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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함형수 시인

부흐고비 2021. 9. 19. 09:12

마음의 단편 / 함형수
1./ 떼―○, 떼―○……/ 새벽공기를 지르고 종소리 은은히 들려오네./ 아― 내 저山속으로 들어가련지 오래엿건만.// 2./ 마음아./ 인제는 웃지도말어라, 울지도말어라.// 3./ 오늘은 꽃꺾으러 뒷산으로 가드니/ 가련한 자여, 너도 모르게 한줌의 샛(芒)대를 꺾어왓고나// 4./ 저녁하눌을 날아가는 기러기떼여./ 울며 멀―리어디론지 날아가는 기러기 떼여.// 5./ 그어느날인가 海邊에서본 景致 멀―리 水平線에 사라지는/ 배(船) 한척.// 6./ 갈바람을 원망하면서 가을들에 헤메는/ 나무잎과도 같이 내/ 밝는날부터는 그어디든지 헤메고싶소.// 7./ 내죽은 무덤앞에 碑를세워주겟다고/ 친구여 거기엔 이러케나 써주오./ 이世上을 울도웃도못하고 걸어간사람이라―고.//
* 1935년 1월 26일 <동아일보>에 게재.

마음 / 함형수
이미 만났으면 다시 갈러지리라./ 떠났으면 언제나 돌아오리라./ 오 어디서 오는 신앙력(信仰力)인가./ 우리 다만 마음 속으로 기다리리라.// 또한 낯선 이향(異鄕)사람처럼/ 우리 그저 스치고 지나가리라./ 항시 입은 다물어 버리리다.// 불어오는 무상(無常)의 바람이여./ 비와 같이 쏟아지는 감정의 낙엽이여./ 우리 다만 마음 속으로 생각하리라./ 종시 울지는 않으리라.// 오 가이없는 허무의 사막./ 어두운 운명의 하늘이여./ 우리 필경 아므 것도 모르리라.//
* 1940.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음의 촛불 / 함형수
밤이 되면 밤마다 나의 마음속에 켜지는/ 자그만 촛불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 꺼질 듯/ 나의 외로운 영혼을 비춰 주는 희미한 불빛// 그러나 나에게 반드시 깊은 묵상을 가져오고/ 한없이 먼 나그네길을 가리킵니다.//

부친후일담(父親後日譚) / 함형수
조그만 房안에 가친채 시껌은 눈썹 밑으로 눈시울을 異常하게/ 번뜩이시며 아버지는 매일 몬테크리스트라는 길다-란 소설을 읽으셨다./ 먼- 放浪의 旅程에서 받은 것은 무서운 疲勞와 깨여진 神經과/ 그리고 어두운 追憶, 갈곧도 맞날 사람도 인제는 없었다.//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1936.11월 시인부락. 창간호. '비명(碑銘)'이란 비석(碑)에 쓰인 이름.

무서운 밤 / 함형수
사나운몸부림치며밤내하누바람은/ 연약한바람벽을뒤흔들고./ 미친듣우름치며긴긴밤을눈보라는/ 가난한볏짚이엉에모라첬으나./ 굳게굳게다치운憎惡의窓에밤은깊어도깊어도/ 한그루의붉은純情의燈불이꺼질줄모르고./ 무서웁게무서웁게어두운밖앝을노려보는/ 날카로운적-은눈동자들이빛났다.//

조가비 / 함형수
뜨거운 모래 벌을 하로 종일 헤매며/ 이것도 저것도하고 주워 넣고는 어두운 저녁// 저자에 소년(少年)은 이것도 어느것도 모조리 던져버렸다.//

신기루(蜃氣樓) / 함형수
멀―리 안개 낀 나루끝에/ 어느 날 인가 소년(少年)들이 보았다는// 그 이상(異常)한 혼례(婚禮)의 행렬(行列)은/ 그 후 한번도 나타나지않았다// 우두머니 모래불에 섰다가도/ 하―얀 파도가 밀려와서 발을 벗으면// 그만 아모 것도 잊어버리고/ 소년(少年)은 물에 뛰어들었다//

개아미와 같이 / 함형수
개아미들이 몬지길을 기어가는것처럼/ 뜨거운 거리의 아스팔트우에 사람은 넘처났으나/ 白紙의 하눌에 太陽은 한개의 붉은 쇠덩어리처럼 空然하다/ 악착한 市場과 大學室의 試驗管에 어두운 밤은 찾어와/ 제각각의 內部에서 理論과 苦痛이 달렀다/ 개꼬리와 쥐꼬리의 差異만치 一定한 法律과 一定한 流行은/ 一定한 生活에 象徵되고 사람은 사람이오/ 憂鬱은 憂鬱에 不過한것이냐/ 나무가지는 쓸데없이 자라고 실없이 아히들은 울고/ 女子는 帽子를 男子는 신짝을 찾고/ 두터운 傳統의 眼鏡속으로/ 아버지는 조으럼오는 忠告를 느러놓을게다//

소 있는 그림 / 함형수
장미빛 석양을 받은 채 소년은 언제까지든 고개를 떨어뜨리고 걸었다/ 어두운 소년의 우수를 싣고 소의 걸음은 한없이 느리었다.//

가족(家族) / 함형수
1/ 고기와 꼿과 보리이삭과 그외 여러가지 보배를/ 어머니는 깨여진 머리에 이고 거러오섯다./ 인제 어머니는 눈을 가슴속에다 박으섯다./ 눈물이 기쁨에서 오는 눈물이 작고만 흐른다.// 2/ 휘황한 電燈미테서 누이는 밤마다/ 붉은알 푸른알 힌알 노-란알을 굴리느라고/ 눈길이 異常하여젓다./ 오늘 누이는 大理石 돌층게에서 競走練習을 한다./ 돌층게 미테 떠러져 잇는 찌저진 찬송가와 때묻은 항케치.// 3/ 風車와 연과 팽이와 그리고/ 노래와 춤을 동생은 작고 만든다./ 동생의 사랑은 샤가-르와 그리고/ 나와 어머니와 누이와 이외에도 기수업다./ 동생은 해를 처다보고 웃는다 웃는다.//

초연(初戀) / 함형수
그할머니처럼 늙은게집말이지./ 그嬌慢한 눈초리를하고서아모에게도/ 注意하지안는척 하는게집년말이지./ 그鬼神가티야윈 게집말이지 눈을나리깔고./ 少年의입은沈默을 직혓다.//

교상의 소녀(橋上의 少女) / 함형수
못견디듯미풍(微風)에하느적거리든실버들가지./ 달콤한초조(焦燥)에떨며소녀(少女)는분홍(粉紅)빛양산(陽傘)을쉴새없이돌렸다/ 그러나다리아래의흐르는물이그급(急)한소년(少年)의걸음보다도쉬지않는것을소녀(少女)는몰랐다//

그 애 / 함형수
내만 집에 있으면 그애는 배재밖 電信ㅅ대에 기댄채 종시 드러오질 몯하였다. 바삐 바삐 쌔하얀 운동복을 가라닙고 내가 웃방문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야 그애는 우리집에 드러갔다. 인제는 그애가 갔을쯤 할때 내가 가만히 집으로 드러가 얼골을 붉히고 어머니에게 무르면 어머니가 권하는 고기도 안넣은 시라지 장물에 풋콩 조밥을 마러 맛있게 먹고 갔다고 한다/ 오랜만에 한번 식 저의 어머니의 신부럼으로 우리집에 오든 그애는 우리집에 오는 것이 조왔나? 나뻤나? 통통한 얼골에 말이 없든 애-- 그애의 일흠은 무에라고 불렀더라?//

귀국 / 함형수
그들은 묻는다 내가 갔었던 곳을/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얻었는가를/ 그러나 내 무엇이라 대답할꼬/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 것은 한 개 덧없는 그림자뿐이니// 먼 하늘 끝에서/ 총과 칼의 수풀을 헤엄쳐/ 이 손과 이 다리로 모든 무리를 무찔렀으나/ 그것은 참으로 또하나의 육체였도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언어를 배웠고 새로운 행동을 배웠고/ 새로운 나라(國)와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육체와를 얻었나니/ 여기 돌아온 것은 실(實)로 그의 그림자뿐이로다//
* 만주에 있다 귀국하여 쓴 작품으로 추정

귀목(歸牧) / 함형수
夕陽을바든채 少年은고개를 떠러트리고잇섯다./ 어두운少年의憂愁를싯고 소의 거름은 한업시느리엇다.//

개 잇는 風景 / 함형수
저녁해는 山西마루에서 쓸쓸한冷笑를짓더라./ 개도말업고 少年도 먼-山은더욱 말이업섯다.//

유폐(幽閉) / 함형수
눈을감은채 少年은몃번이고/ 붉게붉게 타오르는 가슴을 눌엇다.// 들창압헤 나무입을문 한머리의 새가와서는/ 몃번이고몃번이고 季節을알려주고 가는것도 少年은 몰낫다.//

9월의 시(詩) / 함형수
하늘 끝없이 멀어지고/ 물 한없이 차지고/ 그 여인 고개 숙이고 수심(愁心)지는 9월./ 기러기떼 하늘가에 사라지고/ 가을잎 빛 없고/ 그 여인(女人)의 새하얀 얼굴 더욱 창백하다./ 눈물 어리는 9월./ 구월(九月)의 풍경은 애처러운 한 편의 시(詩)./ 그 여인은 나의 가슴에 파묻혀 우다.//

형화-소년행초(螢火-少年行抄) / 함형수
논두렁에 잠뱅이를 적시고 개울물에 발을 적시고/ 어두운 잔디밭을 조오그만 가닥손을 취여 든채/ 少年은 그저 하눌만 처다 보고 달렸다.// 파아란 반딧불 그것은 움지기는 또다른 별이엿다//

성야(星夜) / 함형수
간난이는어머니의잔등에업혀찰란한星座를향하여/ 丹楓닢같은兩손을내저었고어두운后園에서는/ 늙은할머니가敬虔히合掌하고來生을믿었다//

자전거상의 소년(自轉車上의 少年) / 함형수
少年의두볼타구니는능금처럼붉었고/ 少年의잔등에서는땀이철철흘렀다/ 그래도핸들은風船과旗ㅅ대로가득하였고휘파람은높았다//

홍도(紅桃) -소년행초(少年行抄) / 함형수
언제 까지던 兩손에 구을리며/ 少年은 좀처럼 입에 물지를 안헜다.// 노오란 보드러운 껍질 밑에서는/ 언제나 피처럼 샛밝안 살이 터졌다.//

구화행(求花行) / 함형수
빩-안손수건을흔들면서山은/ 작고만작고만앞으로물러가는것만같었다.// 내을건너고고개를넘어/ 焦操와希望은어린아히의거름이었다.//

나는 하나의 손바닥 우에 / 함형수
나는 하나의 피투성이된 손바닥밋테 숨은 天使를보앗다/ 時間의 魔術이여 物質이여 몬지 갓튼 感傷이여/ 天使가 깨여나면 찟어진 空間을 내음새가 돈다/ 아름다운 皮膚의 湖水여 노래의 忘却者여 깨라/ 眞理의 빗(光)치여 어두운 寢床이여 돌(石)이여 눈물이여/ 나는 하나의피투성이된 손바닥우에 異常스러운 天使를 보앗다.//

황혼(黃昏)의 아리나리곡(曲) / 함형수
놀란 듯 쫓긴 듯 黃昏의 江畔에/ 옹송그리는 우아한 무리/ 오오 높다라히 울지도 못하고/ 검은 땅만 파헤치며/ 구슬피 코울음 운다.// 노을진 핏빛 하늘에/ 貴로운 뿔 고추들어 사슴아/ 저무는 아리나리 江畔에/ 눈 내리감고 초조를 눌러라.// 아아 江畔에 해는 깜박 저물었다./ 연약한 네 다리/ 자꾸만 구르지 말고 사슴아/ 아득한 역사의 흐름에 귀 기울여라.//

정오(正午)의 모-랄 / 함형수
모-랄은 웃는다 모-든 눈물뒤에서 모-랄은 운다/ 모-든 웃음뒤에서 모-랄은 怒한다/ 맷돌방아깐에서도 모-랄은 눕는다/ 曲馬團로-프에도 모-랄은 노래부르는 둑거비냐/ 모-랄은 노래하지안는 꾀꼬리냐 혹은/ 모-랄은 계란속의 都市計劃 -계란을 삼킨 D孃의 주동아리/ 눈을 뜨면 나의 책상우 그라쓰컵속에서 시름꼿이 운다/ 그라쓰컵우에서 구름이 돈다/ 聖母마리아의 悲哀속에서도 센트헤레나의 鬱憤속에서도/ 갈릴레오의 디구에서도 뉴-톤의 능금에서도/ 그리스도의 수염에서도 李太白의 風月24) 가운데서도/ 또는 K博士의 곰팽이낀 노-트속에서도/ 아- 나의 깨여진 머리속에서도 –손톱눈에서도/ 찌그러진 나의아버지의 갓에서도/ 내음새나는 나의어머니의 고무신짝에서도/ 얼눅진 N孃의 한가치에서도 또는/ 바람에 날러간 D老人의帽子속에서도 눈을감으면/ 한업시 한업시 물러서는 焦點과 무한히 버러지는 視野와/ 수업시 수업시 交錯되는 에-테르와/ 오- 어디에서도 무수히 무수히 지절거리고/ 不平하고 밀려드는 모-랄모-랄········//

회상의 방(回想의 房) / 함형수
찢어진문풍지로쏘아드러오는차디찬바람에남포ㅅ불은/ 몇 번이고으스러져다가는다시살아나고 어두운불빛아래/ 少年은몇번이고눈을감고는蒼白한過去를그리고/ 暗澹한未來를낮고부시려애썻다./ 어지러운四壁은괴롭디괴로운沈默속에잠기고./ 半이나열려진채힘없는숨을쉬는어머니의입술./ 少年의얼골은苦痛으로가득찼었고./ 少年의두눈은殺氣를띠고빛났다./ 아아하로ㅅ동안의고달픈勞動의疲勞는/ 그래도어머니에게不自然한熟睡를가저왔으며./ 가엾은어머니의간난이는지금은시드러버린/ 어머니의젖꼭지도잊어버리고귀여운꿈가운데서/ 天眞한그얼골에깃벗든일슬펏든일두나절의光景을쫓고있었다.//


 

함형수(咸亨洙 1914년~1946년) 시인
함북 경성 출생. 중앙불교전문학교 중퇴. 1935년 <마음의 단편>을 <동아일보>에 처음 발표한 이래 다수의 시를 발표. 1936년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였다. 193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마음>이 당선되었으며 생명파(生命派)다운 열정과 기발한 시상을 보였다. 30편에 가까운 작품이 남아있지만, 발간된 시집은 없다. 동경(憧憬)의 꿈과 소년적(少年的) 애수를 주조로 하는 개성 있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복 직후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다 북한에서 사망하였다. 대표작 <해바라기의 비명>, <무서운 밤>, <조가비>, <신기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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