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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오빠의 강 / 남정언

부흐고비 2022. 1. 19. 14:25

강물이 맑은 하늘을 닮았다. 제 길 따라 흐르는 강물은 바람 소리처럼 나지막하다. 강 옆 흙은 봄날 계절답게 푹신하고 강 수면은 바람 장단을 풀어내어 흩어졌다 모이기를 되풀이한다. 은빛 강물은 오래 흘렀을 터인데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대동면 조눌리로 가는 버스를 탔던 날은 오월 중순이었다. 팔 남매의 막내로 병약하게 태어난 열일곱의 여고생이 어머니 손을 잡고 한의원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버스가 강을 건너서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멈추었을 때 모래 먼지가 부옇게 일어 온몸을 하얗게 뒤덮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수양버들이 초록 머리를 길게 풀어 내리고 있었고 제법 깊은 수로 건너편엔 마을이 보였다.

조눌리鳥訥里는 낙동강 서쪽 모래톱에 자리한 마을이다. 모래밭에 철새들이 날아와 울음소리가 마치 더듬는 것 같다고 조눌, 새눌리라 불렀다. 나지막한 기와집에 사는 사람들이 외지에서 온 얼굴 하얀 여자아이를 보러 나왔다. 큰 병원에서 수술을 여러 번 했지만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던 나는 친척 오빠 집에서 요양하면서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머물 예정이었다.

오빠는 조눌리에서 태어났다. 육이오 전쟁 때 입대한 아버지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집안 어른들이 나서서 나이 어린 어머니를 재가시켰다. 홀로 남은 오빠는 큰집에서 자랐는데 무던한 심성으로 묵묵히 농사일을 익혔다. 동살이 희붐해지기 전에 조용히 농기구를 챙겨서 강둑을 넘어 비닐하우스 문을 열었다. 밤사이 알알이 맺힌 토마토와 수박 참외 고소득 작물을 수확해서 마을회관에 넘겨주었다.

초정리에서 태어난 새언니와 결혼한 오빠는 힘을 합해 농사를 지었다. 제철보다 빨리 출하하는 계절 작물을 심었던 오빠는 해마다 조금씩 땅을 늘려갔다. 마을 사람들도 열심히 일하는 젊은 부부를 곱게 응원해 주었다. 오빠와 새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나가 비닐하우스 작업을 하였고 아침 햇살 받은 강물이 환하게 너울거릴 때 집으로 돌아왔다. 부지런한 오빠는 마당을 쓸고, 새언니는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아들과 딸들을 선하게 키우고 있었다. 거기에 입이 짧은 나를 위해 몸에 좋다는 나물을 준비하고 귀한 열매를 구해 약으로 달이며 지극정성을 쏟았다.

그때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한의원 가는 일 말고는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조카들과 노는 것도 지겹고 책을 읽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맡겨두고 오지 않는데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공기 좋은 강둑에 올라 먼산바라기를 하면서 가족들을 생각했다. 강둑에 서면 마을 뒤로 멀리 신어산이 보이고, 강 건너 금정산이 보였다.

어느 날, 무작정 강둑을 걸었다. 계속 아래로 걸어가면 수문이 나올 것이고, 다리를 건너면 집에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땡볕 아래 아무리 걸어도 수문은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비닐하우스만 이어졌다. 막막했다. 강둑에 앉아 혼자 울었다. 은박지보다 더 반짝거리는 강물만 보였다.

강에게 물었다. 어떻게 집으로 갈 수 있냐고. 진짜 내 병은 나을 수 있겠냐고 하니 귀담아듣는 듯했다. 병이 낫지 않으면 콱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는 못 들은 척했다. 강은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는 나에게 강은 물음에 대답해줄 유일한 친구였다.

수문은 정해진 시간에 열리지만, 농번기나 가뭄이 들면 자주 수문을 열기도 했다. 나는 울다가 힘이 빠졌다. 풀을 뜯다가 일어서서 둑 아래 수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물이 정반대로 흐르고 있지 않은가. 바보가 된 나는 강둑에 앉아 또다시 펑펑 울었다. 강물과 수로의 물 흐르는 방향이 같은데 몰랐다.

강을 향해 다시 물었다.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강물 흐름도 모르는 무식한 나에게 강은 아마 이런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집에 갈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집에 가서도 화가 나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터덜터덜 돌아오던 강둑길에서 오빠를 만났다.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강물만 바라보며 걸었다. 드넓은 평야를 감싸고 흘러가던 강물이 순정한 강바람을 등 뒤에 보내 주었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낙동강은 태백에서 발원하여 긴 여정을 쉬지 않는다. 김해평야의 동맥으로 조눌리 밭을 일구던 오빠의 작물을 키우고 아들과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로 향한다. 사계절 하우스 농사로 바빴던 오빠는 허투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몸으로 보여주는 진중한 사람이었다. 씨 뿌리고 모종을 살리며 밭에 물을 대는 평범한 일상을 최고라 여겼던 농사꾼에게 강은 삶의 가치를 부여해 주었다.

해가 긴 여름엔 해 뜨기 전부터 하우스에 물을 대었고, 태양이 작열하는 낮엔 들판도 불타는 더위에 지쳐갈 때 오빠는 밭을 보러 나갔다. 해가 지면 재빨리 밭에 물을 대어 애정으로 작물을 키워냈다. 게으르면 할 수 없는 농사일을 천명으로 여겼다.

장마철이었다. 며칠 계속 백 밀리가 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불어난 강물에 비닐하우스가 모조리 잠겼다. 싯누런 강물이 고여 멈춘 듯했다. 거대한 강물에 고립된 평야는 시간의 무게를 견디었다. 서. 서. 히. 물이 빠져나갔다. 강물은 비닐하우스와 자라고 있던 작물 모두를 긁어 바다로 특급배송을 끝냈다. 아무것도 없는 들판을 가만히 지켜보던 오빠는 경운기를 몰아 밭으로 나갔다. 다시 하우스 뼈대를 세우고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 오빠를 보면서 나는 철이 들어가고 있었다.

강물을 바라보는 일은 누군가의 정성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과 같다. 강물이 실어 온 모래톱은 농부에게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쓸어가기도 한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강물은 한 가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꺾이지 않는 희망이다.

강을 다시 만났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은 건강한 바다를 향해 시나브로 가고 있다. 물 위에 웃자란 햇빛이 찬란하다. 40년 전 강둑에서 울던 열일곱의 여고생은 아무것도 없던 들판으로 경운기를 몰고 나가던 오빠의 등을 잊지 못한다. 강가에서 농사짓던 오빠처럼 자식들 잘 키우며 진솔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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