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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수 시인
월간 《문학공간》 시 부문 등단. 공간마당 동인.
사단법인 한국문학세상 부이사장, 한국문학세상 심사/지도위원, 계간 《한국문학세상》 주간.
시집 『불꽃으로 사는 마음』, 『사랑은 그렇게 오나 보다』, 『그대 눈동자』, 『굴레』.
저서 『길 위에서』, 공저 『시인』 등이 있다.
불꽃으로 사는 마음 / 박동수
인두 끝으로 꼭꼭 여민/ 잿불처럼 불덩이로 살아납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그대 그리움의 불길입니다.// 사모하는 마음 천년인 것은/ 믿음으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기다림이니// 불덩이처럼 타는 가슴속에/ 엉어리진 마음 쇳물처럼 녹을 때까지/ 훨훨 타려 합니다.// 어느 누가 내 영혼을 본다면/ 용광로인 걸로 알겠거니// 그래도 그대 그리움의 쓰라림보다/ 뼈를 태우는 불꽃으로 사는 삶이/ 더 평안인지 모릅니다.//
사랑은 그렇게 오나 보다 / 박동수
사랑은 그렇게 오는가 보다// 언 날 봄빛처럼/ 사랑의 말 한마디/ 한적 없어도/ 그 숱한 차가운/ 눈바람 속을/ 얼고 슬퍼하며 오는 것// 깊숙이 깊숙이/ 스며드는 봄기운처럼/ 가슴에 와 닿는// 봄빛처럼/ 가슴 파고드는/ 봄바람처럼/ 따슴하게// 사랑은 그렇게 오는가 보다//
그대 눈동자 / 박동수
물빛 하늘이 녹아내리는/ 그대 눈동자/ 날마다 퍼 마셔도/ 깊어만 가는/ 검푸른 바다여//
굴레 / 박동수
20층 고층 아파트 처마 끝에/ 삶의 수평선이 찰랑이고/ 나무들과 바위와 꽃들로 꾸며진/ 신기루 사이로 유영하는/ 생명들// 구멍 찾아드는 게 때처럼/ 몇 동 몇호에 밥상을 찾아/ 붕어처럼 마셨다가 내어놓는 반복/ 태양은 섬뜩하게 밝은데/ 이 깊은 수심속에는/ 굴곡된 빛 하나도 없다// 뻐끔거리는 주둥이로 문질러도/ 유리벽으로 막힌 어항/ 보이는 것은 찌든 얼굴들 뿐/ 지느러미를 닳도록 흔들어대도/ 수능시험처럼/ 옥죄는 굴레를 벗을 길 멀다// 오만한 태양은 이 슬픈 속내를/ 외면 한 채 수평선 위에서만/ 반짝일 뿐이다//
산을 보노라면 / 박동수
산을 처다 보고는/ 홀아비처럼 외로이 서 있는 모습/ 전설이나 신화를 품고도/ 떠벌이지 않은 카리스마가 있다// 승냥이 같은 무리들이/ 물어 뜯어낸 살점자리에/ 진물 나는 흉터의 아픔이 있어도/ 봄이면 각색의 꽃들을 달고/ 그 처절한 좌절을 겸손히/ 갈무리하는 힘이 있다// 소태보다 더 쓴 오염에/ 얼굴 가득한 흉터들이/ 비루먹은 개털처럼 해어져/ 누더기로 펄럭여야 하는 산은/ 모질게 살벌해진 인간에게/ 그래도 살가운 바람을/ 느끼게 하고 있다.//
산, 산에 살고파 / 박동수
떠다니는 구름도/ 떠나기 싫어/ 안개비로 내려앉는 산아/ 네 깊은 가슴/ 심산에 살고 싶어// 흘러가는 바람도/ 떠나기 싫어/ 메아리 되어 우는 산아/ 네 넓은 가슴/ 태산에 살고 싶어// 훨훨 나는 새들도/ 떠나기 싫어/ 짝짓고 산새로 우는 산아/ 네 푸른 가슴/ 청산에 살고 싶어//
생각하는 나무 / 박동수
비가 오는 날/ 빗물을 흠뻑 맞으면서도/ 턱을 괴고/ 생각하는 로댕// 장맛비가 쏟아지는/ 흐린 아침/ 아파트 샛길에 선 가로수/ 외발로 선 채/ 비를 흠뻑 맞고 있다// 흐르는 빗물은/ 아랑곳없이/ 외발로 서서/ 로댕이 된 나무는/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
새싹 이야기 / 박동수
사랑 하겠노라/ 슬픈 사연/ 가슴속에 묻고// 긴 겨울 속에 시들었던 얼룩진 봄// 고운 연두 빛/ 손 내어 밀고/ 가만히 어루만지며/ 속삭인 귀속 말/ “사랑 하노라”/ 가슴 저미네//
담쟁이 / 박동수
하늘을 향한 믿음으로/ 숨찬 오름의 손짓은/ 세상과는 손잡지 않으려는/ 곧추선 마음// 계절이 배반하는 날은/ 마지막 잎 새 하나까지/ 떨어내어 버리는/ 이를 악문 자학의 인내// 원초적 욕망들이/ 세상일에 끌어매려는/ 유혹을 다 떨쳐내고/ 줄기만으로도 오르는/ 불변의 믿음이여!//
흑장미 / 박동수
한 여름 폭염 속을 헤집고/ 가슴 열어 태운/ 사랑의 열기// 시들어 질 때까지/ 토해내는/ 순결의 핏덩이/ 집시 여인의 사랑처럼/ 열정의 사랑이여!//
6월의 줄 장미 / 박동수
그리운 사람 기다리다/ 타버린 마음/ 발갛게 꽃망울로 터뜨리니/ 하늘조차/ 빨간 사랑의 빛에/ 물들어 버리게 하는/ 6월의 장미//
선인장처럼 / 박동수
뿌리 없는 선인장 한쪽이/ 메마른 화분 속에/ 허리를 묻고 있다// 푸른 선혈을 토해/ 꽃 가슴을 피우내기 위해/ 숨 가쁜 소리를 치는/ 고된 사연을/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선인장처럼 물을 기다리는/ 메마른 사람들/ 미풍에도 풍경처럼 징징/ 언제 꽃을 피울지// 선인장 꽃은 화려 하지만//
민들레 / 박동수
모질게 찢기고 밟혀도/ 끈적이는 흰 눈물/ 가슴속에 채우고/ 노란 웃음으로 사는 민들레// 오직 그대의/ 사랑이 봄빛으로 온다면/ 슬픔만큼 아픔만큼/ 꽃 웃음을 뿌리리라// 그대 향해 못 다한 사랑이면/ 홍수 속에 잠기어도/ 홀씨 하나 날려 보내/ 그대 가까이 뿌리내려/ 그대 위해/ 노란 웃음꽃 피우리//
진달래 2 / 박동수
진달래가 빨갛게 피니/ 봄이 왔다// 나는 오늘 이순이 넘은/ 친구모임에 간다/ 멋 좀 부리고 가는 나를 보면/ 어떻게 헤아려볼까// 세월을 잊은 글 몇 줄 쓴다고/ 젊음이 있다고 할까// 때를 아는 진달래가/ 봄에 피듯/ 나 또한 꽃처럼/ 가고 오는 때를 알며/ 살고 싶을 뿐이다//
진달래 3 / 박동수
씨앗 하나 툭 터져/ 붉은 사랑으로 피고 그대 선 자리/ 가파른 벼랑일지라도/ 활활 타며 잘도 오르네// 타는 이 불꽃 씨앗이/ 훌훌 떠나던/ 계절 끝에서 준 사랑이기에/ 새봄 산산산 천지에서/ 활활 타며 피워 보이리// 이젠 새 씨앗 하나/ 떨어뜨려 주지 않아도/ 당신의 사랑은/ 깊고 깊은 가슴속에/ 붉은 씨앗으로 오래 남아있네//
눈꽃 / 박동수
망설이던 눈이 함박으로 내린다/ 긴 겨울날을 알몸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나목(裸木)들/ 서러움을 달래주는/ 포근한 은총이/ 눈꽃으로 덮어가는 겨울 날// 나목(裸木)의 아늑한 평안과/ 봄을 기다리는 복수초의 생기/ 포근하게 핀 눈꽃 밑에서/ 소근소근 봄을 향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것은/ 작은 희망을 안아 주는/ 소박한 배려의 눈꽃이 피었음이리//
오월의 꽃 / 박동수
5월의 하늘 푸르게 펼쳐지고/ 짙은 봄기운이/ 아카시아의 가슴을 열어/ 향기 뿜으니/ 그리웠던 사랑들이/ 봄날 아지랑이로 밀려오네// 향기 속에 갈무리 된/ 달콤한 꿀인 듯 언어가/ 잊어진 사랑을 일깨워/ 세상이 따스한 미소로 다가서니// 삶의 산야에 일어난/ 지난날의 역겨웠던 삶이/ 추억으로 느껴지고/ 아이처럼 순수한 사랑이/ 하얀 꽃으로 펼쳐지네//
5월에 지는 꽃 / 박동수
금방/ 천국을 실어온 듯/ 펼쳐놓은 화사함들이/ 5월의 날개를 퍼덕이는 날/ 저리도 허망하게/ 지고 마는가// 지는 꽃들은 봄같이 왔지만/ 돌아감은/ 흙으로 바람으로 가고/ 그리움으로/ 이름 모를 산새는/ 목이 아프게 우네// 시절 좋아/ 화사함과 정직으로 왔더니/ 부정부패로 어지러워 지는 세상/ 가슴 아팠을까/ 웃음 하나 떨어놓고/ 미련없이 가버리는/ 허망함은// 그 많던 화려한 꽃 대궐이/ 이제 또/ 어제와 그제처럼 쓸쓸해/ 산새는 슬프게 우네/ 가네/ 가네/ 5월에 지는 꽃//
찔레꽃 마음 / 박동수
가시 돋친 넝쿨 속으로/ 가까이 들어서며/ 가시에 난 상처에 흘러나오는/ 붉은 핏물로/ 사랑을 고백해야겠다// 가시를 세운 몸뚱이에 긁히며/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내 심장에 흐르는 소리/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사랑/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듯한/ 뜨거운 말을 참으며/ 새순처럼 여리게 다가가/ 고백하리라/ 하얀 꽃 마음을//
달개비 꽃 / 박동수
하늘을 머금고/ 또 하늘을 처다 보고/ 그 먼 하늘/ 새벽 회치는 소리/ 듣고 있을까// 죽도록 돌아오실 님/ 기다리다가 가슴 멍든/ 파란 달개비 꽃/ 흰 아침에 시들어 사그라질/ 사랑이여!//
분꽃 / 박동수
솔가지 엮은 울타리 밑으로/ 초록빛 봄 잎 사이/ 누이의 분칠한 얼굴처럼/ 발그레한 분꽃// 적삼 깃 사이로/ 푸석한 목 줄기에/ 분홍빛 서리게 하던/ 분꽃이// 수없이 흘러간 세월의 길목이/ 기억조차 지워버리듯/ 누이는 가고/ 그 젖무덤 사이로 분내 풍기던/ 분홍 분꽃이/ 5월의 봄 슬픈 분내음 머금고/ 또 꽃을 피우네//
할미꽃의 애상(哀想) / 박동수
긴 겨울 여울물처럼 흘러가고/ 진달래가 피는 언덕/ 기억을 더듬어/ 꿈을 안고 찾아온 할미꽃이// 봄빛이 따뜻할 때면/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추억들/ 산골짝 맑은 물길에/ 꿈의 싹을 찾아 눈을 뜨네// 잊을 수 없는 사랑의 꿈/ 아련한 옛 모습들/ 세월따라 이젠/ 황혼의 노래되어 흘러오네//
네 잎 클로버 / 박동수
책갈피 속에 끼원 논 행운/ 사랑과 미움으로 엉킨 삶에서/ 기다림의 마음은/ 미이라가 된 네 잎사귀에/ 행운을 걸어본다// 쓸쓸한 나그네/ 사랑을 아는 사람 만나/ 사랑하면 행복인 것을/ 네잎크로바에 아련히 건/ 무딘 인생// 불어버리면 부서져 날아가는/ 풀잎 같은 삶이지만//
부평초 / 박동수
때로는 매연에 지치고/ 거리 물결에 밀리는 지친 눈망울/ 어디서 밀려와/ 갓길 인생으로 출렁이는가// 허우적거려 봐도/ 설수 없는 부평초 운명/ 바람에 밀려가는 날/ 하늘엔 하얀 낮달/ 물속은 언제나 싸늘한 별 빛/ 머물 곳 없는 부평초// 계절에 밀려가는 철새의 무리/ 박하고 허한 세월/ 마른 바람에도 떠도는/ 민들레 씨앗처럼/ 부평초의 안식은 어디쯤일까//
개망초 / 박동수
내 너를 못 잊는 것은/ 네 모습이 달빛처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요/ 또 너의 푸른 잎/ 무성해서가 아니지요// 너를 못 잊는 것은/ 너의 이름이/ 개망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럽게 밀려도/ 길섶 한 뼘의/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 내려/ 기다리는 이를 위해/ 밝은 꽃을 피우는 개망초/ 애절함 때문입니다//
구절초 / 박동수
장미꽃도 나팔꽃도/ 긴 날 피고지고 돌아서 갈 때/ 너는 뭘 하다/ 늦은 가을을 읊조리느냐/ 구절초/ 아홉 구비 돌아서/ 헐렁헐렁 온 것 이더냐?/ 마디마다 묶은 사연이 무엇이길래/ 구절초야/ 북녘 땅에서/ 차디찬 서리가 닥쳐올 텐데// 하늘이 푸르다고 지금 피면/ 하 세월 푸르겠느냐/ 슬프도다/ 찬 서리에 입술 얼기 전에/ 언제 고운 시(詩)를 읊겠느냐/ 구절초야//
해바라기의 삶 / 박동수
오시려나/ 기다리는 마음이/ 심장을 열고/ 하늘 높은 곳에/ 노란꽃을 피웁니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 생각나/ 내 영혼은/ 활짝 웃는 꽃이 됩니다// 하루가 다가고/ 노을이 지면/ 아쉬워 고개 떨구는/ 기다림의 모습/ 해바라기의 삶입니다//
코스모스 / 박동수
하늘 푸른 계절/ 가녀린 목줄 길게 세운 자락에/ 하늘거리는 보랏빛/ 꽃 한 송이/ 어이 가을꽃이 되었나.// 옥 빛 하늘/ 잠자리 따라 꽃대 올려 세워/ 꽃송이 피움은/ 뜻 높은 너를 알게 함인가.// 꽃잎에 깃든 네 정결의 마음/ 떠도는 구름에 실어/ 어디로 흘러 보내는가/ 목줄 시린 가을 계절/ 너의 마음 둔 곳 어디인가.//
코스모스 피는 계절 / 박동수
그리움이 짙어가는 계절/ 하늘은 청명하게/ 푸르고/ 햇살이 고운 봄엔/ 기다림의 사연/ 꽃빛이 뜨거운 여름이면/ 불꽃 사랑의 사연들// 코스모스 빛 붉게 피는 날/ 하늘이 물들면/ 모두가 떠나 가야하는/ 쓸쓸한 계절//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생의 끝자락/ 당신과 이별의 언어를/ 삼켜야 하는/ 애절함이/ 붉고 푸른 향내로 짙은/ 코스모스의 계절이여//
여름 코스모스 / 박동수
초계탕 집 마당의 7월은/ 태양이 치마폭을 열고/ 뜨거운 입김을 쏟아내는데/ 텃밭엔 당돌한 코스모스가/ 혀를 날름거리며 계절을 비웃으며/ 보라색 염을 떨고 있다// 시인이 된 코스모스/ 이 뜨거운 날/ 눈 내리는 계절/ 눈 위에 떨어진 빨간 단풍잎의/ 이별을 생각하며/ 스산한 바람을 느낀다// 여름속을 허우적거리는/ 거리의 사람의 허줄한 뇌 속에/ 부스럼 내는 여의도 정치꾼들로/ 계절을 잃어버린 날/ 여름 마른 길가에 핀 코스모스 꽃잎에/ 슬픈 민초의 눈망울이.......//
능소화 꽃처럼 / 박동수
살아간다는 길은/ 날마다/ 또 다른 초행길을 걸어가는 것// 안개 속처럼/ 희미한 길을 감히 넘어서서/ 벼랑일지 물길일지/ 낙뢰의 빛처럼/ 가슴으로 섬뜩한 고통을 느끼며/ 애증의 줄기를 뻗어야 하는/ 초행길이 전부입니다// 어쩌다 길 끝이 벼랑일 때는/ 능소화처럼/ 허공인줄 알면서 줄기로 뻗어내/ 심장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끈끈한 수액의 울분/ 진한 주홍빛 꽃송이로/ 내 안에 혼의 소리 주르륵/ 흘러 내립니다.//
능소화 / 박동수
기다리다 지쳐 늘어진 줄기에/ 마음의 등 하나 걸고/ 밤이 깊어 오시지 않을까/ 등불로 밝히리다/ 차마 담장 밖 서성이다/ 돌아설까/ 줄기줄기 끝에/ 등등에 불 밝혀 두오리다// 바람이 불면 그대인가/ 낙엽 지는 소리 그대인가/ 발자국마다 꽃잎 날리오리다/ 밟고 오소 밟으며 오소/ 멍들은 자국이야/ 기다리는 아픔보다 더 하랴// 발꿈치 들어 넘겨보다/ 넝쿨이 되어 하늘 위 높이 뻗어/ 기다리다, 기다리다/ 병이 되어/ 길게 쓸어 지는 날은/ 여기가 내 무덤이랍니다//
해당화 / 박동수
아이는 해당화 씨를 묻었다.// 하늘이 넓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아이는/ 뒤뜰 자투리에 해당화 씨앗을 묻고/ 언젠가 바닷가 바람이/ 따스한 하늬바람이 되는 6월이면/ 진분홍 꽃이 웃겠지/ 꼭꼭 밟아주고 돌아섰다// 세월이 겹겹이 쌓여도 변할 일 없다고/ 세상 넓은 것을 아는 날/ 가난을 버리고 떠났다/ 비릿한 정든 마을은 슬펐고/ 이 세상 모든 것이 소금끼로 절은/ 우윳빛 투명 속/ 보이지 않은 운명의 점괘가 붙은/ 해당화 핀 짭짤한 고향// 반세기가 흘러가고/ 하야케 바래진 아이의 마음속엔/ 자투리땅에 묻은 해당화가/ 제 심장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린 체/ 가시를 세우고 작은 바람에도/ 찔러대는 아픔/ 그저 진통제를 삼키며 살았다// 봄은 늘 오고 가고/ 가슴속 뿌리깊은 활짝 핀 해당화가/ 홑잎으로 질까 두려워/ 그 자투리땅에 가보지 못했으리/ 해당화꽃이/ 빨간 분홍으로 피어 있을// 세월은 그 맑은 백사장에도/ 죽음들이 쓰레기에 엉켜 쌓이고/ 시원한 바람은 프레온으로 차 오르며/ 신발 끝에 묻은 농약에/ 작은 자투리땅 해당화는/ 이식할 자궁조차도 잃었다// 씨를 묻고 돌아선 날/ 아이는 제 심장 어느 곳에/ 해당화가 아픈/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았다.//
산당화 / 박동수
가시를 감추고/ 너도나도 가까이 오기를/ 거부하면서도/ 타들어가는 붉은 혼/ 그 외로움/ 스스로 가시로/ 찌르고 있음인가// 외로운 슬픔/ 토해내는 가슴속의/ 용암 같은 열혈/ 꽃잎으로 쏟아지듯/ 붉은 것이/ 산 또 산이 핏빛으로/ 물들어 가네//
* 명자나무가 산당화로 불린다.
야생화 / 박동수
산자락 어디든/ 제 멋대로 피는 꽃/ 누구의 사랑도/ 누구의 가꿈도 받지 못한 꽃이지만/ 별빛 한줄기 있어도/ 야생화는 꽃으로 핀다// 사랑도 잇속으로만 챙기려는/ 사람들뿐인 탐욕의 세상/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험한 가시덤불 속/ 야생화는 고운 꽃으로/ 피고 또 진다// 오고 가는 온정(溫情) 없는/ 세상 뒤 안 길에/ 야생화인들 피지 않았으면/ 얼마나 황량할까/ 보잘것없이 덤덤히 자라난/ 꽃무리인들 없었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야생화 2 / 박동수
바람이 불어와도/ 빗물이 흘러 온몸 잠기는 날에도/ 나는 피어야 합니다/ 어둠들이 이세상을 덮어가는 날/ 가련히 슬픈 별들이/ 내 작은 품에 내려와 안기며/ 밤이 새도록 슬픈 이야기/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잡풀이라고/ 밟고 잊혀가지만 그래도/ 나는 피어야 합니다/ 어둠만이 내리는 이세상속에서/ 잊혀진 슬픈 별들이/ 잡풀 속 내 품에 앉아/ 밤새워 두런두런 이슬 되어/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생화 3 / 박동수
아희야/ 산기슭으로 바람이 불더냐/ 바람이 불면 바람꽃이 피고/ 흰 안개 산 허리 돌아/ 짙어지면 엉겅퀴 꽃이 피네// 세상이 미로처럼 헝클어진다고/ 몸부림치다 바람처럼 간 그 님이/ 바람꽃 되어 돌아오고/ 세상 인심 풀풀 하다고/ 안개길 따라 가버린 그 시인이/ 꽃술에 물방울이 영롱할 때/ 엉겅퀴 꽃으로 돌아온다네// 아희야/ 산기슭에 아침 햇살이 돌아들면/ 밤새 님 그리워 울던/ 달개비꽃이 피지 않았더냐/ 별이 내려 앉아 슬픈 이야기로/ 야생화는 곳곳에 피어나/ 우리 내/ 아픈 전설이 수놓아 진다네//
채송화 / 박동수
꿈결처럼 흘러가 버린/ 옛 이야기가/ 아침 이슬에 흘린/ 너의 눈물에 배여 오는구나// 고달픈 삶에 굳어진 고뇌/ 우물가에 앉아/ 너를 향한 연민으로/ 긴 한숨 풀어내던/ 깊숙한 어머니의 가슴속이/ 네 입술처럼 빨갛게/ 물들고// 흥얼거리든 청순한 어미의 노래가/ 그리움의 바람으로/ 칼날처럼 따갑게 들려오는/ 이 가을 아침/ 붉디붉은 토혈을 뿜는/ 그리움의 아픔이여!//
쑥부쟁이 / 박동수
보라 빛 하늘 물고/ 활짝/ 웃음소리 내어본다/ 쟁쟁// 길섶마다 치마폭을 깔고/ 지글지글 깨물어대는/ 소리는/ 보라빛 환청/ 머릿속이 비어간다//
붉은 영산홍 / 박동수
핏빛 붉은 꽃잎에는/ 두견새 울음이 파르르 떤다// 꽃 산에는/ 날개 짓하며 울어대는/ 두견새 토혈의 붉은 흔적// 산 넘어 산 넘어 가고 싶지만/ 아직 날 짓 서툰 새끼/ 어미 소리 들을까// 토혈로 쏟아내는 한 모금 핏덩이/ 애달픈 모정에/ 영산홍은 붉게 물들어간다//
모란 / 박동수
쓰린 인내로/ 겨우내 제 속내를 태우며/ 피워낸 붉은 꽃송이가/ 꽃대를 휘게 하네.// 봄날 긴긴 밤의 진통/ 붉고 큰 꽃으로 태어나고/ 모란으로 피기까지/ 기다림으로 살다// 무심한 세월 앞서가고/ 봄 나비 가버렸지만/ 봄 나비의 꿈으로 피는/ 오월의 꽃이여//
풀꽃의 인내 / 박동수
늘 떠도는 것은/ 내가 사는 방식이다/ 어느 곳이든 사는 동안/ 언제나 풀꽃// 바람이 쓸고 가도/ 어디서나 다시 살 수 있어/ 서러운 겨울 갈무리된 사연/ 영근 씨앗 속에/ 묻어 두었다가// 또 탱탱 불어 새싹이 되는 봄날/ 폴꽃의 언어로 바람 속에/ 날려 보낼 수 있다네//
꽃잎이 날리면 / 박동수
목련 젖가슴이 보이더니/ 벗꽃이 화들짝 피어 버렸다// 사월이 깊어가고/ 투기 내듯 훨훨/ 가슴열고 꽃눈 날리면/ 땅으로 떨러져갈/ 저 꽃들의 아픈 사랑// 이 밤 지나가고/ 바람 이는 아침이면/ 이슬 젖어 무너질/ 꽃잎 사랑이// 아리고/ 숨이 가빠오네//
창 밖의 계절 / 박동수
넝쿨이 담장을 넘어 간다/ 빨간 웃음 짓는 장미가/ 아침 햇살에 꽃잎을 미소로 흘린다./ 시들어 메마른 계절의 아픔은/ 기억에도 없듯이/ 생생하게 피는 장미의 삶이// 청과 시장에는 고향을 잃은 과일들이/ 울긋불긋한 색들로 처절한/ 누드의 쇼를 하고 있다/ 상자 속에서 지워져가는 녹색의 세월/ 빨갛게 노랗게 익어가며/ 향으로 흘리는 아픔이// 강 어구에 모여든 고기 때들/ 찾아든 차가운 종착지/ 지친세월 알 하나 놓은 체/ 길을 잃은 고기/ 사람들은 낚시로 챈다./ 목숨 걸고 찾아 온 귀향/ 목숨을 내어주는 처절한 계절//
병실과 대포집 / 박동수
시간을 주워 모으고 있다/ 나도 모르게 버린 시간들을/ 하얀 환자복 속으로/ 갈무리하는 간절함이/ 신음의 세월을 줄여준다// 시간을 내다 버리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귀한 시간들을/ 한 잔의 술잔에 담아/ 마셔버리는 순간마다/ 희망의 세월을 줄여준다//
손수레와 노인(종이 줍는 노인) / 박동수
바람이 굴러 온다./ 폐 종이 상자에 갇혀버린/ 노인과 그의 인생이/ 수레에 실려/ 바람과 함께 굴러 온다// 낡아 꾸부러진 고철허리/ 그에게도/ 봄이 주던 사랑이 있었고/ 불꽃같은 마음으로/ 그대 위해 풍선처럼/ 봄 하늘을 날았지// 어느덧/ 살처럼 꽂혀버린/ 그 옛 사랑은/ 털어낼 수 없는 덫이 되었고/ 종이 상자에 묻혀/ 도시의 골목 바람에/ 굴러가야 하는 낡은 생//
참새와 허수아비 / 박동수
언제 적 이야기일까/ 극성스러운 참새 때문에/ 모처럼 휴일 날에도 아버지의/ 호령에 휴일을 바친 체/ 아침잠부터 설치고/ 허수아비와 함께 종일 전투를 벌렸다// 지금 세상에는 참새가 없어/ 새 쫓는 일 없고/ 들판에는 허수아비도 없고/ 딱총도 없다/ 허수아비가 없는 들엔 참새가 없다/ 허수아비는 모두 여의도로 갔다네/ 여의도로 가 손만 드는 허수아비는/ 말끔한 정장에 금붙이 장식에/ 바람이 불고 비가와도// 온몸은 기름 끼가 번들번들 하다네/ 그래서 참새 때는 모두 여의도로 나가/ 조잘대며 허수아비 발밑에서/ 먹이를 찾느라 들녘은 잊어버렸다// 들녘은 한가하고 새 쫓는 아이는/ 허전한 가슴을 안고/ 하늘 저 먼 어느 곳에 계실/ 새 쫓던 주름진 아버지의 슬픈 모습에/ 긴 숨을 들이 키고 있다//
마음이 슬프면 / 박동수
가자 강변으로/ 아침 햇빛 반짝이는 모래/ 하늘빛 물이든/ 파란 강물이 흐르는/ 강변으로 가자// 가다 어두우면/ 모래 빛 밝히고/ 가다가 마음 슬프면/ 푸른 강물에 씻어내지// 가다 마음 무거우면/ 강물 타고/ 먼 길/ 흘러 흘러가자//
깃발 / 박동수
스스로를 찢겨지는 것은/ 눈물겨운/ 간증의 몸부림/ 영원한 영혼으로 귀향(歸鄕)에/ 부풀은 춤사위// 멀고 아득한 창공을 향하여/ 하얀 날개 짓으로/ 돌아서려는 마음/ 지친 련련(戀戀)에 매달려/ 얼마나 부대끼어 왔는가// 십자가 형틀 위 창날에/ 옆구리가 찢기며/ 갈급한 영혼들을 위한/ 마지막 피땀의 기도소리가/ 찢기는 깃발소리로 들리어 온다//
연어의 꿈(悔改) / 박동수
에덴에서의 잉태/ 매일 밤 돌아가는 꿈속에서/ 낙원의 희미한 불빛뿐/ 길은 언제나/ 미망(迷妄)의 강줄기// 탈출과 유혹의 소용돌이 속 기억되는/ 선악과((善惡果)는/ 회한(悔恨)의 눈물로 얼룩진 몸부림/ 화려한 은빛비늘을/ 강물에 뜯기며/ 뱃속 품은 꿈만은/ 에덴의 사과나무 아래//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생명이면/ 불꽃처럼 산을 태우는/ 붉은 영산홍처럼/ 낙원에서 태우며 피리라// 끝없이 밀려오는 겨운 강물/ 역류의 피곤함속에/ 회개(悔改)의 불꽃이/ 돌아서는/ 마지막 강줄기를 태우고 있다//
마지막 전철 / 박동수
하루 종일 칼날을 밟으며/ 혈전의 삶의 성벽/ 피범벅이 된 목어(木魚)의 무리/ 제복의 노예처럼 줄지어 앉았고/ 간신처럼 비비 꼬인 손잡이/ 독재자의 호령 같은 바퀴의 소리 따라/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형장의 목줄로 자유를 노린다// 어디서 왔는지 목어의 무리는/ 목줄을 잡고 줄을 선 채/ 물기 없는 비늘엔/ 선한 바람이 일고 있다/ 여기저기 선반 위에는/ 쓰레기통도 오염 시킬 구역질나는/ 허위의 정치의 언어들이/ 깨알같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징그러운 웃음으로/ 목어들의 가슴속 눈을 유혹하지만/ 눈을 감은 채 무관심의/ 큰 입만 벌렁이고/ 스피커에서 앙칼진 소리를/ 전자음으로 변형시켜/ 친절처럼 뿌리고/ 안내판의 붉은 글은 내리든 말든/ 무성의한 언어를 열지만/ 목어들은 귀를 닫고 침묵으로/ 생각한다// 수 십 년을 들어오던/ 청와(靑瓦)의 목탁 소리/ 도리질치며 비켜선 발길/ 이젠 또 어디로 갈까 생각할 뿐/ 강물에 몸을 던져 먼 바다로 갈까/ 헉헉대는 숨소리에/ 바싹 마른 비늘은 바람에 날리고/ 너와 나의 몸에서 풍기는/ 슬픈 비린내에/ 목어들의 몸뚱이는 오염 천에서/ 등 굽은 고기처럼 삐꺽거린다.//
풍선 / 박동수
내 돌아가는 날/ 풍선이 되어/ 별이 속삭이는 나라로/ 가리라// 가며 가며/ 돌아보는 땅이 까맣게/ 어두워 가슴 아프면/ 몸 터뜨려 별똥별이 되어/ 흘러내리리라// 온 땅 위에 별빛 뿌려/ 어둠에 지쳐/ 슬픈 사람/ 하나 없게 하리라.//
기원(祈願) / 박동수
천 마리의 종이학// 아주 먼 바다가/ 눈앞에서 햇빛에 일렁이고/ 아직도 잊어지지 않은/ 꿈속의 동화가 부풀린 풍선처럼/ 하늘위로 날아간다.// 천 마리의 종이학이 나는 날/ 꿈은 날개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이루지 못한 아픔과 고백이/ 실타래처럼 풀리리라// 천 마리의 종이학이 나는 날//
결혼식장 / 박동수
긴장을 안고/ 생의 긴 항로를 들어서고 있다/ 아름다움만 그리고 싶은/ 화가의 마음처럼/ 새빨간 정열의 채색을 듬뿍 찍은 붓끝을/ 하얀 빈 화폭에 꾹 놀러 긋고 있는/ 순간/ 생각들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 먼먼 꿈같은/ 미지의 창공을 난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자동항로기로 날기보다는/ 오밀조밀하게 꾸려가는 긴 여행이/ 행복을 누리는 여행이 되기를/ 방명록에 이름을 올리고/ 돌아서는 축하객// 언제나 그렇듯이…//
소나기 / 박동수
찌는 더위에/ 기억도 하기 싫은 혼탁/ 요나의 이마에 내려쬐던 햇빛/ 영혼을 팔고 싶다/ 불의(不義)로 구워지는/ 징그러운 이 세상의 언어(言語)/ 있어서 안 될 오염이기에/ 신의 지우개로 씻어낸다// 세상의 모든 부끄러움이/ 말끔히 지워지고/ 하늘의 꿈으로 가는/ 오수(午睡)의 시간만이 그립다//
비 오는 날 / 박동수
온 종일 내리는 비/ 푸른 숲 속에/ 침묵이 빗물 따라/ 바다 수면 위에/ 넘쳐대는 파도소리 되어// 그리운 사람 그리워/ 밀려가다가/ 하늘 맑은 날/ 언제/ 제 스스로 그리움 되리.//
모를 일이더라 / 박동수
세상은 참 넓더라/ 시속 킬로로 달려도/ 아직은 바다가 수평이고/ 둥근 지구로 보이지 않더라// 마음은 참 좁더라./ 초속으로 지구를 돌아도/ 아직은 내 것을 누가 뺐을까/ 두려움으로 떨며 살더라// 이 넓은 세상에 이 좁은 마음에/ 얼마나 많고 커야/ 만족일 런지 모를 일이더라// 빛처럼 가는 세상//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 박동수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꽃과 물이 좋아서도 아니지/ 꽃이 피어 좋고/ 물이 맑게 흐르면 즐겁지만/ 삶의 전부가 아니라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돌아서서 물어 보네/ 산아 너는 어이 선 채 말 없는가/ 웃으며 말해주게/ 나는 나를 찾으려고/ 산다고 하게나//
그리움 / 박동수
오고 가는 것은/ 사는 동안/ 겪어야 하는 이치인데/ 문득/ 어제고 그제고/ 그리고 먼 먼날/ 지나간 그 사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 생각에/ 출렁이는 가슴 아려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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