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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통신언어로 핀 봄꽃 / 남정언

부흐고비 2022. 1. 19. 13:48

“카톡, 카톡” 모임방이 난리다. 나른한 오후에 늘어난 의식을 한방에 깨우는 사진이 떴다. 거기에 퀴즈가 등장한다. 얼마 전 등단하신 L선생님께서 청춘 마음을 가진 글벗에게 꽃불을 당기셨다. 활발한 분들이 많으니 어디 그냥 넘어가겠는 가. 당연히 시작이 좋다.


“이 꽃 이름은 무엇일까요? 정확하게 맞추시는 분께 커피 대접하겠습니다.”

“어데서 핀 꽃인가요?”
““벚꽃”
“돌복숭”
“아닙니다. 용두산 공원에 핀 꽃입니다.”
“왕벚”
“복사꼬ㄷ”
“수양버들”
“근접했습니다.”
“버드나무”
“처진버곳ㅋ”

“개벋”
“ᄒᄒ 쳐진개벋”

살짝 사진을 확대해 보니 과연 꽃나무가 우아하다. 연분홍 꽃이 만개했는데 겹꽃인가, 나무 둥치를 보니 예사롭지 않다. 언뜻 보면 왕벚꽃 같고 어찌 보면 복사꽃으로 보이는 특이한 고목이다. 축 늘어진 가지는 묘하게도 수양버들을 닮았다. 순간 생각해보니 왕벚나무와 복사꽃은 이미 피었다가 졌지 않은가. 도무지 이름을 알 수 없다. 알쏭달쏭한 나무 덕분에 모임방에 생기가 넘친다. 대화 기록이 두 바닥을 넘긴다. 정답을 계속 찍고 있는 대화방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커피에 눈이 멀어... 수양버들”
“ᄒᄒ 정식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쳐진벚나무”
“어러버요.”
“커피는 언제? 만날 수가 엄는디?”
“마추도 문제네.”
“힌트, 이름에 능수가 들어갑니다.”
“능수버들”
“커피 마시고 싶엉요 ㅠㅠ”ᅲ
“○○씨, 80% 정답.”
“이름이 뭐에요.”
“힌트 좀 주시오”
“빨리 말해 주세요~~~”
“잠시후 공개”

여기까지 읽다가 그만 웃음이 빵 터졌다. 이런 흠감한 일이 어디 있는가. 나는 중간시험 과제물로 통신언어 실제 사례를 찾는 중이었다. 생생한 사례를 월척으로 낚은 셈이지 않은가. 갑자기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십 대 이십 대가 아닌 평균 연령 칠십 대로 진입한 언어를, 살아있는 예문을 찾았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새로운 사진 한 장이 나타났다.

단아한 분홍꽃나무는 목걸이 이름표를 걸고 얌전하게 웃는다. 내 이름은 '능수복숭아'라고 말하는 젊은 고목, 참 예쁘다.

“엥? 능수복숭아?”
“수양버들이 아이네ㅋㅋ”
“아~”
“첨 보는디”
“틀렸네”
“능수는 맞고”
“앗싸!!”

L선생이 '능수'까지 맞춘 분께 빨리 커피를 사겠다며 총총 마무리한 시간은 18분. 그 짧은 시간에 눈치코치 멀티플레이는 치열했다. 커피를 마시겠다는 불꽃 의지를 보여준 문우들은 정답을 향해 속도 전술을 펼치면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무모함을 곁들였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 줄임말과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비문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내 과제물 표본으로 충분하였다.

말이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통신언어는 젊은이만의 전용 언어가 아니었다. 대화의 기술은 나이가 아니라 열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들에게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통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통신 화자들이 쓰고 있는 통신 수단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생활이나 통신 형태도 변하고 있다. 옛날에는 편지나 전화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주를 이루었는데 21세기인 지금은 인터넷,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통신 수단이다. 통신 언어의 경제적 장치, 표현적 장치, 유대 강화 장치는 한글 맞춤법에는 어긋나지만, 통신 화자의 다양한 의사소통과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세계화, 국제화 추세와 통신언어의 발달로 인해 외래어 남용과 새로운 신조어, 인터넷 언어들이 일상 언어생활에 쓰이고 있다. 표준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통신의 보편화와 더불어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에는 일탈성 · 변칙성이 자주 지적되고 있지만, 통신언어의 의사소통 속성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신언어가 보이는 문어로서의 일탈성은 구어 의사소통의 효과를 얻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었고 그 동기는 경제적인 동기, 표현적인 동기, 유대강화의 동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중략)...


...인터넷 언어는 사람들이 마주 보고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 표현을 위해 말을 줄이거나 늘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가지 기호와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통신 발달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되고 거기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언어에 대한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고 비속어나 욕설로 인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인터넷 언어는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통신 언어는 기존의 언어와 다른 많은 말과 기호를 만들었다. 언어 파괴의 양상도 보여주며 새로운 언어의 발굴과 언어의 발달이라는 양면을 보여준다. 통신 언어는 새로운 통신 수단이 등장하면 할수록 앞으로 더욱더 발전해 나갈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어의 기본적인 맞춤법과 문법 등을 잘 익히고, 통신 언어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 언어와 생활 〈통신언어의 실제 사례〉 일부

흔히 봄은 꽃으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봄은 언어에서부터 먼저 온다. 얼마 전 “꽃 보러 가자.”는 문자를 받고 마음이 들떴다. 꽃을 보러 나가는 행위는 봄이 와서가 아니라 문자 를 통해 이미 봄꽃이 도착해 있었다. 순리적으로 꽃이 피었다고 넌지시 알려주는 게 언어의 힘이 아닐까.

꽃나무 이름으로 시작된 모임방 대화는 즐거운 놀이 같다. 자칭 배우고 익히면 즐겁다고 생각하는 늙은 학생은 바람에 책장 넘어가 대충대충 공부하다가 문자도끼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든다. 카톡 댓글의 행간 걸침을 유심히 다시 읽는다. 재미있다. 빠르다. 숨어있는 누군가의 욕심이 보인다. 통신언어는 웃음 속도를 더하고 모임 결속을 다지는 매개이면서 동시에 나이를 젊게 만드는 비결을 갖는다.

'능수복숭아'는 '수양복숭아', '꽃복숭아‘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토종나무였다. 고목으로 보이는 능수에 겹복사꽃을 달고 있는 나무, 이름에서부터 젊음과 늙음이 공존하는 나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말과 행동, 글이 따로 논다고들 하는데 통신언어의 힘은 나이를 잊고 감정 결속을 빠르게 연결하는 전술이다. 그러니 나이 많은 문우도 통신언어로 활짝 핀 능수복숭아처럼 자신의 존재를 찾아 마음의 봄을 만개하셨으리라.

통신언어 실제 사례 공개를 흔쾌히 허락해 준 글벗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어디서나 막힘없이 두루 통하고 싶은 학생이 통신언어의 표현적 기능을 담당한 줄임말로 한마디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땡베감(땡큐베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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