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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곳곳에는 탑과 관련한 이름이나 지명이 많다. ‘탑동’, ‘탑리’, ‘탑골’ 등 참 익숙한 이름이다. 알고 보면 그곳에 무엇이 있거나, 있었던 것을 직시한다. ‘탑동리’를 처음 들었을 때, ‘탑이 있는 마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것도 지금까지 오며 가며 들었던 지명에 대한 익숙함 덕분이다.

탑동리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업렵지 않았다. 금수리를 찾으며 헤맬 때 ‘탑동리’라는 이정표를 보았다. 간성읍에서 언덕을 넘어 금수리는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지만, 직진하여 쭉 들어가면 탑동리에 이른다. 탑동리로 접어드는 곳곳엔 군부대와 군사시설이 산기슭마다 자리해 있었다. 그런 것들이 생경해 살짝 두려웠다.

산골짜기로 접어들자 풍경은 점점 낯설게 변해갔다. 길은 점점 좁아졌고 노면은 험했다. 보이는 곳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안내판과 군사시설에 적잖이 당황했다. 인기척 없는 산기슭엔 무덤처럼 흙을 쌓아 풀과 잡목으로 무장한 참호가 즐비했다.

어느 길목에서 무장한 군인이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잠시 검문하겠습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신분증을 건네는 손이 의도치 않게 떨렸다. 말로만 듣던 군사보호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검문소를 통과해 군부대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간간이 민가와 밭이 나타났다. 이렇게 삼엄한 곳에서도 터를 일구어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했을 땐 가파른 산기슭 작은 암자 마당이었다. 제대로 잘 찾아왔구나 싶었으나, 아무리 살펴도 찾고 있는 절터는 아닌 듯했다. 결국, 고성군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역시 잘못 온 것이었다. 오지는 이런 곳이다. 강원도의 오지는 더더욱 그랬다. 정확한 지번과 명칭이 존재함에도 막상 가 보면 목적지가 아니었다. 차라리 지역민들에게 물어물어 가는 게 더 정확하고, 안심이 되는 곳이 바로 강원도 최전방이다.

탑동리 절터는 탑동1리에 해당하는 육군 5318부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했다. 처음 직진하여 도착했던 곳과는 완전 별개의 장소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초행인 내겐 쉽지 않다. 이쯤에서 포기할까, 뭣 하러 이 먼 곳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는지 수십 수백 번 후회가 된다. 그러다가도 문득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오기가 치민다. 어디서든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결정은 쉬운 게 아니다.

오탑길 옆 비닐하우스엔 표고버섯 수확이 한창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ㅅ’ 자로 맞대 세운 통나무에 크고 작은 버섯이 앙증맞게 자라고 있었다. 어른 몇 분이 성글게 서서 버섯을 따고 있었다.

“어르신, 말씀 좀 묻겠습니다.”

어른들의 눈길이 일제히 내게로 향한다. 절터에 관한 내 질문에 허리가 꾸부정한 한 할머니가 하우스 밖으로 나와 왼쪽 산기슭을 가리켰다.

“절? 거긴 뭣하러 오셨슈? 볼 거 하나도 없는데? 저기 저쪽, 저 비알밭 그 근처예요.”

휑하니 비워진 야산이다.

“탑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내 물음에 할머니가 답했다.

“탑? 그걸 우째 알고 왔데? 없어. 예날 말이지. 옛날에는 탑이 있었지. 지금은 없어요. 난리(한국전쟁) 때 피난 갔다 오니 없어졌더라고. 폭탄 맞아 깨졌다고도 하고, 누가 가져갔다고도 하는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그걸 우째 알겠어….”

할머니가 말끝을 흐리며 옛날을 회상했다. 제법 높았다고 했다. 일상처럼 매일 거기 있었기에 몇 층인지 헤아려볼 생각도 안 했다고 한다. 벌써 70년이 흘렀으니 세월에 묻혀 잊혔을 법도 한 일이다.

마을 어귀 비알밭 인근엔 소나무 숲이 있다. 솔숲 옆 오솔길에 ‘사격연습 시 출입금지’라는 간판이 보였다. 바로 옆엔 군사시설인 참호가 보인다. 무엇인가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더 발을 들이기도 힘들 만큼 두렵다. 심장이 빠르게 움직이고 긴장감이 맴돌았지만, 무슨 일이야 있겠냐며 마음을 다잡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세심히 주변을 살피며 숲ㅇ,m로 발길을 들인다.

진한 소나무 향기가 훅 끼친다. 신선한 충격이다. 숲의 냄새라기보다 푸르고 싱싱한 날것의 나무 향기다. 무슨 영문인지 수 그루의 나무가 베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잘린 둥치에 수액이 맺힌 걸 보니 벤 지 오래되지 않았다. 재목으로 쓰려는 것인지 터를 닦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설마 절터를 발굴하려는 것일까. 설령 그렇다면 무슨 안내문이라도 친절히 세웠을 터인데…. 그런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나무 아래 석재가 보인다. 자연석이 아닌 인위적으로 다듬은 석재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두려움이 물러나고 몸의 감각이 곤두선다. 나무 사이에 서내 개의 석재가 빛을 받아 환하다. 어느 시대에 여기에 왔으며, 어떻게 쓰였을지도 모르는 석재들을 보니 한없이 반갑다. 모르고 돌아섰을지도 모를 숲에서 간절히 찾고 싶었던 고대유물을 찾은 듯 설렌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걷어내자 기와 조각도 간간이 드러난다. 다시 비알밭으로 내려가 살핀다. 기와 조각은 솔숲뿐 아니라 비알밭에도, 밭으로 오르는 오솔길에도 널브러졌다. 이렇게 많은 흔적을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을까.

일대가 모두 절터였던 것 같다. 문헌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무명의 절터에 빛이 들기 시작한다. 나무들 사이 텅 빈 공간을 뚫고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빛 또한 무슨 이름이 있던가. 무명의 보잘것없는 절터면 어떤가. 그저 발길 닿는 곳으로 떠돌고 떠도는 사람에게 뭣이라도 흔적을 전해주면 그것이 기쁨이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와 찾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할 만한 어떤 것도 없지만, 그저 고요와 적막이 자연스레 살아 넘친다. 이름나지 않아, 찾는 이 조차 없는 외딴 곳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석재를 보니 헤맨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다.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발길 뜸한 숲엔 자연 그대로의 절터가 숨쉬고 있다. 빛이 드는 곳을 밟아 조금 더 들어간 숲 아래엔 큰 계곡이 흐른다. 한겨울임에도 얼지 않는 물이 하늘을 청명하게 담근 채 탑동리를 가로지른다. 나는 잠시 계곡에 있는 너럭바위에 올라앉는다. 맑은 바람이 오가고 햇살이 쏟아져 나를 어루만지니 명당도 이런 명당이 없다. 절은 분명 계곡을 향해 있었을 것이다. 장마엔 어디만큼 물이 불어 흘렀을 것이고, 겨울엔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제치며 물을 길러 올렸을 것이다.

절터를 찾아다니며 멈춰야 할 때와 멈추지 않아야 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돌아 나올지언정 멈추지 않고 ‘고go'를 외치곤 했다.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 나올 때의 아쉬움이나 후회를 늘어놓아 무엇하리.

통행금지 구역에서는 이런저런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허락을 받았고, 때로는 몇 시간 죽치고 앉아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다 끝내는 염치없는 사람처럼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다 목적한 곳ㅇ[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참을 수 없는 희열이 쏟아졌다. 오늘 역시 헤맨 길이 있었기에 더욱 값진 희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잊힐 만하면 사람들이 찾아와 절터를 물었다고 했다. 볼 것 하나 없다던 할머니의 말에 꼭 무슨 볼거리를 제공해야 마땅한 어떤 미안함이 묻어났다. 할머니가 전하는 어떤 말이든 내겐 귀한 전언이었다. 숲 어딘가에 남아있는 석재와 기와, 돌덩이 몇 개에도 희열은 몇 배가 된다. 장소를 기억하고 친절히 일러주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볼 것이 있건 없건, 누군가에는 가닿아야 할 무한한 희망의 장소이기에 내겐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탕, 탕, 탕!’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총성이 울린다. 사격 연습이 시작된 모양이다. 사방을 살핀다. 당장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두려움이 다가온다. 그러나 새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나무에서 논다. 물은 유유히 흘러 그대로고, 구름과 바람 또한 그러하다. 위압감마저 드는 총성조차 이곳에서는 일상이다. 너럭바위에 누웠다. 오래오래 겨울을 즐기던 나는 해가 이울 무렵에서야 숲을 빠져 나왔다.

 

글,사진 박시윤 지음, 디앤씨북스 펴냄


⚫속초 향성사 터 – 그리하여, 오래오래 눈이 내렸다 / 박시윤
⚫경주 감은사 터 –바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아니하고 / 박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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