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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절세의 미인이라 하더라도 떠나는 사람의 그 뒷모습은 참 슬프다. 얼른 보기에 얼굴 생김이 별 것 아니어서 다음에 확답을 하겠다고 말했더니 벌떡 일어나 바바리코트를 펄럭이며 떠나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 하도 멋져 보여서 결혼을 승낙했다는 어느 여인의 별난 결혼 승낙 에피소드가 참 재미있다. 이것만이 별나고 재미있는 뒷모습이고, 그 외는 대부분의 경우 처량하고 슬프다.

 

주자청(朱自淸)의 수필 ⟨뒷모습⟩도 나이 들고 쇠약해진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그렸으며, 나 또한 서울 연희동 단독주택에서 살 때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좋아해 하얀 털의 강아지를 한 마리 사서 기르다가 커가면서 이 녀석이 밤마다 수놈을 부르는 늑대 울음소리에 만정이 떨어져 개장수한테 그냥 데리고 가라고 했더니 그 뒷날 일요일 아침에 당장 찾아와 목줄을 매어 끌고 갔다. 그 녀석이 하는 짓이 밉기는 했지만, 끌려가는 뒷모습이 안쓰러워 길에 한참 동안 서서 전송을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녀석도 함께 살던 옛집이 그리운지 몇 번이고 돌아보는 그 녀석의 뒷모습은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나는 서울에서부터 사용해오던 ‘소나타’ 승용차를 여수로 집을 옮기면서 당나귀처럼 그대로 몰고 내려왔다. 함께 내려온 그 소나타 덕택으로 멀고 가까운 여수 일대는 물론이거니와 여수 주변의 경관 좋은, 한두 시간 거리의 길은 이 녀석이 온통 담당했다. 경남 하동 쌍계사의 벚꽃을 비롯하여 전남 구례 피아골의 단풍이며,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의 고풍스러운 풍치에다 순천만의 갈대밭이며, 바로 순천 곁에 바싹 붙어 있는 벌교의 그 소문난 꼬막정식, 보성의 향긋한 녹차밭이 또한 우리를 매일처럼 유혹한다. 다시 여수로 돌아와 오동도에서 바라보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큰 섬이 경남 남해이다. 이곳은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으로 유명한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유배지로 뜻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또한 ‘다랑이논’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나는 이런 승경을 보기 위해 걸어 다닐 수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나의 늙은 당나귀 소나타를 몰고 떠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나의 소나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근 20년의 긴 세월을 나와 운명을 같이했으니 이제는 나의 애마 소나타도 나만큼 늙어서 길을 가다가도 불시에 길 한복판에서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견인차에 끌려 정비소로 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단골로 가는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러 갔더니 집사람과 가까운 사이인 사장 부인이 볕살 좋은 사무실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가 내 차를 보고는 슬슬 걸어오더니 “차가 너무 낡았네요. 자식들보고 새 차 하나 사 달라고 하세요.” 했다. 운전수도 차도 너무 늙어서 보기에 언짢았던가.

어느 날 45년 전의 서울 동성고(東星高) 제자 두 사람이 뜻밖에 내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저녁 무렵에 집을 찾아 들어왔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미국에서 큰 사업을 하고 있는 사장인데, 낡아 털털거리는 나의 당나귀 소나타를 보고는 안쓰러웠던지 미국으로 돌아간 얼마 뒤에 그 제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신형 ‘아반떼’를 현대자동차 여수지사에 전화주문을 해놨으니 내일 차를 가지고 가면, 아무 생각 말고 받으시라는 말이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너무 뜻밖의 일이어서 꿈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 제자의 말대로 뒷날 가지고 온 승용차는 모양도 유선형으로 날씬한 아반떼가 틀림없었다. 차를 몰고 온 직원은 여수지사의 책임자인데, 자동차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알고 보니 이 지사장 또한 고교의 아득한 내 후배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공교로운 어제오늘의 인연들이었다.

아파트 지상주차장에서 아반떼를 인수한 잠시 후 견인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우리 앞에 서더니 지사장의 지시대로 내 차의 견인 준비를 시작했다. 이들의 민첩한 사무적인 절차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근 20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명을 같이했던 나의 애마 소나타에 석별의 인사말 한마디 건넬 틈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는 아파트 주차장의 차들 사이로 견인차에 끌려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픈 마음을 안고 힘없이 돌아서니 끌려가고 있는 늙은 소나타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서 있던 집사람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게 괴어 있었다.

 

“온갖 고생을 참고 살다가 우리와 함께 조용히 이승을 떠나자”고 소나타 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집사람 어느 날의 독백이 오늘따라 내 가슴을 새삼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그 뒷모습은 다 이래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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