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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람이 길을 낸다 / 김용옥

부흐고비 2021. 9. 15. 08:02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기억 속의 풍경입니다. 그 중에서도 길이 있는 풍경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게, 막막하게 이어져 있는 길. 그 길을 따라 무작정 떠나고 싶게 하는 길이 있는 풍경. 미래이며 꿈이며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길. 방황이며 귀로인 길.

현재 우리 땅은 사방팔방 거미줄처럼 가락가락 길이 얼크러져 있지만 ― 마치 현대인의 삶처럼 정신없게 ― 기억 속 그 길은 한적하고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대접 같은 야산과 논밭이 하늘과 평행으로 펼쳐진 평야에 강둑 따라 한없이 길게 이어진 신작로. 그 황토색 신작로에 햇빛이 내리면 부웅 떠 보이던 새 길. 마치 줄자를 풀어 주욱 그어놓은 듯하며 길 끝은 늘 하늘 속인지 대지 속인지 알 수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길은 일상생활을 하느라 걸어 다니던 골목길이나 동네길, 또는 건물 사이에 칙칙하게 갇힌 길이 아니라 도시와 도시를 잇는 차도지만, 행동반경 또는 생활반경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시절이어서 한적하였지요. 이따금 멀리서 기적소리를 내며 지나는 열차가 쉴참과 밥시간을 알려준 셈이던 때니까요. 가끔씩 털털털 버스란 것이 지나면 뽀얀 먼지구름이 일어나는 길입니다.

물론 농가나 촌가가 두어 채씩 간이역처럼 서 있습니다. 마당조차 휑하고 처마가 낮은 집. 가족들을 제외하면 빈지문을 여닫을 사람이 거의 없고, 그야말로 흙먼지 바람이나 솔솔 찾아와, 창 없는 마루에 뿌옇게 내려앉는 집, 말입니다. 길이 있어도, 고샅길이 아닌 그 길에 사람이 걸어서 통행하는 일은 가뭄에 콩나는 격이지요.

그 길에 한 젊은 변호사가 터벅터벅 먼 길을 걸어와 바로 길 가상 촌가의 담장 곁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골똘히 생각에 빠져서. 그가 위임받은 사건의 승산 있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서, 이 궁리 저 방법을 모색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속에 푹 빠져 허우적이면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고정되고 한정된 일과 일터에서 벗어나, 매달려 부심하던 생각에서 벗어나 차라리 머릿속을 맑게 비우면 좋습니다. 눈 시린 하늘을 바라보다 떨어뜨리게 되는 눈물방울에서, 또는 들길에서 만나는 풀잎 하나에서 힌트를 얻게도 됩니다. 변론하러 가는 그날, 변호사는 멀게 또는 한가하게, 그리고 번쩍 뇌리를 스치게 해줄 예지를 얻을까 하고 그 길을 걸었답니다.

온 들판이 하늘에게 경외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들녘의 벼포기들이 서로 의지하듯 어울러 감사와 생명의 기도를 하더랍니다. 그렇지요. 사람의 힘으로 농사를 지었을 리가요. 벼포기 한 포기 한 포기는 스스로 살아냈고, 꽃 같지도 않은 벼꽃을 태풍 속에 피웠고 이제 씨알을 여물이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생명 있는 것들이 스스로 살고자 할 때 살아내며 결실한다는 생각을 할 때, 그 때였습니다. 푸르고 건조한 하늘에서 소낙비가 좌악 쏟아졌습니다. 바로 그 사람에게 온통. 변호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두리번두리번 하늘을 살피고 비의 흔적을 살폈지만, 하늘은 표정 한 군데 흐트러짐 없이 맑고 깨끗할 뿐이었습니다. 귀신 곡할 노릇이군. 그의 머리카락에선 방울방울 물방울이 떨어지고, 법정출두용 단벌옷인 감색양복이 군데군데 우굴쭈굴 물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멍청히 자기의 꼬락서니를 내려다보던 그가 고개를 들자, 잘 여문 박덩이 같은 아낙의 얼굴이 담장 위에 걸려있는 게 보였죠. 눈을 꺼먹꺼먹, 목을 움츠릴 듯 당황하면서. "아이고 어쩐대요. 죄송혀서 어쩐대요." 낯선 남정네의 얼굴을 마주보지도 못하고, 요즘 사람처럼 쉽게 세탁비를 내밀 생각 같은 건 꿈에도 못하는 얼굴입니다. 그는 재빨리 상황 판단을 했습니다. 기명 부셔 헹군 함지박의 물을, 먼지 나는 길을 향하여 휙 밖으로 끼얹었다는 걸 간파했죠.

길거리의 먼지와 열기를 가라앉히는 것에 물만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 아낙은 멀쩡한 새 물을 퍼다 내버리는 게 아니라, 빨래하거나 그릇을 씻은 허드렛물을 재활용했을 겁니다. 흔해터진 물도 아껴야 복을 받는다고 어른들은 가르쳤어요. 빨랫물로 걸레 빨고, 걸레 헹군 물로 꽃밭을 적시거나 후훅 볕에 달아오른 마당에 솔솔 뿌리곤 했지요. 물 부족 국가인 우리 국민 모두가 배워서 실천해야할 삶의 태도지요.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이 길을 지나가서, 아주머니를 민망하게 만들었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젊은이가 배운 값비싼 지식은 결국은 누군가를 이기거나 지게 하는, 승패를 위한 공산품 같은 지식입니다. 피할 수 없는 다툼도 있긴 있을 테지요.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피할 수 없는 다툼이란 없기도 합니다. 모순(矛盾)이 비일비재한 게 인생살이입니다. 남의 탓 90% 보다도 내 탓 10%가 더 큰 불화와 불행을 뿌릴 수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참, 물벼락 한 번 잘 맞았습니다.

그 후 변호사는 떼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존경받기에 족합니다. 남의 죄를 부각시키기 전에 서로 화해하여 인간답게 사는 법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이 땅을 빌려 잠시 머물다 모두 버리고 갈 존재라는 건 상식입니다. 그 촌가 아낙의 물벼락이 법지식과 승부욕에 갇힌 머리를 열어주었습니다.

모두가 지식인이 된 현대인에게 이제 늙어진 현자가 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학교를 오래 다녀서 지식은 좀 있을런가 몰라도, 사람이 지녀야할 기본적 상식도 모르고 살지. 사람답게 사는 거는 지식으로가 아니라 상식으로 사는 거야."

오늘도 길을 갑니다. 여태껏 길을 갔고 길을 왔듯이. 막다른 길에서 돌아선 적도 있고 숲 속에서 길을 잃어 혼자서 길 없는 길, 길 아닌 길을 헤맨 일도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일상으로 걸어가는 길을 사랑합니다. 옷깃이 아니라 어깨를 스쳐야 하는 도시의 인도. 차도를 질주하는 것보다 사람으로 바글바글 북적이는 길을 걸으며 나는 가끔 나를 깨우게 됩니다.

육아종으로 고생하는 엄지발가락이 신발 속에서 화끈화끈 아프고 있는 판에, 한눈팔며 마주 오던 행인의 구둣발에 밟히고 맙니다. 눈물이 찔끔, 하늘이 캄캄한 순간이지요. 그러나 말합니다. "어머 미안해라아. 왜 하필 그 구둣발 밑에 발을 집어넣었담. 내 발가락 끝에 눈이 안 달려서요. 미안, 하지요?" 길을 걸으며 길을 배우고 길을 내며 갑니다.

책 속의 죽은 길보다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길을 생각합니다. 그 길은 사람 사이의 숨통이 열리는 길이며, 너를 이해하는 길이기를 바랍니다. 10%의 내 잘못으로 불행이 전파되지 않고, 90%의 타인의 실수에도 이해와 화합을 끌어낼 수 있는 세상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길엔 다사로운 햇빛과 맑은 바람이 머물겠지요. 그 길을 누가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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