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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생쥐 / 강호형

부흐고비 2021. 6. 4. 13:21

날씨가 추워지면서 쥐들이 극성을 부렸다. 밤이면 다락과 천장에서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소리로 가늠하건대 쥐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요, 크기로도 같은 또래가 아닌 것 같았다. 우르르 쾅쾅 호기 있게 내달리는 놈은 체격도 당당한 수놈일 터이고 같은 중량감이라도 조금 조심스러운 놈은 암놈. 그리고 그 뒤를 쪼르르 따르는 놈들은 그들의 새끼일시 분명한 생쥐들일 것이었다. 헛간 어디에 살던 쥐 일가가 이사를 와서 집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양이다. 모처럼 그럴듯한 집을 마련한 가장의 시위에 온 가족이 맞장구라도 치는 것일까?

그리하여 천장과 다락을 이 무뢰한들에게 전세 한 푼 못 받고 고스란히 내주게 된 나는 내 가족에게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쥐들의 잔치는 집들이로만 끝나지 않았다. 해만 지면 굿판이요, 밤마다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심약한 아내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가 예사요, 아이들도 비명을 지르며 내 얼굴만 쳐다보게 되니 가장의 체통이 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빗자루로 천장을 쿵쿵 울려보았다. 잠시 동안은 효과가 있었다. 다시 우당탕거리면 전지불을 켜 들고 다락으로 올라가 발도 쾅쾅 구르고 뒷뒷 소리도 질러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아비의 무력(無力)함을 간파한 딸아이가 묘안을 내놓았다. 고양이 소리를 내보자는 것이었다.

“냐-옹, 냐-옹.”

과연 효과가 있었다. 하여, 천장에서 쥐소리가 나기만 하면 온 가족이 고양이가 되어 울어대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러나 호락호락 속아넘어갈 쥐들이 아니었다. 처음 몇 번은 속는 듯도 하였으나 나중에는 고양이 소리도 쥐들의 굿판에 신명을 돋구는 풍악에 불과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었다. 몰아낼 방법이 없다면 박멸이 상책일밖에.

마침 쥐잡는 날이 정해지고 반장이 쥐약을 돌렸다. 설명서대로 쌀과 빵과 멸치를 쥐약에 적셔 천장과 다락 곳곳에 진설해 놓고 때를 기다렸다.

첫날은 실패였다. 의심이 많은 쥐들인지라 낯선 성찬에 의혹을 품고 기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놈들의 조심서도 진미의 유혹만은 끝내 뿌리칠 수가 없었던지 다음날 마침내 변을 당하고야 말았다. 예의 요란한 굿판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천장 한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이는 것이었다. 펄쩍 펄쩏 뛰는 듯도 하고 데굴데굴 구르는 듯도 한 단말마의 몸부림이었다. 우리 일가는 마치 라디오 드라마의 무서운 효과음을 들을 때처럼 눈들이 둥그레졌다.

필사적인 몸부림이 한참이나 계속되더니 가느다란 경련을 끝으로 조용히 잦아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적- 그야말로 쥐죽은 듯 조용했다.

예기치 않은 쥐의 임종을 감지한 우리 일가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숙연한 침묵 속엔 공포감마저 감돌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거의 울상이었다.

독살된 쥐는 세 마리였다. 아비인 듯한 큰 놈 한 마리와 생쥐 두 마리였다. 이후로 천장과 다락은 조용했다. 나머지 쥐들도 가족이 독살당한 흉가를 저주하며 어디론가 떠난 모양이었다.

아내는 다락에 흩어진 쥐똥을 쓸어내며 혀를 끌끌 찼다. 죽은 놈도 불쌍하지만 남은 어미와 새끼들이 가엾다는 것이었다. 자식 기르는 어미의 심정이 가슴에 와 닿아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런 우리 부부의 교감이 얼마나 유치한 감상(感傷)이었던가가 곧 드러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생쥐 두 마리가 안방까지 침입한 것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놈들은 숫제 안하무인이었다. 불만 끄면 발치께로 머리맡으로 멋대로 기어 다니며 닥치는 대로 쏠고 갉고 하는 것이었다. 놈들의 그 가증스런 소리를 참아낸다는 것은 신경 한 가닥을 갉아 먹히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누우면 생쥐들이 발가락이나 귓부리를 갉아먹을 것이라며 아내는 이불을 감고 앉아 벌벌 떨었다. 가족을 읽은 쥐들이 원수를 갚으러 왔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리하여 심야의 쥐 소탕작전 제2라운드가 벌어지게 되었다.

총채와 낚싯대를 동원하녀 휘두르고 들쑤시고 하기 한참 만에 한 놈을 자루 속에 가두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나머지 한 놈의 은신술은 가히 신출귀몰이었다. 숨을 만한 곳은 샅샅이 뒤지고, 땅땅 두드려도 보았지만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느 구멍으로 달아났으려니 하고 불을 끄고 누우면 요귀처럼 다시 나타나 바스락대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아예 장롱, 화장대, 문갑 등속을 몽땅 끌어내고 묵은 먼지까지 쓸어냈다. 이제는 빈대 한 마리 숨을 곳이 없을 듯한데도 놈은 보이지 않았다. 망연자실, 담배 한 대를 붙여 물고 궁리 중인데 이상한 낌새가 보이는 것이었다. 바람도 없는데 커튼 자락이 가볍게 움직인 것이다. 움직인 부분에 시선을 꽂은 채 살금살금 기어가 사정없이 움켜잡았다. 뭉클! 앗 뜨거워하는 기분이었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고, 그 징그러운 감촉을 창밖으로 팽개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밖에는 희끗희끗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놈은 척추라도 다쳤는지 비척비척 눈 위를 기어갔다. 아내도 다가와 내비친 불빛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생쥐를 바라보며 몸서리를 쳤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가리니 방은 아늑했다. 방금 있었던 밖의 일이 딴 세상일 같았다.

나는 한순간 개선장군이나 된 양 의기양양했지만, 아내는 왜 그런지 몹시 지친 표정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아내의 그런 표정을 보노라니 전염이라도 된 듯 나 역시 맥이 풀려, 흩어진 물건들은 치울 생각도 못한 채 생쥐가 사라져간 창문 쪽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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