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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도 맛이 있다. 여러 번 만나도 밍밍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한 번의 만남에도 톡 쏘는 맛이 나는 사람도 있고 또 만날수록 깊은 맛이 나는 묵은 지 같은 사람도 있다. 여러 가지 맛 중에서 나는 특별히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얼마 전, 토봉요의 전통 가마에 불을 지핀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로 화가, 도공, 염색공예가, 조각가 외에 소리꾼도 있었다.

사람들이 가마 앞으로 모여들었다. 주황색 하늘이 산을 덮자 그 아래 작은 연못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그란 몸 안에 산을 품었다. 산은 금세 무채색으로 물들어 갔다. 색의 릴레이 경주를 벌이듯 아궁이는 황색 불빛을 받았다. 지네마디 같은 가마 굴 속으로 불꽃이 오르자 간단한 의식이 시작되었다.

돼지머리를 중심으로 차려진 고사 상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기원을 담아 삼배를 올렸다. 그 중에 태태 선생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름만큼 행동도 특이했다. 흰 머리카락이 머리의 절반은 덮은 걸로 봐서 연세가 꽤 드신듯했다. 절을 하면서 ‘아무 따나 꼬무 따나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다. 혹시 내가 잘 못 들었는가 싶은 찰나에 또다시 ‘색깔도 아무 따나 꼬무 따나 나오게 하이소’ 한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자리가 워낙 엄숙해서 그런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절을 하고 일어선 그를 보고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가마를 향해 양팔을 흔들며 ‘할렐루야 할렐루야’ 라고 말하는 그에게 나도 모르게 ‘아멘’ 이라고 장단을 맞추고 말았다. 멈추지 않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썼더니 뱃가죽이 다 아팠다.

음복의 시간이 되었다. 어쩌다보니 내가 그의 옆에 앉게 되었다. 그가 가방을 열더니 부스럭거리며 뭔가 끄집어냈다. 명함 한 장과 가루약 봉지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면서 여자를 만나면 작업용으로 쓰는 비타민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첫사랑’이라고 했다. 상위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황당한 나는 옆 눈으로 슬쩍 명함을 봤다. 제법 이름이 나 있는 화가였다. 혹시 내가 그의 첫사랑과 닮아서 그랬나 싶어 내가 왜 첫사랑이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가루 비타민만큼 새콤달콤했다.

“여기서 처음 봤으니 첫사랑이지요. 나는 첫사랑이 수도 없이 많아요.”

그의 명함 건네는 방법이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상큼하고도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첫사랑으로 기억될 그는 평생 늙지 않는 나이의 젊음을 유지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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