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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랜선 시대 / 김아가다

부흐고비 2021. 12. 24. 09:00

해외여행에 푹 빠졌다. 팬데믹이 진행 중인데 무슨 해외여행이냐고 묻겠지만, 랜선 투어를 하고 있다. 랜선 투어는 목적지 선택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검지 하나로 성지순례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아름다운 곳을 샅샅이 여행한다.

랜선 투어는 현지에 있는 여행 안내자가 유명 관광지를 촬영해 온라인으로 유튜브에 올린다. 덕분에 독자들은 실제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여행이 불가능해지고 유튜브를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지 랜선 투어가 대세라고 한다. 화면에는 유명 관광지가 텅 비어있다. 비어있어서 채워지는 풍경,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여행은 사람들이 많이 붐벼서 일행을 놓칠까 염려되어 항상 긴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느긋하다.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지 않고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감상한다.

요즈음 사회흐름이다. 온라인을 통해 학생들은 수업을 듣는다. 랜선 집들이, 랜선 돌잔치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지 말라고 했다. 영상을 통해 차례 지내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서로 덕담하면서 새해 인사를 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 투덜거렸지만 어찌할거나. 과학 문명으로 살기 좋은 세상은 되었지만, 후세에 아이들의 인성이 어떻게 변할까 하는 노파심이 깊은 한숨으로 뿜어져 나왔다. 아마도 제사 상차림도 실물이 아니라 각종 그림과 사진으로 빛 좋은 개살구처럼 화려하게 올리고 차례를 지낼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상황이 그러하니 랜선 투어에 나는 몸을 싣는다. 팬데믹 이전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아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몇 해 전, 내가 아는 선배가 희수喜壽 기념으로 여고 동창생들과 미국 애리조나 국립공원 그랜드캐니언을 갔었다. 인사를 하면서 물어보았다.

“기억에 제일 남는 게 뭐유?”

“가이드 궁디.”

노인들이 여행을 갔었는데 아침에 눈 뜨면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졸졸 따라다녔기 때문에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만족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즐기는 랜선 투어는 상세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좋기는 하다. 실제 여행 중에는 잠시만 한눈팔면 설명을 못 듣게 되지만, 랜선 투어는 아름다운 풍경과 관심 있는 장면은 다시 돌려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장점은 있다. 꿩 대신 닭으로 위안을 받고 있지만, 현지 여행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여행안내자 중에는 역사, 문화, 음악, 미술 등 분야별로 심도 있게 설명을 해주는 전공자도 있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담을 수 있도록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전해주려고 애쓰는 것이 고맙다. 한편으로는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살아야 할 그들이 랜선을 통해 안내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생활을 위해서 유튜브를 한다는 그들의 사정을 들으니 짠하다. 해외여행 금지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서 거의 수입이 없다고 한다. 세상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하루빨리 팬데믹이 끝나고 저들이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 고객의 귀중함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영상을 찍기 위해 더 많은 공부와 자료를 준비했으리라. 또 유명 여행지 외에도 새로운 관광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틀에 박힌 안내에서 벗어나 자연과 문화에 애착을 가지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도 가지지 않았을까. 저들이 절망을 희망으로, 전 세계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이 개발한 과학 문명에 인간이 무너지고 있지만, 문명에 의해서 다시 일어설 기회가 주어진 랜선 투어이다. 더러는 구독자가 많아서 대박 터진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현장감은 없다.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가 이어져 예전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여행지를 찾게 되었으면 좋겠다.



김아가다 수필가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희나리>.

                     경북일보문학대전 수상 2회. 수필문예작품상.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논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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