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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경복궁 연가 / 차혜숙

부흐고비 2022. 1. 18. 09:09

궁이 나를 부르는가. 불현듯 일탈을 하고 궁으로 발길을 옮긴다. 녹번역에서 3호선 전철을 타고 경복궁역에 하차하면 서울메트로 전시관을 지나간다. 전시회를 감상하고 가면 운치가 있어서 좋다.

전시관을 지나 석재로 만든 불로문을 통과한다. 불로장생한다는, 백수를 누린다는 그 문을 지나 지하 통로로 스무 발자국을 걸으면 이내 궁으로 통하는 마당이 나온다. 왼쪽 한편에는 고궁박물관이 있어 그곳에 들러 왕과 왕비의 연대표를 읊조린다. 태조 이성계가 1395년에 세운 경복궁, 설계는 정도전이 했다고 하는데 어찌 그리 정교하고 운치가 있는지. 전각 이름도 지었다고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훗날에 태종 이방원이 부왕 태조보다 정도전의 비상함에 한 나라에 왕이 둘일 수는 없다 해서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더욱이 왕자의 난에 의하면 태조 8년 1398년 8월에 쿠데타를 일으켜 이복형제인 세자 방석을 폐위한 후 죽이고 그를 옹호하는 정도전 일파를 참수했다는 것을 볼 때 이방원의 단호한 결단력이 무섭기까지 하다.

궁중 정치란 대의를 위해선 피도 눈물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시에 골육상잔이다. 피로 물든 경복궁에서 지내길 꺼려 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죽임을 당한 자보다도 죽인 자가 겪는 아픔, 고통, 인간적 고뇌를 왕 또한 겪었음을 엿볼 수가 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인해 불타 없어진 것을 고종이 다시 복원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여간 행운이 아닐 수가 없다. 조선 시대의 궁중에 최고로 권위 가 있음은 종묘와 사직을 겸비하고 한양이라는 도시가 설계된 때문에 후에 지은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보다 귀히 여기기에 경복궁을 법궁, 정궐이라 한다.

풍수에 의하면 궁 북쪽으로는 백악산, 동북간에 북악산 서쪽은 인왕산이 있고, 궁문 왼쪽 고궁박물관 계단을 내려서면 넓은 뜨락이 펼쳐졌는데 그 앞에 보이는 아담한 봉우리가 보현봉인 듯하다. 뜨락에 서서 하늘을 향해 심호흡하면 온몸으로 정기가 솟구치는 것을 볼 때 명당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임금들이 경복궁을 기피하는 것은 아마도 향원정에서 정씨 일파를 참수한 것에 대한, 피로 물들인 궁이기 때문이리라. 훗날 명성황후도 향원정에서 일본군에 의해 시해를 당한 것을 볼 때 원혼이 물든 자리에는 그와 유사한 일이 생겨남은 업에 의해서인지도 모른다.

경복궁을 나와 세종로로 트인 길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서 있고, 이순신 장군이 앞에 서서 목멱산, 지금의 남산을 바라보고 있다. 목멱산의 기가 강해 화재가 빈번하다는 풍수에 의해 궁안, 연못에 용으로 만든 조각상을 수장하고, 궁 앞에는 해태상을 두 마리 세워 음양을 조절했다고 한다. 언젠가 그것을 물에서 꺼내고 동상을 옮기는 바람에 남대문에 화재가 났다는 말은 확인한 바도 아니기에 풍문으로 떠도는 이야기라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남대문의 화재는 방화에 의한 인재가 아닌가.

경복궁을 뒤로 해서 삼청동 가는 길목에 국무총리 관사가 있고 그 위로 청와대가 있다. 궁 앞에서 볼 때는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뒤로 숨겨 보호하고 길흉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형상이라고나 할까.

신라, 백제, 고구려는 유적지로만 남아있다. 그러나 조선의 궁궐은 600여 년이 지난 이 시대에 현대인들 속에 함께 숨 쉬고 있다. 조상의 혼백이 있는 유택과도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고궁박물관의 왕과 왕비의 연대표를 찬찬히 훑어보면 자손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대인은 자기 조상도 중요하지만, 원통을 뚫어야 위에서 아래까지 기가 원활하듯이 근본이 궁에 있음에 이 시대에 공존하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가 궁의 자손이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연유로 인해 궁 안으로 지신밟기를 하러 간다. 박물관에 들러 태조 이성계 초상화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 제가 왔습니다.’라고 속삭이게 된다. 나야말로 전주 이 씨 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리 뇌까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전생에 궁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 조상이 문방서원으로 왕의 족보를 만드는 일을 할 적에 정도전과 하륜이 서자라는 오명을 씻고자 기록에서 삭제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고 한다. 그때 역사는 바꿀 수가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는 바람에 자객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볼 때 그 영혼이 내게로 빙의되어 궁을 떠돌게 된 것인지.

참으로 이상한 것은 태조의 초상화를 마주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함을 감지하는 것이다. 웃는 용안으로 때론 지그시 쳐다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안개가 낀 듯이 뿌옇게 보이기도 한다. 샤먼적 기질 때문인지 근정전에 다가가면 용좌에 젊은 왕이 앉아 있거나, 나이 지긋한 왕의 모습이, 때론 어린 왕으로 보이 기도 한다. 영상 속의 영혼이 떠도는 것인지, 아니면 상상으로 그려지는 것인지.

태교전을 돌아 왕비의 후원을 거닐다가 온 날 밤에는 그곳을 뛰어다니다가 넘어지는 꿈을 꾸기도 하고, 다음 날 어김없이 다리를 절룩거리기를 사나흘, 약을 써도 효험이 없다. 무심히 찾은 궁, 그 자리에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함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향원정에 오르면 옥색 도포에 갓 쓴 선비가 갈지자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임 그리워 찾아온 길, 비는 내리고 연못 속의 연 꽃만이 무심하네.”라는 시구가 읊어지다가 그런 연유로 인해 송강 정철 400주년 기념 백일장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물론 궁 안에서 행사를 치렀다.

어쩌면 향원정에서 참수당한 정도전의 일파와 명성황후의 혼이 내게 지침서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향원정 옆 민속박물관에는 사람의 일생에 대한 생활상, 풍속, 혼례, 제례, 삶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그 안에 복개당이라는 나무 현판 아래 그 옛날 세조를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부귀장수를 염원하던 무구가 진열되어 있다. 무속인의 납 인형도 있어서 벽면에 설치한 화면에는 황해도 굿을 하는 김금화 만신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복개당 앞에서 나라의 부흥과 개인의 안녕을 염원해 본다. 궁에 자리 잡은 조상을 기리고 비 오는날, 눈 오는 날의 궁 풍광을 즐기러 마음 닿는 대로 지신밟기를 하고 싶다.



차혜숙 수필가 1990년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무무무』, 『주머니속의 기, 행운을 가져온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공저), 『복기생』. 『나비와 코끼리』.

수상: 송강 400주년기념 시부문 당선(한글학회) KBS 자녀교육체험수기 대상, 이종환의 여성시대 글짓기 2회, 한맥문학상(수필) / 종교문학상, 한국불교승단협의회 2002년 올해의 인물상 불교문학상(작가상/본상) / 서포 김만중상(대상) 상상탐구작가상.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계간문예작가회, 현대작가협회 이사 한맥문학회 감사, 서대문문학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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