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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여인의 젊고 아름다운 모습은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이 세상의 많은 여인은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고 더 예뻐지고 싶어 한다. 사회생활에 유리한 자신의 무기를 가지려는 욕망이다. 아무리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던 사람이라 해도 외모가 뛰어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외모지상주의 사고방식의 편견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적지 않았다. 그냥 이쁘면 좋은 것이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말도 있지만,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일 뿐이다. 마음이 고운데 얼굴까지 예쁘다면 더 말할 나위 없지 않겠는가.

1987년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으로 드러나 사형이 선고되고 얼굴이 공개되었을 때, 젊고 예쁜 여자를 죽이기 아깝다는 황당한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녀는 북한과 관련된 대남 공작의 실체와 또 다른 정치적인 증거를 더 얻어 낼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라며 결국 대통령 사면으로 처형을 면했다. 115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유가족들을 비탄에 빠뜨린 그악한 죄인이었음에도 행여 그녀의 미모가 자기 목숨을 지키는 데 조금의 영향이라도 미친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활동한 러시아 스파이, ‘안나체프만’은 자신의 매력적인 미모를 무기로 미국 관리들과 쉽게 접촉했다. 기밀 정보를 빼내어 러시아에 넘기려다 체포되었지만, 그녀는 양국의 협상으로 별다른 처벌 없이 러시아로 추방하는 선에서 끝났다. 자신의 미모를 국가를 위해 이용했고, 성공할 뻔했던 그녀는 러시아에서 영웅 대접을 받기까지 했다.

「프리네의 재판」이라는 프랑스 화가 제롬의 그림에는 배심원들 앞에서 나체로 서 있는 ‘프리네’의 모습이 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헤타이라’라는 고급 기생으로 활동한 그녀는 정치, 철학, 예술 분야까지 토론할 능력이 있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것에 앙심을 품은 권력자 에우티아스는 ‘프리네’가 포세이돈 축제에서 여신인, 아프로디테 역할로 출연한 것을 빌미로 신성 모독죄를 씌워 사형을 받게 했다. ‘프리네’의 무죄를 끌어내지 못한 그녀의 애인 히페리데스는 배심원 앞에서 의도적으로 ‘프리네’의 옷을 벗겨 버린 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도 인정한 완벽한 미인을 죽여야 하는가.”라며 변론한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관능미 넘치는 그녀의 나체에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은 넋을 잃고 만다.

미(美)는 곧 선(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인들은 “신이 빚은 완벽한 미인에게 사람이 만들어 낸 법은 효력이 없다”라며 결국 ‘프리네’에게 무죄를 선언한다. ‘프리네’가 누명을 벗는 데 그녀의 미모가 유리하게 작용했던 일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릴린 시갈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같은 죄질을 두고, 용모가 매력적인 여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진을 비교로 용모가 좋은 사람에게 형량을 낮게 평가한 경향을 보고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어도 원래 착한 사람인데 실수를 했다며 좋은 인상에 관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원래 못되고 고약한 성격이어서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엄격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비단 외국의 사례나 여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근래 전직 모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의혹으로 진위를 다투는 양 진영의 시위가 뉴스를 달구며 한동안 우리를 피곤하게 했다. 법조 거리를 가득 메운 전장관의 지지자들이 그는 죄가 없다고 외칠 때 ‘아무개 장관은 미남이다.’라는 그의 용모를 법 앞에 내세운 팻말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우리 부부가 연속 상영하는 극장 영화를 이어 보고 중간쯤에서 나올때였다. 남편은 치파오를 입고 로비에 서 있던 아름다운 화교 아가씨에 다가가, 우리가 앉았던 빈자리에 안내하고 나오는 친절을 베풀었다. 충분히 이해할만한 선행이었음에도 나는 남편의 과잉 친절이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상대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아닌, 나이 든 여자였거나 혹은 머슴애였어도 반사적인 그런 친절을 베풀었겠느냐는 나의 옹졸한 소견은 그 후도 오랫동안 남편을 궁지에 몰기도 했다.

대부분은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도 미모의 여인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친절하고 공손해질 때가 많다. 여인의 젊고 아름다운 외적 모습은 분명히 큰 자산이고 강력한 무기일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우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명제의 모순을 말하면서도 나 또한 도리 없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만다.

 


 

■ 김덕남 프로필

‧ 등단 : 대한문학과 에세이스트

‧ 저서 : 수필집 아직은 참 좋을 때. 여섯 교우의 문향 (공저)

‧ 수상 : 제5회 k-water한국수자원공사 전국 물 사랑공모전 수필 은상, 향촌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 현)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행촌 수필 문학회 ,교원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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