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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겨울 칼국숫집 풍경 / 홍억선

부흐고비 2021. 12. 23. 08:37

변두리 골목길 칼국숫집은 시절 탓인지 주말 점심 때인데도 한가했다. 안쪽 구석에 남자 둘이 젓가락을 휘저으며 마지막 국숫발을 찾고 있었으며, 나는 신문에 끼어들어온 광고전단 쪼가리를 뒤적이며 시켜놓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손님이 들어섰다. 앞장선 사람은 초로의 남자였고 부인인 듯한 여자와 아들 같은 젊은 남자가 따라왔다.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문이 다시 열리고 며느리로 보이는 여자가 열 살 안쪽의 남매를 앞세우고 입장했다. 일행은 모두 여섯이었다. 한눈에 봐도 단란한 삼대 가족의 외식이었다.

“사장님, 그동안 장사는 마 우짜 됐능교?” 초로의 남자는 들어서자마자 호기롭게 주인을 찾았다. 나는 요란한 목소리를 앞세우는 저 초로의 행동이 참 다목적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주인을 향해 이집 단골인 내가 이렇게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왔다는 유세였고, 또 하나는 가장으로서 오늘은 내가 한턱 쏠 것이라는 자랑질 같은 것이었다. 솔직히 한턱치고는 너무나 겸손한 한 끼가 되었다는 속마음을 스스로 상쇄하겠다는 의도가 더 커 보였다.

그것은 뜸을 들이고 들어온 어린 아이들과 며느리의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할아버지 집을 찾아와 외식하자고 나섰을 때는 적어도 피자나 치킨쯤은 생각했을 터인데 웬 밍밍한 국수냐 하는 표정이었고, 며느리는 이 추위에 적어도 해물찜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눈치였다. 어쨌든 초로의 남자는 든든한 가장으로서 6천 원짜리 칼국수로 그 몇 배쯤 되는 허세를 부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섯 명의 식구가 달랑 다섯 그릇을 시키는 바람에 옆자리에 앉아있는 내 속이 불안해졌다. 남자는 이 집은 양이 많아 혼자 다 못 먹는다는 말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국수 그릇에서 바지락껍데기를 수북하게 골라내자 반으로 줄어들고 마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닌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린 남매이긴 해도 저런 덩치에 앞앞이 제 몫은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속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초로의 남자가 또 호기를 부렸다. “오늘 실컷 먹어. 파전도 하나 주문하지.” 그 소리에 옆에 있던 부인이 남자의 옆구리를 쿡 쑤셨다. 눈을 찡그리고 입을 웅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만 원이야, 만 원!” 하는 것도 같았고, “집에 가서 해 먹으면 되지.”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이 꼭 내 유년시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어린 시절, 그야말로 우리 집에 희귀한 일이 생기는 날이면 아버지는 우리 육남매를 시골 장터 중국집으로 데리고 갔다. 물론 보무도 당당하게 몇 걸음 앞장서 가는 아버지를 우리는 쾌지나 칭칭 하는 걸음으로 뒤따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값에도 양이 철철 넘치는 뜨끈한 우동을 시켜 드셨고, 우리는 아무리 아껴 먹어도 게 눈 감추듯이 사라지는 짜장면을 싹싹 닦아먹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호기를 부렸다. “탕수육도 시켜줄까?”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어머니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먹다가 남기면 죽을 줄 알아!”로 아버지의 허세를 차단하곤 했다.

옆자리 젊은 부부가 저희끼리 잠시 소곤거리더니 며느리가 일어나서 주방 앞으로 갔다. “한 그릇 추가해 주세요.”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그 국수 한 그릇이라는 말에 내 마음이 그만 푸근해졌다. 초로의 노인은 모르는 척 텔레비전에 눈을 두고 있었고, 부인은 물수건으로 열심히 목덜미를 훔치는 중이었다. 아이들의 눈은 냉장고의 사이다에 가 있었다.

식당 카운터 위에 달아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내일모레로 다가오는 새해에도 경기는 계속 나쁠 것이며, 서민들은 더 살기가 팍팍해질 것이고,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은 이제 코피가 터질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홍억선 수필가 수필집 『꽃그늘에 숨어 얼굴을 붉히다』, 『대구수필문학사』 외,

                   대구문학상 수상 외, 한국수필문학관장, 대구수필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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