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詩 느낌

김소월 시인

부흐고비 2021. 5. 14. 17:10

서울 행당동 소월공원에 있는 김소월의 흉상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소프라노 김순영 가곡 : 진달래꽃

 

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산에서 우는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테너 심송학 가곡 : 산유화

못잊어 / 김소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 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어요/ 그런 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뜨리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나겠지요?//

* 성악가 김상은(김소월 시인의 증손녀)  노래 : 못잊어

어려 듣고 자라 배워 내가 안 것은 / 김소월
이것이 어려운 일인 줄은 알면서도,/ 나는 아득이노라, 지금 내 몸이/ 돌아서서 한 걸음만 내어놓으면!/ 그 뒤엔 모든 것이 꿈 되고 말련마는,/ 그도 보면 엎드러친 물은 흘러버리고/ 산에서 시작한 바람은 벌에 불더라.// 타다 남은 촉(燭)불의 지는 불꽃을/ 오히려 뜨거운 입김으로 불어가면서/ 비추어볼 일이야 있으랴, 오오 있으랴/ 차마 그대의 두려움에 떨리는 가슴의 속을,/ 때에 자리잡고 있는 낯모를 그 한 사람이/ 나더러 「그만하고 갑시사」 하며, 말을 하더라.// 붉게 익은 댕추의 씨로 가득한 그대의 눈은/ 나를 가르쳐주었어라, 열 스무 번 가르쳐주었어라./ 어려 듣고 자라 배워 내가 안 것은/ 무엇이랴 오오 그 무엇이랴?/ 모든 일은 할 대로 하여보아도/ 얼마만한 데서 말 것이더라.//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 김소월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당신이 하도 못잊게 그리워서/ 그리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잊히지도 않는 그 사람은/ 아주나 내버린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가뜩이나 설운 맘이/ 떠나지 못할 운에 떠난 것도 같아서/ 생각하면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 성악가 김상은(김소월 시인의 증손녀) 노래 :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새벽 / 김소월
낙엽이 발이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슴푸레히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 눈물, 구름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임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불그스레 물질러 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달은 중천에 지샐 때.//

차안서선생 삼수갑산운(次岸曙 先生 三水甲山韻) / 김소월
삼수갑산(三水甲山)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 오고나니 기험(奇險)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山疊疊)이라 아하하// 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삼수갑산 멀드라 아하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 가네/ 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 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 가네/ 오다 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 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 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
* 삼수갑산 : 삼수와 갑산은 함경남도 개마고원에 있는 산골 마을
* 스승 안서(김억)의 시 '삼수갑산(三水甲山)'을 읽고 쓴 시

 

           부모 /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여자의 냄새 / 김소월
푸른 구름의 옷을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의 옷을 입은 해의 냄새/ 아니, 땀냄새, 때묻은 냄새/ 비에 맞은 더러운 살과 옷 냄새// 푸른 바다.../ 어즈리는 배.../ 보더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고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영靈/ 어우러져 빗기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 지나간 숲속의 냄새/ 유령 실은 널뛰는 뱃간엣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모래 두던 바람은 그물 안개를 불고/ 먼 거리의 불빛은 달 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김소월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啼昔山)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제이 엠 에스(JMS) / 김소월
평양서 나신 인격의 그 당신님, 제이 엠 에스(JMS)/ 덕 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재주 있던 나를 사랑하셨다/ 오산 계시던 제이 엠 에스(JMS)/ 십년 봄 만에 오늘 아침 생각난다/ 근년 처음 꿈 없이 자고 일어나며,// 얽은 얼굴에 자그만 키와 여윈 몸매는/ 단 쇠끝 같은 지조가 튀어날 듯/ 타듯 하는 눈동자만이 유난히 빛나셨다./ 민족을 위하여는 더도 모르시는 열정의 그 임.// 소박한 풍채, 인자하신 옛날의 그 모양대로,/ 그러나, 아아 술과 계집과 이욕에 헝클어져/ 십 오 년에 허주한 나를/ 웬일로 그 당신님/ 맘 속으로 찾으시오? 오늘 아침./ 아름답다 큰 사랑은 죽는 법 없어,/ 기억되어 항상 내 가슴 속에 숨어 있어,/ 미쳐 거치른 내 양심을 잠재우리,/ 내가 괴로운 이 세상 떠날 때까지.//
* 제이 엠 에스(JMS) : 민족 운동가 조만식 선생. 소월이 다녔던 오산학교의 교장.

                                                                          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개여울 /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먼 후일 /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한국가곡 100선 최진호 가곡 : 먼후일

 

첫 치마 /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 치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길 / 김소월
어제도 하루 밤 나그네 집에/ 가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 차 가고 배가는 곳이라오.//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 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 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 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가는 길 /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한번.......// 저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소프라노 이경숙 가곡 : 가는 길

바람과 봄 / 김소월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盞)이라 하며 우노라.//

봄 바람 / 김소월
바람아, 봄에 부는 바람아,/ 산에, 들에, 불고 가는 바람아,/ 돌고 돌아 - 다시 이곳, 조선 사람에/ 한 사람인 나의 염통을 불어준다./ 오- 바람아 봄바람아, 봄에 봄에 불고 가는 바람아,/ 쨍쨍히 비치는 햇볕을 따라,/ 인제 얼마 있으면?/ 인제 얼마 있으면/ 오지 꽃도 피겠지! 복숭아도 피겠지! 살구꽃도 피겠지!//

무덤 / 김소월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그림자 가득한 언덕으로 여기 저기,/ 그 누가 나를 헤내는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부르는 소리./ 내 넋을 잡아 끌어 헤내는 부르는 소리//

초혼(招魂)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 조영남 노래 : 초혼

 

금잔디 /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풀따기 / 김소월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여운 이 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산 / 김소월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 산골/ 영 넘어 갈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 오 년 정분을 못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삼수 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 김소월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 뿐은, 때가 되면/ 그리자 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낭인(浪人)의 봄 / 김소월
휘둘리 산을 넘고,/ 굽이진 물을 건너,/ 푸른 풀 붉은 꽃에/ 길 걷기 시름이어.// 잎 누런 시닥나무,/ 철 이른 푸른 버들,/ 해 벌써 석양인데/ 불슷는 바람이어.// 메 틈에 잠기는데,/ 산마루 도는 손의/ 슬지는 그림자여.// 산길가 외론 주막,/ 어이그, 쓸쓸한데,/ 먼저 든 짐장사의/ 곤한 말 한 소리여.// 지는 해 그림자니,/ 오늘은 어디까지,/ 어둔 뒤 아무데나,/ 가다가 묵을네라.// 풀숲에 물김 뜨고,/ 달빛에 새 놀래는,/ 고운 봄 야반(夜半)에도/ 내 사람 생각이어.//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노래 : 성악가 김상은(김소월 시인의 증손녀)

 

나의 집 / 김소월
들가에 떨어져 나가 앉은 메기슭의/ 넓은 바다의 물가 뒤의,/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 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가끔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門)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 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춘향과 이도령 / 김소월
평양에 대동강은/ 우리 나라에/ 곱기로 으뜸가는 가림이지요// 삼천리 가다가다 한가운데는/ 우뚝한 삼각산이/ 솟기도 했소// 그래 옳소 내 누님, 오오 누이님/ 우리나라 섬기던 한 옛적에는/ 춘향과 이도령도 살았다지요// 이편에는 함양, 저편에는 담양,/ 꿈에는 가끔가끔 산을 넘어/ 오작교 찾아찾아 가기도 했소// 그래 옳소 누이님 오오 내 누님/ 해돋고 달돋아 남원 땅에는/ 성춘향 아가씨가 살았다지요//

제비 / 김소월
오늘아침 먼동틀때 강남의 더운 나라로/ 제비가 울며불며 떠났습니다/ 잘가라는 듯이 살살부는/ 새벽의 바람이 불 때에 떠났습니다/ 어미를 이별하고 떠난/ 고향의 하늘을 바라보는 제비이지요/ 바라보던 길가에서 떠도는 몸이기에/ 살살부는 새벽의 바람이 부는대로 떠났습니다//


접동새 /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읍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읍니다.// 아홉이나 넘어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한국애창가곡 7집 원로성악가 이동범 가곡 : 접동새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 김소월
나는 꿈 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당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들으랴, 아침에 저물손에/ 새라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 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느른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강촌 / 김소월
날 저물고 돋는 달에/ 흰 물은 솰소랄/ 금모래 반짝/ 청 노세 몰고 가는낭군/ 여기는 강촌/ 강촌에 내놈은 홀로 사네/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봄 오늘이 다 진하도록/ 백년처권을 울고 가네/ 길세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강촌에 홀로 된몸//

야(夜)의 우적(雨滴) / 김소월
이대로 돌아가랴, 냐의 신세는,/ 내 신세 가엾어도 물과 같아라.// 험구진 산막지면 돌아서 가고,/ 모지른 바위이면 넘쳐 흐르랴.// 그러나 그리해도 해날길 없어/ 가엾은 설움만을 가슴 눌러라.// 그 아마 그도 같이 야(夜)의 우적(雨滴),/ 그 같이 지향없이 헤메임이라.//

오과(午過)의 읍(泣) / 김소월
노란 꽃에 수놓은/ 푸른 메 위에,/ 볼 새 없이 옮기는/ 해 그늘이어.// 나물 그릇 옆에 낀/어린 따님의,/ 가는 나비 바라며,/ 눈물짐이어.// 앞길가에 버들잎/ 벌써 푸르고,/ 어제 보던 진달래/ 흩어짐이어.// 늦은 봄의 농사집/ 쓸쓸도 해라,/ 지겟문만 닫히고/ 닭의 소리여.// 벌에 부는 바람은/ 해를 보내고,/ 골에 우는 새소리/ 옅어감이어.// 누운 곳이 차차로/ 누거워 오니,/ 이름 모를 시름에/ 해 늦음이어.//

삭주 구성(朔州龜城) /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 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 리/ 삭주 구성(朔州龜城)은 산(山)을 넘은 육천 리요// 물 맞아 함빡이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반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텐고/ 삭주 구성은 산 넘어/ 먼 육천 리.//
* 삭주 구성 : 평안북도의 군청 소재지

엄숙 / 김소월
나는 혼자 뫼 우에 올랐어라./ 솟아 퍼지는 아침 햇볕에/ 풀잎도 번쩍이며/ 바람은 속삭여라./ 그러나 아아 내 몸의 상처받은 맘이어/ 맘은 오히려 저리고 아픔에 고요히 떨려라/ 또 다시금 나는 이 한 때에/ 사람에게 있는 엄숙을 모다 느끼면서.//

꿈 / 김소월
닭 개 짐승조차도 꿈이 있다고/ 이르는 말이야 있지 않은가,/ 그러하다, 봄날은 꿈꿀 때./ 내 몸에야 꿈이나 있으랴,/ 아아 내 세상의 끝이여,/ 나는 꿈이 그리워, 꿈이 그리워.//

꿈꾼 그 옛날 / 김소월
밖에는 눈, 눈이 와라,/ 고요히 창(窓) 아래로는 달빛이 들어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女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겨라.// 나의 베개는 눈물로 함빡히 젖었어라./ 그만 그 여자(女子)는 가고 말았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窓)틈을 엿보아라.//

꿈으로 오는 한(恨) 사람 / 김소월
나이 차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 속의 꿈으로 와라// 불그레한 얼굴에 가느다란 손가락의/ 모르는 듯한 거동으로 전날의 모양대로/ 그는 야젓이 나의 팔 위에 누워라/ 그러나 그래도 그러나....!// 말할 아무것이 다시 없는가/ 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 그는 일어나 닭의 홰치는 소리/ 깨어서도 늘 길거리의 사람을/ 밝은 대낮에 빛보고는 하노라//

몹쓸 꿈 / 김소월
봄 새벽의 몹쓸 꿈/ 깨고 나면!/ 울짖는 가막까치, 놀라는 소래/ 너희들은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 봄 철의 좋은 새벽, 풀 이슬 맺혀어라./ 볼지어다, 세월은 도무지 편안한데,/ 두새없는 저 까마귀, 새들게 울짖는 저 까치야/ 나의 흉한 꿈 보이느냐?// 고요히 또 봄바람은 봄의 빈 들을 지나가며,/ 이윽고 동산에서는 꽃잎들이 흩어질 때,/ 말 들어라, 애틋한 이 여자야, 사랑의 때문에는/ 모두다 사나운 조짐인듯, 가슴을 뒤노아라.//

그를 꿈꾼 밤 / 김소월
야밤즁, 불빗치밝하게/ 어렴프시 보여라.// 들니는듯, 마는듯,/ 발자국소래./ 스러져가는 발자국소래.// 아무리 혼자누어 몸을뒤재도/ 일허바린잠은 다시 안와라.// 야밤중, 불빗치밝하게/ 어렴프시보여라.//

밤 / 김소월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와요/ 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골조차 잊힐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둡는대요/ 이 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다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어 들으면/ 다만 고요히 누어 들으면/ 하이얗게 밀어드는 봄 밀물이/ 눈앞을 가루막고 흐느낄 뿐이야요.//

봄 밤 / 김소월
실버드나무의 거므스렷한 머리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않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워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설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바닷가의 밤 / 김소월
한줌만 가느다란 좋은 허리는/ 품 안에 차츰아츰 졸아들 때는/ 지새는 겨울 새벽 춥게 든 잠이/ 어렴풋 깨일 때다 둘도 가 같이/ 사랑의 말로 못할 깊은 불안에/ 또 한 끝 후줄군한 옅은 몽상에./ 바람은 깨우친다 때에 바닷가/ 무서운 물소리는 잦 일어온다./ 엉킨 여덟 팔다리 걷어채우며/ 산뜩히 서려오는 머리칼이여./ 사랑은 달콤하지 쓰고도 맵지./ 햇가는 쓸쓸하고 밤은 어둡지./ 한밤의 만난 우리 다만 천 가지/ 너는 꿈의 어머니 나는 아버지./ 일시 만났다 나뉘어 가는/ 곳 없는 몸 되기도 서로 같거든/ 아아아 허술럽다 삶은 말로./ 아, 이봐 그만 일자 창이 희었다/ 슬픈 날은 도적같이 달려들었다.//

꽃촉(燭)불 켜는밤 / 김소월
꽃촉불 켜는 밤 깊은 골방에 만나라/ 아직 젊어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해 강같이 밝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사랑은 한두 번만 아니라 그들을 모르고// 꽃초불 켜는 밤 어스레한 창 아래 만나라/ 아직 앞길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솔대같이 굳은 맘 저저머다 있노라/ 그러나 세상은 눈물날 일많아라 그들은 모르고//

추회(追悔) / 김소월
나쁜일 까지라도 생의 노력/ 그 사람은 善事(선사)도 하였어라/ 그러나 그것도 虛事(허사)라고!/ 나 역시 알지만은 우리들은/ 끝끝내 고개를 넘고 넘어/ 짐 싣고 닫던 말도 순막집의/ 虛廳(허청)가, 석양 손에/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고요히 조으는 한때는 다 있나니//
* 허청 : 빈 그림자뿐인 집

첫사랑 / 김소월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내가 만약 달이 된다면/ 지금 그 사람의 창가에도/ 아마 몇줄기는 내려지겠지// 사랑하기 위하여/ 서로를 사랑하기 위하여/ 숲속의 외딴집 하나/ 거기 초록빛 위 구구구/ 비둘기 산다.// 이제 막 장미가 시들고/ 다시 무슨 꽃이 피려한다./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산너머 갈매하늘이/ 호수에 가득 담기고/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왕십리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려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天安)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데./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성악가 김상은(김소월 시인의 증손녀) 노래 : 왕십리

집 생각 / 김소월
산에나 올라서서/ 바다를 보라/ 사면(四面)에 백열리, 창파(滄波) 중에/ 객선(客船)만 둥둥…… 떠나간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이 그 어디메냐/ 향안, 향탑, 대그릇에,/ 석양이 산머리 넘어가고/ 사면에 백열리, 물소리라// “젊어서 꽃 같은 오늘날로/ 금의(錦衣)로 환고향(還故鄕)하옵소사.”/ 객선만 둥둥…… 떠나간다/ 사면에 백열리, 나 어찌 갈까// 까투리도 산 속에 새끼치고/ 타관만리(他關萬里)에 와 있노라고/ 산(山) 중(中)만 바라보며 목메인다/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고// 들에나 내려오면/ 치어다 보라/ 해님과 달님이 넘나든 고개/ 구름만 첩첩……떠돌아간다//

바다 / 김소월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는 어디// 고기 잡이꾼들이 배 위에 앉아/ 사랑 노래 부르는 바다는 어디// 파랗게 좋이 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는 어디// 곳 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좇니는 바다는 어디// 건너서서 저편은 딴 나라이라/ 가고 싶은 그리운 바다는 어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기회 / 김소월
강 위에 다리는 놓였던 것을!/ 건너가지 않고서 바재는 동안/ <때>의 거친 물결은 볼 새도 없이/ 다리를 무너치고 흘렀습니다.// 먼저 건넌 당신이 어서 오라고/ 그만큼 부르실 때 왜 못 갔던가!/ 당신과 나는 그만 이편 저편서,/ 때때로 울며 바랄 뿐입니다려.//

가막덤불 / 김소월
산에 가시나무/ 가막 덤불은/ 덤불 덤불 산마루로/ 벌어 올랐소// 산에는 가려해도/ 가지 못하고/ 바로 말로/ 집도 있는 내 몸이라오// 길에는 혼잣몸의/ 홑옷 자락은/ 하룻밤 눈물에는/ 젖기도 했소// 산에는 가시나무/ 가막덤불은/ 덤불덤불 산마루로/ 벌어 올랐소.//
* 가막덤불 :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엉클어져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덤불

가을 저녁에 / 김소월
물은 희고 길구나, 하눌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놉파가는 긴들끗테/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깊퍼 오르른 밥알프로/ 끗업시 나아가는 길은 압프로./ 키놉픈 나무아래로, 물마을은/ 성귓한 가지가지 새로 떠올은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도 업것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업것마는!/ 나는 오히려 못물까을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자즐때//

고적한 날 / 김소월
당신님의 편지를/ 받은 그날로/ 서러운 풍설이 돌았습니다// 물에 던져달라고 하신 그 뜻은/ 언제나 꿈꾸며 생각하라는/ 그 말씀인 줄 압니다// 흘려 쓰신 글씨나마/ 언문 글자로/ 눈물이라고 적어 보내셨지요.// 물에 던져달라고 하신 그 뜻은/ 뜨거운 눈물 방울방울 흘리며,/ 마음 곱게 읽어달라는 말씀이지요//

원앙침(鴛鴦枕) / 김소월
바드득 이를 갈고/ 죽어 볼까요/ 창(窓)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눈물은 새우잠의/ 팔굽베개요/ 봄꿩은 잠이 없어/ 밤에 와 운다.// 두동달이베개는/ 어디 갔는고/ 언제는 둘이 자던 베갯머리에/ 죽쟈 사쟈 언약도 하여 보았지.// 봄 메의 멧기슭에/ 우는 접동도/ 내 사랑 내 사랑/ 조히 울 것다.// 두동달이베개는/ 어디 갔는고/ 창(窓)가에 아롱아롱/ 달이 비친다.//

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 김소월
걷잡지 못할만한 나의 이 설움,/ 저무는 봄 저녁에 져가는 꽃잎,/ 져가는 꽃잎들은 나부끼어라./ 예로부터 일러 오며 하는 말에도/ 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그러하다, 아름다운 청춘(靑春)의 때에/ 있다던 온갖 것은 눈에 설고/ 다시금 낯 모르게 되나니,/ 보아라, 그대여, 서럽지 않은가,/ 봄에도 삼월(三月)의 져가는 날에/ 붉은 피같이도 쏟아쳐 내리는/ 저기 저 꽃잎들을, 저기 저 꽃잎들을.//

님의 노래 / 김소월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門)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孤寂)한 잠자리에 홀로 누어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님에게 / 김소월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추거운 벼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모를 딴세상에 네길거리에/ 애달피 날저무는 갓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닞어버린 설음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추거운 벼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음이외다.//

동경하는 여인 / 김소월
너의 붉고 부드러운/ 그 입술에보다/ 너의 아름답고 깨끗한/ 그 혼에다/ 나는 뜨거운 키스를/ 내 생명의 굳센 운율은/ 너의 조그마한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워 / 김소월
봄이 다 가기전,/ 이 꽃이 다 흩기 전/ 그린 님 오실까구/ 뜨는 해 지기 전에.// 엷게 흰 안개 새에/ 바람은 무겁나니,/ 밤샌달 지는 양자,/ 어제와 그리같이.// 붙일 길 없는 맘세,/ 그린 님 언제 뵐련,/ 우는 새 다음 소린,/ 늘 함게 듣사오면.//

* 노래 양현경 : 그리워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 김소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내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 속, 속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춘강(春崗) / 김소월
속잎 푸른 고운 잔디 소리라도 내려는 듯/ 쟁쟁하신 고운 햇볕 눈 뜨기에 바드랍네.// 자주 드린 적은 꽃과 노란 물들 산유화엔/ 달고 옅은 인새 흘러 나비 벌이 잠 재우네.// 복사나무 살구나무 불그스레 취하였고/ 개창버들 파란 가지 길게 늘여 어리이네.// 일에 갔던 팔린 소는 서린 듯이 길게 울고/ 모를 시름 좇던 개는 다리 뻗고 하품 하네.// 청초청초 우거진 곳 송이송이 붉은 꽃숲/ 꿈같이 그 우리 님과 손목 잡고 놀던 델세.//

밭고랑 위에서 / 김소월
우리 두 사람은/ 키 높이 가득 자란 보리 밭, 밭고랑 위에 앉았어라./ 일을 마치고 쉬는 동안의기쁨이여./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오오 빛나는 태양은 내려 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은혜여, 살아 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여,/ 모든 은근스러움이 우리의 맘 속을 차지하여라.// 세계의 끝은 어디? 자애의 하늘은 넓게도 뎦였는데,/ 우리 두 사람은 일하며, 살아 있었어./ 하늘과 태양을 바라보아라 날마다 날마다도,/ 새라 새로운 환희를 지어내며, 늘 같은 땅 위에서.// 다시 한번 활기 있게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바람에 일리우는 보리밭 속으로/ 호미 들고 들어 갔어라, 가지런히./ 걸어 나아가는 기쁨이여, 오오 생명의 향상이여.//

무신(無信) / 김소월
그대가 돌이켜 물을 줄도 내가 아노라,/ 무엇이 무신(無信)함이 있더냐? 하고,/ 그러나 무엇하랴 오늘날은/ 야속히도 당장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을, 물과 같이/ 흘러가서 없어진 맘이라고 하면.// 검은 구름은 메기슭에서 어정거리며,/ 애처롭게도 우는 산(山)의 사슴이/ 내 품에 속속들이 붙안기는 듯./ 그러나 밀물도 쎄이고 밤은 어두워/ 닻 주었던 자리는 알 길이 없어라./ 시정(市井)의 흥정 일은/ 외상(外上)으로 주고받기도 하건마는.//

옷과 밥과 자유 / 김소월
공중(空中)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여/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狄踰嶺)/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눈 오는 저녁 / 김소월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등불과 마주 앉으려면 / 김소월
적적히/다만 밝은 등불과 마주 앉았으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왜 그런지야 알 사람이 없겠습니다마는.// 어두운 밤에 홀로이 누웠으려면/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울고만 싶습니다./ 왜 그런지야알 사람도 없겠습니다마는./ 탓을 하자면 무엇이라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하다 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 김소월
아주 나는 바랄 것 더 없노라/ 빛이랴 허공이랴,/ 소리만 남은 내 노래를/ 바람에나 띄워서 보낼밖에./ 하다 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좀더 높은 데서나 보았으면!// 한세상 다 살아도/ 살은 뒤 없을 것을,/ 내가 다 아노라 지금까지/ 살아서 이만큼 자랐으니./ 예전에 지나 본 모든 일을/ 살았다고 이를 수 있을진댄!// 물가의 닳아져 널린 굴꺼풀에/ 붉은 가시덤불 뻗어 늙고/ 어득어득 저문 날을/ 비바람에 울지는 돌무더기/ 하다 못해 죽어 달려가 올라/ 밤의 고요한 때라도 지켰으면//

팔베개 노래 / 김소월
첫날 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날글다 말아라/ 家長님만 님이랴/ 오다 가다 만나도/ 정붓들면 님이지./ 화문석 돗자리/ 놋촛대 그늘엔/ 칠십년 고락을/ 다짐 둔 팔베개./ 드나는 곁방의/ 미닫이 소리라/ 우리는 하룻밤/ 빌어얻은 팔베개./ 조선의 강산아/ 네가 그리 좁더냐./ 삼천리 西道를/ 끝까지 왔노라./ 삼천리 서도를/ 내가 여기 왜 왔나/ 서도의 사공님/ 날 실어다 주었소./ 집 뒷산 솔밭에/ 버섯 따던 동무야/ 어느 뉘집 가문에/ 시집가서 사느냐./ 영남의 진주는/ 자라난 내고향/ 부모없는 / 고향이라우./ 오늘은 하룻밤 / 단잠의 팔베개/ 내일은 상사의 / 거문고 베개라./ 첫닭아 꼬꾸요 /목놓지 말아라/ 품속에 있던 / 님 길차비 차릴라./ 두루두루 살펴도 / 금강 단발령/ 고갯길도 없는 / 몸 나는 어찌 하라우./ 영남의 진주는 / 자라난 내 고향/ 돌아갈 고향은 / 우리 님의 팔베개.//
* 평안북도 영변에서 기녀 채란이 부른 노래를 김소월이 민요시로 지었다.

나무리벌 노래 / 김소월
신재령에도 나무리벌/ 물도 많고/ 땅 좋은 곳/ 만주봉천은 못 살 고장// 왜 왔느냐/ 왜 왔더냐/ 자곡자곡이 피땀이라/ 고향 산천이 어디메냐// 황해도/ 신재령/ 나무리벌/ 두 몸이 김매며 살았지요// 올벼 논에 닿은 물은/ 츠렁츠렁 / 벼 자랐나/ 신재령에도/ 나무리벌//
* 나무리벌 : 황해도 신재령에 있는 땅으로 옥토다.

지연(紙鳶) / 김소월
오후의 네길거리 해가 들었다,/ 시정(市井)의 첫겨울의 적막함이여,/ 우둑히 문어귀에 혼자 섰으면,/ 흰 눈의 잎사귀, 지연이 뜬다.//

물마름 / 김소월
주으린 새무리는 마른 나무의/ 해지는 가지에서 재갈이던 때./ 온종일 흐르던 물 그도 곤(困)하여/ 놀지는 골짜기에 목이 메던 때.// 그 누가 알았으랴 한쪽 구름도/ 걸려서 흐느끼는 외로운 영(嶺)을/ 숨차게 올라서는 여윈 길손이/ 달고 쓴 맛이라면 다 겪은 줄을.// 그곳이 어디드냐 남이장군(南怡將軍)이/ 말 먹여 물 찌었던 푸른 강(江)물이/ 지금에 다시 흘러 뚝을 넘치는/ 천백리(千百里) 두만강(豆滿江)이 예서 백십리(百十里).// 무산(茂山)의 큰 고개가 예가 아니냐/ 누구나 예로부터 의(義)를 위하여/ 싸우다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그 누가 생각하랴 삼백년래(三百年來)에/ 참아 받지 다 못할 한(恨)과 모욕(侮辱)을/ 못 이겨 칼을 잡고 일어섰다가/ 인력(人力)의 다함에서 쓰러진 줄을.//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별러서/ 도독(毒)된 삼천리(三千里)에 북을 울리며/ 정의(正義)의 기(旗)를 들던 그 사람이여.// 그 누가 기억(記憶)하랴 다복동(多福洞)에서/ 피물든 옷을 입고 외치던 일을/ 정주성(定州城) 하룻밤의 지는 달빛에/ 애그친 그 가슴이 숫기 된 줄을.// 물위의 뜬 마름에 아침 이슬을/ 불붙는 산(山)마루에 피었던 꽃을/ 지금에 우러르며 나는 우노라/ 이루며 못 이룸에 박(薄)한 이름을.//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평북 구성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이고, ‘소월’은 호이며, ‘흰달’이라고도 썼다. 소월은 7살이 되자 남산 학교에 입학하였고, 여기서 문학의 눈을 뜨도록 도와준 서춘 선생을 만나게 된다. 소월은 남산 보통학교를 마친 후, 민족적 자긍심이 강했던 오산학교에 진학한다. 이는 소월로 하여금 고향 마을의 좁은 공간의식에서 민족이나 국가라고 하는 폭넓은 역사의식으로 전환케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오산학교에서 그의 문학의 두 번째 스승인 안서 김억을 만난다. 소월은 김억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에 몰입하게 되고, 1920년(18세) 3월『창조』지(통권5호)에 <낭인의 봄>등 5편의 시를 발표한다. 1920년 7월『학생계』에 <먼 후일>을, 1922년『개벽』지에 <진달냇>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다. 소월의 시가 보여준 민요적 서정성의 가락, 한과 슬픔의 정조, 설화성들은 당대 문인들의 주목을 받는데, 그의 스승 김억은 ‘소월은 조숙했고, 시작의 삼매경에서 날 저무는 줄을 모를 만큼 집념이 강했으며, 초고를 거듭 고치고 다듬었음’을 증언한다.
일본 유학 중 관동대지진으로 도쿄 상과대학을 중단했고, 고향에서 조부의 광산 경영을 도왔으나 망하고 동아일보 지국을 열었으나 당시 대중들의 무관심과 일제의 방해 등이 겹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이후 소월은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며 술에 의지했고, 결국 1934년 12월 2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서나 유언은 없었으나 아내에게 죽기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면서 우울해했다고 한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32세의 짧은 생을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가면서 시작(詩作) 활동을 했고 성장 과정에서 겪은 '한(恨)'을 감성으로 표현한 주옥같은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1981년 대한민국 예술분야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등록문화재 470-1호 및 470-4호로 지정된 ‘진달내꼿/진달래꽃 도서 초판본(1925년 매문사 간행)

'시詩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승자 시인  (0) 2021.05.16
허수경 시인  (0) 2021.05.15
박재삼 시인  (0) 2021.05.13
한강 시인  (0) 2021.05.13
김동리 시인  (0) 2021.05.12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