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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작가와 아들 / 남정언

부흐고비 2022. 1. 19. 13:30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열두 시가 넘었는데 거리는 훤하다. 고층 원룸이 즐비한 골목길에 불 켜진 방이 절반 넘는다. 젊은이가 많으니 늦게 자는가 보다. 멀리 보이는 아들 방에도 불이 켜져 있다. 아마 새벽 2시는 넘어야 불이 꺼질 것이다.

아들은 고민이 많다. 취업준비생으로 입사원서를 접수하고, 필기시험을 치고, 면접 1차를 거쳐 2차를 통과해야 최종합격으로 출근을 할 텐데 그 과정을 끝내지 못했다. 대학 졸업 전부터 취업하기 힘들면 공부를 더 해 보라고 권유했지만, 취업하는 것이 좋다며 고단한 길을 선택했다.

엄마 관점에서 아들에 대한 불만은 없다.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을 만큼 사리 분별을 갖추어 대화가 잘 되고 젊은이의 생활방식을 알려주는 꽤 괜찮은 남자에 속한다. 특히 깔끔하게 자기 방 정리를 하고, 식사를 챙겨 먹으니 잔소리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한결같이 29년을 사랑하는 아들로만 바라보는 엄마는 조금 지겨워져 이젠 사회인으로 독립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몇 년 전, 아들이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을 때 엄마가 수필에 빠져 밤을 새우며 글 한 편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들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의 엄마가 수필을 써서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 했다. 등단해서 수필가가 될 거라고 했는데 씨익 웃으며 너무 힘들어 보인다며 차라리 동적인 취미를 가지는 게 어떨까 했었다. 그때 나는 분명히 말했다.

“좀 기다려 봐라. 네가 작가의 아들이 될지도 모른다.”

엄마는 계획대로 등단하고 수필집 한 권을 출간했다. 멋진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부지런히 글감을 찾고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작가가 되었다.

그사이 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취준생이 되었다. 자타공인 직장을 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최종합격을 통과하지 못하는 요즈음 조금 지쳐가고 있다. 올해는 꼭 취업해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는데 12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들은 며칠 전에도 취직시험을 치렀고, 합격 소식을 기다리며 또 다른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아들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아들이 한 방에 제 길을 찾아가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을 바꾸는 길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미생의 머나먼 여정이다. 목적지는 분명있다.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모르는 게 취업의 지난至難한 길이다.


아들에게 엄마의 사랑이 필연이라면 엄마를 향한 아들의 사랑은 무엇일까. 작가가 될 거라며 용기백배했던 엄마는 글쓰는 중압을 견뎌내고 있다. 작가도 힘들다. 부족한 사유를 알기에 마음을 다잡다가 아들보다 먼저 지쳐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한다. 아들이 취업 고민을 가볍게 덜어내는 날에 엄마도 문학을 향한 고민을 털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괜찮다. 숨을 크게 쉬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아들이 눈높이를 낮추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들의 선택이다. 아들의 무한한 힘은 분명 있을 것이라 믿고 인정한다. 수만 명의 취준생 아들들이 하루빨리 방 탈출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마이너리그 작가인 엄마도 괜찮은 글을 쓰는 작가를 꿈꾼다.

엄마는 현실감각이 약하다. 살아 펄떡거리는 글 한 줄 쓰는 특별한 재능도 없다. 그저 수필이 좋을 뿐이다. 엄마가 아는 세상은 이런 것이라며 이야기하고 싶지만 말과 글과 생각이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바쁘게 뛰어 다니는 마음에 아주 작은 감성이 들어오기도 한다. 때론 메이저리그의 필력을 따라가고 싶어 밤을 새우지만 체력이 달려 코피만 흘린다. 그렇지만 오늘도 작가이므로 글을 쓴다. 수필을 쓰기 때문에 엄마는 작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아들아, 살다 보면 막힌 곳은 뚫리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막힌 물도 잘 흐르는 날이 반드시 온단다. 아들아,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답한 마음은 쌓아두지 말고 가슴에 문을 열어 훨훨 날려 보내자꾸나. 그동안 비축한 힘을 남기지 말고 사용해 보아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소진한 힘은 더 큰 힘으로 만들어질 것이므로 계속 도전하기를 바란다.

“너는 작가의 아들이다.”

취업 준비가 길어진 아들은 침묵 중이다. 태양 가까이 가고 싶은 아들을 계속 부추길 수만은 없다. 공기업이라는 사두마차의 줄을 잡으러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는 무모한 엄마가 될 수는 없었다. 상위 몇 퍼센트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가족과 저녁을 함께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려는 것뿐인데 생각보다. 긴 시간을 사용하고 있으니....

그때 알았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자식맹에서 탈출해야 한 다는 것을, 어느 수필가가 안개꽃같이 시작해서 사라지는 글이 가장 높은 글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떠올리며 기대치를 낮춘다. 예민한 잔소리를 줄인다. 책상을 정리하고 집 청소를 시작했다. 겉은 고요하지만 속이 번잡한 엄마는 두 번째 수필집 발간을 서두른다.

뜨거운 여름이다. 드디어 아들이 독립 선언을 했다.

어느 날인가 아들은 붉은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아침을, 그 다음엔 사천 해변에 활짝 핀 구절초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사진이 애달프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자신의 길을 찾아간 아들이 고마우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복받친다. 아직 할 게, 걸어가야 할 게 더 남아 있는가. 아들에게 생필품을 택배로 보낸 후 엄마는 마음을 봉합하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아들아. 너의 독립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 더 전진해보렴.”

“난 이제 당당한 생활인의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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