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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튀어오른 산봉우리가 한껏 얼었다. 저 완벽한 풍경을 따라 설악으로 드는 길은 온통 순백으로 빛났다. 한없이 눈부셨기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어릴 적 벽촌에서 태어난 덕분에 눈밭에서 뒹굴며 자랐지만 유년을 잃어버린 후, 도시의 겨울은 겨울답지 않아서 겨울을 모르고 살았다. 설악엔 때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무에도, 산봉우리에도, 얼어붙은 쌍천에도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설악은 오랫동안 익숙한 이름이었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와, 두 밤을 자고도 아무런 기억 없이 떠났던 산이기도 했다. 그러나 삶 한편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여유와 낭만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기념품 가게 주인이 동그란 옥돌에 직접 새겨주던 문구며, 압화로 만들어 팔던 에델바이스, 끝맛이 아릿했던 머루주, 아슬아슬하게 놓였던 흔들바위, 웅장하게 앉아 있던 울산바위, 설악의 기암괴석을 형상화한 갖가지 기념품들…. 기억 없이 떠났어도 나도 모르게 스며든 한 페이지의 추억이 깃든 산이었다. 다시 오지 못할 내 푸른 청춘이 설악 언저리에 곱게 서려 있었다.

 

그러나 설악은 몰 때마다 낯설었다. 오색찬란한 단풍이 들었거나, 헐벗어 시린 바위거나, 눈 덮인 백설의 신비로운 산이었다. 어디 한 골짜기라도 거기가 거기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천 개의 얼굴이 들어앉아 사방에서 홀려댔다.

 

실로 오랜만에 설악으로 와 밤을 맞는다. 정적이 밀려와 저녁이 침묵하는 사이, 얼어붙은 설경 속 탑 하나가 눈에 들었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점점 거세지는 눈발뿐, 천천히 나를 정관하는 탑 위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설악동으로 가며, 산봉우리와 단풍에 눈이 멀어 짐짓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들끓는 설악로 그 어디쯤 천년을 거뜬히 버텨온 석탑 하나가 있다는 것을.

 

향성사 터라고 했다. 지금은 길이 나고 건물이 들어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먼 옛날 이곳엔 절이 있었다고 한다. 탑은 스스로가 흔적이 되어 잊힌 향성사를 증명한다. 그 흔한 부조상 하나 없는 밋밋한 모습으로,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절터 사방이 쪼개지고 갈라져 길이 되고 정원이 되고, 건물과 조형물이 들어설 때도 탑은 세월을 따라 이제 더 비켜날 곳도 없이 제 자리를 지켰다.

 

웅장하지 않지만 건강한 모습의 탑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몸돌엔 서너 개의 탄흔이 남았다. 오랫동안 탑읋 바라보는 나와 탑 사이에, 설악동을 지나 신흥사로 가는 길이 있다. 몇 대의 자동차가 설악로를 따라 사라졌지만, 누구도 탑을 보기 위해 차를 멈추지 않는다.

 

탑과 설악능선 사이로 흐르던 쌍천은 얼었고, 탑 곁엔 노송 한 그루가 동반자처럼 서서 세월을 산다. 눈발이 거세다. 눈보라 속에서 탑을 올려다보는 나는, 탑과 나무와 더불어 풍경이 된다. 그리하여 어둡고 차갑고, 쓸쓸하고 고요한 겨울의 설악이 온통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여기서 신흥사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창을 내리며 중년의 여인이 물었다.

“길을 따라 5분 정도만 올라가세요.”

여인은 차를 몰아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설악산을 오르기 위해, 신흥사를 찾기 위해 이곳까지 온다. 그러나 아무도 향성사를 알지 못한다.

 

향성사는 신흥사의 옛 절이었다. 서기 625년(진덕왕 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던 절로 알려졌으나, 698년(효소왕 7년)에 불타 사라졌다. 그 후 여기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향성사를 대신하여 절을 짓고 ‘선정사’라 하였다. 선정사는 천년 가까이 부처의 가르침을 이어가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뜬히 넘겼다. 그러나 천년의 법등도 잠시, 1642년(인조 20년) 큰불이 나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스님들은 절이 다시 일어서기를 염원하며 떠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스님들의 꿈에 향성사 터에 신神이 나타나 새로 지을 절터를 점지해 주었다. 신이 점지해 준 터가 바로 지금의 신흥사 자리다. 1647년 완공된 신흥사는 고치고, 새로 짓기를 거듭하며 온갖 표정과 헤아릴 수 없는 모습으로 오늘까지 설악의 품에서 이름을 잇는다.

 

설악의 화려함과 신흥사의 명맥에 가려진 탑은, 홀로 쓸쓸히 천년 옛처를 지킨다. 설악동의 겨울밤은 고요와 적막이 가득하고, 사라지고 잊힌 절터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단풍철이면 인파가 들끓어 발 디딜 틈도 없다는 설악로, 그 수많은 인파 중에 누구 하나 이 탑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군중 속의 고독, 탑도 그러했을 것이다.

 

매서운 설악산 산봉우리 아래 내원암골과 저항령계곡, 천불동계곡, 비룡폭포와 토왕골의 물이 모여 흐르던 쌍천이 꽁꽁 얼었다. 석탑은 깊은 골짜기 바위 봉우리에 가려 온종일 해가 들지 않았다. 그저 언제 들지 모르는 한때 빛을 기다릴 뿐이다. 넘어가는 해는 짧고 석탑은 잠시 반짝였을 뿐, 오래오래 산봉우리 그늘 속에 잠겨 어두웠다.

 

탑의 안거安居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천년을 한곳에 머무르며 내면을 다지는 탑의 수행은 차가운 눈보라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탑은 부처 아닌 부처가 되었다. 웅변보다 심오한 침묵으로 얼어붙은 저 설경을 외우는 내면엔, 어쩌면 뜨거운 한철 여름이 들끓고 가녀린 가을의 실오라기가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 정적 속에 맑고 바른 지혜를 쌓아가는 하나의 과정 속에, 탑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시간을 잊은 채 탑을 바라보며 향성사 터의 고요를 살핀다. 설악산의 불꽃같은 위세에도 눌리지 않는 당당한 탑은, 길고 지루한 세월조차도 무심히 흘려보낼줄 아는 유연함을 지녔다.

 

한겨울 조용한 오후, 해를 밀어낸 매서운 바람이 어둠을 몰고 왔다. 오래오래 눈이 내렸다.

 

글,사진 박시윤 지음, 디앤씨북스 펴냄

⚫ 경주 감은사 터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 박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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