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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밥 주는데요 / 하재열

by 부흐고비 2021. 12. 5.

대로의 빛줄기들이 밤을 휘젓는다. 비구름 먹은 구월의 바람이 엷어진 가로수 잎을 뒤집어 흔들며 서걱거린다. 토요일이라지만 추석도 앞두고 있는데 이전과 다르게 설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백화점 사이 외진 안길이 앞쪽의 밝은 곳과 대비되며 더 어둑하다. 어둠을 메우듯 길옆 공터에 서 있는 거뭇한 차림의 사람들이 문득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제우 선생의 동학 관련 자료를 읽다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나온 터였다. 서점부터 들렀다. 문 닫을 시각이 다가오는 현대백화점 안의 교보문고에도 파장 같은 흐름이 묻어났다. 원하는 책이 검색을 해봐도 없었다. 습관처럼 서가 앞에서 두어 책을 빼 들고 목차를 읽으며 내용을 헤아려보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입도 가리고 말도 줄여야 하는 황망한 세태에 갈 데가 마땅찮은지라 서점에서 가끔 시간을 보낸다.

백화점 맞은편 대로변을 살핀다. 거리의 불빛과 조명을 받은 우뚝한 한옥 지붕 하나 밤하늘을 이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늘 지나쳐 왔다. ‘천주교성지 관덕정순교기념관’의 현판이 처마 밑에서 푸른빛을 흘린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 때 이 언덕에서 참형당한 순교자들을 기리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대구교구에서 지었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도 이곳에서 참형을 당했다. 같은 순교이건만 이곳에 선생의 이름자 하나 없는 역사의 흐름이 얄궂다.

대로를 건너 순교기념관 앞에 섰다. 무심했음을 탓하듯 살핀다. 안내판엔 순교자의 이력을 알리는 기록이 새겨졌다. 한 시대의 아픔이 풀어 헤쳐진다. 단청을 한 처마엔 희붐한 빛이 일렁인다. 현대, 동아 두 백화점과 앞 도로를 포함한 이 일대는 조선시대 경상감영의 무과 시험장인 관덕정 자리였다. 연병장의 끝이었던 언덕배기는 아미산으로 불린 산이었다. 지금 순교기념관 앞 언저리가 그때 경상도 일대 중죄인의 목을 벤 형장이었다.

선생이 동학을 부르짖던 시기의 조선은 피폐했다. 세도정치의 학정이 극에 달했다. 통치 근간인 삼정이 무너졌고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못 견뎌 백성들은 살길을 찾아 흩어져 유민이 되기도 했다. 농민들이 살고자 저항한 진주민란을 시발로 전국에 난이 일어나는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세도의 권력에 의해 난데없이 붙잡혀와 왕이 된 강화도령, 철종 치세였다.

이러한 때에 선생이 창도한 동학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백성들에겐 희망이었다. 반상의 구별도 귀천의 구별도 없다고 했다. 시천주侍天主, 신은 각자의 마음에 모시고 있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원래 평등하다는 가르침에 민중의 마음은 끌렸다. 지금이 선천의 마지막 혼란기이고 새로운 후천 개벽의 세상이 도래한다고 했다. 조선의 질서와 부딪쳤다. 독점의 권력, 세도의 칼이 선생을 그냥 두지 않았다. 경주에서 붙잡혀 한양으로 압송 도중에 철종의 승하로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었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선생의 순도비를 찾으려 했으나 기념관 앞길에는 없었다. 자료를 잘못 읽은 건가 싶어 다시 대로를 건너 현대백화점 앞에서 두리번대다 찾아냈다. 허수아비 같다고 했던 사람들이 걸터앉은 지하철 입구 뒤쪽의 화단 옆이었다. 옛 영남제일관문과 관덕정의 위치를 어림해 보니 형장으로 끌려가던 길목 어간이다. 천도교 교단에서 그 자리를 찾아 세운 모양이었다. 내 키 높이의 큼직한 오석에 새긴 비이건만 자주 지나다녔어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2017년 5월에 세웠다고 적혔다. 이전에 순교기념관 자리 앞은 흘려버린 적십자병원이 있었고, 순도비는 그 앞쪽이 아니겠느냐는 짐작이 거기서 찾게 했던 거였다. 혹시 이전 건립된 건가 싶었지만 비에는 기록이 없다.

1864년 3월 10일 순도하였다고 적힌 비문 앞에서 지난 오월에 가보았던 동학의 창도지인 경주의 용담정龍潭停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내가 그랬듯 무심히 나다닌다. 눅눅한 바람에 빗발이 스치듯 묻었다.

하늘을 쳐다보는데 정물화의 인물처럼 공터와 노변에 붙박여 있던, 허수아비 같다고 했던 사람들이 몰리며 어둑한 안쪽에서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주변에서 서성이던 사람도 달려와 줄에 붙었다. 문득 안개 낀 밤길을 내달리는, 영화에서 본 주술에 걸린 사람의 움직임 같다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줄 끝머리로 다가갔다. 눈여겨 살피니 남녀노소가 섞여 말이 없는 행색이 좀 의아스러웠다. 마스크를 했으니 더 그랬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무슨 줄이냐고 물었다.

“지금 밥 주는데요.”

야윈 눈매로 나를 힐끗 노려보듯 하더니 뱉어내는 말이었다. 줄 앞쪽이 궁금했다.

“뒤에서 줄 서.”

걸음을 옮기려는데 다시 두어 사람이 퍼붓는 말이었다. 나서지 못하고 비켜 옆에서 앞을 보니 수녀들 네댓 명이 작은 짐차에서 도시락을 꺼내 배부하고 있었다. 그제야 무료급식이란 걸 알아챘다. 시간은 8시 반을 넘어섰다. 팔십여 명은 됨직한 줄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급식하는 건 때를 넘겨서도 밥 먹지 못한 사람에게만 전달하려는 뜻으로 보였다. 그래도 멀쩡하게 보이는 이도 끼여 받아 챙겼다. 비닐봉지 안엔 도시락과 물병 하나였다.

문득 수운 선생이 이 길로 형장에 끌려간 것도 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렴주구에 시달린 백성의 원성은 결국은 밥 달라는 소리 아니었던가. 선생은 백성들의 살길을 찾고자 했고 동학의 기치를 내건 것도 외세에도 흔들림 없이 밥걱정 없는 세상을 열고자 했던 것이리라. 하필 천주교회에서는 이곳에서 무료급식소를 열었는가 싶다. 그때도 이 길에서 주린 배를 쥐고 선생의 마지막을 보러 온 사람이 있었으리라. 묘한 생각의 자락이 들추어진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인가. 밥 얻으려 줄을 선 이들에게 선생은 뭐라고 할까.

대구의 중심가, 두 백화점 벽면의 현란한 조명 불빛 옆의 어둑한 샛길 무료급식의 풍경이 아리다. 지금 치세는 어떠한가.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말은 왜 이리도 모질고 음흉하고 몸짓도 제멋대로인가. 신기루가 될지 모르는 돈으로 셈한 수치의 치레에 취해서 그런 건가. 배고파도 무료급식소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지 않겠느냐는 수녀님 말이 무겁다. 백성의 배고픔을 걱정했던 수운 선생의 순도비가 바로 옆에 있다는 건 모르는 눈치였다. 흩어진 이들은 화단 축대나 나무 아래 아무 데나 걸터앉아 도시락을 뜯는다.

한 수녀님이 내게 오더니 도시락 봉지를 내민다. 줄 설 용기가 없어 미적대는 줄로 여겼던 것 같다. 어정쩡 받아들었다.

‘수운 어르신, 소생도 밥을 받았습니다. 죽을까 걱정하며 입도 가리고 사는 어려운 시절에 밥도 주고 돈도 그냥 주는 이 치세가 그지없이 좋습니다. 그런데 경우에도 안 맞는 돈마저 내미니 백성이 헷갈립니다. 왕과 왕이 되려는 자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더러운 권력 욕심 채우려 백성의 구휼을 핑계로 나랏빚을 내어 그리한다고 합니다. 이는 다음 세대 젊은이의 몫까지 수탈하는 것이니 당대의 것인 땅세 덤터기에 군포와 환곡으로 주리를 튼 그때의 탐관오리보다 더한 자들입니다. 시절이 이러니 어르신이 바라던 후천 개벽의 세상은 여전히 오기 어려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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