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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항아리 속 동전 / 김미숙

부흐고비 2021. 12. 23. 16:36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로 서민들의 삶이 더 고달프다. 시내 지하상가를 걷다가 비어 있는 상점들을 많이 보면서, 중소 상인들의 고통을 더욱 피부로 느낀다.

점심밥을 지으려고 쌀통을 열었다. 바닥이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쌀로 밥을 지었다. 저녁밥을 지으려면 쌀을 사야 한다. 지갑에는 천 원짜리 지폐 몇 장만 들어있다.

월급날은 아직 까마득하다. 하는 수 없이 항아리에 모아둔 동전을 바닥에 쏟아놓고 헤아렸다. 500원짜리, 100원짜리, 50원짜리, 그리고 10원짜리 큰 것과 작은 것으로 각각 분류했다. 그렇게 한나절을 동전하고 씨름한 후 자루에 담아 체중계에 올려보았다. 동전의 무게가 약 10kg. 금액은 정확하게 194,350원이다. 동전 자루를 멜빵 가방에 넣고 어깨에 짊어지려는데 몸이 휘청거린다. 유년 시절 고향에서 농사일 할 때 지게를 짊어졌던 일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하다. 하늘은 내 맘 알겠지.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두 손으로 가방을 받쳤다. 어깨를 짓누르는 동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함이다. 동네 우체국에 들러 수량이 많은 100원짜리 동전부터 정리를 하는데 우체국 직원이 다가와 내게 묻는다.

“와, 엄청 많이 모았네요. 대략 10만 원은 될 것 같은데요. 얼마 동안 모았어요?”

“예. 3,4년 정도 모았어요. 500원짜리는 가끔 급할 때 좀 썼어요.”

내가 반평생 사는 동안 동전을 돼지 저금통에 모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고추장 항아리에 가득 모은 일은 처음이고, 또 그 많은 동전을 가방에 메고 빗길을 걸어본 일도 처음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쌀 1포대(20kg)는 대략 6만 원 안팎이다. 피땀 흘려 농사짓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꼬박꼬박 사 먹는 내 입장에서는 비싸게 느껴진다. 월급쟁이 아내는 월급을 타면 쌀부터 사놓아야 한 달 동안 안심을 할 수 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동전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는데, 요즘 사람들은 동전을 돈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동전이 떨어져도 줍지 않는다. 자기가 흘린 돈인데도 줍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손톱만한 10원짜리를 장남감이라고 말한다. 또 길에서 동전을 주우면 재수 없다고 하면서 멀리 던져버린다. 게다가 신용카드와 휴대폰 결제로 동전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서민들이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체국 직원과 함께 그 많은 동전을 정리한 후, 창구에서 지폐로 교환한 돈을 손에 꼭 쥐고 나왔다. 그런데, 뒤통수가 자꾸만 가렵다. 아마도 오늘 우체국을 찾아온 손님들 중에서 내가 진상이었을 것이다.



김미숙 수필가(호: 八音) 2003 계간《생각과느낌》 수필 등단. 2012《경북일보》 詩 데뷔.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詩,수필) 회원. 한국낭송문학회 사무국장. 2007 대구시 <젊은 예술가 창작 지원금> 수혜. 두류도서관 평생교육원 <낭송문학> 강사 역임. 2014 제1회 전국수필낭송대회 심사위원 역임. 대구문학관 도슨트 역임. 도동시비동산 사무국장 역임. 《영남문학》 편집위원 역임. 한국낭송문학 대상 수상. 수필집 『정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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