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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장국영 별곡(別曲) / 김용옥

부흐고비 2021. 6. 2. 09:01

울컥, 가만 조약돌 같은 슬픔이 솟구치더니 목울대에 걸린다. 눈시울에 물기가 고인다.

전깃줄에 촘촘히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포르르 포르르 전주천 시냇물가로 날아 내리는 순간, 느닷없이 그의 죽음이 함께 보였다. 죽음을 실현하는 그 순간, 그는 새처럼 날았을까? 블랙홀로 빨려들어 갈 것을 믿었을까? 그 순간 최상의 엑스터시를 느꼈을까? 살아 있던 그 모든 현재보다 행복할까, 죽음은?

그와 얘기하고 싶다.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게 아니라 그가 아무거나 마구 지껄여댈 수 있도록 이야기의 실마리를 끌러 주고 싶다. 켜켜이, 마디마디에 쟁여 바윗덩이가 되었을 그의 속내를 드러내 준다면 고독하다 못해 무표정한, 밤의 호수 같은 눈빛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는, 갔다, 그런 눈빛인 채로, 그 눈빛을 남기고, 아주 갔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하얀 거짓말같이.

그는 20여 년간 아시아의 최고 스타였던 장국영(張國榮). 그의 성장과정, 무명시절, 그의 음악과 영화들, 그의 동성애와 예술 중독성, 그의 허무적인 꽃미남 얼굴과 고독까지 이해하고 사랑했는데. 이 말은, 그에 관한 한 어떤 사회적 편견에 서서 비판 비난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일하며 살아간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생존방식이므로. 오히려 그나 나처럼 살지 않으며 내가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 점이 그를 이해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는 겉보기에 화려한 상류층 가정에서 성장한, 속 빈 강정이었다. 그가 과거형 인물이라니! 어린이에겐 세상을 향한 창槍이며 방패(防牌)인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 대신 병약한 외조모의 훈김을 얻어먹어야 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여성이다”고 칭찬한 유모 품에서 성장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과 심약함이 그의 내면에 싹텄을 것이며 그의 비운(悲運)은 자라기 시작했을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오랜 무명시절을 벗고 홍콩 차트에 오른 그의 노래 ‘바람아 계속 불어라’를 광동어로 흥얼거리던 딸애를 통해 알게 된 그의 목소리. 멍든 내 혼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그 목소리를 들으면 물기가 축축이 내 몸을 돌았지. 그의 얼굴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절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조상(彫像) 같았지. 그 후로 콘서트 비디오랑 영화들, 그에 관한 가십과 기사들을 보고 들었다. 절반은 슬픔에 젖어 절반은 매료되어서.

그는 조용하고 파격적이며 과감한 이벤트로 세상과 자신을 동시에 위장했다. 그래서 그의 철저한 고독이 늘 슬펐다.

1989년, 검은 망토를 걸치고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던 그에게서 공허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아름답고 화려한 경극영화 ‘패왕별희’에서 외롭고 고통스럽다 못해 비장미가 묻어 있는 그의 연기에 홀딱 빠져 버렸다. 삶의 대리발현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지 않을수록 더 강렬히 살아 있는 몸짓. 타인의 배역 속에 자기를 구겨 넣는 하무. ‘아비정전(阿飛正傳)’의 주인공 ‘아비’를 연기한 그는 실토했다. “고독과 정체성의 혼돈으로 휘청거리는 아비는 곧 나 자신”이라고. 타인은 타인의 아픔과 고독을 절대로 대신 앓아 줄 수 없는데! 그는 나에게 늘 슬픈 존재였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노래와 연기로 타인을 살아내면서 자기 자신을 꽁꽁 포박하여 한 뼘도 안 되는 가슴 깊이 가둔 채, 오직 그 내면의 감옥에서 탈옥할 때를 무작정 기다리는 무기수 같은 그. 그의 몽상가 같은, 투명하고 무심한 안면과 흑청빛 눈은 불확실성과 절망으로 비틀거리는 나에겐 일체감이고 외사랑이었다. 공허하고 유리구슬 같은 그의 눈, 대상을 넘어 무한을 넘어 블랙홀 혹은 죽음을 보고 있는 듯한 그의 눈은 내게, 늘 표현하지 못할 눈물 한 방울이 되곤 했다.

그는 어떤 자아 이상을 세우고 있었을까? 절망과 죄의식의 뿌리를 심고 있을까? 아니, 아니. 공(空)과 허(虛)의 바오밥나무가 그의 가슴별에 꽉차게 그늘을 지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어떤 인간에게서도 어떤 삶에서도 구할 수 없겠지. 다만 죽음에의 유혹뿐…… 죽음은 그리운 세계…….

그는 아름다운 동성애자였다. 어머니에게서 습득하지 못한 사랑이 여성을 사랑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외롭고 불안한 무명생활을 하며, 성인인 그가 어찌 프로메테우스적 약속을 바라지 않을 수 있으랴. 기술문명과 도시 빌딩숲에서 쫓기듯 바삐 생활하는 현대인은 외로워서 성욕에 빠진다. 성(性)은 한 순간일지라도 긴장과 불안에서 사람을 해방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성(性)의 대상은 동성(同性)이고 그의 사랑은 그렇게 길들어 갔을 것이다. 동성애도 분명 사랑일진대, 흔히 사랑의 유효기간이라는 3년 고개를 20여 년 간이나 넘고 넘으면서 오직 탕허더(당학덕)에게 순애보를 지킨 그. 한편으로 그는 그런 자신과 삶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삶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증오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드러난 자기와 진정한 내면의 자기가 조용히 마주앉아 대화할 시간을 마련치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죠?’라는 물음이며 ‘사랑한다’는 동사일 때 완성된다. 사랑이란 잘하면 인생의 보약이지만 잘못하면 독약이 되지 않는가. 그는 그런 대화를 나눌 사람을, 최소한 자신과의 대화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기의 말을 잃었으니까. 세상에 대한 자기의 말이 끊기면 세상 사람도 끝인 것을. 수많은 남의 삶을 살아 보느라 그 자신은 외로이 텅 비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 이토록 쓸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죽어서 나는 문득문득 슬프다. 바람도 없는데, 정월 햇빛 속에서 하르르 떨어져 내리는 매화 꽃잎을 보면서 그의 죽음이 겹친다. 고요히 슬퍼진다.

표정 없는, 밤의 호수 같은 눈빛에 담긴 처연함. 어린아이 같은 입술의 미소. 퉁 손가락으로 건드린 현(絃)처럼 울림과 떨림이 낮은 목소리. 얄미운 세상을 향해 슬픈 농담을 던지는 것 같은 ‘과월 콘서트’와 영화 ‘춘광사설’에서의 황폐한 눈빛. 내 넋마저 뺏어 간 빨강 하이힐에 올라선 몸에서 슬픔이 가물진 인어마냥 낭창거리던 육체. 영화 ‘패왕별희’의 청디에이[程蝶衣]와 일심동체가 되어 드러낸 비장미의 외로움과 고뇌. 어느 모습 하나 슬프지 않은 게 없다. 빛나는 자의식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나 슬픔과 허무의 덩어리였던 장국영.

나보다 나이가 10년이나 젊고 얼굴은 20년이나 젊고, 아마 영혼은 영영 젊었을 그, 장국영은 아주 예술적, 영화적인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 “자살은 전 인생을 사로잡는 하나의 예술이 된다”고 철학자 질 들뢰즈가 간파했는데 그의 자살은 오직 그의 시나리오, 그의 연출, 그의 연기(演技)로(처음으로 완벽한 자기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예술이 되었을까?

그는 죽음의 유혹에 공포를 느끼며 끊임없이 괴로워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자기가 살 수밖에 없고 살아야만 하는 삶을 벗어 버리고 싶었을까? 고소공포증의 그가, 홍콩 만다린어리엔털 호텔 24층의 창턱에서 날개도 없이, 날으는 새처럼 두 발을 떼는 순간 이렇게 말했을까?

‘죽음아. 그립고도 두려웠던 죽음아. 이제야 우리 둘이 만나 하나가 되겠구나’라고? 그의 겨드랑이에서 깃털 하나 돋지 않았지만 그는 새의 날개마냥 두 팔을 부드러이 들어 날갯짓했을 것만 같다.

그를 생각한다. 그의 노래구절을 생각한다.

往事不要再提 지나간 일은 다시 생각하지 말아요
人生已多風雨 인생은 험난한 일이 많지요
縱然記憶抹不去 결국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愛鄧恨都還在心裡 사랑과 증오는 모두 마음속에 있을 뿐
眞的要斷了過去 정말로 과거를 끊어 버리고 싶어요
讓明天好好旣續 내일은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요
                                                                             ―「패왕별희」 주제곡 ‘當愛已成往事’

그는 비로소 영원에 안착했다. 다시는 날 수 없는 새가 되었다.

슬픈 일이지만, 그를 생각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나의 절망과 슬픔과 허무를 울 수 있게 해 준 그가 쓸쓸히 그립다.


김용옥 수필가: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전북문학에서 최승범 선생의 추천으로 전북문인협회에 입회했다. 1988년 시문학에 문덕수 선생 추천, 1990년 전북수필에 수필을 발표했다. 국제pen한국위원회 언어보존위원이며 현대시인협회 이사이다. 중앙대문인회 이사이며 한국시문학시인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역사편찬위원 역임, 한국녹색시인협회 회장 역임, 수필세계 편집위원을 지냈다. 현대수필가 100인선 선정(좋은 수필사), 현대수필가 75인 선정(선수필, 수필의 날 10주년 기념), 실험수필 45인선 선정(윤재천 엮음)됐다. 수필집으로 <生놀이>, <틈>, <아무것도 아닌 것들>, <생각 한 잔 드시지요>, <살아야 하는 슬픈 이유>, <맘>, <절망인 줄 알았더니 삶은 기적이었다>이 있다. 수필선집으로 <찔레꽃 꽃그늘 속으로>가 있고 손바닥수필집으로 <관음108>이 있다. 화시집으로 <빛.마하.生成>이있다. 시선집으로 <그리운 상처>가 있고 시집으로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 <세상엔 용서해야 할 것이 많다>, <누구의 밥숟가락이냐>, <이렇게 살아도 즐거운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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