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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머니의 능력 / 정유순

부흐고비 2021. 6. 25. 13:31

1950년대 중반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어느 사회심리학자는 전쟁증후군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한국의 젊은이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데 비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비교분석하기 위해 현지 조사차 한국에 왔으나, 각종 학술자료와 문헌을 조사하여도 그 원인을 밝혀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행이나 해 보려고 삼복더위에 자동차를 타고 포장이 안 된 신작로를 달리다 땀을 식힐 겸 그늘이 좋은 도로변에서 간식 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때 지열地熱에 의해 땅에서는 봄날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솟아나는 안개 속에 사람 같은 물체가 움직이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더 괴이한 것은 머리 위에는 자기 덩치만한 물건이 가득 찬 광주리를 손도 대지 않은 채 머리에 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등에는 어린애가 포대기에 싸여 입을 반쯤 벌리고 눈이 감긴 머리는 뒤로 젖혀져 있고 손발은 포대기 밖으로 축 처져 있었다. 그는 그녀가 죽은 애의 매장을 하러 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뭔가 한마디 해 주려고 바짝 다가간 순간 이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잠자는 표정이 마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무릎을 탁치며 바로 이거다. 한국의 젊은이가 강한 것은 저렇게 불편한 어머니의 등에서 편안함과 안식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무한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불굴의 정신력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 시작되었다고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나도 어려서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객지에 정착하면서 어머니의 등에서 받은 사랑이 나를 강하게 키워 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갓난아이 때는 농삿일로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등에 들쳐 업은 채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들길과 산길로 수없이 다녔을 것이다. 그 당시에 거의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던 홍역紅疫이라도 걸리면 삼 십리 길을 멀다 않고 시내 병원으로 달려갔을 것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는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던 어머니의 잔소리 “적게 먹고 적게 싸라.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누구한테도 막말하지 마라. 그리고 자가운전을 시작한 뒤부터는 길을 가도 가운데로만 가라.” 이 잔소리가 나를 키워 준 자양분 이었다. 나이가 들어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알 때쯤 되니 세상사는 철학이 이 잔소리 속에 다 묻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가신지 벌써 15년 이상이 훌쩍 지났다. 명절 때는 물론 세상사 어렵고 무언가 고민스러울 때마다 고향 선산을 찾아 부모님 산소에 들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되새기며 참으로 많은 대화를 속삭인다. 그러면 가슴에 뭉쳐 있던 것들이 봄눈 녹듯 사르르 속이 확 풀리는 것만 같다.

옛날에 다 그렇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정식으로 학교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소위 무학자이시다. 열일곱에 우리 집으로 시집오셔서 평생 그 자리에서 농사만 짓고 바깥세상 구경 한번 제대로 해 보신 경험이 없으셨지만, 자식에게 건네는 그 잔소리는 나의 가슴에 자리를 굳건히 잡고 있다.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집에 와 계실 때 내 아내인 며느리가 한글 한 자 한 자 가리켜 드리면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신기하게 읽어보시고 시내 간판을 소리 내어 읽어도 보신다. 이런 어머니의 잔소리는 소위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이 자식에게 고비마다 힘이 되어 주는 어머니의 참 능력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이 많아 달라진 것 같다. 언제부턴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핵가족화되면서 자녀 교육에 경제적 부담을 느껴서인지 출산율이 저조해 졌다. 또한, 어머니들의 사회 경제활동으로 자녀 돌 볼 시간이 부족해진 면도 있으나, 옛날같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의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이웃과의 경쟁 관계에서 발생하는 과잉사랑으로 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약해진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포대기 대신 값 비싼 외제유모차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내 아이는 사회의 최고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맹목적인 욕심이 더 나약한 아이로 만드는 원인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언젠가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선생님 하시는 분과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분 말씀이 요즘 아이들은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애들도 있고,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즉 자기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엄마한테 기대는 애들이 많아서 아이가 잘못해도 엄하게 지도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또한, 지방에서 회사를 경영하시는 사장님도 요즘 신입사원을 뽑으면 객지 생활을 해야 하는 사원에게 무척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기숙사나 숙소를 마련해 줘도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모두 집에 계시는 엄마로부터 조언을 들어야 하고 심지어는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표를 내야 할 때도 엄마를 통해서 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거리 지원자는 다시 생각한다는 것이다. 군대 내에서도 요즈음은 소대장이나 중대장 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엄마들의 간섭이 이만저만 아니란다. 군대에 갈 나이이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나이인데도 말이다.

이제부터 무조건 보호하고 사랑만 주는 엄마가 아니라 분별 있고 진정한 사랑으로 강한 아이로 키워 주는 엄한 어머니가 다시 필요한 것 같다. 아이들이 장성하여 어머니의 품을 일찍 떠나 사회로 진출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때다. 그래야 어머니의 진정한 능력이 발휘되어 이 나라 이 사회를 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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