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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캐는 밤 / 심응문 오늘 같은 밤에는 호미 하나 들고서/ 저 하늘의 별밭으로 가/ 점점이 성근 별들을 케어/ 불 꺼진 그대의 창/ 밝혀주고 싶어라// 초저녁 나의 별을 가운데 놓고/ 은하수 많은 별로 안개 꽃다발 만들어/ 만들어/ 내 그대의 창에 기대어 놓으리라/ 창이 훤해지거든 그대 내가 온 줄 아시라/ 내가 온 줄 아시라// |
홍도 / 심응문 1./ 이 계절 돌아오면 그 섬에 가고 싶다/ 중턱쯤 양지바른 동백 숲 그 언덕에/ 그대의 마음닮은 그 꽃들 보고 싶다/ 보고싶다 그 꽃들이 보고 싶다// 그대를 꼭 닮아서 붉게 타는 노을이여/ 사랑의 언어들로 편지를 띄우련다/ 우체국 흰 담장 넘어 숨죽이는 그대 숲에/ 받는 이 그대이길, 오직 당신, 당신이길/ 나 지금 마른 가슴 목이 타는 갈증으로/ 촉촉한 그대 숨결 담은 답장 편지 받고 싶다/ 답장 편지 받고 싶다// 2./ 꽃구름 그늘아래 뜨거웠던 입김으로/ 눈물이 맺기 전에 벙그러진 꽃잎 속에/ 불타는 열정담아 입맞춤 하고 싶다/ 입맞춤을 하고 싶다// |
안개꽃 당신 / 심응문 안개 꽃 한다발로 다가 선 당신이여/ 포근히 안아 주며 나를 감싸주었네/ 그 품에 안기운 채 흘러온 세월이여/ 꿈인 양 지나 보니 아쉬운 마음// 젊은 날 꿈꾸었던 화려한 소망/ 고이 곱게 순백으로 간직한 순정/ 낙엽도 모두가 진 들창 넘어로/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나간 당신이여// 이제는 벽에 걸린 안개 꽃 당신이여/ 희뿌연 유리창엔 눈비만 내리네/ 안개 꽃 한다발로 다가 선 당신이여/ 포근히 안아 주며 나를 감싸주는 당신// 이제는 벽에 걸린 안개 꽃 당신이여/ 희뿌연 유리창엔 눈비만 내리네/ 안개 꽃 한다발로 다가 선 당신이여/ 포근히 안아 주며 나를 감싸주는 당신// 안개꽃 당신이여// |
목련에게 / 심응문 목화밭 한마지기로는 이불 한 채를 짓지 못하여/ 못내 아쉬워 아쉬워하시더니/ 묵은 솜 털어내어 막내고모를 시집보낸 후/ 정월의 시린 바람을 따라 하늘가로 오르신 할머니./ 그달 지나, 달 밝은 어느 밤에 하늘가에 피어나는 솜꽃들./ 몇 점만 뜯어내도 한 이불을 채우고도 남을 듯한데/ 하늘 높이 매달리어 꿈 인양 달려있다./ 할머니 손끝에 보다 가까이 닿기 위함이리라./ 높이 높게 달리우거라, 오래 오래 피어 있거라./ 하얀 솜 한 소쿠리 안고 사립문 들어서는/ 고운님의 엷은 미소 너무 너무 예쁘셨단다.// |
바위 되어 살리라 / 심응문 북한산 인수봉이 제 아무리 빼어나도/ 나는야 삼천사 골짜기 속/ 바위 되어 살리라/ 흐르는 계곡물로 나의 귀와 몸을 씻소/ 낮은 곳 이웃들과 어깨 서로 빌려주며/ 도란도란 훈훈한 정 서로에게 베풀면서/ 골바람 산바람 멧새와도 친구가 되는/ 청산에 푸른 바위 작은 바위가 되어/ 삼천사 독경소리 듣는 재미로 살리라// 봉우리 기암들이 제 아무리 멋있어도/ 나는야 삼천사 골짜기 속/ 바위 되어 살리라/ 이끼로 옷을 짓고 발밑엔 풀을 키워/ 흐르는 계곡물에 발등이나 축이면서/ 가는 걸음 냇물에게 길안내도 하여주고/ 찾는 이 힘겨울 제 잠시 등도 내어주는/ 청산에 푸른 바위 작은 바위가 되어/ 삼천사 범종소리 듣는 재미로 살리라// |
애월(涯月) / 심응문 서편의 수평선 넘어/ 만장(万丈)의 불새가 깃을 접으면/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제주 애월바다에 만월이 뜬다// 친구여/ 우리 배하나 띄워 달구경 가세나/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제주 애월바다에 만월이 뜬다// 한잔의 고소리에 수란을 띄워/ 동편이 열릴 때까지/ 그득 취해 보세나/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제주 애월바다에 만월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제주 애월바다에 만월이 뜬다// 어이 친구여// |
* 고소리: 고소리술
* 수란(水卵): 달걀을 깨뜨려 수란짜(수란을 뜨는데 쓰는 쇠로 만든 기구)에 담고 끓는 물에 넣어 흰자만 익힌 음식
눈 오는 날의 회상 / 심응문 그대도 그날을 못 잊어 행여나 이곳 찾을까나/ 헤어진 그날처럼 호젓이 눈이 내리면/ 남몰래 그 가로등아래 서성이는 이 발길/ 한겨울이 지나고 한세월이 또 지나고/ 다시 찾은 이 겨울밤 저리도 눈 내리면/ 이 마음 촛불 밝힌 채 바람되어 떱니다/ 이 마음 촛불 밝힌 채 바람되어 떱니다// 사무친 그리움은 보석으로 반짝이고/ 쓰라린 후회만이 쌓여가는 이 자리에/ 아련한 그대 모습은 흩날리는 눈꽃인가/ 가로등 불빛아래 어둠이 짙어오나/ 오히려 청명하여 언제나 언제나/ 이 마음 촛불 밝힌 채 바람되어 떱니다/ 이 마음 촛불 밝힌 채 바람되어 떱니다/ 바람되어 떱니다// |
둥개둥개둥개둥 / 심응문 둥개둥개둥개야 둥개둥개둥개둥/ 둥개둥개둥개야 어와둥개둥개야// 뭉게뭉게 피어나는 푸른하늘 흰구름아/ 두둥실 떠오르는 뽀오얀 그 얼굴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익은 노랫소리/ 지금도 생생하게 내 귓가를 맴도네// 둥개둥개 둥개야 둥개둥개 둥개 둥/ 구름속에 숨었더냐 둥개둥개 둥개야// 땅밑으로 숨었더냐 둥개둥개 둥개야// 하늘을 둥둥날던 어릴 적 둥개 놀이/ 눈맞춤 기억속에 함박꽃 환한 얼굴/ 두리두리 둘러봐도 그 분은 안 계시나/ 추억의 소리되어 맴맴도는 노랫소리// 둥개둥개 둥개야 둥개둥개 둥개 둥/ 구름속에 숨었더냐 둥개둥개 둥개야/ 땅밑으로 숨었더냐 둥개둥개 둥개야// 둥개둥개둥개야 둥개둥개둥개둥/ 둥개둥개둥개야 어와둥개둥개야/ 어와둥개둥개야// |
바램 / 심응문 따스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음 좋겠다/ 눈길을 받기보단 눈길 주는 그런 사람/ 울 밖의 매화 꽃잎 같은 그런 나였음 좋겠다.// 폭풍우 친 다음날 시름에 겨운 이에게/ 땅 끝을 부여잡고 보란 듯 웃음 짓는/ 낮은 곳 붉은 채송화 나였으면 좋겠다.// 잊었던 정감들도 나를 보면 푸근해져/ 잠시 서서 명상케 하는 그런 꽃이 되고 싶다/ 햇살에 간지럼 타는 길섶의 구절초처럼// 바람 부는 긴 겨울밤 그대 생각 부풀릴 때/ 서재의 한켠에서 발등에 툭 떨어지는/ 지난 날 네잎 크로바 나였으면 좋겠다.// |
밤비 / 심응문 가슴에 마음으로 고여 있는 내 그리움/ 흐르지도 못 한 채 제자리 만 맴돌고/ 누구의 소리 있어 반가워 창을 여니/ 그대는 보이지 않고 빗 소리만 전하네// 굽이 굽이 흘러 흘러 큰 강물 이루어져/ 바다에 이른다면 먹구름이 되어질까/ 구름이 비가되 듯 내 사랑 빗 물 되어/ 그대의 고운 얼굴 두 손으로 감싸리/ 그대의 고운 얼굴 두 손으로 감싸리라// 어두운 골목어귀 비는 저리 내리고/ 떨어지는 빗줄기는 제 길 찾아 흐르는데/ 주체못할 그리움도 빗물되어 흐르는가/ 묻어둔 내 가슴 속에 물길을 내고 있다// |
그대 시선 머무는 곳 / 심응문 그리워하는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곳/ 그곳에 내 시선도 머물 수 있는 곳에서/ 두 눈 떠 마주할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벅차진 않으리// 그리움의 상처에는 군더더기 쌓여가고/ 이별의 탄회만이 빙빙 돌아 멈춘 하늘에/ 번개속 순간 일지라도 붙잡고픈 그대인데// 알려주오 알려주오 그대 시선 머무는 곳에/ 앉은뱅이 돌고돌아 눈이라도 쳐들라면/ 흐릿한 눈물 창 너머 바라볼 곳 어디에 있을까/ 바라볼 곳 어디에 있을까// |
신첩(新妾)을 들이다 / 심응문
안나푸르나 남봉*/ 처음 본 순간 운명인양 그녀가 내게로 왔다/ 타다파니 롯지*의 새벽/ 그녀는 입을 다물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나의 혼을 빼앗고/ 한걸음 더욱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다.// 백옥의 나신(裸身) 위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 매끄럽고 풍요로운 몸매. 그 속에 숨겨놓은 그녀만의/ 맑고 순결한 정염(情炎)을 보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기꺼이 나의 신첩(新妾)이 되어/ 매일 아침 나의 기침(起寢)을 위해 나의 침실을 찾고 있다./ 하얀 타올을 양팔에 걸친 체 나의 세안(洗顔)을 기다리며/ 맑고도 밝은 표정으로 다소곳이 내 앞에 서있다.// 스스로 눈을 뜨는 그 순간까지/ 나만이 누리는 호사(好事)/ 꿈같으나 꿈이 아닌 나만의 시간./ 매일 아침 그녀와의 눈 맞춤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기침(起寢)을 보채는 아내의 구시렁 소리와/ 한켠에 비켜 서있는 마차푸차레“의 차가운 시선도/ 신첩을 새로 들인 지금의 나를 어찌 할 수는 없었다.//
* 안나푸르나 남봉: 7,219m의 네팔 안나푸르나 고봉군 중의 하나. 풍요의 여신으로 불린다.
* 타다파니 롯지: 해발 2,700m에 있는 등산객을 위한 숙소
*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히말에 있는 물고기 꼬리 모양의 영산(6,997m). 아직 미답지로써 네팔인은 신으로 모신다.
마차푸차레 / 심응문
도끼눈의 마차푸차례 스토커는 슬프다/ 사랑의 안나푸르나 못 이룬 사랑이기에/ 전설의 히말라야는 아직 하얀 도화지//
산이 내게로 오네 / 심응문
산 찾아 설산 찾아/ 히말라야 산을 갔네// 며칠을 산을 올라/ 조우했던 설봉들이// 집까지 따라와서는/ 매일 아침 날 깨우네//
심응문 시인
1955년 충청남도 당진 출생. 중동고등학교, 성균관대 화학과 졸업. 2001년 제1회 우리시문학상 우수상, 2002년도 계간 현대문학의 <시조문학> 신인상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 초대 이사장직을 역임했다. 현재 (주)멜텍 대표이사 회장. 저서로 시조집 <밥상위에 뜨는 달>, 시집 <사랑을 드십시오>, <봄봄>, <다시 한번 돈키호테>가 있다. 음반으로 크로스오버 가곡음반 <안개꽃 당신>, 가곡음반 <홍도>가 있다. 소백산의 천년 주목나무를 노래한 합창곡 <주목>과 <아버지의 티셔츠> 등 20여 개의 노랫말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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