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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이여사 / 이미경

부흐고비 2021. 12. 15. 13:44

우리는 엄마를 가끔 이여사라고 부른다. 누구 아내, 누구엄마, 아줌마로 평생 불렸던 엄마가 어느 날 환한 얼굴로 외출에서 돌아왔다. 친구를 따라 서실에 갔는데 이여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무심한 딸들은 엄마를 기쁘게 했던 이여사라는 호칭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누구 아내, 누구 엄마,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려졌다.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면서 우울증이 같이 왔다. 우리는 엄마를 예전처럼 환하게 웃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여사’라는 호칭을 기억해 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별칭처럼 불러봤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여사는 오빠 넷을 둔 막내딸로 태어났다. 외조부모님은 나이가 많아서 낳은 고명딸을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키운 탓에 자연스럽게 의존적이 되었다.

결혼을 한 후에 남편의 사랑까지 넘치게 받으면서 이여사의 의존성은 더 강해졌다. 나이를 먹어도 소녀 같은 면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잘 믿었고 오지랖이 넓었다. 누가 봐도 돈 나올 구멍이 없는 사람이 불쌍한 얼굴로 부탁을 하면 앞뒤 재지 않고 선뜻 빌려 주었다. 곗돈 타는 달에는 누군가 급하다는 말을 하면 양보를 하다가 계주가 도망가서 돈을 떼였다. 그러고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며 크게 원망을 하지 않았다. 늙고 병들고 나서야 그것이 상처로 자리 잡았는지 돈 떼인 이야기를 종종했다.

물욕이 없었던 이여사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단속하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 돌아가시고 부터였다.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떨어졌던 인지력이 그 무렵에 더 떨어진 것 같았다. 집에 있는 문이란 문은 이중 삼중으로 잠갔고 손으로 들어간 돈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둥지를 떠난 지 오래 된 자식들에게도 전화를 걸며 단속을 했다.

우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이여사를 위해 자주 친정에 모였다.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며 하하 호호 집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주말이면 목욕탕에 모시고 갔고, 지루할까 여행도 많이 모시고 다녔다. 이여사의 의지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에게서 딸들로 바뀌었다.

코로나로 여행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요양보호사를 알아보았다. 평일에는 요양보호사와 말벗을 하고 주말에는 딸들이 순번을 정해 들여다보았다. 돈주머니가 열린 것은 그쯤이다. 요양보호사와 장 보는 일에 재미를 느낀 듯 했다. 주로 시골에서 온 할머니들이 좌판을 펼치는 곳에 가서 물건들을 샀다. 그럴 때는 내게 전화를 했다. 사다보니 많이 샀다며 가져가 먹어라 했다. 퇴근길에 가져오면 할머니들에게서 산 채소나 나물들은 하나같이 다듬는 일에 공이 많이 들어갔다. 동생들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최상품으로 조금만 사서 드시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차츰 딸들은 집에 채소가 있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는 길이 뜸해졌다. 사다 놓은 물건을 나누어 주기보다는 딸들을 오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다.

우리를 호출 방법은 다양했다. 가까이 사는 내게 주로 전화를 많이 했다. 보리차를 끓여야 하는데 전기포트를 플러그에 꼽을 수 없다거나 생수병 뚜껑을 열어야 한다며 전화를 했다.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누웠다가 불려간 날은 짜증이 났다.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젓갈을 넣었는데 고춧가루 통이 열리지 않는 다며 빨리 오라고 했다. 이여사는 열무김치를 못 드신다. 틀니를 껴야 하는데 잇몸이 아프다며 거부 한 지 꽤 되었다. 그래서 반찬은 다져서 무르게 만들어야 한다.

딸들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여사에 대한 감정이 애틋함에서 차츰 의무감이 되었다. 그럴수록 이여사의 스케일은 점점 커져갔다. 코다리 두 박스를 사다 놓고 다들 와서 맛나게 졸여 가라거나, 청방배추 15 단 사다놨으니 김치를 담아가라 했다. 차례대로 한 사람씩 오는 딸들이 성에 차지 않아서 어떻게 해서든 한꺼번에 불러 모으려는 속셈이었다.

정점을 찍은 것은 고추장이었다. 장 담는 계절도 아닌데 뜬금없이 고추장 열 근을 만들어 나누어 가라고 했다. 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차일피일하다가 날을 잡았다. 서울에 사는 아들 며느리도 왔으면 하는 것을 겨우 말리고 천안에 사는 동생을 불렀다. 네 자매가 다정하게 고추장을 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이여사도 끼워 고스톱도 한판 쳤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일박이일을 딸과 함께 보낸 이여사는 아주 행복해했다.

천안 동생이 울면서 나에게서 전화를 한 것은 각자의 집으로 떠나고 두 시간 뒤였다. 차가 뒹굴었다 했다. 졸음운전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이 온 동생이 휴게소로 진입하는 순간 사고가 난 것이다. 하늘이 보살폈는지 인명 사고가 없었다.

이여사는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되어 간다. 자식의 형편부터 생각한 엄마였는데 지금은 자식을 품에 안고 외로운 밤을 보내지 않으려 한다. 부모 자식 간에 당연한 일이지만 머리가 희끗해지는 딸들도 사정이 있다. 그렇다고 나이든 엄마를 홀로 둘 수도 없고 형편을 어겨가며 위험한 일을 무작정 할 수도 없다. 이것이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늙은 부모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난제 앞에서 번민이 쌓이고 쌓인다.



이미경 수필가

프런티어 문학상, 호연제 문학상. 대구일보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공모전 입상.

                   대구문화재단 창작기금 수여. 수필집 『모자이크』.

                   대구문인협회, 수필세계작가회, 알바트로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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