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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는 것을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굳이 해 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해서 안 되는 것을 했을 때의 묘한 후련함 같은 것, 그것은 일순간 삶의 긴장을 풀어버리면서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누군가 그 이유를 굳이 따져 묻는다면 아직 철없는 구석이 많기 때문이라 말하련다. 금기된 것을 깰 때의 기분, 어쩌면 그런 돌출성의 행동이 내 삶의 또 다른 자양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먹을 게 많았던 다락방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쩌다 손님이라도 오는 날 어머니가 내어오는 다락 속의 먹을거리를 맛보면서 묘한 웃음을 흘렸던 기억은 늘 새롭게 와 닿는다. 다락은 쉽게 오를 수 없는 공간이었기에 높은 위치만큼이나 호기심도 컸다. 내게 있어 다락방은 신화의 세계였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들이 그 속에 무한정 들어있었다. 현실적 존재인 내게 다락방은 이상향이었던 셈이다.

쉬이 열 수 없는 다락문, 쉬이 열리지 않는 다락문을 보면서 날마다 그곳으로의 사다리를 놓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다락으로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찾는 일은 사다리를 오르는 일보다 더 신나는 일이다. 여행을 가는 것보다 가기까지의 기다림이 더 즐겁듯 집 모퉁이를 돌아 그것을 가지러 갈 때면 가슴이 먼저 알고 뛰기 시작했다. 다락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는 일은 단지 행위로써 끝나는 게 아니었다. 어른들이 안 계신 집안에서의 은밀한 행위, 다락방으로 사다리를 놓는 일은 경직된 유교 사회 속에서의 또 다른 일탈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쉬이 돌아올 수 있는 적당한 거리였기에 그것은 또 다른 일상이었던 것이다.

날이 새면 사랑방으로 모여드는 종조부들. 발소리, 웃음소리마저 조심스러웠던 어린 시절. 어른들로 벽이 되어 있던 숨 막힌 정적이 정말 싫었다. 그런 까닭으로 내게 있어 고향이란 늘 감옥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내 의지대로 이동을 할 수 없었던 시절,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의지에 따라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게다.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을 오르면서 어쩌면 어른이 되는 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어떤 해방감을 가졌을 것이다. 다락방에 오른다는 것은 수평적인 삶에서의 수직상승이요 그것은 공간의 이동이다.

직립 보행을 하면서 인간은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그 결과 문명의 발달을 가져왔다. 어쩌면 높은 곳을 보면서 사람은 꿈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꿈이 있다는 것, 그것은 삶에 대한 도전이요 자기 정체로부터 극복하는 길이다. 꿈을 찾아 길을 떠나면서 인간은 더 넓은 곳으로의 진출을 해왔을 것이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면서 마을을 이루고 그 속에 공동체의 삶을 열어갔을 게다. 그러고보면 사다리를 오른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행위와 더불어 사물에 대한 인식을 주었으며 그 속에 나름의 지평을 열어가면서 존재자로서의 나의 획을 긋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다리를 오르는 일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붕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보았듯이, 다락방에 호기심을 가졌듯이 그건 새로운 세계로의 호기심이며 또한 능동적인 행동이다. 사다리를 오르는 일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감이다. 그건 정체가 아니라 흐르는 일이다. 현재의 위치를 벗어나 좀 더 나은 위치로의 이동을 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을 몰래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모험이다. 주어진 길을 가기보다는 가보지 못했던 길을 가면서 느끼는 긴장감, 삶에서의 긴장감이란 곧 에너지가 아닌가. 사다리를 오른다는 것은 모험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아니 신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관념으로부터의 탈피, 나는 날마다 신화를 꿈꾼다.


김종희 수필가 《수필과비평》 등단.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수필집 『나는 날마다 신화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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