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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익명의 눈 / 장수영

부흐고비 2021. 12. 16. 09:05

마당을 쓸었다. 태풍이 지나간 마당은 담장 없는 이웃집에서 굴러온 나뭇잎과 꽁초 들이 널브러져 있다. 외출을 하려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쓰레기를 주섬주섬 주워 들고 쓰레기장으로 갔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골목길 전봇대에 매달린 카메라와 눈이 딱 마주쳤다. 카메라 안에 있는 그 렌즈와 눈이 마주치는데 이유 없이 움찔거렸다. 나쁜 짓 하다 들킨 기분이랄까. 그것은 주운 쓰레기를 봉투 담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을 뿐인데. 카메라의 눈을 피해서 들고 간 쓰레기를 덜 채워진 봉투를 열어 꾸겨 넣었다.

감시카메라가 마을 골목까지 들어 온지 몇 해가 되었다. 이 카메라도 쓰레기장 앞에 서 있은 지는 두 해는 지났지 싶은데, 그동안 무심했다는 것은 당당함이다. 그런데 움찔하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 눈이 방향을 바꾸기를 기다렸다. 카메라는 한 방향에 몇 초 동안 멈추었다가 방향을 바꾸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골목길보다 쓰레기장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았다. 사방으로 눈을 휙 휙 돌리곤 하는 것 같은데 언제 돌았는지 금방 내 눈앞에 와 있다. 은근히 기분이 나빠지며 눈을 피하고 싶었다.

10여 년 전부터 차도가 아닌 공원이나 주택가 골목길에 카메라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설치한 이후 범죄가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고 한다. 공원에 산책 오는 사람들이 두고 간 손가방을 찾아 주기도 하고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아름다운 미담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카메라가 있는지를 모르고 환각제를 거래하다가 공원 카메라에 잡혔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나도 실수로 자동차 트렁크에 가방을 올려두고 달리다가 가방을 잃어버렸다.

출근길에 처마 밑에 제비새끼를 넘보는 고양이를 혼내다가 트렁크에 올려둔 가방을 깜빡하고 잊고 달렸으니 가방이 떨어졌었다. 급히 연락하여 카메라 앞을 지나간 시간에 화면을 봐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잃어버린 가방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상황을 확인은 할 수 있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점점 편리해진 세상이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그 눈을 의식하면 마음 한구석은 불편한 면도 없지 않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 근무시간 내내 그 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4대의 카메라는 사무실 내부를 비추는 용도로 2대, 밖에서 사무실을 비추는 용도로 2대 설치되어 있다. 문밖에 2대는 이해를 한다 해도 사무실 안에 설치한 2대의 카메라에 대해서는 썩 달갑지가 않다. 사무실 카메라는 성역이 없다. 작은 사무실 구석구석 어디든 불신을 잡아내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두 사람이 근무를 하면서 서로가 믿을 수 없다면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안에 깊숙이 숨어있는 마음보다도 기계를 믿고 싶은 생각이면 어쩌겠나.

때로는 사무실 밖 카메라에 시선을 두노라면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게 된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행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카메라에 노출된다. 무심코 행동하는 그들의 익살스런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때는 내가 그 익명의 눈동자인 셈이다. 이로 인해 무심했던 쓰레기장 카메라에 예민해진 것이다.

한 때 우리 집에도 카메라를 설치하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다가구 주택이어서 거주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보니 거주자 외에 들락거리는 사람이 많으면서 불미스러운 일도 가끔 생기곤 했다. 거기에 자꾸 몰입하다보니 불편해지고 사람을 자꾸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여러 날을 고민했지만 설치하지 않은 것은 수시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노예가 될 것 같아서였다.

오늘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쓰레기장 주변에 흩어진 것들을 주워 조금은 여유가 있는 봉투를 열어 쓰레기를 담는다. 깨끗해진 주변을 보면서 내 마음이 개운하다. 반면에 착한이웃처럼 행동하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수영 수필가 《대구문학》 등단, 동서문학상 입상, 근로자문학상 동상. 수필사랑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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