 보지 못한 길안/ 사에 불칼이 서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차라/ 리 사랑을 배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든다. 그러던 어느/ 새 두 사람은 길안사 방향. 이라고 써갈긴 하얀 이정표 앞에 다시 섰다. 그/ 러자 길 끝에서 버스가 달려온다.//

꿀맛 / 장정일
늦잠을 자시네/ 사철나무 둥지 밑/ 시월의 단풍더미에 누워/ 고요한 아침 햇살을 맞으시네./ 한 톨 쌀알을 잊으시고/ 불안한 굴뚝잠도/ 무서운 가시/ 날카로운 고양이 발톱도/ 모두 잊으셨네./ 세상은 부산한 아침/ 무슨 꿈을 켜시나?/ 따스한 햇살을 맞으시며/ 새치머리 쥐 한 마리/ 죽음의 꿀통에 빠져/ 일어나지 않으시네.//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 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하며/ 스물 두살 앞에 쌓인 술병 먼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게 벨 것인데/ 한 켠에선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사춘기 / 장정일
작은 새는 어디로 날아갔나/ 독수리 그림자 아래 앉아/ 불안한 눈동자를 떨며 굴리던/ 우리의 작은 새는 어디로 사라졌나/ 깃털 하나의 자취도 없이/ 비바람에 두 날개 적시며/ 내 곁을 떠난 순한 새//

쉬인 / 장정일
솨람들은 당쉰이 육 일 만에/ 우주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건 틀리는 말입니다요/ 그렇습니다요/ 당신은 일곱째 날/ 끔찍한 것을 만드쉈습니다요//
그렇습니다요/ 휴쉭의 칠 일째 저녁/ 당쉰은 당쉰이 만든/ 땅덩이를 바라보쉈습니다요/ 마치 된장국같이/ 천천히 끓고 있는 쇄계!/ 하늘은 구슈한 기포를 뿜어 올리며/ 붉게 끓어올랐습지요//
그랬습니다요/ 끔찍한 것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온갖 것들이 쉼히 보기 좋왔고/ 한없이 화해로웠습지요/ 그 솨쉴을 나이테에게 물어보쉬지요/ 천년을 솰아남은 히말라야 솸나무들과/ 쉬베리아의 마가목들이/ 평화로웠던 그때를/ 기억할 슈 있습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때/ 쇄상을 처음 만들어보았던 쉰출나기/ 교본도 없는 난처한 요리솨였습지요/ 끓고 있는 된장국을 바라보며/ 혹쉬 빠뜨린 게 없을까/ 두 숀 비벼대다가/ 냅다 마요네즈를 부어버린/ 당쉰은 서툰 요리솨였습지요//
그래서 저는 만들어졌습니다요/ 빠뜨린게 없을까 생각한 끝에/ 저는 만들어졌습니다요/ 갑자기 당신의 돌대가리에서/ 멋진 쇙각이 떠오른 것이었습지요/ 기발하게도 <나>를 만들자는 쇙각이/ 해처럼 떠오른 것이었습지요//
계획에는 없었지만 나는/ 최후로 만들어지고/ 공들여 만들어졌습니다요/ 그렇습니다요/ 드디어 나는 만들어졌습니다요/ 그러자 쇄계는 곧바로/ 슈라장이 되었습니다요/ 제멋돼로 펜대를 운전하는/ 거지 같은 자쉭들이/ 지랄 떨기 시작했을 때!//
그런데 내 내가 누 누구냐구요?/ 아아 무 묻지 마쉽시오/ 으 은 유 와 푸 풍자를 내뱉으며/ 처 처 천년을 장슈한 나 나 나는/ 쉬 쉬 쉬 쉬인입니다요//

시집 / 장정일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아무런 쓸모없는, 주식시세나/ 운동경기에 대하여, 한 줄의 주말방송프로도/ 소개되지 않은 이따위 엉터리의./ 또는, 너무 뻣뻣하여 화장지로조차/ 쓸 수 없는 재생불능의 종이 뭉치./ 무엇보다도, 전혀 달콤하지 않은 그 점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로 덮인 한 권의 책, 이 지상엔/ 그런 애매모호한 경전이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신을 위해서랄 것도 없는./ 하지만 누가 정사에 바쁜 제 무릎 위에 얄팍하게 거만 떠는/ 무거운 페이지를 올려놓는다는 말인가?/ 그래, 누가 시집을 펼쳐 들까/ 이제 막 연애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이,/ 중동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아니라면 장서를 모으는 수집가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뒷장을 열어 출판년도를 살펴볼까?/ 양미간을 커텐같이 모으며 이것/ 굉장하군! 감탄하는/ 끈끈한 조사와 형용사로 단어와 단어 사이를/ 교묘히 풀칠하는 당신의 시./ 그따위 것을 누가 찾아 읊조린단 말인가/ 절정의 순간에 한 줄의 엘리어트를 읽어 주어야만/ 만족해하는 성도착증의/ 젊은 부인을 위해? 혹은/ 강단에서 시를 해석하는 문법학자의/ 조심스레 미끄러지는 입술에서나/ 그것은 팽개쳐질까. 아무런 열의도 없이/ 이해하겠어요, 이 작가의 콤플렉스를?/ 지루하게 외쳐대는 오후의 강의 시간에나/ 시인과 시인이 맞붙어 싸우는 이 암호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두터운 안경을 맞추어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마음 멍청하면 사게 되는 것이냐, 아무리 찾아도/ 국립극장 초대권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이 한 권의 책을. 놔 둬 버리지/ 서점의 제일 높은 판매대에 꽂혀/ 먼지가 만지도록 그냥, 놔 둬 버리지./ 제일 아래쪽 밀대가 지나다니며/ 까맣게 구정물이 먹도록. 구석을 찾아/ 이리저리 천대받도록 그렇게 놔 둬/ 버리지. 이 따위, 엉터리의//

실비아 플라스에게 빠진 여자 / 장정일
어젯저녁, 나를 주제로 시를 쓰면서/ 그녀는 나에게 모욕을 가했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고 운을 맞추어가며/ 그녀는 나를 우스꽝스러운 동성연애자로 각색했다/ 험프리 보가트에게 빠지다니, 빠진다는 표현은/ 얼마나 잘 숨기어진 외설인가?// 나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이해할 수 없다니?/ 나는 그녀가 풀려고 애쓰는 퍼즐 게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매일 저녁/ 그녀가 읽어주는 실비아 플라스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여보 실비아는 이렇게 썼어요/ 여보 실비아가 놀랍지 않아요? 아아 지겨워라/ 실비아에겐 어떤 섬뜩함이 있어요. 아아 지겨워/ 가령 <피의 분출은 시>이라거나 <나의 시간, 시간은 허영과 결혼했어요>같은 구절은/ 자살하기 전의 실비아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지요// 그러고서 담배 한 대를 길게 붙여 물거나/ 위스키 속의 얼음을 짤랑짤랑 흔들어 마시며/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놓는다./ 우리는 사라오가 슬픔의 핵우산 아래 있지요/ 다시 얼음을 짤랑짤랑 흔들어 마시며/ 더할 수 없게 슬픈 어조로,/ 성인들에겐 상처입은 영혼이 있지만/ 우리에겐 상처입을 영혼조차 없지요.// 아무래도 그녀는 미쳤다./ 원고지 앞에 멍청히 쯔ㅜ그리고 앉아 중얼거리는/ 아내는 미쳤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라구/ 할 때마다, 몽상가들이 꿈꾸는 것은 바로/ 현실입니다. 제발, 할 때마다/ 몽상가들이 꿈꾸는 것은 현실입니다.//

약속 없는 세대 / 장정일
우리들은 약속 없이 만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언제나 약속을 하고서야 만/ 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이미 약속없이 만날 수 있는 영감이 사라진 지 오/ 래니까. 하므로 약속 없이 만나는 갑작스런 기쁨이 선사되는 일이라곤 없/ 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하기나 했다는 걸까. 우리들은 우/ 연히 길거리에서 만났고, 우연히 극장에서 만났는데. 그리고 디스코 텍과/ 맥주 홀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또, 한 잔 더 하기 위해 찾아들어간 포장집에/ 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래, 이런 일들이 정말 어떤 약속하에 이루어진 것일/ 까, 정말 어떤 약속하에? -믿기는 어렵다./ 우리들이 만나기 위해 더는 약속이 필요치 않다. 우리들은 약속 없이도 만/ 날 수 있는 예민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티브이를 켜면 만나지는 얼굴같이,/ 너와 내가 만나는 것은 타성이다. 우리들은 그 습관 위에서 만난다./ 진정 사랑할 만한 그녀를 공들여 찾아내고, 전화번호를 훔치고, 그녀가 있/ 을 만한 시간을 점쳐 몇 번이나 망설인 끝에 전화를 하고, 실랑이 끝에 만날/ 약속을 하고, 어렵게 장소를 정한 그날부터 만날 날을 손꼽으며 하루 또 하/ 루를 보내고, 가슴 아프게 기다리고, 수첩을 확인하고, 달력을 보고, 또 보/ 고, 그날이 되어 아껴둔 셔츠를 입고, 정성들여 구두를 닦고, 하숙집 아주머/ 니에게 두 사람몫의 커피값을 비는 일을 이제 할 필요가 없다./ 깨끗이 씻은 두 손으로 고급한 요리를 차례대로 먹듯, 그런 약속된 형식을/ 누리는 즐거움은 사라졌다. 우리들은 버려진 고아같이 약속 없는 거리에서/ 만난다. 우리들은 두 손을 호주머니 깊이 찌르고 거리를 걷다가, 첫눈에 서/ 로 반한다./ 우리들은 첫눈에 반하기를, 너무 잘하는 세대. 남자들은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잡아 강간을 하고 여자들은 잘난 사내를 애태우며, 그 완강한 근육/ 속에 천천히 잡혀들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혼음으로 젊음을 다 떠/ 보낸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 노상에서 태어나 노상에서 자라고 결국 노상에/ 서 죽는다. 하므로 우리들은 진실이나 사랑을 안주시킬 집을 짓지 않는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발끝에 끝없는 길을 만들고, 우리가 만든 그 끝없는 길/ 을 간다./ 우리들은 약속 없는 세대다. 하므로, 만났다 헤어질 때 이별의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헤어질 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거리를/ 쏘대다가 다시 보게 될텐데, 웬 약속이 필요하담!> -그러니까 우리는, 100/ 퍼센트, 우연에, 바쳐진, 세대다.//

ob 뉴스 / 장정일
봄날,/ 나무벤치 위에 우두커니 앉아/ 를 본다.// 왜 푸른하늘 흰구름을 보며 휘파람 부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호수의 비단잉어에게 도시락을 덜어 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소풍온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놀라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 가?/ 왜 비둘기떼의 종종걸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뭇잎 사이로 저며드는 햇빛에 눈을 상하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가?/ 왜 나무벤치에 길게 다리 뻗고 누워 수염을 기르는 것은 Job이 되지 않는/ 가?// 이런 것들이 40억 인류의 Job이 될 수는 없을까?//

좀벌레 / 장정일
책갈피 사이에 좀벌레가 산다/ 시로 덮인 수천 권의 책 무더기 속에/ 좀벌레의 살찐 알이 숨어 있다/ 달콤한 연애소설 속에/ 가죽옷 입은 경전 속에/ 희고 점잖빼는 책 좀벌레가 있어/ 활자 사이로 아침 산책을 감행한다/ 이때 당신은 궁금해 하는 것이다/ 한 점 과자 부스러기도/ 메마른 종이 갈피 속에 없는데/ 그들은 무엇을 먹고 자라나는가?/ 까닭은 자명하다/ 저녁을 굶으며 수험생이/ 구부러진 활자 주워 먹듯/ 책 좀벌레는 지식을 욕심내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먹고 산다/ 장서를 고르고/ 표지를 열고/ 최초의 한 줄을 읽는 그 순간부터/ 당신의 탐욕어린 시선을 마주보며/ 좀벌레의 은밀한 비웃음이 살찐다//

지하인간 / 장정일
내 이름은 스물 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험프리 보가트에게 빠진 사나이 / 장정일
이해할 수 없다. 라고 그녀는 쓴다/ 그리고 동글동글한 자신의 필체를 바라보며/ 그녀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남편은 몇 겹의 문을 걸어잠그는 것인가/ 그녀는 남편이 느끼는 삶의 중심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라고 그녀는 쓴다/ 두 명의 남자와 싸워온 칠 년간 그 칠 년간/ 두 명의 남자와 한 지붕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삶/ 남편이 걸어잠근 방문 주위를 서성여야 했던/ 그녀의 난처한 결혼 생활. 아무래도 그녀는/ 남편의 칠 년간을 이해할 수 없다// 험프리 보가트에게 빠진 사나이. 라고/ 그녀는 쓴다. 그리고 계속해서 쓴다/ 동글동글한 필체로 그녀는 쓴다. 남편은 퇴근해서/ 저녁을 먹는다. 라고 저녁을 마친 남편은/ 영사기가 설치된 취미실로 간다. 라고/ 그녀는 쓴다// 남편은 어린 딸의 재롱에 흥미가 없다. 라고/ 그녀는 쓴다. 매일 저녁, 이것 봐요/ 당신 아이 노는 모습 좀 봐요. 할 때/ 남편은 얼마나 심드렁한가. 난/ 영사기나 손보겠어. 이것 봐요, 할 때마다/ 난 영사기나 손보겠어// 남편은 험프리 보가트에게 미쳤다. 라고/ 그녀는 쓴다. 그러나 곧 그것을 지우고/ 험프리 보가트에겐 남편을 매료케 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라고 고쳐 쓴다. 그리고 이 문장이/ 완곡하게 표현된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미쳤다. 라고 쓸 용기가 서지 않는다. 하지만/ 무슨 재미로 같은 영화를 칠 년간이나 본담?/ 어려운 삶! 이라고 그녀는 쓴다. 그녀는/ 한참 생각한 다음<어려운 삶!>이란 문구를/ 북북 지워버린다. 그리고 다시 쓴다./ <이해 못할 삶!>이라고 그녀는 쓴다./ 매일 저녁 호기심에 가득 찬 남편이/ 아직, 누구에게도, 험프리 보가트는, 이해되지 않았다,/ 고 중얼거리듯이 그녀는 자꾸 쓴다./ 이해 못할 삶! 이라고//

 



장정일 시인은

1962년 경북 달성 출생.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춤 활동을 시작.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 읽기는 장정일이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삼중당문고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외국 소설을 독파했고, 군 입대와 교련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핑계로 드디어 1977년 성서중학을 끝으로 학교와의 인연을 끊는다. 그러나 1979년 폭력범으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그는 학교와 군대의 나쁜 점만 모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몹쓸 지옥인 교도소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하얀몸」을 비롯한 그의 시의 바탕이 된다.
오랜 정신적 방황을 겪은 장정일은 박기영을 스승으로 삼아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마침내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활동도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연이어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발표하면서, 지금껏 문단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던 ‘장정일’이라는 ‘불온한 문학’이 드디어 ‘중앙’에 입성했음을 알린다.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한 장정일은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를 연이어 발표하고 이 소설들이 모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장정일’은 드디어 우리 문화의 뚜렷한 코드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발간한 후 그가 파리에 있는 아내인 소설가 신이현을 만나러 출국한 사이 한국에서는 외설시비가 일어났다.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포르노로 규정 받고 있던 그 해의 마지막 날 파리에서 자진 귀국한 장정일은 당당히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론한다. 그러나 영화 <거짓말>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법원의 최종판결은 유죄였고 또 한번의 구속으로 이어진다. 당시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강금실은 후에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라는 책에서 당시의 장정일과 재판에 대한 글 <장정일을 위한 변명>을 썼다. 그 사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한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일본에서 발간되는 등 해외에서 더 호평을 받고, 작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중국에서 온 편지』와 자전적 소설 『보트하우스』를 발표한다. 그의 '독자 후기'를 모은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7권까지 펴냈다.
시집으로 『길안에서 택시잡기』, 『서울에서 보낸 3주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 있으며, 1987년에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 『아담이 눈뜰 때』,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내게 거짓말을 해봐』, 『보트하우스』, 『중국에서 온 편지』, 『장정일 삼국지』, 『구월의 이틀』, 희곡집 『긴 여행』, 『고르비 전당포』, 『어머니』, 『실내극』을 발표했다. 이 밖에도 『장정일의 독서일기』(전7권), 『생각』,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전3권),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의 악서총람』 등을 펴냈으며, 2016년 2월에는 43인의 작가를 인터뷰해 『장정일, 작가: 43인의 나를 만나다』를 출간했다.(출처 : 채널예스)

 

 

28년 만에 돌아온 '시인 장정일'…'꼴리는 대로' 쓰는 건 여전

사실 앞에 겸손한 민영 종합 뉴스통신사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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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정일 "자유는 싸워서 얻는 것" - 시사저널

법정에 선 작가 장정일씨(35)는 매우 단정했다. 평소 티셔츠나 점퍼 같은 캐주얼을 즐겨 입던 그는 아래 위 짙은 감색 양복 차림이었다. 지난 7월23일 저녁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이틀 뒤인 25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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