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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시정(視程)거리 / 정유순

부흐고비 2021. 6. 25. 13:33

물체의 형상을 인식하는 눈의 능력’을 시력(視力)이라고 하는데, 안과병원에서 안경을 쓰지 않고 검사한 결과 보통1.0 이상이면 시력이 좋다고 하고, 2.0이면 아주 좋다고 한다. 시력측정이 가능한지 모르지만 몽골의 초원에 사는 유목민은 시력이 5.0정도 된다고 한다. 십리(약4Km)밖의 늑대를 육안으로 발견하여 가축에 대한 보호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정말 놀라운 시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을 들어 앞을 내다볼 때 볼 수 있는 거리는 과연 얼마나 될까?‘육안으로 볼 수 있는 최대 거리’를 시정(視程)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기의 혼탁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비가 개인 후 맑은 날에 ‘오늘의 시정거리는 얼마’라고 일기예보 때 발표하는 것을 가끔 본다. 아주 좋은 날에는 40Km이상 떨어진 산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 정부에서 추진하는 서울 공기 질의 목표도 남산에서 인천 앞바다를 육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정도의 시정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도시에서 사는 아이와 시골에서 사는 아이의 시정거리가 차이가 난다고 한다. 하늘의 맑고 흐림에 차이가 있겠지만 시골아이의 시정거리가 더 멀다고 한다. 우선 시골에서는 탁 트인 시원함이 앞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물을 볼 수가 있어 자연을 이해하는 폭이 넓고 생각하는 마음이 깊다고 한다. 밤하늘의 별은 동심의 세계다. 그러나 도시아이들은 시골아이처럼 할 수 없다고 한다.

문밖에 나서면 위험한 자동차의 질주 때문에 멀리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멀리 본다고 해도 높은 빌딩들이 시야를 가리고, 하늘을 바라보아도 좁은 하늘만 뿌옇게 보인단다. 밤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으면 별을 보기도 힘들다. 앞을 볼 수 있는 순간 능력이 100m를 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아이들은 이해타산이 빠르고 순간 대처능력이 앞선다.

그러나 사물을 깊게 보는 능력이 떨어지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보다는 자기주장을 앞세워 남을 설득하려는 성질이 강하여 충돌이 잦다고도 한다. 남이 자기에게 하는 배려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감사한 마음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사람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깐족이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토라지는 경향(傾向)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눈을 들면 탁 트인 시선으로 하늘과 땅을 보고, 산과 들을 벗 삼아 숲속을 거닐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자연을 노래했던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따르는 사람들이 많고 지도력이 뛰어나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아마 깊은 이해심으로 남의 허물을 탓하기 보다는 허물이 되는 원인을 볼 줄 아는 혜안(慧眼)이 있어 그러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한다.” 어느 공익광고에 나오는 방송멘트의 일부다. 여기에서 가리키는 부모는 누구이고, 학부모는 누구인가? 탁 트인 시야를 가진 시골 사람과 좁은 시야를 가진 도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즈음 애기가 태어나서 말을 배울 정도만 되면 유아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영어 미술 음악학원 등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학원에 보내기가 바쁘고, 취학아동이 되어도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한다.

부모들도 사교육비가 너무 부담되어 아기 낳기가 무섭다고 한다. 혹시 아기들이 학원가기가 싫어서 세상에 태어나기를 거부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부에서도 저출산 문제로 고민이 많은 모양인데 뾰족한 묘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학부모들이여!

우리 아이들을 새장에만 가두지 말고 시야가 탁 트인 자연으로 내몰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고 스스로 자신의 특성을 찾아 멀리 볼 수 있는 아이로 키우면 어떨까.


▲ 정유순 수필가
저서 : 우리가 버린 봄 여름 가을 겨울, 정유순의 세상 걷기 외
전) 전주지방 환경청장,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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