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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오장환 시인

부흐고비 2021. 7. 16. 08:39

월향구천곡(月香九天曲) -슬픈 이야기 / 오장환
오렌지 껍질을 벗기면/ 손을 적신다./ 향(香)내가 난다.// 점잖은 사람 여러이 보이인 중(中)에 여럿은 웃고 떠드나/ 기녀(妓女)는 호올로/ 옛 사나이와 흡사한 모습을 찾고 있었다.// 점잖은 손들의 전(傳)하여 오는 풍습(風習)엔/ 계집의 손목을 만져주는 것,/ 기녀(妓女)는 푸른 얼굴 근심이 가득하도다./ 하─얗게 훈기는 냄새/ 분 냄새를 지니었도다.// 옛이야기 모양 거짓말을 잘하는 계집/ 너는 사슴처럼 차디찬 슬픔을 지니었구나.// 한나절 태극선(太極扇) 부치며/ 슬픈 노래, 너는 부른다/ 좁은 버선 맵시 단정히 앉아/ 무던히도 총총한 하루하루/ 옛 기억의 엷은 입술엔/ 포도(葡萄) 물이 젖어 있고나.// 물고기와 같은 입 하고/ 슬픈 노래, 너는 조용히 웃도다.// 화려한 옷깃으로도/ 쓸쓸한 마음은 가릴 수 없어/ 스란치마 땅에 끄을며 조심조심 춤을 추도다.// 순백(純白)하다는 소녀(少女)의 날이여!/ 그렇지만/ 너는 매운 회초리, 허기찬 금식(禁食)의 날/ 오─끌리어 왔다.// 슬픈 교육(敎育), 외로운 허영심(虛榮心)이여!/ 첫사람의 모습을 모듬 속에 찾으려 헤매는 것은/ 벌─써 첫사람은 아니라./ 잃어진 옛날로의 조각 진 꿈길이니/ 바싹 마른 종아리로/ 시들은 화심(花心)에/ 너는 향료(香料)를 물들이도다.// 슬픈 사람의 슬픈 옛일이여!/ 값진 패물로도/ 구차한 제 마음에 복수(復讎)는 할 바이 없고/ 다 먹은 과일처럼 이 틈에 끼어/ 꺼치거리는 옛 사랑/ 오─방탕(放蕩)한 귀공자(貴公子)!/ 기녀(妓女)는 조심조심 노래하도다. 춤을 추도다.// 졸리운 양, 춤추는 여자야!/ 세상(世上)은/ 몸에 이익하지도 않고/ 가미(加味)를 모르는 한약(漢藥)처럼 쓰고 틉틉하고나.//

여수(旅愁) / 오장환
여수에 잠겼을 때, 나에게는 쬐그만 희망도 숨어버린다./ 요령처럼 흔들리는 슬픈 마음이여!/ 요지경 속으로 나오는 좁은 세상에 이상스러운 세월들/ 나는 추억이 무성한 숲속에 섰다.// 요지경을 메고 다니는 늙은 장돌뱅이의 고달픈 주막꿈처럼/ 누덕누덕이 기워진 때묻은 추억,/ 신뢰할 만한 현실은 어디에 있느냐!/ 나는 시정배와 같이 현실을 모르며 아는 것처럼 믿고 있었다.// 괴로운 행려 속 외로이 쉬일 때이면/ 달팽이 깍질 틈에서 문밖을 내다보는 얄미운 노스타르자/ 너무나, 너무나, 뼈없는 마음으로/ 오 늬는 무슨 두 뿔따구를 휘저어보는 것이냐!//

해항도(海港圖) / 오장환
폐선(廢船)처럼 기울어진 고물상옥(古物商屋)에서는 늙은 선원(船員)이 추억(追憶)을 매매(賣買)하였다. 우중중─한 가로수(街路樹)와 목이 굵은 당견(唐犬)이 있는 충충한 해항(海港)의 거리는 지저분한 크레용의 그림처럼, 끝이 무디고. 시꺼먼 바다에는 여러 바다를 거쳐온 화물선(貨物船)이 정박(碇泊)하였다.// 값싼 반지요 골통같이 굵다란 파이프. 바다 바람을 쏘여 얼굴이 검푸러진 늙은 선원(船員)은 곧─잘 뱀을 놀린다. 한참 싸울 때에는 저 파이프로도 무기(武器)를 삼아왔다. 그러게 모자(帽子)를 쓰지 않는 항시(港市)의 청년(靑年)은 늙은 선원(船員)을 요지경처럼 싸고 두른다.// 나폴리(Naples)와 아든(Aden)과 싱가포르(Singapore). 늙은 선원(船員)은 항해표(航海表)와 같은 기억(記憶)을 더듬어본다. 해항(海港)의 가지가지 백색(白色), 청색(靑色) 작은 신호(信號)와, 영사관(領事館), 조계(租界)의 각가지 깃(旗)발을. 그리고 제 나라 말보다는 남의 나라 말에 능통(能通)하는 세관(稅關)의 젊은 관리(官吏)를. 바람에 날리는 흰 깃(旗)발처럼 Naples. Aden. Singapore. 그 항구(港口) 그 바―의 계집은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망명(亡命)한 귀족(貴族)에 어울려 풍성(豊盛)한 도박(賭博). 컴컴한 골목 뒤에선 눈자위가 시푸른 청인(淸人)이 괴춤을 훔칫거리면 길 밖으로 달리어간다. 홍등녀(紅燈女)의 교소(嬌笑), 간들어지기야. 생명수(生命水)! 생명수(生命水)! 과연(果然) 너는 아편(阿片)을 가졌다. 항시(港市)의 청년(靑年)들은 연기(煙氣)를 한숨처럼 품으며 억세인 손을 들어 타락(墮落)을 스스로히 술처럼 마신다.// 영양(榮養)이 생선(生鮮)가시처럼 달갑지 않는 해항(海港)의 밤이다. 늙은이야! 너도 수부(水夫)이냐? 나도 선원(船員)이다. 자─한 잔, 한 잔, 배에 있으면 육지(陸地)가 그립고, 뭍에선 바다가 그립다. 몹시도 컴컴하고 질척거리는 해항(海港)의 밤이다. 점점 깊은 숲속에 올빼미의 눈처럼 광채(光彩)가 생(生)하여 온다.//

어포(漁浦) / 오장환
어포의 등대는 鬼類의 불처럼 음습하였다. 어두운 밤이면 안개는 비처럼 나렸다. 불빛은 오히려 무서웁게 검은 등대를 튀겨놓는다. 구름에 지워지는 하현달도 한참 자옥한 안개에는 등대처럼 보였다. 돛폭이 충충한 박쥐의 나래처럼 펼쳐 있는 때, 돛폭이 어스름한 해적의 배처럼 어른거릴 때, 뜸 안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은 이나 적게 잡은 이나 함부로 튀전을 뽑았다.//

황혼 / 오장환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무 일도 안하면 일할 때보다는 야위어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 아래로 깔리어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기 ─ ㄴ 그림자는 群集[군집]의 大河[대하]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물어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이고 밟히며 스미어 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 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이 떠들며, 부산 ─ 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路燈[노등]을 본다. 띄엄띄엄 서 있는 포도 위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아 나의 마음을 傳書鳩[전서구]와 같이 날려보낸다. 정든 고샅.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 ─ 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혀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隋怠[타태]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성벽(城壁) / 오장환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은 편협한 야심처럼 검고 빽빽하거니. 그러나 보수(保守)는 진보를 허락치 않아 뜨거운 물 끼얹고 고춧가루 뿌리던 성벽은 오 래인 휴식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 않은 턱어리처럼 지저분하도다.//

전설(傳說) / 오장환
느티나무 속에선 올빼미가 울었다. 밤이면 운다. 항상(恒常), 음습한 바람은 얕게 나려앉았다.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올빼미는 동화(童話) 속에 산다. 동리(洞里) 아이들은 충충한 나무 밑을 무서워한다.//

온천지(溫泉地) / 오장환
온천지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 은(銀)빛 자동차(自動車)가 드나들었다. 늙은이나 어린애나 점잖은 신사(紳士)는, 꽃 같은 계집을 음식처럼 싣고 물탕을 온다. 젊은 계집이 물탕에서 개구리처럼 떠 보이는 것은 가장 좋다고 늙은 상인(商人)들은 저녁상 머리에서 떠들어댄다. 옴쟁이 땀쟁이 각색(各色) 더러운 피부병자(皮膚病者)가 모여든다고 신사(紳士)들은 투덜거리며 가족탕(家族湯)을 선약(先約)하였다.//

매음부(賣淫婦) / 오장환
푸른 입술. 어리운 한숨. 음습한 방안엔 술잔만 환하였다. 질척척한 풀섶과 같은 방안이다. 顯花植物과 같은 계집은 알 수 없는 웃음으로 제 마음도 속여온다. 항구, 항구, 들리며 술과 계집을 찾어다니는 시꺼믄 얼굴. 윤곽된 보헤미안의 절망적인 심화. - 퇴폐한 향연 속. 모두 다 오줌싸개 모양 비척어리며 얇게 떨었다. 괴로운 분노를 숨기어가며 ...... 젖가슴이 이미 싸늘한 젖가슴이 이미 싸늘한 매음녀는 파충류처럼 포복한다.//

고전(古典) / 오장환
전당포(典當鋪)에 고물상(古物商)이 지저분하게 늘어선 골목에는 가로등(街路燈)도 켜지는 않았다. 조금 높다란 포도(鋪道)도 깔리우지는 않았다. 조금 말쑥한 집과 조금 허름한 집은 모조리 충충하여서 바짝바짝 친밀(親密)하게는 늘어서 있다. 구멍 뚫린 속내의(內衣)를 팔러 온 사람, 구멍 뚫린 속내의(內衣)를 사러 온 사람. 충충한 길목으로는 검은 망토를 두른 주정꾼이 비틀거리고, 인력거(人力車) 위에선 차(車)와 함께 이미 하반신(下半身)이 썩어가는 기녀(妓女)들이 비단 내음새를 풍기어가며 가늘은 어깨를 흔들거렸다.//

어육(魚肉) / 오장환
신사(紳士)들은 식탁(食卓)에 죽은 어육(魚肉)을 올려놓고 입천장을 핥으며 낚시질에 대(對)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천기예보(天氣豫報)엔 일기(日氣)도 검어진다는(승합마차(乘合馬車)가 몹시 흔들리는) 기절(氣節)을, 신사(紳士)들은 바다로 간다고 떠들어댔다. 불순(不順)한 천후(天候)일수록 잘은 걸려드는 법(法)이라고 행랑아범더러 어류(魚類)들의 진기(珍奇)한 미끼, 파리나 지렁이를 잡아오라고 호령한다. 점잖은 신사(紳士)들은 어떠한 유희(遊戲)에서나 예절(禮節) 가운데에 행(行)하여졌다.//

독초(毒草) / 오장환
썩어문드러진 나무뿌리에서는 버섯들이 생겨난다. 썩은 나무뿌리의 냄새는 훗훗한 땅속에 묻히어 붉은 흙을 거멓게 살지워 놓는다. 버섯은 밤내어 이상(異常)한 빛깔을 내었다. 어두운 밤을 독(毒)한 색채(色彩)는 성좌(星座)를 향(向)하여 쏘아오른다. 혼란한 삿갓을 뒤집어쓴 가냘픈 버섯은 한자리에 무성(茂盛)히 솟아올라서 사념(思念)을 모르는 들쥐의 식욕(食慾)을 쏘을게 한다. 진한 병균(病菌)의 독기(毒氣)를 빨아들이어 자줏빛 빳빳하게 싸늘해지는 소동물(小動物)들의 인광(燐光)! 밤내어 밤내어 안개가 끼고 찬이슬 나려올 때면, 독(毒)한 풀에서는 요기(妖氣)의 광채(光彩)가 피직, 피직 다 타버리려는 기름불처럼 튀어나오고. 어둠 속에 시신(屍身)만이 겅충 서 있는 썩은 나무는 이상(異常)한 내음새를 몹시는 풍기며, 딱따구리는, 딱따구리는, 불길(不吉)한 까마귀처럼 밤눈을 밝혀가지고 병(病)든 나무의 뇌수(腦髓)를 쪼으고 있다. 쪼으고 있다.//

향수(鄕愁) / 오장환
어머니는 무슨 필요가 있기에 나를 맨든 것이냐! 나는 異港에 살고 어메는 고향에 있어 얕은 키를 더욱더 꼬부려가며 무수한 세월들을 흰머리칼처럼 날려보내며, 오 어메는 무슨, 죽을 때까지 윤락된 자식의 功名을 기두르는 것이냐. 충충한 세관의 창고를 기어달으며, 오늘도 나는 부두를 찾어나와 쑤왈쑤왈 지껄이는 이국 소년의 會話를 들으며, 한나절 나는 향수에 부다끼었다.// 어메야! 온 세상 그 많은 물건 중에서 단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메!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은 광동인이 싣고 다니는 충충한 밀항선. 검고 비린 바다 우에 휘이한 角燈이 비치울 때면, 나는 함부로 술과 싸움과 도박을 하다가 어메가 그리워 어둑어둑한 부두로 나오기도 하였다. 어매여! 아는가 어두운 밤에 부두를 헤매이는 사람을, 암말도 않고 고향, 고향을 그리우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모다 깊은 상처를 숨겨가지고 ...... 띠엄, 띄엄이, 헤어져 있는 사람들.// 암말도 않고 검은 그림자만 거니는 사람아! 서 있는 사람아! 늬가 예 땅을 그리워하는 것도, 내가 어메를 못 잊는 것도, 다 마찬가지 제 몸이 외로우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어메야! 오륙년이 넘두락 일자소식이없는 이 불효한 자식의 편지를, 너는 무슨 손꼽아 기두르는 것이냐. 나는 틈틈이 생각해본다. 너의 눈물을 ...... 오 어메는 무엇이었느냐! 너의 눈물은 몇 차례나 나의 불평과 결심을 죽여버렸고, 우는 듯, 웃는 듯, 나타나는 너의 환상에 나는 지금까지도 설운 마음을 끊이지는 못하여왔다. 편지라는 서로이 서러움을 하소하는 풍습이려니, 어메는 행방도 모르는 자식의 安在를 믿음이 좋다.//

경(鯨) / 오장환
점잖은 고래는 섬 모양 해상(海上)에 떠서 한나절 분수(噴水)를 뿜는다. 허식(虛飾)한 신사(紳士), 풍류(風流)로운 시인(詩人)이여! 고래는 분수(噴水)를 중단(中斷)할 때마다 어족(魚族)들을 입안에 요리(料理)하였다.//

화원(花園) / 오장환
꽃밭은 번창하였다. 날로날로 거미집들은 술막처럼 번지었다. 꽃밭을 허황하게 만드는 문명. 거미줄을 새어 나가는 향그러운 바람결. 바람결은 머리카락처럼 간지러워…… 부끄럼을 갓 배운 시악시는 젖통이가 능금처럼 익는다. 줄기째 긁어먹는 뭉툭한 버러지. 유행치마 가음처럼 어른거리는 나비나래. 가벼이 꽃포기 속에 묻히는 참벌이. 참벌이들. 닝닝거리는 울음. 꽃밭에서는 끊일 사이 없는 교통사고가 생기어났다.//

우기(雨期) / 오장환
장판방엔 곰팡이가 목화(木花)송이 피듯 피어났고 이 방 주인(主人)은 막벌이꾼. 지게목발이도 훈김이 서리어 올랐다. 방바닥도 눅진눅진하고 배창자도 눅진눅진하여 공복(空腹)은 헝겊 오래기처럼 뀌어져 나오고 와그르르 와그르르 숭얼거리어 뒷간 문턱을 드나들다 고의를 적셨다.//

모촌(暮村) / 오장환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 지붕 밑 양주(兩主)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병실(病室) / 오장환
양어장(養魚場) 속에서 갓 들어온 금(金)붕어/ 어항이 무척은 신기(新奇)한 모양이구나.// 병상(病床)의 검온계(檢溫計)는/ 오늘도 삼십구도(三十九度)를 오르내리고/ 느릿느릿한 맥박(脈搏)과 같이/ 유리(琉璃) 항아리로 피어오르는 물방울/ 금(金)붕어는 아득─한 꿈길을 모조리 먹어버린다.// 먼지에 끄으른 초상(肖像)과 마주 대하야/ 그림자를 잃은 청자(靑磁)의 화병(花甁)이 하나/ 오늘도 시든 카네이션의 꽃다발을 뱉어버렸다.// 유현(幽玄)한 꽃 향기(香氣)를 입에 물고도/ 충충한 먼지와 회색(灰色)의 기억(記憶)밖에는/ 이그러지고도 파리한 얼굴.// 금(金)붕어는 지금도 어느 꿈길을 따르는가요/ 책(冊)갈피에는 청춘(靑春)이 접히어 있고/ 창(窓)밖으론 포도(葡萄) 알들이 한데 몰리어 파르르 떱니다.//

호수(湖水) / 오장환
호수(湖水)에는 사색(四色) 가지의 물고기들이 살기도 한다./ 차디찬 슬픔이 생겨나오는 말―간 새암/ 푸른 사슴이 적시고 간 입 자국이 남기어 있다./ 멀리 산간(山間)에서는/ 시냇물들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어오고/ 어둑―한 숲길은 고대(古代)의 창연(蒼然)한 그늘이 잠겨 있어/ 나 어린 구름들이 한나절 호수(湖水) 가에 노닐다 간다./ 저물기 쉬운 하룻날은/ 풀뿌리와 징게미의 물내음새를 풍기우며 거무른 황혼(黃昏) 속에 잠기어버리고/ 내 마음, 좁은 영토(領土) 안에/ 나는 어스름 거무러지는 추억(追憶)을 더듬어보노라./ 오호 저녁바람은 가슴에 차다./ 어두운 장벽(臟壁) 속에는 지저분하게 그어 논 소년기(少年期)의 낙서(落書)가 있고,/ 큐―피드의 화살 맞았던 검은 심장(心臟)은 찢어진 대로 겉날리었다.// 가[去]는 비와 오는 바람에/ 흐르는 구름들이여!/ 너는 어느 곳에 어젯날을 만나보리오/ 야윈 그림자를 연못에 적시며 낡은 눈물을 어제와 같이 흘려보기에/ 너는 하많은 청춘(靑春)의 날을 가랑잎처럼 날려 보내었나니/ 오―/ 나는 싸느랗게 언 체온기(體溫器)를 겨드랑 속에 지니었도다.//

성씨보(姓氏譜) / 오장환
내 성은 오씨(吳氏).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워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一淸人)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 숭배(大國崇拜)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룰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 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구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역(易) / 오장환
점잖은 장님은 검은 연경을 쓰고 대나무 지팡이를 때때거렸다./ 고쿠라 양복을 입은 소년 장님은 밤늦게 처량한 퉁소 소리를 호로롱호로롱 골목 뒷전으로 울려주어서 단수 짚어보기를 단골로 하는 뚱뚱한 과부가 뒷문간으로 조용히 불러들였다.//

해수(海獸) -사람은 저 빼놓고 모조리 짐승이었다 / 오장환
항구(港口)야/ 계집아/ 너는 비애(悲哀)를 무역(貿易)하도다.// 모─진 비바람이 바닷물에 설레이던 날/ 나는 화물선(貨物船)에 엎디어 구토(嘔吐)를 했다.// 뱃전에 찌풋─이 안개 끼는 밤/ 몸부림치도록 갑갑하게 날은 궂은데/ 속눈썹에 이슬을 적시어가며/ 항구(港口)여!/ 검은 날씨여!/ 내가 다시 상륙(上陸)하던 날/ 나는 거리의 골목 벽돌담에 오줌을 깔겨보았다.// 컴컴한 뒷골목에 푸른 등(燈)불들,/ 붕─/ 붕─/ 자물쇠를 채지 않는 도어 안으로, 부화(浮華)한 웃음과 비어의 누런 거품이 북어오른다.// 야윈 청년(靑年)들은 담수어(淡水魚)처럼/ 힘없이 힘없이 광란(狂亂)된 JAZZ에 헤엄쳐 가고/ 빨─간 손톱을 날카로이 숨겨두는 손,/ 코카인과 한숨을 즐기어 상습(常習)하는 썩은 살덩이// 나는 보았다./ 항구(港口),/ 항구(港口).// 들레이면서/ 수박씨를 까바수는 병(病)든 계집을─/ 바나나를 잘라내는 유곽(遊廓) 계집을─// 사십구도(四十九度), 毒한 주정(酒精)에 불을 달구어/ 불타오르는 술잔을 연거푸 기울이도다./ 보라!/ 질척한 내장(內臟)이, 부식(腐蝕)한 내장(內臟)이, 타오르는 강(强)한 고통(苦痛)을,/ 펄펄펄 뛰어라! 나도 어릴 때에는/ 입가생이에 뾰롯─한 수염터 모양, 제법 자라나는 양심(良心)을/ 지니었었다.// 발레제(製)의 무디인 칼날, 얼굴이 뜨거웠다./ 면도(面刀)를 했다./ 극히 어렸던 시절(時節)// 항구(港口)여!/ 눈물이여!/ 나는 종시(終是) 비애(悲哀)와 분노(憤怒) 속을 항해(航海)했도다.// 계집아, 술을 따르라./ 잔잔이 가득 부어라!/ 자조(自嘲)와 절망(絶望)의 구덩이에 내 몸이 몹시 흔들릴 때/ 나는 구토(口吐)를 했다./ 삼면기사(三面記事)를,/ 각혈(咯血)과 함께 비린내 나는 병(病)든 기억(記憶)을……// 어둠의 가로수(街路樹)여!/ 바다의 방향(方向),/ 오 한(限)없이 흉(凶)측 맞은 구렁이의 살결과 같이/ 늠실거리는 검은 바다여!/ 미지(未知)의 세계(世界),/ 미지(未知)로의 동경(憧憬),/ 나는 그처럼 물 위로 떠다니어도 바다와 동화(同化)치는 못하여 왔다.// 가옥(家屋) 안 짐승 오직 사람뿐/ 나도 그처럼 완고(頑固)하도다.// 쇠창(窓)살을 붙잡고 우는 계집아!/ 바다가 보이는 저쪽 상정(上頂)엔 외인(外人)의 묘지(墓地)가 있고,/ 하─얀 비둘기가 모이를 쪼읏고,/ 장난감만하게 보이는 기선(汽船)은 퐁퐁 품는 연기(煙氣)를 작별 인사처럼 피어 주도다.// 항구(港口)여!/ 눈물이여!// 절망(絶望)의 흐름은 어둠을 따라 땅 아래 넘쳐흐르고,/ 바람이 끈적끈적한 요기(妖氣)의 저녁,/ 너는 바다 변두리를 돌아가 보라./ 오─이럴 때이면 이빨이 무딘 찔레나무도/ 아스러지게 나를 찍어 누르려 하지 않더냐!// 이년의 계집,/ 오색(五色),/ 칠색(七色),/ 영사관(領事館) 꼭대기에 때 묻은 기(旗)폭은/ 그 집 굴뚝이 그래 논 게다./ 지금도 절름발이 노서아(露西亞)의 귀족(貴族)이 너를 찾지 않더냐.// 등대(燈臺) 가까이 매립지(埋立地)에는/ 아직도 묻히지 않은 바닷물이 웅성거린다./ 오─매립지(埋立地)는 사문장/ 동무들의 뼈다귀로 묻히어 왔다./ 어두운 밤, 소란스런 물결을 따라/ 그렇게 검은 바다 위로는/ 쑤구루루…… 쑤구루루……/ 부어오른 시신(屍身), 눈자위가 헤멀건 인부(人夫)들이 떠올라온다.// 항구(港口)야,/ 환각(幻覺)의 도시(都市), 불결(不潔)한 하수구(下水口)에 병(病)든 거리여!/ 얼마간의 돈푼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지갑,/ 유독식물(有毒植物)과 같은 매음녀(賣淫女)는/ 나의 소매에 달리어 있다.// 그년은, 마음까지 나의 마음까지 핥아 놓아서/ 이유(理由) 없이 웃는다. 나는/ 도박(賭博)과/ 싸움,/ 흐르는 코피!/ 나의 등가죽으로는 뱃가죽으로는/ 자폭(自爆)한 보헤미안의 고집(固執)이 시르죽은 빈대와 같이 술 술 술 기어다닌다.// 보라!/ 어두운 해면(海面)에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 짐승과 같이 추악한 모습/ 항시(恒時) 위협을 주는 무거운 불안(不安)/ 그렇다! 오밤중에는 날으는 갈매기도 까마귀처럼 불길(不吉)하도다.// 나리는 안개여!/ 설움의 항구(港口),// 세관(稅關)의 창고(倉庫) 옆으로 달음박질하는 중년(中年) 사나이의/ 쿨─렁한 가방/ 방파제(防波堤)에는 수평선(水平線)을 넘어온/ 해조음(海潮音)이 씨근거리고/ 바다도, 육지(陸地)도, 한 치의 영역(領域)에 이를 웅얼거린다.// 항구(港口)여!/ 눈물이여!/ 나는/ 못 쓰는 주권(株券)을 갈매기처럼 바닷가에 날려 보냈다./ 뚱뚱한 계집은 부─연 배때기를 헐떡거리고/ 나는 무겁다.// 웅대(雄大)하게 밀리쳐 오는 오─바다,/ 조수(潮水)의 쏠려옴을 고대(苦待)하는 병(病)든 거의들!/ 습진(濕疹)과 최악(最惡)의 꽃이 성화(盛華)하는 항시(港市)의 하수구(下水口),/ 더러운 수채의 검은 등때기,/ 급기야/ 밀물이 머리맡에 쏠리어올 때/ 톡 불거진 두 눈깔을 휘번덕이며/ 너는 무서웠느냐?/ 더러운 구덩이, 어두운 굴속에 두 가위를 트리어 박고// 뉘우치느냐?/ 게거품을 북적거리며/ 쏠려가는 조수(潮水)를 부러이 보고/ 불평(不平)하느냐?/ 더러운 게거품을 북적거리며……// 음협(陰狹)한 씨내기, 사탄의 낙륜(落倫),/ 너의 더러운 껍데기는/ 일찍/ 바닷가에 소꿉 노는 어린애들도 주어가지는 아니하였다.//

8월 15일의 노래 / 오장환
기폭을 쥐었다./ 높이 쳐들은 만인의 손 우에/ 깃발은 일제히 나부낀다.// "만세!"를 부른다. 목청이 터지도록/ 지쳐 나서는/ 군중은 만세를 부른다.// 우리는 노래가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부르짖는 아우성은/ 일찍이 끓어오던 우리들 정열이 부르는 소리다.// 아 손에 손에 깃발들을 날리며/ 큰길로 모이는 사람아/ 우리는 보았다./ 이곳에 그냥 기쁨에 취하고, 함성에 목메인 겨레를 ....../ 그리고/ 뒤끓는 환희와 깃발의 꽃바다 속에/ 무수히 따러가는 이동과 근로하는 이들의 행렬을 ......// 춤추는 깃발이여!/ 나부끼는 마음이여!/ 이들을 지키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너희들 가슴으로/ 해방이 주는 노래 속에서/ 또 하나의 검은 쇠사슬이 움직이려 하는 것을 ...//

연합군입성 환영의 노래 / 오장환
몰래 쉬던 숨을 크게 쉬니/ 가슴이, 가슴이, 자꾸만 커진다/ 아 동편 바다 왼 끝의 대륙에서 오는 벗이여!/ 아 반구(半球)의 서편 맨 끝에서 오는 동지여!// 이날/ 우리의 마음은/ 축포에 떠오르는 비둘기와 같으다.// 감격에 막히면/ 아 언어도 소용없고나./ 울면서 참으로 기쁨에 넘쳐 울면서/ 우리는 두 팔을 벌리지 않으냐// 들에 핀 이름 없는 꽃에서/ 작은 새까지/ 모두 다 춤추고 노래 불러라.// 아 즐거운 마음은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종소리 모양 울려나갈 때/ 이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연합군이여!/ 정의는 아 정의는 아직도 우리들의 동지로구나.//

깽 / 오장환
깽이 있다/ 깽은 高度한 資本主義 國家의 尖端을 가는 職業이다/ 성미 급한 이 땅의 젊은이는/ 그리하여 이런 것을 받아들였다/알콜에 물탄 洋酒와/ 댄스로 정신이 없는/ 장안의 구석구석에/ 그들은 그들에게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 여기와는 상관도 없이/ 또 장안의 한복판에서/ 이 땅이 解放에서 얻은 北쪽 38도의 어려운 住所와/ 숱한 “야미”꾼으로 完全히 막혀진 서울길을/ 비비어 뚫고 그들의 幸福까지를 위하여/ 全國의 人民 代表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그러나/깽은 끝까지 職業이다/ 全國의 生産이 完全히 쉬어진 오늘에/ 이것은 確實히 新奇한 職業이다/ 그리하여 점잖은 衣裳을 갖추운 資本家들은/ 새로이 이것을 企業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번창해질 장사를 위하여/ “韓國”이니 “建設”이니 “靑年”이니/ “民主”니 하는 간판을 더욱크게 내건다.//

이름도 모르는 누이에게 / 오장환
움직임이 없는 樹林과 같이/ 내 마음 스사로 그늘을 지노라./ 아 이곳에 나날이 찾어오는/ 작은 새여!/ 나는 그대의 이름과 노래를 모른다./ 그러나 자연이여/ 당신은 위대합니다./ 작은 새로 하여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그를 평화로이 쉬이게 하여주소서.//

원씨(媛氏)에게 / 오장환
窓앞에서 기다립니다./ 발자최 소리마다 귀를 기우립니다./ 기다리는 것만이/ 사랑에서 오는 기쁨이라면/ 삼백예순날 이냥 안타까운 속에서라도 기다리겠읍니다./ 사랑이어!/ 당신에게 괴이는 祭物은/ 내보람의 샘이 막힐때 까지/ 아 내노래는 당신의 것입니다.//

병(病)든 서울 / 오장환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 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이……/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

어둔밤의 노래 / 오장환
다시금 부르는구나/ 지난 날/ 술마시면 술들이 모여서 부르든 노래/ 무심한 가운데—// 아, 우리의 젊은 가슴이 기다리고 벼르든 꿈들은 어듸로 갔느냐/ 굳건히 나가켜든 새고향은 어디에 있느냐// 이제는 病석에 누어서까지/ 견듸다 못하야/ 술거리로 나아가/ 무지한 놈에게 뺨을 맞는다/ 나의 불러온/ 모-든 노래여!/ 새로운 우리들의 노래는 어듸에 있는냐// 속속드리 오장까지 썩어가는 주정뱅이야/ 너 조차 다같은 울분에 몸부림 치는걸,/ 아, 우리는 알건만/ 그러면 젊음이 웨치는 노래야, 너또한 무엇을 주저하느냐//

指導者 -全國靑年團體大會代表들에게 / 오장환
指導者가 왔다/ 지도자는 비행기로 왔다./ 그리고 지도자는 “韓人”의 지도자여야 된다./ 청년들은 모도다 기쁨에 넘첬다./ 아 피끓는 가슴밖에 미처 준비하지못한 우리청년들은/ 두팔을 벌이어 지도자를 맞었다./ 지도자는 우상이 아니다./ 지도자는 이 젊은 피를 옳은데로 흐르게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는 원-로에 피곤하였다./ 그리고 지도자는 會議에 바뿌다./ 우리들 數萬을 대표한 청년들은 낮부터/ 밤 새로한시까지 기다리었다./ 그러나 아 끝끝내 우리들의 위대한 지도자의 말슴은 깻아을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위대한 지도자는 끝끝내 라디오를 들을 수있는곳에만 방송을 하였다.//

입원실에서 / 오장환
저마다 기쁜 마음, 싱싱한 얼굴로/ 오래나 있었던 병실에서/ 나가는 사람들./ 그러는 동안에/ 해방을 기약하는 그날이 왔고,/ 그 뒤에도 잇대어 여러 가지 병든 사람이나/ 흥분된 감격에 다쳐 온 젊은이/ 새로이 새로이 왔다는/ 모두 다 씩씩한 얼굴로 나간다.// 아 억압이 풀려진 세상은 어떠하련가,/ 나 역시 나가게 되리라 믿고/ 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그러면 하루 바삐 쾌차하시오. 우리도 손목 잡고 일합시다./ 하고,/ 먼저 나가는 이들 당부를 뼈에 새긴다.// 누워서도 피끓는 가슴/ 아, 눕지 않으면 사뭇 불타오르리니/ 젊음이여!/ 여기서만 성장이 앞서는 자랑스런 시기여,/ 다만 흰 벽과, 거기에 걸린 간소한 그림과/ 머리속에 아직도 응석하는 쓸쓸함이/ 온 하루 나의 벗이라 하나// 병든 몸이여!/ 병든 마음이여!/ 이런 것이 무어냐/ 어둔 밤의 횃불과 같이, 나의 싸우려는/ 싸워서 이기려는 마음만이/ 지금도 나의 삶을 지킨다. 채찍으로/ 마소와 같은 나의 걸음을 빠르게 하라.//

찬가(ГИМН) / 오장환
한때, 우리는 해방이 되었다 하였고 또 온줄로 알었다./ 그러나/ 사나운 날세에/ 조급한 사나이는/ 다시금,/ 뵈지않는 쇠사슬 절그럭어리며/ 막다른 노래를 부르는구나// 아 울음이어! 울음이어!/ 신음속에 지려 오든/ 너의 성품이,/ 넘처나는 기쁨에도 샘솟는 것을/ 아조 가차운 이마즉/ 우리는 새날을 통하야 배우지아니했느냐.// 젊은이어! 벗이어!/ 손과 발에…쇠사슬 느리고/ 억 눌린 배ㅅ전에/ 스사로 노를 젓든/ 그옛날, 흑인의 부르든 노래/ 어찌하여 우리는 이러한 노래를/ 다시금 부르는것이냐.// 뵈지않는 쇠사슬/ 마음 안에 그늘지는 검은 그림자에도/ 새노래의 갈곳이/ 막다른 길이라 하면/ 아 젊음이어!/ 헛되인 육체(肉體)여!/ 너는 또 보지아니했느냐./ 八月十五日/ 아니 그보다도 전부터/ 우리들의 발길이 있은뒤부터/ 항거하는 마음은 그저/ 무거운 쇠줄에 몸부림칠 때/ 온 몸을 피투성이로 이와 싸호던 투사를……// 옥에서/ 공장에서/ 산속에서/ 지하실에서 나왔다./ 몇천길을 파고 들어간 땅속 갱도에서도…/ 땅우로 난 모든 문짝은 뻐개지고/ 구녕이란 구녕에서 이들은 나왔다./ 그리고/ 나와보면 막상 반가운 얼골들/ 함께 자란 우리의 형제 우리의 동무// K가 나왔다./ 또 하나의 K가 나왔다./ A가 나왔다./ P가 나왔다./ 그 속에는 먼- 남의나라까지 찾어가 원수들 총부리에/ 우리의 총뿌리를 맞 드리댄 동무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전부터 부르는 나즉한 노래를/ 이제는 더욱 소리높여 부를뿐이다.// 뵈지않는 쇠사슬 질그럭어리며/ 막다른 노래를/ 노래 부르는 벗이어!/ 전에는 앞서가며 피 흘리든이 만이/ 조용 조용 부르든 노래/ 이제는 모다 합하여/ 우리도 크게 부른다./ “비겁한놈은 갈랴면 가라”// 곳곳에서 우렁차게 들리는 소리/ 아, 이노래는/ 한사람의 노래가 아니다./ 성낸 물결모양 아우성치는 젊은 사람들—/ 더욱 새찬 이 바람은 귀만을 찌르는게 아니라,/ 애타는 가슴속/ 불을 지른다.// 아 영원과 사랑과 꿈과 생명을 노래하든 벗이어!/ 너는 불타는 목슴을/ 그리고/ 불타던 꺼지는 목숨을 생각한적이 있느냐/ 모도다 앞서가든 선구자의 죽엄우에/ 스스로의 가슴을 불지르고 따러가는 동무들// 우렁찬 우렁찬 노래다./ 모도다 합하여 부르는 이 노래/ 그렇다,/ 번연히 앞서보다 더한 쇠줄을/ 배반하는 무리가 가젔다 하여도/ 우리들 불타는 억세인 가슴은/ 젊은이 불을 뿜는 노래는/ 이런것을 깨끗히 살워버릴것이다.// 우리들의 귀는 한번에 두가지를 들을수 없다./ 우리들의 마음은 한번에 두가지를 생각할수 없다./ 벗이어! 점점 가차워 온다/ 얼마나 얼마나 하눌까지 뒤덮는 소리냐/ “비겁한놈은 갈랴면 가라”//

가거라 벗이어 -흑인병사 엘.에쓰.뿌라운에게 / 오장환
가거라 벗이어!/ 너의 고향에…// 우리는 눈물로 손 잡는게 아니라/ 그대 내어친 발길/ 이 길을 똑 바른 싸홈의 길로 듸듸라.// 아 우리의 수 많은 재물/ 반가운 마음에 적시는 눈시울/ 어찌나/ 굳게 잡은 우리의 손/ 모든것은 서름이 이끌은 것을…// 가거라 벗이어!/ 너의 고향에!/ 지난날은 모도다 조악돌모양 차버리고/ 거기로 서름만이 맞이할/ 너의 고향에// 벗이어!/ 그러나 손잡은 우리의 보람/ 손잡은 이 마음이 기쁨으로 떨릴때까지/ 우리는 제각기 차내버리자/ —지난 날이 달래주든 눈물의/ 달듸단 맛을…//

延安서오는 봉무 沈에게 / 오장환
그 전날/ 이웃나라 동무들이/ 瑞金에서 延安으로 막다른길을 헤치고가듯/ 내나라에서 延安으로/ 길없는 길을/ 萬餘里./ 다만 외줄로 뚫고간 벗이어!// 동무, 이제 내나라를 찾기에 앞서/ 벗에게 보내는 말/ “동무여! 平安하신가.”/ 沈이어,/ 아니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동무와 동무여!/ 나도 누물로 웨친다./ “동무여 平安하셨나.”// 동무 이제 벗을 찾기에 앞서/ 소식을 傳하는 뜻/ “부끄러워라. 쫓겨갔든 몸 돌아옵니다./ 내나라에 끝까지 머물을 동무들의 싸홈,/ 얼마나 괴로웠는가./ 얼골조차 없어라./ 우리는 이제 무어라 대답하랴.// 불타는 가슴,/ 피끓는 誠實은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동무,/ 沈이어!/ 아니 내가 모르는 또다른 동무와 동무들이어!/ 우리들 배자운 싸홈가운데/ 뜨거히 닫는 힘찬 손이어!/ 동무 동무들의 가슴, 동무들의 입, 동무들의 주먹,/ 아 모든것은 우리의것이다.//
—四五, 十二, 十三, 金史良동무의 편으로 沈의 安否를 받으며.

이 歲月도 헛되이 / 오장환
아, 이세월도 헛되이 물러서는가// 三十八度라는 술집이 있다./ 樂園이라는 카페가 있다./ 춤추는 연놈이나 술마시는 것들은/ 모두다 피흐르는 비수를 손아귀에 쥐고 뛰는것이다./ 젊은사내가 있다./ 새로나선 장사치가 있다./ 예전부터 싸홈으로 먹고사는 무지한 놈들이 잇다./ 내나라의 심장 속/ 내나라의 수채물 구녕/ 이 서울 한복판에/ 밤을 도아 기승히 날뛰는 무리가 있다./ 다만 남에게 지나는 몸채를 가지고/ 이 지금 내나라의 커다란 不正을 못견듸게 느끼나/ 이것을 똑바른 이성으로 캐내지못하야/ 씨근거리는 젊은사내의 가슴과/ 내둥 양심껏 살량으로 참고 참다가/ 이제는 할수없이 사느냐 죽느냐의 막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길로 나간 소시민의/ 반항하는 춤맵시와/ 그리고/ 값싼 허영심에 떨어 갔거나/ 여러식구를 먹이겠다는 生活苦에서 뛰처 났거나/ 진하게 개어붙인 분가루와 루-쥬에/ 모든 표정을 숨기고/ 다만 相對方의 表情을 쫓는 뱀의 눈같이 싸늘한 女給의 눈초리/ 담뇨때기로 외투를 해입은자가 있다./ 담뇨때기로 만또를 해두른놈이 있다./ 또 어떤놈은/ 권총을 히뜩 히뜩 비최는 者도 있다./ 이런곳에서 목을 매는 中學生이 있다./ 아 그러나/ 이제부터 얼마가 지나지않은/ 해방의 날!/ 그 즉시는 이들도,/ 설흔여섯해만에 스물여섯해 만에/ 아니 몇살만이라도 좋다./ 이세상에 나 처음으로 쥐어보는 내나라의 기빨에/ 어쩔줄 모르고 울면서 춤추든/ 그리고 밝고 굳세인 새날을 맹서하든 사람들이 아니냐./ 아 이 서울/ 내나라의 心臟部, 내나라의 똥수깐,/ 南녁에서 오는 벗이어!/ 北쪽에서 오는 벗이어!/ 제고향에서 살지못하고 쫓겨오는 벗이어!/ 또는/ 이곳이 궁금하야/견디지못하고 허덕 찾어오는 동무여!/ 우리 온몸에 굵게 흐르는 靜脈의/ 느리고 더러운 찌꺽이들이어!/ 너는 내나라의 心臟部 우리의 모든티검불을 걷으는 염통 속에도/ 눈에 보이지않는 수많은 우리의 白血球를 만나지 아니했느냐.// 아, 그리고 이세월도 속절없이 물러서느냐.//

共靑으로 가는길 / 오장환
동무들은 벌서부터 기다릴텐데/ 어두은 방에는 불이켜지고/ 굳은 열의에 불타는 동무들은/ 나같은 친구조차/ 믿음으로 기다릴텐데// 아 무엇이 작고만 겸연쩍은가/ 지난날의 부질없음/ 이 지금의 약한 마음/ 그래도 동무들은/ 너그러히 기다리는데—// 눈발은 펑 펑 나리다가도/ 금시에 어지러히 허트러 지고/ 그의 성품/ 너무나 맑고 차워/ 내마음 내입성에 절컥 않어라.// 쏘다지렴… 한결같이/ 쏘다나 지렴…/ 함박같은 눈송이.//

너는 보았느냐 / 오장환
너는 보았느냐/ 馬車발에 채어죽은 마차꾼을,/ 그리고/ 장안 한 복판에/ 馬肉을 실고가는 馬車말같이/ 人肉을 실고가는 暴力團을…// 한 나라의 集結된 意思,/ 人民의 입,/ 新聞이 있다./ 그리고/ 아 끝까지 배지못한 人肉의 馬夫는/ 성낸 말들을 이곳으로 몰아넣는다.// 너는 보았느냐./ 惰性의 뒷발질 밖에/ 아모런 재조도 없는/ 이 馬車말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늙은馬夫를…//

强盜에게 주는詩 / 오장환
어슥한 밤거리에서/ 나는 强盜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빈 주머니에서 돈二圓을 끄내들은/ 내가 어째서 울어야 하는냐./ 어째서 떨어야 되느냐./ 강도도 어이가 없어/ 나의 뺨을 갈겼다./ —이 지질이 못난자식아/ 이같이 돈흔한 세상에 어째서 이밖에 없느냐.// 오- 世上의 착한 사나히, 착한 여자야./ 너는 보았느냐./ 단지 詩밖에 모르는 病든 사내가/ 三冬치위에 헐벗고 떨면서/ 詩한수 二百圓/ 그때문에도 마구 써내는 이 詩를 읽어보느냐.//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 -씩씩한 사나이 朴晋東의 靈 앞에 / 오장환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 받는/ 이처럼 아름다운 세월 속에서/ 파출소를 지날 때마다/ 선뜩한 가슴/ 나는 오며 가며 그냥 지냈다.// 너는 보았느냐/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랴는 이들이/ 아 살기 띄운 얼골에/ 장총을 들고 선 것을 ......// 그들은 장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총 속엔 탄환이 들었다.// 파출소 앞에는/ 스물네 시간/ 그저 쉬지 않고/ 파출소만 지키는/ 군정청의 경찰관!// 어디다 쏘느냐./ 오 어디다 쏘느냐!/ 이것만이 애타는 우리의 가슴일 때/ 총소리는 대답하였다./ - 여기는 삼청동이다./ 죄없는 학병의 가슴 속이다.// 그리하야 죽어가는 학병들도 대답하였다./ - 우리 학병 우리 동무 만세!/ 조선인민공화국 만세!// 내 나라 오 사랑하는 내 나라야,/ 강도만이 복 받는/ 이처럼 화려한 세월 속에서/ 아 우리는 어찌하랴/ 우리는 어찌하랴/ 우리의 원수를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동무 속에 찾어야하느냐.//

나의 길 -3.1기념의 날을 맞으며 / 오장환
기미년 만세 때/ 나도 소리높이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아니 숭내라도 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해에 났기 때문에/ 어린애 본능으로 울기만 하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광주학생사건 때/ 나도 두 가슴을 헤치고 여러 사람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중등학교 입학시험에 미끄러져/ 그냥 시골구석에서 한문을 배울 때였다./ 타고난 불운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그 뒤에 나는/ 동경에서 신문배달을 하였다./ 그리하야 붉은 동무와/ 나날이 싸우면서도/ 그 친구 말리는 붉은 시를 썼다./ 그러나/ 이때도 늦은 때였다./ 벌써 옳은 생각도 한철의 유행되는 옷감과 같이/ 철이 지났다./ 그래서 내가 우니까/ 그때엔 모두 다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8월 15일/ 그 울음이 내처 따러왔다./ 빛나야 할 앞날을 위하야/ 모든 것은/ 나에게 지난 일을 돌이키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울음뿐이다./ 몇 사람 귀기울이는 데에 팔리어/ 나는 울음을 일삼어왔다./ 그리하야 나는 또 늦었다./ 나의 갈 길,/ 우리들의 가는 길,/ 그것이 무엇인 줄도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또 늦었다./ 아 나에게 조금만치의 성실이 있다면/ 내 등에 마소와 같이 길마를 지우라./ 먼저 가는 동무들이여./ 밝고 밝은 언행의 채찍으로/ 마소와 같은 나의 걸음을 빠르게 하라.//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 오장환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어오시다.// - 아 네 병은 언제나 낫는 것이냐./ 날마다 이처럼 쏘다니기만 하니 ....../ 어머니 눈에 눈물이 어릴 때/ 나는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 내 붙이, 내가 위해 받드는 어른/ 내가 사랑하는 자식/ 한평생을 나는 이들이 죽어갈 때마다/ 옆에서 미음을 끓이고, 약을 달인 게 나의 일이었다./ 자, 너마저 시중을 받어라.// 오로지 이 아들 위하야/ 서울에 왔건만/ 메칠 만에 한번씩 상을 대하면/ 밥숟갈이 오르기 전에 눈물은 앞서 흐른다./ 어머니여, 어머니시여! 이 어인 일인가요/ 뼈를 깎는 당신의 자애보다도/ 날마다 애타는 가슴을/ 바로 생각에 내닫지 못하야 부산히 서두르는 몸짓뿐.// - 이것아, 어서 돌아가자/ 병든 것은 너뿐이 아니다. 온 서울이 병이 들었다./ 생각만 하여도 무섭지 않으냐/ 대궐 안의 윤비는 어디로 가시라고/ 글쎄 그게 가로채었다는구나./ 시골에서 땅이나 파는 어머니/ 이제는 자식까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신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읍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 가슴에 넘치는 사랑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이 가슴에 넘치는 바른 뜻이 이 가슴에서 저 가슴으로/ 모든 이의 가슴에 부을 길이 서툴러 사실은/ 그 때문에 병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서울에 오시다./ 탕아 돌아가는 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병든 자식을 찾어오시다.//

밤의 노래 / 오장환
깊은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시냇물 소리만인가 했더니,/ 어두운 골짜기/ 노루 우는 소리./ 또 가차운 산발에 꿩이 우는 소리./ 그런가 하면/ 두견이의, 소쩍새의, 쭉쭉새의,/ 신음하듯 들려오는 울음소리// 아, 저 약하디약한 미물들이,/ 또 온 하로를 쫓겨다니다/ 깊은 밤 잠자리를 얻어/ 저리도 우는 것인가./ 아니, 저것이 오늘 하루를 더 살았다는/ 안타까운 울음소린가./ 피곤한 마음은 나조차/ 불을 죽이고 어둠 속에 누웠다.// 깊은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는/ 시냇물 소리만인가 했더니/ 잠결에도 편안하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소리 ....../ 이처럼 약하디약한 무리는/ 아, 짧은 하룻밤의 안식도 있지는 못한가/ 외저운 마음은 나조차/ 불까지, 아 이 적은 불빛이 무엇이겠느냐.// 차라리 어둠으로 인하야 가벼워지는 마음이여!/ 만상은 모도가 잠들었나 했더니/ 먼 발의 노루며/ 아 소쩍새, 쭉쭉새, 또 두견이/ 그러나 이들이 운다는 것은 나의 생각뿐이고/ 그들은 어려운 하로하로를, 무사히 살었다는 즐거움에서 ....../ 참으로 들거움에서 부르는 노래라 하면 ....../ 나의 설움이여! 아니 나의 마음이여!/ 너는 어찌 하느냐.//

다시 미당리 / 오장환
돌아온 탕아라 할까/ 여기에 비하긴/ 늙으신 홀어머니 너무나 가난하시어// 돌아온 자식의 상머리에는/ 지나치게 큰 냄비에/ 닭이 한 마리// 아직도 어머니 가슴에/ 또 내 가슴에/ 남은 것은 무엇이냐.// 서슴없이 고깃점을 베어 물다가/ 여기에 다만 헛되이 울렁이는 내 가슴/ 여기 그냥 뉘우침에 앞을 서는 내 눈물// 조용한 슬픔은 알련만/ 아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당신에게 바치었음을……// 크나큰 사랑이여/ 어머니 같으신/ 바치옴이여!//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 괴로움에 못 이기는 내 말을 막고/ 이냥 넓이 없는 눈물로 싸 주시어라.//

구름과 눈물의 노래 / 오장환
城돌에 앉어/ 우리 다만/ 구름과 눈물의 노래를 불러보려나.// 산으로 산으로 따러 오르며/ 초막들 죄그만 죄그만 속에/ 그 속에 네 집이 있고/ 네 집에서 문을 나서면 바로 성 앞이었다.// 어디메인가/ 이제쯤은/ 너 홀로 단소 부는 곳 ......// 어둠 속 城줄기를 따러 나리며/ 오로지 마음속에 여며두는 것/ 시꺼먼 두루마기 쓸쓸한 옷깃을 펄럭어리며/ 박쥐와 같이/ 다만 박쥐와 같이 날러보리라.// 城돌에 앉어/ 우리 다만/ 구름과 눈물을 노래하려나// 산마루 축대를 쌓고/ 띄엄띄엄 닦아놓은/ 새 거리에는/ 병든 말이 서서 잠잔다.// 눈 감고 귀기울이면 무엇이 들려올까/ 들컹거리고 돌아가는 쇠바퀴소리/ 하염없이 돌아가는 廢馬의 발굽소리뿐.// 城돌에 앉어/ 우리 다만/ 페가사쓰와 눈물의 노래를 불러보려나.//

붉은 산 / 오장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길손의 노래 / 오장환
입동철 깊은 밤을 눈이 나린다. 이어 날린다./ 못 견디게 외로웁던 마음조차/ 차차로이 물러앉는 고운 밤이여!// 석유불 섬벅이는 객창 안에서/ 이 해 접어 처음으로 나리는 눈에/ 람프의 유리를 다시 닦는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움일래/ 연하여 생각나는/ 날 사랑하던 지난날의 모든 사람들/ 그리운 이야/ 이 밤 또한 너를 생각는 조용한 즐거움에서/ 나는 면면한 기쁨과 적요에 잠기려노라.// 모든 것은 나무램도 서글픔도 또한 아니나/ 스스로 막혀오는 가슴을 풀고/ 싸늘한 미닫이 조용히 열면/ 낯선 집 봉당에는 약탕관이 끓는 내음새// 이 밤 따러/ 가신 이를 생각하옵네/ 가신 이를 상고하옵네.//

성탄제(聖誕祭) / 오장환
산밑까지 나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우에 흘린 따뜻한 핏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러 나리며/ 넓은 언덕에/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김승들의 등뒤를 쫓어/ 며칠씩 산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나어린 사슴은 보았다/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그는/ 어두운 골짝에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소리 울린다./ 죽은 이로 하여금/ 죽는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가슴의/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나리고/ 눈 우엔 아직도 따뜻한 핏방울 ......//

성묘하러 가는 길 / 오장환
솔잎미 모다 타는 칙한 더위에/ 아버님 산소로 가는 산길은/ 붉은 흙이 옷에 배는 강팍한 땅이었노라.// 아 이곳에 새로운 길터를 닦고/ 그 우에 자갈을 져 나르는 인부들/ 매미 소리, 풀기운조차 없는 산등성이에/ 고향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일까.// 깊은 골에 남포소리, 산을 울리고/ 거치른 동네 앞엔/ 예전부터 굴러 있는 송덕비.// 아버님이여/ 이런 곳에/ 님이 두고 가신 주검의 자는 무덤은/ 아무도 헤아리지 아니하는 황토산에, 나의 가슴에……// 무엇을 아뢰이러 찾어왔는가,/ 개굴창이 모다 타는 가뭄더위에/ 성묘하러 가는 길은 팍팍한 산길이노라//

고향 앞에서 / 오장환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잣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할렐루야 / 오장환
곡성이 들려온다. 人家에 人家가 모이는 곳에.// 날마다 떠오르는 달이 오늘도 다시 떠오고// 누런 구름 쳐다보며/ 망또 입은 사람이 언덕에 올라 중얼거린다.// 날개와 같이/ 불길한 四足獸의 날개와 같이/ 망또는 어둠을 뿌리고// 모든 길이 일제히 저승으로 향하여 갈 제/ 암흑의 수풀이 성문을 열어/ 보이지 않는 곳에 술 빚는 내음새와 잠자는 꽃송이,// 다만 한 길 빛나는 개울이 흘러 ......// 망또 우의 모가지는 솟치며/ 그저 노래 부른다.// 저기 한 줄기 외로운 강물이 흘러/ 깜깜한 속에서 차디찬 배암이 흘러 ...... 사탄이 흘러...... 눈이 따겁도록 빨간 장미가 흘러 ......//

심동(深冬) / 오장환
눈 쌓인 수풀에/ 이상한 산새의/ 시체가 묻히고// 유리창이 모다 깨어진/ 洋館에서는/ 샴페인을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덕 아래/ 저기 아 저기 눈 쌓인 시냇가에는/ 어린아이가 고기를 잡고// 눈 우에 피인 숯불은/ 빨갛게/ 주검은 아, 주검은 아름다웁게 불타오른다.//

나의 노래 / 오장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예 흙이 향그러// 단 한번/ 나는 울지도 않었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러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야//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야// 단 한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석양(夕陽) / 오장환
보리밭 고랑에 드러누워/ 솟치는 종다리며 떠가는 구름장이며/ 울면서 치어다보았노라.// 양지짝의 묘지는/ 사랑보다 다슷하고나// 쓸쓸한 대낮에/ 달이나 뜨려무나/ 죄그만 도회의 생철지붕에 ......//

The Last Train / 오장환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悲哀)야!// 개찰구에는/ 못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歷史)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무인도(無人島) / 오장환
나의 지대함은 隕星과 함께 타버리었다// 아즉도 나의 목숨은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언제인가 그 언제인가/ 허공을 스치는 별님과 같이/ 나의 영광은 사라졌노라// 내 노래를 들으며 오지 않으랴느냐/ 독한 향취를 맡으러 오지 않으랴느냐/ 늬는 귀기울이려 아니하여도/ 딱다구리 썩은 고목을 쪼읏는 밤에 나는 한걸음 네 앞에 가마// 표정없이 타오르는 인광이여!/ 발길에 채는 것은 무거운 묘비와 담담한 상심// 천변 가차이 가마구떼는 왜 저리 우나/ 오늘밤 아 오늘밤에는 어디쯤 먼 곳에서/ 물에 뜬 송장이 떠나오려나//

헌사(獻詞) Artemis / 오장환
마귀야 땅에 끌리는 네 검은 옷자락으로 나를 데려가거라/ 늙어지는 밤이 더욱 다가들어/ 철책 안 짐승이 운다.// 나의 슬픈 노래는 누굴 위하여 불러왔느냐/ 하염없는 눈물은 누굴 위하여 흘려왔느냐// 오늘도 말탄 근위병의 발굽소리는/ 성 밖으로 달려갔다.// 나도 어디쯤 죄그만 카페 안에서/ 자랑과 유전(遺傳)이 든 지갑 마구리를 헤치고/ 만나는 청년마다 입을 맞추리// 충충한 구름다리 썩은 은기둥에 기대어 서서/ 기이한 손님아 기다리느냐/ 붉은집 벽돌담으로 달이 떠온다.// 저 멀리에서 또 이 기차이서도/ 나의 오장(五腸)에서도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 스틱스의 지류인가 야기(夜氣)에 번적거리어/ 이 밤도 또한 이 밤도 슬픈 노래는 이슬비와 눈물에 적시었노니/ 청춘이여! 지거라/ 자랑이여! 가거라/ 쓸쓸한 너의 고향에……//

화염(火焰) / 오장환
한낮에 불이야!/ 恍惚(황홀)한 消防手(소방수) 나러든다// 滿開(만개)한 薔薇(장미)에 虎蝶(호접)//
*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지 《휘문》 제10호 수록.

아츰(아침) / 오장환
까마귀 한 마리/ 게을리 노래하며/ 감나무에 앉었다.// 자숫물 그릇엔/ 어름덩이 둘//
*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지 《휘문》 제10호 수록.

조개껍데기 / 오장환
대글대글/ ◇// 색동저고리 떨치인 조개껍데기/ ◇/ 潮水가물너슨 砂邊에 日光浴을하오.//
*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지 《휘문》 제11호 수록.

교외의 강변 / 오장환
내가떼여본 물수제비/ 팽글팽글 고리를 저으며/ 가비여운 까치발 띄우곤/ 힘없이 물속에 잠겨바렷네.// 江물은 다시 주름살펴고/ 새파랗게 젊어가옵네/ 호오이― 하고 휘파람굴려봣으나/ 호을로섰는 江벼랑은 쓸쓸도합네.//
*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지 《휘문》 제11호 수록.

첫겨울 / 오장환
감나무 상가지/ 하나 남은 연시를/ 가마귀가/ 찍어 가더니/ 오늘은 된서리가 나렸네/ 후라딱딱 훠이/ 무서리가 나렸네//

어린 누이야 / 오장환
어찌 기쁨 속에만 열매가 지겠느냐./ 아름다이 피었던 꽃이여! 지거라./ 보드라운 꽃잎알이여!/ 흩날리거라.// 무더운 여름의 우박이여!/ 오 젊음에 시련을 던지는/ 모든 것이여!// 나무 그늘에 한철 매암이/ 슬피 울고/ 울다 허울을 벗더라도/ 나는 간직하리라.// 소중한 것의 괴로움,/ 기다리는 마음은/ 절망의 어느 시절보다도/ 안타까워라.// 오 나는 간직하리라.//

소야(小夜)의 노래 / 오장환
무거운 쇠사슬 끄으는 소리 내 맘의 뒤를 따르고/ 여기 쓸쓸한 자유(自由)는 곁에 있으나/ 풋풋이 흰눈은 흩날려 이정표(里程表) 썩은 막대 고이 묻히고/ 더러운 발자국 함부로 찍혀/ 오직 치미는 미움/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니 개가 짖는다./ 어메야, 아직도 차디찬 묘(墓) 속에 살고 있느냐./ 정월(正月) 기울어 낙엽송(落葉松)에 쌓인 눈 바람에 흐트러지고/ 산(山)짐승의 우는 소리 더욱 처량히/ 개울물도 파랗게 얼어/ 진눈깨비는 금시로 나려 비애(悲哀)를 적시울 듯/ 도형수(徒刑囚) 발은 무겁다.//

병상일기 -오후의 노래 / 오장환
홑이불 새로 시친 침상에 누워/ 조용히 돌아가는 제 혈맥에 귀기울이면/ 아슬한 옛날에 다시 사는 듯/ 열에 뜬 헛소리로 지난날의 벗을 부를 때/ 말없이 물수건 축여주는/ 간호부는 천사의 옷매무새로/ 내 열이 옮겨진 수은주를 가벼이 뿌린다/ 자애로운 모습은 담담한 소복을 하고/ 천사여! 그랬노라 깜깜한 옛날/ 내, 엄마 소리밖에는 말을 못하던 옛날/ 아버님이 가셨을 때도 우리들은 이렇게 입었었노라/ 아니 여느 때도 그렇게 하였었노라// 집집마다 문을 닫은 밤 늦게까지/ 창 옆에 말없이 기대어 스면/ 아름다운 옛 생각 볼근볼근 머리를 돈다/ 사랑하라 사랑하는 불을 쓰라/ 그대 다만 밤에게 소근대는 분수와 같이.//

귀촉도(歸蜀途) -廷柱에게 주는 시 / 오장환
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눈두렁의 어둔 밤에서/ 갈라래비 날려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몬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크르고, 대님 크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어서/ 窓 넘어 뜨는 달, 상현달 바다다보면 물결은 이랑 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巴蜀의 印朱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 -// 풀섶마다 小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두리는 一金七十圓也의 쌀러리와 쬐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롯밤에 마시려 해도/ 그거사 안되지라요, 그거사 안되지라요.// 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病의 꽃 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 모양,/ 아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수부(首府) / 오장환
수부(首府)/ 수부는 비만하였다. 신사와 같이/ 1/ 수부의 화장터는 번성하였다./ 산마루턱에 드높은 굴뚝을 세우고/ 자그르르 기름이 튀는 소리/ 시체가 타오르는 타오르는 끄름은 맑은 하늘을 어지러놓는다./ 시민들은 기계와 무감각을 가장 즐기어 한다./ 금빛 금빛 금빛 금빛 교착(交錯)되는 영구차./ 호화로운 울음소리에 영구차는 몰리어오고 쫓겨간다./ 번잡을 존숭(尊崇)하는 수부의 생명/ 화장장이 앉은 황천고개와 같은 언덕 밑으로 시가도(市街圖)는 나래를 펼쳤다./ 2/ 덜크덩덜크덩 화물열차가 철교를 건널 제/ 그는 포식하였다./ 사처(四處)에서 운집하는 화물들/ 수레 안에서 꿀꿀거리는 도야지 도야지도 있고/ 가축류-식료품. -원료. 원료품. 재목, 아름드리 소화되지 않은 제목들-/ 석탄-중석-아연-동, 철류/ 보따리 멱대기 가마니 콩 쌀 팥 목화 노에고치 등/ 거대한 수부의 거대한 위장(胃腸)-/ 관공용(官公用)의/ 민사용(民私用)의/ 화물, 화물들/ 적행낭(赤行囊)-우편물-/ 무어 들어오는 기밀비, 운동비, 주선비, 기업비, 세입비/ 수부에는 변장한 연공품(年貢品)들이 낙역(絡繹)하였다./ 3/ 강변가로 위집(蝟集)한 공장촌-그리고 연돌(煙突)들/ 피혁-고무-제과-방적-/ 영주장(釀酒場)-전매국.../ 공장 속에선 무작정하고 연기를 품고 무작정하고 생산을 한다/ 끼익 기익 기름 마른 피대가 외마디 소리로 떠들 제/ 직공들은 키가 줄었다./ 어제도 오늘도 동무는 죽어나갔다./ 켜로 날리는 먼지처럼 먼지처럼/ 산등거리 파고 오르는 토막(土幕)들/ 썩은 새에 굼벵이 떨어지는 추녀들/ 이런 집에선 먼 촌 일가로 부쳐온 공년(工女)들이 폐를 앓고/ 세멘의 쓰레기통 룸펜의 우거(寓居)-다리 밑 거적때기/ 노동숙박소/ 행려병자 무주시(無主屍)-깡통/ 수부는 등줄기가 피가 나도록 Rmfrsmsek./ 4/ 신사들이 드난하는 곳/ 주삣주삣 하늘을 찔러 위협을 보이는 고층 건물/ 동그름한 주탑(柱塔)-점잖은 높게 뵈려는 인격/ 꼭대기 꼭대기 발돋음을 하여 소속의 깃발이 날린다./ 무던히도 펄럭이는 깃발들이다./ 씩, 씩, 뽑아 올라간 고층 건물-/ 공식적으로 나열해 나가는 도시의 미관/ 수부는 가장 적은 면적 안에서 가장 많은 건물을 갖는다./ 수부는 무엇을 먹으며 화미(華美)로이 춤추는 것인가!/ 뿡따라 뿡, 뿡, 연극단의 군악은 어린이들을 꼬리처럼 달고 사잇길로 돌아 나가고/ 유한(有閑)의 큰아기들은 연애를 애완견처럼 외진 곳으로 끌고 간다./ “호, 호, 사랑을 투우처럼 하는 곳은 고풍이에요.”/ 5/ 쉿 쉿 물러서거라/ 쉿 쉿 조용하거라/ -외국 사신의 행렬/ 각하, 각하, 각하-/ 간판이 넓어서 거추장스럽다/ 가차이 오면 걸려들면 부상!/ 눈을 가린 마차마(馬車馬)가 아스팔트 위로 멋진 발굽 소리를 흥겨워/ 내뻗는 것도 이럴 때다!/ 6/ 초대장-독주회 독창회/ 악성(樂聖)-가성(歌聖)-천재적 작곡가/ 남작의 아들-자작의 집/ 수부의 예술이 언제부터 이토록 화미(華美)한 비극이었느냐!/ 향연과 향연/ 예술가들이 건질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일은 슬픈 일이다./ 7/ 여행들을 합니다./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사람은/ 서울을 옵니다/ 영미어(英米語), 화어(華語), 내지(內地)말 조선말/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뒤리뒤섞어 이야기를 합니다./ 돈을 모은 이는 수부로 이주합니다/ 평안한 성금법(成金法)이외다/ 조선(祖先)의 토호질한 유산/ 금광/ 일확천금 투기-/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은 고향을 떠납니다/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은 고향을 떠나옵니다./ 8/ 박물관-사원-불각 교회당.../ 뾰족한 피뢰침들/ 시민들은 이러한 곳을 별장처럼 다닌다/ 시민들은 이러한 곳을 공원처럼 다닌다/ 치런 곳에는 많은 남자가 온다/ 이런 곳에는 많은 여자가 온다/ 수려한 자연을 피하여 온 사람들/ 모조된 자연이 있는 공원으로 몰리어온다/ 9/ 수부는 어느 때 시작되고 어느 때 그치는 것이냐!/ 카페와 빠는 나날이 늘어가고/ 제비처럼 날씬한 예복-/ 대체 이놈의 안조화폐(雁造貨幣)들은 어데서 만들어내이는 것이냐!/ 사기-음모-횡령-매수-중혼(重婚).../ 돌이킬 수 없는 회한과 건질 수 없는 비애/ 퇴폐한 절망에 젖은 대학생들-/ 의사와 의학사/ 너들은 푸른 등불 밑에서 무슨 물고기와 같은 우수(憂愁)들이냐!/ 하수도공사비-/ 도로포장공사비-/ 제방공사비-/ 인건비 창창(窓窓)이 활짝 열어제치고 잇몸을 드러내고 웃는 중소상업자/ 중소상인들의 비장한 애교/ “어서요 옵쇼 오십쇼”/ 18간 대로-병립된 가로등-가로수/ 다람쥐처럼 골목으로 드나드는 택시들-/ 외길로만 달아나는 전차들 전차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저놈은 차고로 되들어간다/ 트랙-/ 모터 사이클 그냥 사이클/ 무진회사(無盡會社)의 외교원들은 자전거로 다니며 조사에 교통비를 받는다/ 10/ 대체 저늘리즘이란 어째서 과부처럼 살찌기를 좋아하는 것인가!/ 광고-광고-관고-화장품, 식료품/ 범람하는 공고들/ 메인 스트리트 한낮을 숙난한 메인 스트리트/ 이곳을 거니는 신상(紳商)들은/ 관능을 어금니처럼 아낀다/ 밤이면 더더더욱 열란(熱亂)키를 바라고/ 당구장-마작구락부-베비, 골프/ 문이 마음대로 열리는 술막-/ 카푸에-빠-레스트란-차완(茶碗)-/ 젊은 남작도 아닌 사람들은 왜 그리 야위인 몸뚱이로 단장을 두르며/ 비만한 상가, 비만한 건물, 휘황한 등불 밑으로 기어들기를 좋아하느냐!/ 너는 늬 애비의 슬픔 교훈을 가졌다/ 늬들은 돌아오는 앞길 동방의 태양-한낮이 솟을 제/ 가시뼉다귀 같은 네 모양이 무섭지는 않니!/ 어른거리는 등롱에 수부는 한층 부어오른다/ 11/ 수부는 지도 속에 한낱 화농된 오점이었다/ 숙란하여가는 수부-/ 수부의 대확장- 인근 읍의 편입//

북방의 길 / 오장환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친다//

 



오장환(吳章煥, 1918년~1951년) 시인
충청북도 보은에서 출생하였다.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1930년대 시단의 3대 천재, 또는 삼재(三才)로 불렸다.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실으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낭만》,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정적인 시와 동시 등을 발표하였으나, 해방 이후 급격한 변화를 보이면서 현실 참여적인 시들을 창작하던 중 1947년 9월 이후 월북하였다. 한국 전쟁 발발 이후 잠시 서울로 와 이전에 만났던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마지막 작품은 《조선여성》 1951년 5월호에 실린 〈시골길〉로,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1951년 한국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는 《성벽》(1937년), 《헌사》(1939년), 《병든 서울》(1946년), 《나 사는 곳》(1947년), 《붉은 기》(1950년) 등이 있다. 이 중 《병든 서울》은 조정래의 역사소설 《태백산맥》에 발췌되었다.

 

분단 아픔에 잊혀졌던 천재시인 오장환 - 김해뉴스

1930년대 문단의 '새로운 왕'교과서에도 실린 '절정의 노래'광복 직후 우파 테러에 월북북에선 남로당계로 몰려 요절 민족사의 비운을 안고 간 천재시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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