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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배소(配所)의 고독 / 김양희

부흐고비 2022. 1. 31. 05:20

가족의 겨울여행을 위한 검색 전에는 남해에 ‘유배문학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하긴 올해 개관 2주년을 맞았으니 그럴 만도했다. 목적지였던 <편백 자연휴양림>은 겨울 숲의 쓸쓸함만 주었을 뿐, 다랭이마을의 민박보다도 의미 있었던 시간은 유배문학과의 만남이었다. 남해 외곽 남변리에 위치한 문학관은 황량하게 넓고 광활했다. 마침 추적추적 겨울비마저 내리고 있어 시설규모의 방대함에 비해 사람 발길이 뜸해 매우 한적한 분위기였다.

유배객들이 형틀에서 감옥으로, 다시 유배지로 압송되는 과정을 체험하는 동안 그들 고통이 출렁이는 물결 타고 내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배지의 한없는 고독가운데서도 임금과 가족을 그리며 문학의 꽃을 피운 숭고한 혼들이었다. 늦은 밤 외딴섬의 호롱불 하나, 선비의 한과 넋은 오롯이 작품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공동체를 생활기반으로 삼는 조선사회에서 유배형은 종신토록 생활공동체로부터의 배제를 의미하는 혹독한 형벌이다. 절대권력 앞에서 억울한 참형인들 얼마나 많았으랴만 그들은 하늘같은 어명하나로 세상과 유리돼 참혹한 시간들을 견뎌야했다.

유배문학의 효시는 고려시대 동래로 귀양 간 ‘정서’가 지은 <정과정>이라 볼 수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조위’가 무오사화 때 전라도 순천에 유배되어 지은 <만분가>를 유배가사의 효시로 꼽을 수 있다고 전한다.

자암 김구(自庵 金絿)는 화전별곡(花田別曲)에서 남해를 망망대해에 뜬 한 점 신선의 섬에 비유했다. 조광조와 함께 도학정치를 꿈꾸던 그는 기묘사화 때 32세 젊은 나이로 남해에 유배됐다. 절대적 권력 앞에 항거한 유학자는 이후 십삼 년간 남해 향사들과 함께 시와 술로 마음을 달랬으며 노래와 구슬픈 거문고 소리가 있어 그나마 잠들 수 있었다.

문학관 한쪽 벽면을 커다랗게 채운 ‘서울이 부러우냐?’는 편액 앞에서 발걸음이 오래 머문다. ‘서울의 번화함이 너는 부러우냐. / 붉은 대문 안의 술과 고기가 너는 좋으냐. / 돌밭 초가에서 살아도 / 언제나 세월의 풍족함으로 화합하는 시골 모임을 나는 좋아하노라.’

날마다 고향 그리며 봉우리에 올랐으나 소식은 아득한 채 산과 바다만 겹겹이 쌓인 배소에서의 생활, 모친과 아내가 보낸 옷과 환약을 받으며 술잔 가득 넘치는 상념을 사향(思鄕)이란 시에 담기도 했다. 권력의 허망함을 너무 일찍 깨달은 자암은 귀양지의 절망을 오히려 초월적 문학정신의 경지로 승화시킨 것이다.

남해의 대표적 유배객이었던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은 장희빈 일가를 둘러싼 언사의 변으로 유배형을 받았다. <서포만필>에서 그는 한글예찬론을 펼쳤다. 문학관 초입 벽면에 새겨진 말처럼 ‘자기 나라 말을 버려두고 남의 나라 말로 시문을 짓는다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며 한자 숭상의 풍토를 비판하고 우리말 우리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의 한글예찬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한글소설시대를 꽃피우는 징검다리가 됐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하고 희빈 장씨를 왕비로 맞아들이자 왕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씌어 진 남정기는 목적소설로 알려지고 있다.

작중인물의 사씨 부인은 인현왕후를, 유한림은 숙종을, 요첩(妖妾)고씨는 희빈 장씨를 각각 대비시킨 것으로 궁녀가 이 책을 숙종에게 읽도록 하자 회개하여 인현왕후 민씨를 복위하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서포는 소설을 통해 나라를 바로잡고자 했던 충(忠)과, 사친시(思親詩)에서 어머니 해평윤씨를 그리는 효의 마음을 담았다.

김만중이 칠 년 후 56세를 일기로 배소에서 생애를 마치자, 숙종은 만중의 사위 이이명을 남해로 유배지를 옮기게 했다. 이이명은 장인의 적소에 들러 유해를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김만중의 적소는 황폐했고 마당에는 초췌하게 시든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사위는 매화를 자신의 우거에 옮겨 심어 다시 소생시키고는 동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눴던 장인과 사위의 애틋한 정을 ’매부(梅賻)‘를 지어 노래했다. 지금도 노도에는 서포김만중의 유허지가 당시의 정황을 말해주듯 고즈넉한 초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남해의 노도와 그때 불던 바람은 고독했던 선비정신과 우국충정을 기억하고 있을까.

어두운 밤 깊어가는 적막 속에서 오래도록 책을 읽던 선비의 호롱불을 생각하며, 엄혹한 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견뎠던 그 절망의 사념 속으로 들어가 본다. 단비처럼 내리는 쓸쓸한 평화는 없을지라도 서책과 문학이 있었기에 기다림을 간직한 숱한 번민의 밤을 새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아픔의 시간들이 오늘날 활짝 핀 유배문학의 꽃으로 피어났다.

인생은 유배다. 먼먼 별에서 지구로 흘러 들어온 유랑민들. 근원적인 좌절과 고뇌를 벗어날 수 없는 우리네 삶의 자리는 고독과 그리움의 가시로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유형의 섬이다.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는 적막한 배소에서의 어둔 밤에 비유할 수가 있음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해 유배문학관을 돌아볼 때만해도 시대를 역행해 아픈 시간들을 견뎌야했던 유배객의 설움만을 마주했었다.

겨울비를 맞으며 유배문학관을 돌아 나오던 날, 풀리지 않는 생각의 실마리들이 마음속에 크게 회오리를 쳤다. 그것은 남해바다의 성난 파도소리였을까.

 



김양희 수필가 △《수필과비평》 등단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부산문인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수필집 『순례의 여정』, 『홀로 우는 바람소리』, 『사랑에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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