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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파블로 네루다 시인

부흐고비 2021. 6. 4. 08:56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는가 / 파블로 네루다
하루가 지나면 우리는 만날 것이다./ 그러나 하루 만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거리에서는 포도를 팔고/ 토마토는 껍질이 변한다./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던 소녀는/ 다시는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 예고 없이 우편배달부가 바뀐다./ 이제 편지들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황금빛 잎사귀 몇 개로 나무는 다른 나무가 된다./ 이 나무는 더 풍성해졌다.// 오래된 껍질을 지닌 대지가 그토록 많이 변하리라고/ 누가 우리에게 말해 주었는가?/ 어제보다 더 많은 화산이 생겨나고/ 하늘은 새로 생겨난 구름들을 가지고 있으며/ 강물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세워지는가!/ 나는 지금까지 수백 개의 도로와 건물들,/ 그리고 배나 바이올린 모양의/ 섬세하고 가느다란 다리들의/ 준공식에 참석했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을 만나/ 당신의 꽃향기 나는 잎술에 입맞출 때/ 우리의 입맞춤은 또 다른 입맞춤이고/ 우리의 입술은 또 다른 입술이리라.// 그러니 사랑이여, 모든 것을 위해 건배하자./ 추락하는 것과 꽃피는 모든 것을 위해 건배// 어제를 위해 그리고 오늘을 위해 건배/ 지나간 날들과 다가올 날들을 위해 건배/ 빵과 돌을 위해 건배/ 불과 비를 위해 건배.// 변화하고 태어나고 성장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입맞춤으로 돌아오는 것들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공기와/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를 위해 건배// 우리의 삶이 시들어 가면/ 그때는 우리에게 뿌리만 남고/ 바람은 미움처럼 차갑겠지.// 그때는 우리의 피부를,/ 손톱을, 피를, 시선을 바꾸자./ 당신이 내게 입맞추면 나는 밖으로 나가/ 길에서 빛을 팔리라.// 낮뿐 아니라 밤을 위해서도 건배/ 영혼의 사계절을 위해 건배//

 

시(Poem) / 파블로 네루다
그 무렵이었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밤의 가지에서 홀연히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얼굴없이 있는 나를 시는 건드렸다./ 나는 뭐라고 해야할 지를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내 나름대로 해 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이 첫 줄을 썼다./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수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지혜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신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의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다.//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 파블로 네루다
예를 들면, "밤은 별이 많다, 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 멀리서, 파랗게"라고 쓸까.// 밤바람은 하늘에서 돌며 노래하는데/ 나는 이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난 그녀를 사랑했었지. 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었어.//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는 내 품에 있었지./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난 몇번이고 그녀에게 입맞추었지.// 그녀는 나를 생각했었지. 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었어./ 그녀의 그 커다랗게 응시하는 눈망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문득 그녀가 없다는 생각. 문득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 황량한 밤을 들으며, 그녀 없이 더욱 황량한 밤.//

 

한 여자의 육체 / 파블로 네루다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 내 거칠고 농부 같은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 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나는 밀크!/ 그리고 네 젖가슴의 잔들! 또 방심(放心)으로 가득찬 네 눈!/ 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끝없는 내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하상(河床)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흐르며, 그리고 가없는 슬픔이 흐른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 파블로 네루다
당신은/ 해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 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난 네가 말없이 있을 때가 좋다 / 파블로 네루다
난 네가 말없이 있을 때가 좋다. 없는 듯 있으니./ 넌 멀리서 나를 듣고, 내 목소린 네게 닿지 않고./ 네 눈은 이미 네게서 날아가 버린 듯하고,/ 네 입은 입맞춤으로 닫아져 버릴 거 같다.// 내 영혼으로 모든 것들이 채워진 것처럼/ 내 영혼으로 채워진 네가 그들 사이로 나타난다./ 꿈의 나비여, 넌 내 영혼 같고,/ 넌 또 하나의 단어, 슬픔 같다.// 난 네가 말없이, 멀리 있는 듯 있을 때가 좋다./ 잠에 겨운 나비처럼 네가 신음하듯 있을 때도./ 넌 멀리서 나를 듣고, 내 목소린 네게 닿지 않고./ 네 침묵으로 나를 고요하게 해 주기를.// 네 침묵으로 너에게 말하게도 해 주기를./ 등불처럼 선명하게, 반지처럼 단순하게./ 너는 마치 별 총총한, 고요한 밤 같다./ 별로 된 네 침묵은 아주 멀고도, 단순하다.// 난 네가 말없이 있을 때가 좋다. 없는 듯 있으니./ 꼭 네가 죽어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아려온다./ 그때는 말 한 마디, 미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사실이 아니라서,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다.//

 

새해 첫날을 위한 송가 / 파블로 네루다
이 날을 구별해 보자./ 마치/ 한 마리 말이/ 모든 말들과 다른/ 것처럼./ 리본으로/ 그의 이마를/ 장식하자./ 그의 목에 알록달록한 방울을/ 달고,/ 한밤중에/ 마치/ 별에서 내려온 탐험가처럼/ 그를 맞이하자.// 마치 빵이/ 어제의 빵과 비슷하듯/ 마치 반지가 모든 반지와 비슷하듯이:/ 날들은/ 도망치듯, 맑은 소릴 내며/ 깜빡이다가,/ 어두운 밤에 기댄다.// 머나먼 보랏빛 다도해의/ 비를 향하는 기차에서/ 올/ 해의/ 마지막/ 날을 보고,/ 하늘의 시계처럼 복잡한/ 기계의/ 사나이는,/ 무한한/ 철길의 지침들을/ 빛나는 핸들을/ 활활 타는 불의 고리들을/ 내려 본다.// 오, 밤의 검은 역을 향한/ 고삐 풀린/ 기차의 기관사여,/ 여자도 아이도 없는/ 올해의 끝은/ 어제의 끝과 같지 않구나, 내일의 끝하고는?/ 길들과/ 기사학교에서/ 첫날, 시작하는 한 해의/ 첫 오로라는,/ 철 기차의 색과 같은/ 녹슨 색이다:/ 길의 존재자들이,/ 소들이, 마을들이/ 새벽의 증기 속에서,/ 인사를 한다,/ 깃털과 열쇠들로 장식된/ 종들로/ 흔들리는/ 한 해의 문을/ 하루를/ 어찌 보내얄지/ 모른 채.// 땅은/ 그것을/ 모른다./ 보랏빛, 잿빛, 하늘빛인/ 이 날을/ 맞이할 거라는 것을,/ 그걸 언덕에 펼칠 거라는 것을,/ 투명한/ 비/ 의/ 화살들로/ 그걸 적실 거라는 것을./ 그 후/ 그의 관 안에/ 그걸 말아서/ 그림자 안에 간직할 거라는 것을.// 그래. 그러나/ 희망의/ 작은 문,/ 한 해의 새 날,/ 마치 빵들이/ 모든 빵하고/ 같을지라도,/ 너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자./ 너를 먹고, 꽃피우고/ 기다려 보자./ 우리 삶에/ 하나의 케이크처럼/ 너를 놓고,/ 촛대/ 처럼/ 너를 켜고,/ 마치/ 수정인 것처럼/ 너를 마셔보자.// 새/ 해의/ 날, / 상쾌한, 전율이 흐르는 날,/ 너의 시간의 통나무/ 로부터/ 모든/ 잎들이 초록으로 나온다:// 물/ 과/ 모든 향기들을/ 풍기며,/ 피어있는/ 자스민으로/ 왕관을 씌우자./ 그래,/ 비록/ 오직/ 하루/ 일지라도,/ 한 인간의/ 초라한 날일지라도,/ 너의 날무리는/ 수많은/ 피곤한/ 심장들 위에서/ 두근거리고,/ 너는/ 오, 새로운/ 날,/ 오, 다가오는 구름,/ 본 적 없는 빵,/ 영원한/ 탑이다!//

 

절망의 노래 / 파블로 네루다
너의 추억은 내가 자리하고 있는 밤에서 솟아오른다./ 강물은 그 끝없는 탄식을 바다에 묶고 있다.//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내 심장 위로 차가운 꽃비가 내린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 조난자들의 흉포한 동굴.// 네 위로 전쟁과 날개가 쌓여 갔다./ 노래하는 새들은 네게서 날개를 거두었다.// 마치 머나먼 무엇처럼 너는 그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바다처럼, 시간처럼,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침략과 입맞춤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등대처럼 타오르던 혼수 상태의 사간.// 항해사의 조바심, 눈 먼 잠수부의 분노,/ 사랑의 혼미한 도취,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아있다!// 희미한 안개의 유년 속에 날개 달고 상처 입은 나의 영혼./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너는 고통에 동여매인 채, 욕망에 붙들려 있었지./ 슬픔은 너를 쓰러뜨렸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나는 그림자 드리운 성벽을 뒤로 하고,/ 욕망과 행위의 피안을 걸었다.// 오 살이여, 나의 살결이여, 내가 사랑했고 나를 버린 여인이여,/ 이 음습한 시간 속에서 나는 너를 추억하며 노래한다.// 하나의 술잔처럼 너는 한없는 애정으로 머물렀고,/ 또 어떤 술잔처럼 끝없는 망각이 너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것은 검은 빛, 섬들의 검은 고독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여인아, 네 품이 나를 반겼다.// 그것은 갈증이었고 허기짐이었다, 그리고 넌 과일이었다./ 그것은 비탄이었고 폐허였다, 그리고 넌 기적이었다.// 아 여인아, 네 여혼의 대지 안에, 네 품의 십자가 속에/ 어떻게 네가 나를 품을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너를 향한 나의 욕망은 참으로 어마어마하면서도 그토록 짧은 것,/ 가장 엉망진창 취해 있는 것, 그토록 위험하고도 목마른 것이었다.// 입맞춤의 묘지여, 아직도 너의 무덤들에는 불이 남아 있어,/ 새들의 부리에 쪼인 포도송이들이 이적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오 깨물린 입, 오 입맞추며 엉켜 있는 팔다리,/ 오 허기진 이빨들, 오 비비 꼬여 있는 육체들.// 우리가 맺어졌고, 우리 함께 절망한/ 희망과 발버둥의 미친 듯한 교접.// 그리고 물과 밀가루 같은 사소한 애정./ 그리고 입술에서 방금 떨어져 나온 그 단어.//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고 그 안에서 나의 갈망이 항해하였으며,/ 그 속으로 나의 갈망은 가라앉았다.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네 위로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 네가 말로 다하지 못했던 고통이며, 너를 질식시키는 데 실패한 파도들이.// 뱃머리에 선 뱃사람의 다리처럼 이리로 저리로/ 너는 불꽃을 일으키는가 하면 노래도 하였다.// 노래 속에서 너는 꽃도 피워 내고, 시냇물에서는 부서지기도 했다./ 오 폐허의 쓰레기 더미여, 활짝 열린 고통스러운 깊은 연못이여.// 눈 먼 창백한 잠수부, 기 꺾인 戰士,/ 길 잃은 탐험가, 네 안에서는 모든 것이 조난이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다, 밤의 일정표가 꽉 찬/ 단단하고도 냉랭한 시간이다.// 바다의 소란스러운 허리띠는 해변을 휘어감고 있다./ 차가운 별들이 나타나고, 검은 새들이 날아간다.// 동틀녘의 부두처럼 버려진 사내./ 떨리는 그림자만이 내 손아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아아 모든 것의 피안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오 버림받은 이여!//

 

파업 / 파블로 네루다
돌아가지 않는 공장이 이상해 보였다./ 공장 속의 고요,/ 두 행성 사이의 한 가닥 실이 끊어진 듯/ 기계와 사람 사이의/ 거리,/ 물건 만드느라 시간을 쓰던 사람이 손들의/ 不在, 그리고/ 일도 소리도 없이 휑한 방들,/ 사람이 터빈의 空洞들을/ 저버렸을 때, 그가/ 불의 팔들을 잡아뜯었을 때,/ 그리하여 용광로의 내부 기관이 죽었을 때,/ 바퀴의 눈을 뽑아내어/ 눈부신 빛이 그 보이지 않는 圓 속에서/ 꺼졌을 때,/ 크나큰 에너지의 눈,/ 힘의 순수한 소용돌이의 눈,/ 엄청난 눈을 뽑아버렸을 때,/ 남은 건 의미 없는 강철 조각 더미,/ 그리고 사람들 없는 상점들 안에 혼자 남은 공기와/ 쓸쓸한 기름 냄새,/ 그 파편 튀는 망치질 없으니,/ 아무것도 없었다./ 엔진 덮개 외엔 아무것도/ 죽어버린 동력의 더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염돼 더러운 바다 깊은 데 있는/ 검은 고래처럼,/ 갑자기 外界의 쓸쓸함 속에 잠겨버린 산맥처럼.//

 

수수께끼 / 파블로 네루다
바닷가재가 그 금빛 다리로 짜고 있는 게 뭐냐고/ 당신은 나한테 물었다./ 나는 대답한다. 바다가 그걸 알 거라고./ 우렁쉥이가 그 투명한 방울(鍾) 속에서 무얼 기다리고 있느냐고/ 당신은 말한다. 그건 뭘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말한다. 그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처럼./ 당신은 나한테 묻는다. 매크로씨스티스 앨거(해초)는/ 그 품 속에 누구를 안고 있는냐고./ 연구해, 그걸 연구해봐, 어떤 시간에, 내가 아는 어떤 바다에서./ 당신은 一角고래의 고약한 송곳니에 대해 묻고, 나는 그 바다의/ 一角獸가 어떻게 작살을 맞아죽는지 말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당신은 물총새의 깃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남쪽 조수의 맑은 샘에서 몸을 떠는 그 새의./ 또는 카드에서 말미잘의 투명한 건축에 관한 의문을 발견하고/ 나더러 해명하라고 할 모양이지?/ 당신은 지느러미 가시의 電氣的 성질을 알고 싶어하지?/ 걸어가면서 부서지는 裝甲 종유석은?/ 아귀의 돌기, 물 속 깊은 데서 실처럼/ 뻗어가는 음악은?// 바다가 그걸 안다는 걸 나는 당신한테 말하고 싶다,/ 그 보석상자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은/ 모래처럼 끝이 없고, 셀 수 없으며, 순수하고,/ 그리고 피빛 포도 사이에 시간은/ 단단하고 반짝이는 꽃잎을 만들었고,/ 빛으로 가득찬 해파리를 만들었으며/ 또 그 마디들을 이어놓았고, 그 음악적인 줄기들을/ 무한한 眞珠層으로 만들어진 풍요의 뿔에서 떨어져내리게 한다.// 나는 사람의 눈을 앞질러간, 그 어둠 속에서/ 쓸모 없이 된 빈 그물일 뿐,/ 삼각 기중기, 겁많은 오렌지 球體 위의/ 經度를 앞질러간 빈 그물,// 나는 당신처럼 돌아다닌다,/ 끝없는 별을 찾으며,/ 그리고 내 그물 속에서, 밤중에, 나는 벌거숭이로 깨어난다,/ 단 하나 잡힌 것, 바람 속에서 잡힌 물고기 하나.//

 

망각은 없다(소나타) / 파블로 네루다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없다/ 돌들로 어두어진 땅이라든가/ 살아 흐르느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강에 대해 말할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되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 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은 죽었나?//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애기부터 할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은 부엌 세간,/ 흔히 썩어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 애기부터./ 만나고 엇갈린 게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도;/ 허나 그런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그런 것;/ 어떤 날의 어두움은 이미 지나가고,/ 우리들 자신의 음울한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어두움도 지나가고.// 보라 제비꽃들, 제비들,/ 우리가 그다지도 사랑하고/ 시간과 달가움이 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연하장에서 긴 고리를 볼 수 있었던 것들.// 허나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을 싸고 껍질을 잠식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죽은 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흔히 갈라놓은 바다 제망이 참 많고,/ 배들이 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몸을 감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소나타와 파괴들 / 파블로 네루다
그렇게도 많은 일을 겪은 뒤에, 그다지도 머나먼 거리를 지나온 뒤에,/ 어떤 왕국인지도 모르고, 어떤 땅인지도 모르는 채,/ 가련한 희망을 갖고 돌아다니고,/ 속이는 동료들, 수상한 꿈과 더불어 돌아다니고 나서,/ 나는 아직도 내 눈 속에 살아있는 단단함을 사랑한다./ 말을 탄 듯이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나는 들으며,/ 잠든 불과 황폐한 소금을 나는 물어뜯고,/ 밤이 되어 어둠이 짙고, 그리고 슬픔이 남몰래 움직일 때,/ 나는 내가 먼 야영자들의 기슭을 망보는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빈약한 방비로 돌아 다니는 여행자,/ 자라나는 그림자와 떨리는 날개 사이에 끼인,/ 그리고 돌로 만든 내 팔이 나를 보호하는 여행자.// 눈물의 과학중에는 혼란스런 재단이 있으며,/ 그리고 내 향기 없는 저녁 명상 속에서,/ 달이 사는 내 황폐한 침실 속에서,/ 내 식구인 거미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파괴들 속에서,/ 나는 내 잃어버린 자아를 사랑하고, 내 흠 있는 성격,/ 내 능변의 상처, 그리고 내 영원한 상실을 사랑한다./ 습기찬 포도는 변색하고, 그 우중충한 물은/ 아직도 명멸하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유산과 무너질 듯한 집도./ 누가 재의 儀式을 거행했는가?// 누가 잃어버린 걸 사랑했으며, 누가 마지막 남은 걸 보호했는가?/ 아버지의 뼈, 그 죽은 배의 목재,/ 그리고 그 자신의 종말, 그의 날아감,/ 그의 우울한 힘, 불운했던 그의 神을?/ 그러니 나는 살아 있지 않은 것과 고통받고 있는 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제시하는 비상한 증언 -/ 잔인할 만큼 효능 있고, 재에다 쓴 증언은/ 내가 좋아하는 망각의 방식이다,/ 내가 땅에 붙인 이름, 내 꿈들의 가치,/ 내 쓸쓸한 눈으로 분배한 끝없는 풍부함,/ 이 세계가 이어가는 나날들.//

 

가을의 유서 / 파블로 네루다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이 되어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루 밤새 하얗게 들어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은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큰곰 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나는 기억한다 그 최후의 가을에... / 파블로 네루다
나는 기억한다 그 최후의 가을에 네가 어땠는지./ 너는 회색 베레모였고 존재 전체가 평온했다./ 네 눈에서는 저녁 어스름의 熱氣가 싸우고 있었고,/ 나뭇잎은 네 영혼의 물속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팔꽃처럼 내 팔 안에 들 때/ 네 슬프고 느린 목소리는 나뭇잎이 집어올렸다./ 내 갈증이 타고 있는 경악의 모닥불./ 내 영혼 위로 굽이치는 히아신스의 부드러운 청색.// 나는 느낀다 네 눈이 옮겨가고 가을은 사방 아득한 것을:/ 회색 베레모, 새의 목소리, 그리고 내 깊은/ 욕망이 移住하는 집과도 같고/ 내 진한 키스의 뜨거운 석탄처럼 떨어지고 있었던 가슴.// 배에서 바라보는 하늘. 언덕에서 바라보는 평원:/ 너를 생각하면 기억나느니 빛과 연기와 고요한 연못!/ 네 눈 너머로 저녁 어스름은 싸우고 있었고./ 가을 마른잎은 네 영혼 속에 맴돌고 있었다.//

 

충만한 힘 / 파블로 네루다
나는 쓴다 밝은 햇빛 속에서, 사람들 넘치는 거리에서,/ 만조 때,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제멋대로인 밤만이 나를 억누르지만,/ 허나 그것의 방해로 나는 공간을 되찾고,/ 오래가는 그늘들을 모은다// 밤의 검은 작물은 자란다/ 내 눈이 평야를 측량하는 동안./ 그리하여, 태양으로만, 나는 열쇠들을 버린다./ 불충분한 빛 속에서는 자물쇠를 찾으며/ 바다로 가는 부서진 문들을 열어놓는다/ 찬장을 거품으로 채울 때까지,// 나는 가고 돌아오는 데 지치는 법이 없고,/ 돌 모양의 죽음은 나를 막지 못하며,/ 존재에도 비존재에도 싫증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 모든 광물성의 의무를 어디에서 물려받았을까/ 아버지나 어머니일까 아니면 산들일까,// 생명줄들이 불타는 바다로부터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계속 가니까 나는 가고 또 간다는 것/ 또 내가 노래를 하고 또 하니까 나는 노래한다는 걸.// 두 개의 수로 사이에서 그러듯/ 내가 눈을 감고 비틀거릴 때/ 일어난 일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쪽은 죽음으로 향하는 그 지맥속에서 나를 들어올리고/ 다른 쪽은 내가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래한다.// 그리하여 나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지고,/ 바다가 짜고 흰 물마루의 파도로/ 암초를 연타하고/ 썰물 때 돌들을 다시 끌고 가듯이/ 나를 둘러싼 죽음으로 된 것이/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그리고, 존재의 경련 속에서, 나는 잠든다./ 낮의 환한 빛 속에서, 나는 그늘 속을 걷는다.//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 파블로 네루다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 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 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 푸른색일까.//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건축가 / 파블로 네루다
나는 나 자신의 환상을 선택했고,/ 얼어붙은 소금에서 그것과 닮은 걸 만들었다/ 나는 큰비에다 내 시간의 기초를 만들었고/ 그리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 오랜 숙련이/ 꿈들을 분할한 게 사실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채/ 벽들, 분리된 장소들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바닷가로 갔다.// 나는 조선의 처음을 보았고,/ 신성한 물고기처럼 매끄러운 그걸 만져보았다-/ 그건 천상의 하프처럼 떨었고,/ 목공작업은 깨끗했으며,// 꿀 향기를 갖고 있었다./ 그 향기가 돌아오지 않을 때는/ 그 배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물 속에 익사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별처럼 벌거벗은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돌아갔고.// 내 믿음은 그 배들 속에 있다.// 나는 사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

 

작별들 / 파블로 네루다
안녕, 안녕, 한 곳에게 또는 다른 곳에게,/ 모든 입에게, 모든 슬픔에게,/ 무례한 달에게, 날들로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사라지는 주週들에게,/ 이 목소리와 적자색으로 물든/ 저 목소리에 안녕, 늘 쓰는/ 침대와 접시에게 안녕,/ 모든 작별들의 어슴푸레한 무대에게,/ 그 희미함의 일부인 의자에게,/ 내 구두가 만든 길에게.// 나는 나를 펼친다, 의문의 여지 없이;/ 나는 전 생애를 숙고한다,/ 달라진 피부, 램프들, 그리고 증오들을,/ 그건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규칙이나 변덕에 의해서가 아니고/ 일련의 반작용하고도 다르다;/ 새로운 여행은 매번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장소를, 모든 장소들을 즐겼다.// 그리고, 도착하자 또 즉시/ 새로 생긴 다감함으로 작별을 고했다/ 마치 빵이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날개를 펴 갑자기/ 식탁의 세계에서 달아나듯이./ 그리하여 나는 모든 언어들을 뒤에 남겼고,/ 오래된 문처럼 작별을 되풀이했으며,/ 영화관과 이유들과 무덤들을 바꾸었고,/ 어떤 다른 곳으로 가려고 모든 곳을 떠났다;/ 나는 존재하기를 계속했고, 그리고 항상/ 기쁨으로 반쯤 황폐해 있었다,/ 슬픔들 속의 신랑,/ 어떻게 언제인지도 모르는 채/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고, 돌아가지 않은.// 돌아가는 사람은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나는 내 삶을 밟고 되밟았으며,/ 옷과 행성을 바꾸고,/ 점점 동행에 익숙해지고,/ 유배의 큰 회오리바람에,/ 종소리의 크나큰 고독에 익숙해졌다.//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 / 파블로 네루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너무도 어렵게 지낸 나머지/ 그가 사람으로서 인격을 지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집도 땅도 없었고,/ 알파벳도 이불도/ 구운 고기도 없었으며,/ 그리하여 여기저기로 노상/ 옮겨다녔고, 생활의 결핍으로 죽어갔다,/ 죽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그게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삶이다.// 다행히도(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음이 똑같았다,/ 주교에서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죽었다, 나무랄 데 없이 죽었다, 우리의 가나한 사람,/ 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그는 그 많은 하늘을 갖고 뭘 할지 모를 것이다./ 그는 그걸 일굴 수 있을까, 씨 뿌리고 거둘 수 있을까?// 그는 항상 그걸 했다; 잔혹하게/ 그는 미개지와 싸웠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그가 일구도록 완만히 놓여 있다,/ 나중에, 하늘의 수확 중에/ 그는 자기 몫을 가질 것이고, 그렇게 높은 데서/ 그의 식탁에는, 하늘에서 배부르기 위해/ 모든 게 차려진다,/ 우리의 가난한 사람은, 아래 세상에서의/ 운명으로, 약 60년의 굶주림을 갖고 왔다,/ 마침내, 당연하게도,/ 삶으로부터 더 이상 두들겨맞지 않고/ 먹기 위해 제물이 되지 않은 채 만족스럽기 위하여,/ 땅 밑 상자 속에서 집처럼 안전해/ 이제 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고,/ 임금 투쟁을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는 그런 정의를 바라지 못했다, 이 사람은./ 갑자기 그들은 그의 컵을 채워주었고 그게 그는 좋았다;/ 이제 그는 행복에 겨워 벙어리가 되었다.// 이제 그는 얼마나 무거운가, 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은!/ 그는 뼈 자루였다, 검은 눈을 가진,/ 그리고 이제 우리는 안다, 그의 무게 하나만으로,/ 너무 많은 걸 갖지 못했었다는 걸,/ 만일 이 힘이 계속 쓰여서/ 미개지를 갈아엎고, 돌을 골라내고,/ 밀을 거두고, 땅에 물을 주고,/ 유황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땔나무를 운반했다면,/ 그리고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 구두가 없었다면,/ 아, 비참하다, 이 힘줄과 근육이/ 완전히 분리된 인간이, 사는 동안 정의를/ 누린 적이 없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때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넘어뜨리며, 그런데도/ 노동을 계속했고, 이제, 관에 든 그를/ 우리 어깨로 들어올리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그에게 주지 않은 모든 걸/ 우리가 짊어지고 있음을, 그리고 때가 늦었음을;/ 그는 우리한테 무게를 달고, 우리는 그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의 죽은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무게를 달까?// 그는 이 세상이 하는 만큼 많이 무게를 단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이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간다. 분명히/ 하늘은 빵을 풍부하게 구우시리라.//

 

물 / 파블로 네루다
지상의 모든 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가시나무는/ 찔렀고 초록 줄기는/ 갉아먹혔으며, 잎은 떨어졌다,/ 낙하 자체가 유일한 꽃일 때까지,/ 물은 또다른 일이다,/ 그건 그 자신의 빛나는 아름다움 외에 방향이 없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깔 속을 흐르며,/ 돌에서 명쾌한 교훈을 얻고,/ 그런 노릇들 속에서/ 거품의 실현되지 않은 야망을 이루어낸다.//

 

그건 태어난다 / 파블로 네루다
여기 바로 끝에 나는 왔다/ 그 무엇도 도대체 말할 필요가 없는 곳,/ 모든 게 날씨와 바다를 익혔고/ 달은 다시 돌아왔으며,/ 그 빛은 온통 은빛,/ 그리고 어둠은 부서지는 파도에/ 되풀이하여 부서지고,/ 바다의 발코니의 나날,/ 날개는 열리고, 불은 태어나고,/ 그리고 모든 게 아침처럼 또 푸르르다.//

 

탑에서 / 파블로 네루다
이 장엄한 탑에는/ 투쟁이 없다./ 안개, 공기, 날이/ 그걸 둘러쌌고 떠났으며/ 나는 하늘과 종이와 더불어 머물렀다,/ 고독한 기쁨과 부채와 함께./ 증오가 있는 지상의 투명한 탑 그리고/ 하늘의 파동으로/ 움직이는/ 먼 바다./ 그 구절에는 얼마나 많은 음절이 있는가,/ 그 단어에는? 내가 말했던가?// 이슬의 불안은 아름다워라-/ 그건 아침에 떨어진다/ 새벽에서 밤을/ 분리하며/ 그리고 그 차가운 선물은/ 불확실하게 매달려 있다/ 강렬한 태양이/ 그걸 죽게 하기를 기다리며,/ 말하기 어렵다/ 우리가 눈을 감는 건지 아니면 밤이/ 우리 속에서 별 박힌 눈을 뜨는 건지,/ 어떤 문이 열릴 때까지/ 그게 우리 꿈의 벽에 구멍을 파는 건지./ 그러나 꿈은/ 한순간의 휙 지나가는 의복일 뿐,/ 어둠의/ 한 번의 고동 속에 소모되고,/ 우리 발 앞에 떨어져, 벗어던진다/ 날이 움직여 우리와 함께 출범할 때./ 이게 거기서 내가 내려다보는 탑이다,/ 빛과 말수가 적은 물 사이,/ 칼을 지닌 시간,/ 그러고 나서 나는 살기 위해 서두른다,/ 나는 온 공기를 마시고/ 도시에 들어찬 불모의/ 빌딩들에 간담이 서늘하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 혼잣말을 한다,/ 높은 곳들의/ 침묵에서 한 잎씩 떼어내며.//

 

시인의 의무 / 파브로 네루다
이 금요일 아침, 바다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집이나 사무실에 갇혀 있거나/ 공장이나 여자, 거리나 광산 또는 메마른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간에 나는/ 그에게 왔다, 그리고 말하거나 보지 않고/ 도착해서 그의 감옥문을 연다,/ 희미하나 뚜렷한 동요가 시작되고,/ 천둥의 긴 우르릉 소리가 이 행성의 무게와/ 거품에 스스로를 더하며,/ 바다의 신음하는 물흐름은 물결을 일으키고,/ 별은 그 광관光冠 속에서 급속히 진동하며,/ 바다는 파도치고, 꺼지고 또 파도치기를 계속한다.// 그리하여, 내 운명에 이끌려,/ 나는 바다의 비탄을 듣고 그걸/ 내 의식에 간직해야 하며,/ 거친 물의 굉음을 느끼고/ 그걸 영원한 잔에 모아,/ 그들이 수감되어 있는 데가 어디이든,/ 그들이 가을의 선고로 고통받는 데가 어디이든/ 나는 유랑하는 파도와 함께 있고,/ 창문으로 드나들며,/ 내가 "어떻게 그 바다에 닿을 수 있지?" 하고/ 두 눈은 치켜뜬 채, 묻는 소리를 스스로 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말없이,/ 파도의 별빛 밝은 메아리를 건넬 것이다,/ 거품과 유사의 부서짐을,/ 움츠러드는 소금의 바삭거림,/ 해변 바닷새들의 음울한 울음을,// 그리하여, 나를 통해, 자유와 바다는/ 어두운 가슴에 대답해줄 것이다.//

 

말 / 파블로 네루다
말은/ 피 속에서 태어났고,/ 어두운 몸속에서 자랐으며, 날개 치면서,/ 입술과 입을 통해 비상했다.//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여전히, 여전히 그건 왔다/ 죽은 아버지들과 유랑하는 종족들에서,/ 돌이 된 땅들에서,/ 그 가난한 부족들로 지친 땅,/ 슬픔이 길이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떠나서 새로운/ 땅과 물에 도착하고 결혼하여/ 그들의 말을 다시 키웠느니./ 그리하여 이것이 유산이다;/ 이것이 우리를 죽은 사람과/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들을/ 연결하는 대기大氣// 대기는 아직/ 공포와 한숨을/ 차려입은/ 처음 말해진 말로 떨린다./ 그건 어둠에서 솟아났고/ 지금까지 어떤 천둥도/ 그 말,/ 처음 말해진/ 그 말의 철鐵 같은 목소리/ 와 함께 우르렁거리지 못했다-/ 그건 다만 하나의 잔물결, 한 방울의 물이었을지 모르나/ 그 큰 폭포는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러다가, 말은 의미로 채워진다./ 언제나 아이와 함께, 그건 생명으로 채워진다./ 모든 게 탄생이고 소리이다-/ 긍정, 명확성, 힘,/ 부정, 파괴, 죽음-/ 동사는 모든 힘을 얻어/ 그 우아함의 강렬한 긴장 속에서/ 실존을 본질과 혼합한다.// 인간의 말, 음절, 퍼지는/ 빛의 측면과 순은세공,/ 피의 전언을 받아들이는/ 물려받은 술잔-/ 여기서 침묵은 인간의 말의/ 온전함과 함께한다,/ 인간에게, 말하지 않는 건 죽는 것이니-/ 언어는 머리카락에까지 미치며,/ 입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고,/ 문득, 눈은 말이다.// 나는 말을 취해서 그걸 내 감각들을 통해 보낸다/ 마치 그게 인간의 형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그것의 배열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나는/ 말해진 말의 울림을 통해 나의 길을 찾는다-/ 나는 말하고 그리고 나는 존재하며 또한, 말없이,/ 말들의 침묵 자체의 가장자리를 가로지르며 접근한다.// 나는 한마디 말이나 빛나는 잔을 들어올리며/ 말과 건배한다;/ 나는 거기 들어 있는/ 언어의 순수한 포도주나/ 마르지 않는 물을 마신다,/ 말의 모성적 원천을,/ 그리고 컵과 물과 와인은/ 내 노래를 솟아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동사는 원천이며/ 생생한 생명이므로-그건 피이다/ 그 참뜻을 표현하는 피,/ 그리하여 스스로 뻗어나가는./ 말은 잔에 잔다움을, 피에 피다움을,/ 그리고 생명에 생명다움을 준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20 / 파블로 네루다
나는 오늘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밤은 별들이 촘촘히 수놓여 있고, 푸른 별들은 저/ 멀리서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라고 씁니다.// 밤바람은 하늘을 맴돌며 노래합니다.// 나는 오늘밤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씩 나를 사랑했습니다.// 오늘 같은 밤이면 나는 내 품에 그녀를 안고 있었습니다./ 저 끝없는 하늘 아래서 수없이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가끔은 그녀를 사랑하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녀의 꼼짝 않는 눈동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녀가 없어 저으기 막막해 보이는, 그 막막한 밤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그러면 이슬이 풀밭에 떨어지듯 시는 영혼 위에 내립니다./ 내 사랑이 그녀를 지킬 수 없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밤은 별들이 촘촘히 수놓아져 있건만, 그녀는 내 곁에/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 멀리서 누군가 노래를 부릅니다. 저/ 멀리서./ 그녀를 잃어버린 나의 영혼은 결코 채워지질 않습니다.// 그녀를 내 곁으로 데려오기라도 할 듯이 내 눈길은 그녀를 찾아/ 헤매입니다./ 내 가슴에 그녀를 찾아 헤매이건만, 그녀는 내 곁에 없습니다.// 똑같은 나무들의 하얗게 밝히고 있는 똑같은 밤입니다./ 우리는, 그때의 우리들은, 이미 지금의 우리가 아닙니다.// 이제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요./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가 닿으려고 바람을 찾곤 했지요.//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맑은 육체, 그녀의 끝모를 눈동자들./ 다른 남자의 것입니다. 이마 다른 이의 것일 겁니다. 전에는 내/ 입술의 것이었던 것처럼.// 이제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하지만 혹시/ 그녀를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그토록 짧고, 망각은 그토록 길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를 내 품에 안고 있었기에,/ 그녀를 잃어버린 내 영혼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것이 그녀가 내게 안겨주는 마지막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 쓰는 마지막 시가 될지라도/ 말입니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9 / 파블로 네루다
가무잡잡하고 날렵한 소녀야, 과실을 맺게 하는 태양,/ 밀알을 여물게 하는 태양, 해초들을 꼬아 올리는 태양은,/ 즐거운 네 육체, 이글거리는 눈동자,/ 물의 미소를 지닌 네 입을 만들었다.// 네가 두 팔을 뻗을 때, 불안에 사로잡힌 검은 태양 하나/ 늘어뜨린 검은 머리결로 너를 감아 올린다./ 너는 개울과 그러듯 태양과도 장난하는데/ 태양은 네 눈에 어두운 두 개의 물웅덩이를 남기는구나.// 가무잡잡하고 날쌘 소녀야, 아무것도 나를 네 가까이에 데려다/ 주지 않는다./ 마치 정오로부터 멀어져 가듯, 모두가 네게서 나를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너는, 정신 없이 들뜬 꿀벌의 청춘,/ 파도의 주정, 이삭의 힘이다.// 그래도, 나의 우울한 심장은 너를 찾고 있다./ 즐거운 네 육체, 나긋나긋하고 갸날픈 네 목소리를 사랑한다./ 밀밭 같기도, 태양 같기도, 양귀비 같기도, 물결 같기도 한,/ 달콤하면서도 단호함, 가무잡잡한 나비야.//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8 / 파블로 네루다
나는 여기 널 사랑하고 있다./ 어두운 소나무들 속으로 바람이 헤집고 지나간다./ 달은 떠도는 물 위로 빛을 발하고 있다./ 똑같은 날들이 쫓기듯 지나간다.// 춤추는 모습으로 안개는 풀어진다./ 은빛 갈매기 한 마리 낙조로부터 날아온다./ 때로는 돛폭 하나가, 높디 높은 별들이.// 오 어는 배의 검은 십자가,/ 홀로,/ 가끔씩 나는 내 영혼이 축축해질 때까지 밤을 새워 아침을/ 맞는다./ 저 머나먼 바라 소리가 들리고 또 메아리진다./ 여기는 항구다./ 나 여기 널 사랑하고 있다.// 나 여기 널 사랑하고 있건만 수평선은 부질 없이 널 감춘다./ 이 차가운 것들 사이에서 아직도 나는 널 사랑하고 있다./ 자꾸만 나의 입맞춤은 끝내 가 닿지 못할/ 바다를 향해 달리는, 그 무거운 배를 타고 간다.// 이 낡은 닻줄처럼 나는 이미 잊혀진 존재임을 안다./ 오후가 정박할 때의 부두는 더욱 서럽다./ 불필요하게 허기진 나의 삶은 쉬 피곤해 한다./ 내 널 갖지 못하는 걸 사랑하낟, 너는 그렇게 저만치 있다.// 나의 구역질은 느릿한 황혼들과 함께 몸부림친다./ 하지만 밤이 다가와 나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달은 꿈의 수레바퀴를 빙글빙글 돌린다.// 가장 크막한 별들이 네 눈과 함께 날 바라다본다./ 그리고 내 너를 사랑하기에, 바람 속의 소나무들은,/ 그 철사줄 같은 잎파리들로 네 이름을 노래하고 싶어한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7 / 파블로 네루다
생각에 잠겨, 깊은 고독 속에서 그림자들을 그물로 잡아/ 올린다./ 너는 여전히 저 멀리 있다, 아 그 누구보다도 더 먼 곳에 있다.// 생각에 잠겨, 새들을 풀어 주면서, 너의 이미지를 지우며,/ 등불들을 땅에 파묻는다./ 안개 낀 종루, 저 위쪽으로, 얼마나 멀리 있는가!/ 아무 말 없는 방앗간 사내는/ 탄식을 삭이며, 우울한 희망들을 가루로 빻는다./ 밤은 도시의 저 멀리서부터 네게 엎드려 다가온다.// 네 모습이 다른 사람만 같고, 어떤 물건처럼 낯설기만 하다./ 기나긴 길을 걸으며 네 앞의 내 삶을 생각한다./ 아무의 앞에도 놓여진 적 없는 나의 삶을, 나의 혹독한 삶을./ 바다를 마주한 절규는, 돌멩이 사이로, 미친 사람처럼/ 바다 내음 속을 자유로이 질주한다./ 슬픈 분노, 절규, 바다의 고독,/재갈이 풀려, 격렬하게 하늘을 향해 온몸을 내뻗는다.// 너, 여인아, 그곳에서 너는 무엇이었지? 무슨 선이었고, 어는/ 커다란 부채의 살대였지? 너는 지금 처럼 저 멀리 있었지./ 숲 속의 불길이여! 푸른 십자가들 속에서 타오르는구나.// 타오른다, 타오른다, 불길이 인가./ 탁탁거리며 쓰러진다. 불이야. 불이야./ 그리고 불탄 잿더미의 상처를 안고 내 영혼은 춤을 춘다./ 누구십니까? 어떤 침묵에 메아리가 살고 있을까요?/ 향수에 젖는 시간, 기쁨의 시간, 고독의 시간./ 모든 시간들 가운데 나의 시간이여!/ 뿔피리를 바람이 노래하며 지난다./ 내 몸뚱이엔 그토록 커다란 통곡의 열정이 맺혔다.// 모든 뿌리들의 흔들림,/ 모든 파도들의 습격!/ 즐거웠다가, 슬펐다가, 내 영혼은 한없이 구르고 있었다.// 생각에 잠겨, 깊은 고독 속에 등불을 파묻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네가 누구였더라?//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6 / 파블로 네루다
황혼녁 나의 하늘에서 너는 한 조각 구름 같고/ 너의 색깔과 모양새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너는 나의 여자 너는 나의 여자, 달디단 입술의 여자,/ 그래서 나의 한없는 꿈들이 네 삶 속에 살고 있다.// 내 영혼의 등불은 네 발을 붉게 물들이고,/ 시디신 내 포도주는 네 입술에서 더욱 달콤하기만 하다./ 오, 해질녁의 내 노래를 거두어 들이는 여인이여,/ 어찌하여 내 외로운 꿈들은 네가 나의 여인이라 느끼는가!// 너는 나의 여자, 너는 나의 , 하오의 산들바람 속에/ 내가 소리치며 지나노라면, 바람은 내 홀아비 같은 목소리를/ 끌고 사라져 버린다./ 내 눈 깊숙한 곳의 여자 사냥꾼아, 너는 나를 사로잡아/ 밤이면 활발한 너의 눈길을 마치 물처럼 고여들게 하는구나.// 너는 내 음악의 그물에 잡힌 나의 포로, 나의 사랑아,/ 내 음악의 그물들은 하늘처럼 넓기만 하다./ 나의 영혼은 상복 같은 네 눈동자의 기슭에서 태어난다./ 상복 같은 너의 눈동자 속에서 꿈의 나라가 시작된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5 / 파블로 네루다
마치 네가 없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네가 말 없을 때가 좋다,/ 너는 저 멀리서부터 내게 귀 기울이고, 내 음성은 네게 가 닿지/ 못한다./ 마치 눈동자들이 네게 날아가 박히기라도 할 것만 같고/ 단 한 번의 입맞춤이 네 입을 꼭 닫아 버리기라도 할 것만/ 같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의 영혼으로 가득 차 있듯이/ 너는 그것들 가운데서 솟아나와, 나의 영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꿈의 나비여, 너는 내 영혼을 닮았다./ 너는 우수라는 단어를 닮았다.// 나는 네가 말이 없을 때가 좋다 그러면 너는 저만치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너는 투덜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자장가 속의 나비여./ 그리고 너는 저 멀리서 내게 귀 기울이고 있지만, 내 음성이/ 쫓아가 닿지 못한다./ 부디 네 침묵과 함께 나도 침묵할 수 있게 하라.// 등불처럼 밝게, 반지처럼 소박하게/ 내가 너의 침묵과 함께 네게 말할 수 있게 해다오./ 너는 아무 말 없이 별만 초롱초롱 빛나는 밤과 갔다./ 너의 침묵은 그토록 머나먼 곳의 소박한 어느 별의 것이다.// 마치 네가 없는 것만 같아서 나는 네가 말이 없을 때가 좋다./ 너는 곧 죽을 듯이 저만치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럴 때면 한 마디의 말, 한 자락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그리고 나는 즐겁다, 확실치는 않아도 무언가 때문에 즐겁기만/ 하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4 / 파블로 네루다
매일 너는 우주의 빛과 장난을 한다./ 예민한 방문객이여, 너는 꽃 속과 물 속으로 도착한다./ 맨날 그렇듯 내 손 사이의 포도송이처럼/ 내가 괴롭히는 이 티없는 작은 머리보다 더한 존재가 바로/ 너다.// 내 너를 사랑하는 순간부터 너는 그 누구도 닮지 않은 존재./ 노란 화관들 사이에서 내가 너를 가질 수 있게 하여 다오./ 그 누가 저 남쪽 별들 사이에 연기 글씨로 네 이름을 쓰겠는가?/ 아, 아직까지 네가 존재하지 않던 그때, 진정 네 모습은/ 어땠는지 기억하게 해다오.// 별안간 바람이 울부짖으며 나의 닫힌 창문을 때린다./ 하늘은 우울한 물고기들로 엉켜 있는 그물./ 여기엔 모두가 저마다 온갖 바람을 일으키러 온다, 모든/ 바람들을./ 비는 옷을 벗는다.// 새들은 도망치듯 날아간다./ 바람이다. 바람이다.// 나는 사람들의 힘에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폭풍우는 어두운 잎새들을 소용돌이로 휘몰아가고/ 엊저녁 하늘에 매어 둔 배들을 모조리 풀어 놓는다.// 너는 여기 있구나. 아 너는 도망가지 않는구나./ 너는 마지막 비명까지도 내게 응답하리니./ 잔뜩 겁먹은 듯이, 내 곁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으라./ 그래도 네 눈동자엔 낯선 그늘이 가끔씩 스쳐 갔다.// 지금도, 지금까지 여전히, 작은 여인아, 너는 내게 인동 덩굴을/ 가져오면서,/ 향기 가득한 젖가슴까지 간직하고 있구나./ 슬픈 바람이 나비를 죽여 가며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사이/ 나는 너를 사랑하고, 나의 희열은 네 살구 입술을 깨문다.// 나에게, 내 외롭고 거친 영혼에, 모두가 멀리하는/ 나의 이름에 친숙해졌다는 것으로 너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리라./ 우린 보았다 우리의 눈이 입맞출 때 자꾸만 끓어 오르던 샛별과/ 우리 머리 위를 맴도는 부채 속으로 꼬인 몸이 풀려 가는/ 황혼을./ 너는 사랑으로 만질 때면 나의 단어는 네 위에 비로 내린다./ 나는 네 몸이 별에 잘 말려진 진주 조개이던 시절부터/ 사랑했다./ 지금은 네가 우주의 여주인이라는 것까지도 믿는다./ 내 너에게, 즐거운 꽃과, 물메꽃, 짙은 색 개암나무 열매와/ 거친 입맞춤을 광주리 채 저 산에서 가져다 주마.// 정말로 나는 봄이 벚나무와 하는 행위를/ 너와 함께 하고 싶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3 / 파블로 네루다
나는 불의 십자가로 네 몸에/ 하얀 지도를 그려 왔다./ 두려워하면서도, 타오르는 갈증을 이기지 못하는 네 속으로, 네/ 뒤로/ 내 입은 몸을 숨겨 가면서 활보하는 한 마리 거미였어.// 슬프고도 감미로운 인형이여, 네가 슬퍼하지 않는다면 좋을,/ 황혼의 기슭에서 네게 해줄 이야기들./ 백조 한 마리, 나무 한 그루, 아득하고도 기쁜 그 무엇./ 포도송이의 시간, 과일이 여물고 열매 맺는 그런 시간.// 너를 사랑할 때부터 나의 삶은 시작됐다./ 꿈과 침묵이 교차하는 고독./ 바다와 슬픔 사이에 갇힌 채,/ 두 명의 꼼짝 않는 곤돌라 뱃사공 사이에서, 말없이, 헛소리를/ 지른다.// 입술과 목소리 사이에서 무언가 죽어 간다./ 새의 날개를 가진 그 무엇이, 고뇌와 망각의 그 무엇이./ 물을 붙잡아 두지 못하는 그물도./ 나의 인형이여, 떨리는 물방울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이 덧없는 단어들 사이에서 뭔가가 노래를 한다./ 뭔가가 노래를 한다. 뭔가가 목마른 내 입까지 올라온다./ 오 온갖 기쁨의 낱말로 너를 기릴 수 있을지니.// 노래하라, 끓어 오르라, 도주하라, 어느 미친 사내의 손 안에/ 든 鐘樓처럼./ 슬픈 나의 연인이여, 너는 갑자기 뭐가 되어 버린 것일까?/ 내가 그토록 무릅쓰고 추운 절절에 다다랐을 때/ 나의 심장은 밤꽃처럼 저절로 닫혀 버린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2 / 파블로 네루다
내 심장을 위해선 너의 가슴 하나면 족하고,/ 네 자유를 위해선 나의 날개면 족하나니./ 네 영혼 위에 내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내 입으로부터 하늘까지 가 닿으리다.// 네 안에 나날의 환상이 존재한다./ 이슬이 꽃술에 가 닿듯 네가 다가온다./ 지금 너의 부재로 너는 수평선을 파내고 있다./ 파도처럼 영원한 도망길에 있다.// 내가 얘기한 적 있지 소나무처럼 혹은 돛대처럼/ 네가 바람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고./ 꼭 그들처럼 너는 저 높이 있으면서 아무 말도 없다./ 마치 어떤 여행처럼, 너는 이내 슬픔에 젖어든다.// 오랜 길처럼 정다운 여인아./ 메아리와 향수에 젖은 목소리들이 네게 거주하고 있다./ 내가 잠깨운 너의 영혼 속에 잠들어 있던 새들은/ 이따금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도망가 버린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1 / 파블로 네루다
거의 하늘 바깥 쪽의 두 개의 산 사이로 반달이 닻을 내린다./ 빙빙 맴을 돌며, 헤매이는 밤은, 눈동자의 웅덩이./ 그런데 그 웅덩이엔 얼마나 많은 별들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는가.// 내 눈썹 사이에 애도의 십자가를 긋는가 하면, 도망도 친다./ 푸른 금속의 화로, 소리 없는 싸움의 밤들,/ 나의 심장은 미쳐 날아 다니는 놈처럼, 빙글빙글 싸돌아/ 다닌다./ 그토록 먼 곳에서 온, 그토록 머나먼 곳에서 데려온 소녀요./ 이따금 너의 눈길이 하늘 아래로 반짝인다./ 한탄스러움, 폭풍우, 분노의 소용돌이가/ 너를 붙잡지 못한 내 가슴 위를 휩쓸고 지나간다./ 묘지의 바람은 졸리우는 너의 뿌리를/ 실어 가서, 박살을 내어, 산산이 흩뿌린다./ 그 뿌리의 다른 쪽 거대한 나무등걸도 송두리채 뽑아 버린다./ 하지만 너는, 맑디 맑은 소녀, 煙氣의 질문, 이삭./ 빛나는 나뭇잎으로 바람을 일으키던 소녀였어./ 한밤의 산 뒤켠으로는 백합의 불꽃./ 아 나는 지금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녀는 이 세상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여자였다./ 네가 내 가슴팍에 난도질을 하고 떠나가 버린 안타까움,/ 이제는 그녀가 미소짓지 않았다 다른 길을 따라나서는 시간,/ 폭풍우가 땅에 묻어 버렸지, 바로 그녀에게 가 닿으려는,/ 그녀를 슬프게 하려는, 종소리들 그리고 아뜩한 飛上을.// 아아, 길을 계속해서 가는 거다. 이슬 사이로 눈을 활짝 열고,/ 고뇌와 죽음과 겨울을 막아 주지 않는,/ 모든 것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가는 길을.//

 

스무 개의 사랑의 시 10 / 파블로 네루다
우리는 이 황혼까지도 잃어버렸다./ 푸른 밤이 이 세상 위에 내리는 동안/ 아무도 오늘 오후에 맞잡은 우리의 손을 보지 못했다.// 나는 창문으로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머언 언덕들 위로 지고 있는 태양의 축제를.// 가끔씩 마치 동전 한 닢만큼하게/ 내 손 사이에서 한 조각 해가 타오르고 있었다.// 네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그 슬품 때문에/ 질식할 듯한 영혼으로 나는 너를 그리워했었다.// 그런데, 너는 어디 있었던 것일까?/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것일까?/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슬퍼할 때나, 네가 저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면,/ 왜 사랑의 아픔은 내게로만 다가오려 하는 것일까?// 황혼 속에서 항상 지니고 있던 책이 떨어져 버렸고,/ 상처 입은 한 마리 개처럼 내 망토는 나의 발 아래로 굴러/ 내렸다.// 항상 그렇지, 황혼이 굳은 표정을 지워 버리며 질주하는/ 그런 하오면은 항상 너는 멀어져만 간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9 / 파블로 네루다
송진 냄새와, 여름날의 오랜 입맞춤에 취하여,/ 둔중한 바다의 광포함에 휩싸여,/ 갸냘픈 대낮의 죽음을 향해 추설 수 없는 몸으로/ 나는 장미의 돛단배를 조종한다.// 창백하게 나의 탐욕스런 물결에 옭아매여,/ 고통스러운 잿빛 소리의 옷을 아직도 걸치고,/ 버림받은 물거품의 슬픈 장식을 단 채,/ 활짝 벗어제낀 날씨의 시디신 향기 속을 항해한다.// 견고한 정열에 휩싸여, 내 단 하나의 파도를 타고 간다,/ 밤인가 하면, 낮이고, 끓어오르는가 하면, 차가워지더니,/ 갑자기/ 싱싱한 허리 같은 하이얗고 달콤한,/ 행복한 섬들의 기슭에 잠들어 있다.// 입맞춤의 옷을 입은 내 몸은 축축한 밤에/ 전기로 감전된 듯 미친 듯이 떨려 오고,/ 마침내는 몇 개의 꿈고/ 내게 열심히 그 일을 해대는 몽롱한 장미들로 電離된다.// 물 위에서, 표면의 물결 한가운데서/ 낮은 하늘 빛의 힘 속에서 빨랐다 느렸다 하며,/ 한없이 내 영혼에 달라붙어 있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평행한 네 육체는 스스로 내 품에 내맡겨 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8 / 파블로 네루다
하얀 꿀벌이여, 너는 꿀에 취한 채, 내 영혼 속에서 윙윙거리고/ 연기의 느릿한 螺旋을 따라 몸을 뒤튼다.// 나는 절망에 빠진 사람, 메아리 없는 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 그리고 한때는 그 모든 것을 가졌던/ 사람.// 마지막 밧줄이여, 나의 마지막 불안은 네 안에서 삐걱거린다./ 너는 나의 황량한 대지의 마지막 장미꽃,// 아 말 없는 여인아!// 네 깊은 눈을 감으라. 거기 밤이 나래를 펴리니./ 아아 네 몸에서 겁에 질린 딱딱한 모습을 벗어 던져 버려라.// 너는 밤이 날개를 치는 깊디 깊은 눈을 가지고 있다./ 신선한 J의 품속과 장미의 무릎을 가졌다.// 네 젖가슴은 하얀 달팽이들을 닮았다./ 네 뱃속에는 그림자 나비 한 마리가 잠자러 들어와 있다.// 아 말 없는 여인다!// 나 여기 너 없는 고독을 안고 있다./ 비가 내린다, 바닷바람은 헤매이는 갈매기들을 사냥한다.// 물은 젖은 길을 따라 맨발로 걸어간다./ 저 나무의 이파리들은 병자들처럼 탄식을 한다.// 하얀 꿀벌이여, 지금은 없지만, 너는 아직껏 내 영혼 속에서/ 윙윙거린다./ 갸냘프고 말이 없는 너는 시간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아 말 없는 여인아!//

 

스무 개의 사랑의 시 7 / 파블로 네루다
하오에는 몸을 숙여 바다 같은 네 눈동자 위로/ 나는 슬픈 그물을 던진다.// 거기서 조난자처럼 팔을 휘젓고 있는 나의 고독이/ 가장 높은 화롯불에서 온몸을 펼치고 타오른다.// 바다가 등대 기슭에 그러듯 이별의/ 聖油를 베푸는 네 넋잃은 눈동자 위로 나는 붉은 자국을/ 남긴다.// 너는 오직 어두움만 지키는구나, 저 먼 곳의, 나의 여자여,/ 너의 눈길로부터 가끔씩 놀라움의 해변이 솟아난다.// 하오에는 몸을 숙여 나는 슬픈 그물을 던진다/ 대양 같은 네 눈동자를 흔들어 대는 저 바다로.// 밤새들은 너를 사랑할 때의 내 영혼처럼/ 빛나는 첫 별들을 부리로 쪼아 대고 있다.// 들판 위로 푸른 이삭들을 흩뿌리며/ 밤은 우울한 암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6 / 파블로 네루다
지난 가을 네가 어떤 존재였는지 난 오늘도 너를 기억해 낸다./ 너는 회색 베레모였고 고요 속의 심장이었다./ 네 두 눈에서는 황혼녁의 불꽃들이 싸우고 있었지./ 그리고 나뭇잎들은 네 영혼의 물결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너는 메꽃 덩굴처럼 내 품에 꼭 매달려 있었지./ 나뭇잎들은 네 느릿하고 고용한 목소리를 끌어 모으고 있었어./ 나의 타는 듯한 목마름은 인사불성의 화롯불 속에서 끓어/ 오르고 있었지./ 푸른 빛 달콤한 히아신스가 내 영혼 위에서 몸을 뒤채이고/ 있었어.// 네 두 눈이 여행을 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가을은 저 멀리/ 있었다./ 회색 베레모여, 새 같은 음성이여 그리고 나의 깊숙한 갈망이/ 이주하여 가곤 하였고 발갛게 뜬 숯불처럼/ 나의 즐거운 입맞춤들이 내려 앉고는 하던 심장의 거처여.// 뱃머리에서 보는 하늘. 언덕에서 보는 들판./ 너의 추억은 빛의, 연기의 침묵하는 연못의 것!/ 네 눈동자의 저 너머에서는 황혼이 끓어 오르고 있었지./ 가을의 마른 낙엽들은 네 영혼을 맴돌고 있었어.//

 

스무 개의 사랑의 시 5 / 파블로 네루다
네가 내 얘길 들을 수 있도록/ 나의 단어들은/ 해변의 갈매기 발자국들처럼/ 때때로 갸냘퍼지곤 한다.// 목걸이, 포도 같은/ 네 보드라운 손길을 위한 술취한 방울.// 그리고 머나먼 나의 단어들을 바라본다./ 네 것들이 내 것보다 많다./ 그들은 덩굴나무처럼, 나의 오랜 고통을 기어오른다./ 축축한 담벼락을 따라 그렇게 매달려 오른다./ 이런 피투성이 장난의 죄인은 바로 너.// 단어들은 내 어두운 은신처로부터 도망간다./ 너는 그 모든 것을 채워 준다. 그 모두를 가득 채운다./ 너보다도 먼저 단어들은 네 고독에 살고 있었고/ 너보다도 많이 내 슬픔에 친숙해져 있다.// 네가 내 얘길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 단어들이 너/ 들으라고/ 내가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을 얘기해 주길 나는 지금 기원하고/ 있다.// 고뇌의 바람은 아직까지도 종종 단어들을 질질 끌고 다닌다./ 꿈속의 폭풍은 지금까지도 종종 단어들을 쓰러뜨린다./ 나의 고통스런 목소리에서 너는 다른 음성들만 듣고 있다./ 해묵은 입들의 오열, 해묵은 바램의 피,/ 나를 사랑해 다오, 벗이여, 나를 버리지 말아 다오, 나를/ 따라와 다오./ 이 고뇌의 파도 속에서 나를 따라와 다오, 벗이여.// 그러나 나의 단어들은 너의 사랑으로 차츰 물들어 간다./ 너는 그 모든 것을 차지한다. 그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다.// 포도처럼 보드라운, 네 하얀 손길을 위해/ 나는 모든 단어들을 묶어 한없는 목걸이를 만든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4 / 파블로 네루다
여름의 심장 속에/ 폭풍우 가득한 아침입니다.// 이별의 하얀 손수건처럼 흘러 가는 구름을,/ 바람은 방랑자의 손길로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무수한 바람의 심장은/ 사랑에 빠진 우리의 침묵 위에 고동치고 있습니다.// 싸움과 노래로 가득한 혓바닥처럼/ 오케스트라처럼 신성하게 나무 사이로 휘잉 소리냅니다.// 바람은 날쌘 도적처럼 낙엽을 훑어 가고/ 고동치는 화살을 새들로부터 빗나가게 합니다.// 포말도 일지 않는 파도 속에서, 무게도 없는 근원 속에서,/ 사위어 버린 불길 속에서, 바람은 아침을 허물어 버립니다.// 여름 바람의 문간에서 패배당한/ 입맞춤의 부피는 산산이 부서져 물 속에 잠깁니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3 / 파블로 네루다
아 소나무 숲의 광막함, 부서져 내리는 파도의 소문,/ 빛의 느릿한 장난, 고독의 종소리,/ 네 눈 속으로 가라앉는 황혼, 인형이여,/ 대지의 소라고둥이여, 네 안에서 대지는 노래하나니!// 네 안에서 강물이 노래하면 내 영혼은 그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러길 네가 바랄 게고 그곳은 네가 좋아하는 곳이기에./ 네 희망의 활에 재여진 나의 행로를 가르쳐 다오/ 그러면 미친 듯이 나의 화살을 무더기로 쏘아 보내리니.// 나를 맴도는 네 안개 허리를 보고 있으면/ 너의 침묵은 쫓기는 듯한 나의 시간들을 힘들게 한다,/ 너는 투명한 돌맹이 같은 품을 간직한 존재/ 그곳에 나의 입맞춤이 닻을 내리고 음습한 고뇌가 깃든다.// 아 사랑이 물들여 곱게 접어 놓은 너의 신비한 목소리는/ 해거름이면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며 죽어 가고 있구나!/ 마음 깊은 곳의 시간 속에서 나는 보았다/ 바람의 입 속에서 꺽이고 마는 들판의 이삭들을.//

 

스무 개의 사랑의 시 2 / 파블로 네루다
그 죽음의 불꽃 속에 빛은 너를 휘감아 돈다./ 네 주위를 선회하고 있는/ 황혼의 오랜 소용돌이를 마주한 채/ 정신 없이 빠져들어, 고통 속에 창백한 모습으로,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여인아.// 벙어리여, 나의 친구여,/ 이 죽음의 시간에 외로움의 한가운데 홀로/ 삶의 불꽃들로 가득 차 있는,/ 무너져 내린 하루의 유일한 상속녀여.// 태양에서 꽃 한 송이가 네 검은 옷자락 위로 떨어진다./ 거대한 뿌리들이 밤으로부터/ 네 영혼으로부터 갑자기 자라나고,/ 네게서 갓 태어난 창백하고 푸른 민족의/ 자양분이 되기 위하여/ 네 속의 감추어진 것들은 바깥으로 되돌아 나온다.// 검은 빛과 황금빛 속에 생겨나는 圓光의 노예 여인은/ 오 거대하고 풍요로우며 자석처럼 마음을 끌어당기나니/ 오만한 여인, 그녀가 갈구하여 얻는 그토록 생생한 피조물로/ 하여/ 꽃들은 풀이 죽고, 그녀는 슬픔으로 가득하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한개의 절망의 노래 1 / 파블로 네루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그리고 절망의 노래// 스무 개의 사랑의 시// 여자의 몸, 하얀 구릉, 하얀 허벅지,/ 너를 내어주는 모습은 꼭 이 세상을 빼어닮았구나./ 우악스런 농사꾼 내 몸뚱이는 너를 파헤쳐/ 대지의 밑바닥에서 아들놈이 튀어나오게 한다.// 터널처럼 나는 홀로였다. 새들은 내게서 도망쳤고/ 밤은 엄청난 침략으로 내게 쳐들어왔다./ 내가 살아 남기 위해 너를 벼리었다 무기처럼,/ 내 활에 재어진 화살처럼, 내 投石機의 돌맹이처럼.// 그러나 복수의 시간은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가죽의, 이끼의 갈증나고 단단한 젖의 몸./ 아 젖가슴의 사발들! 아 넋나간 눈동자!/ 아 陰部의 장미들! 아 너의 느릿한 슬픈 음성!// 내 여인의 몸이여, 나는 네가 상냥하길 고집하리라./ 나의 목마름, 끝없는 나의 번민, 막막한 나의 行路여!/ 영원한 목마름이 계속되는 어두운 水路들,/ 끊이지 않는 피로, 그리고 한없는 고통.//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의 명언들


사람의 의지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매일 당신은 세상의 빛을 가지고 논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 자신에게 우아함를 찾지 않는 사람 천천히 죽는 중이다.

모든 꽃을 자를 수는 있지만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봄이 벚나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고, 하여튼 너와 함께 하고 싶어.

마치 속에서부터 타오르듯, 달빛이 그대 살결을 따라 흐르네.

웃음은 영혼의 언어이다.

나는 너를 어떤 어두운 것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사랑한다. 비밀리에, 그림자와 영혼 사이에서 
아무 것도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지 않는다면, 적어도 사랑은 우리를 삶으로부터 구해주어야 한다.

사랑은 너무 짧고, 망각은 너무 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을 살리는 불꽃이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년~1973년): 칠레의 민중 시인, 사회주의 정치가
본명은 리카르도 엘리에세르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스페인어: Ricardo Eliécer Neftalí Reyes Basoalto)이다. 7, 8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3세 때에는 신문에 작품을 발표했다. 14세 때 체코의 시인 얀 네루다의 시를 탐독하고, 1920년부터는 '파블로 네루다'를 필명으로 쓰기 시작했다. 소년 시절부터 눈부신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 1921년에 〈축제의 노래〉 등을 발표하여 시단의 인정을 받았다. 1923년에는 시집 《변천해가는 것》을 출판하여 시단에서의 위치를 다졌다. 1950년에는 멕시코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노래한 서사시집 《위대한 노래》를 발표했다. 여기에 수록된 장시 〈나무꾼이여, 눈을 떠라〉로 1950년 스탈린 국제평화상을 받았다. 70년에 아옌데 인민연합 정권이 수립된 후 주(駐)프랑스 대사가 되었고,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 9월의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자, 병상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시집 《기본적인 오드》, 《세계의 종말》, 《불타는 칼》 등이 있다. 20세기 가장 대표적인 시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파블로 네루다

[ 1945.7 칠레공산당 입당, 박수갈채와 가시밭길의 삶을 함께 걷다 ] “네루다의 시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의 생동이다”라고 정현종 시인은 말했다. 민용태 시인은 네루다 시의 생동감을 한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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