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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햇살이 그녀에게 / 이경숙

부흐고비 2021. 12. 15. 09:01

그녀는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오른발을 내디딜 때는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한다. 장애등급을 받은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거기다 이혼한 시동생과 아이들 뒷바라지한 지 8년이 되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녀를 효부라고 한다. 그 말이 칭찬처럼 혹은 놀림처럼 들린다.

어느 날 밤, 그녀가 마트에 조카들 간식을 사러가다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옆집 아주머니는 이제 아이들한테 심부름을 보내고 그녀의 건강부터 챙기라고 했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밤 껍질을 깎는 부업을 해서 살림과 시어머니 칠순잔치에 보탠 것을 아는 아주머니는 그녀가 애처로웠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간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옆집 아주머니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불같은 성미의 시어머니가 어찌 마음을 다스렸는지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사리 분별력도 좀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골목에서 그녀를 만나면 그녀는 가슴을 뻣뻣이 앞으로 내밀고 입을 벙싯거리며 커다란 소리로 “어디 가능교?” 인사를 한다.

그녀의 앞이마에 빼곡한 흰머리를 보며 친구 만나러 간다면서 나도 따라 웃어준다. 시집와서 나들이 한 번 한 적도,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조차 모르는 그녀는 살림밖에 모른다. 20여 년 전에 다리 수술한 시어머니는 여태 이불 한 번 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집안일 하기도 벅찬데 시동생 살림살이까지 맡아 해주다 잠시 시간이 나면 골목에 나와 서성이는 게 그녀의 유일한 낙이다. 성미가 불같은 시어머니와 시동생 식구들과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일들도 많을 것이며 마음 상해서 울고 싶은 일들 또한 얼마나 되겠는가!

대구에서 세계육상선구권대회가 열리던 해에 시민들을 위한 교육이 있었다. 그때 그녀와 함께 교육을 들었다. 교육이 끝나고 걸어 나오며 그녀가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시어머니가 시동생이 사귀는 여자를 더 좋아하고 시장 볼 때도 같이 다닌다고 한다. 자신의 말은 귀담아듣지도 않고 밥하고 빨래하는 식모로 느껴진다며 울먹인다.

그녀의 애기를 들으며 그녀가 정상인보다 지능은 조금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분별력도 있고 생각도 한다는 걸 알았다. 시어머니가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질투심도 느끼는 것 같았다. 현실을 고스란히 감내하며 살고 있는 그녀를 보니 가슴이 아렸다. 그녀를 따뜻이 다독여 주고 싶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벌써 뛰쳐나오든지 이혼을 하든지 했을 환경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다 하는 그녀는 정상인보다 훨씬 우월한 사람이었다.

요즘 자신의 부모를 요양원에 버리고 가거나 심한 경우에는 길이나 복잡한 아파트 단지에 두고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형제간에 서로 모시지 않겠다고 싸우는 일도 흔히 보고 듣는다. 성한 사람 못지않게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동생 가족까지 돌보며 집안을 잘 꾸려 가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효부가 아닐까?

지난해 동사무소 추천을 받아 그녀는 효부상을 받게 되었다. 시상식 날 축복의 봄비가 내렸다. 동네 어르신 몇 분과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열리는 시상식장에 들어갔다. 이미 대구. 경북에서 보화상에 선정된 효자, 효부 열아홉 분과 이분들을 축하하러 오신 축하객들이 시상식장을 메웠다.

시상식이 끝나고 효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시어머니께 고스란히 드리는 그녀를 보며 또 한 번 놀랐다. 이 상금은 시어머니께 드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이미 고부간이 아니라 친정 엄마와 딸 같은 사이로 변한 걸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상금에 욕심도 없는 그녀를 시어머니가 더 아끼고 사랑할 것은 당연하리라.

어릴 적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자라 시집을 왔다고 같이 간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시집와서 한동안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니 답답해서 그러셨을 것이며, 시어머니가 만족할 만큼 일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따르며 말없이 집안일을 하다 보니 시어머니의 인정도 받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며칠 동안 그녀의 효부상 탄 이야기로 동네가 떠들썩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서 그녀는 큰딸을 결혼시키고 외할머니가 되었다. 산후 조리를 한 달 해 주고 어제 보냈노라고 골목에서 만난 그녀가 말했다. 지금도 외손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고 한다. 하늘을 보던 그녀가 비라도 내리면 옥상에 널어 둔 고추가 걱정이라며 뒤뚱이며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뒷모습이 아침노을처럼 아름답다.



이경숙 수필가 《한맥문학》 등단. 대구문인협회, 글과이야기 회원, 독도문예대전, 동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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