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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애상/ 차은혜

부흐고비 2022. 2. 3. 10:05

터널 속같이 어둠이 짙게 깔렸다. 무거운 얼굴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서로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추위가 급습한 탓일까? 그것 뿐만은 아니다. 정월의 날씨 치고는 푸근하였지만, 우리는 안타까움에 떨고 있었다. 숨쉬기조차 힘들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여 생과 사를 넘나드는 중환자 앞에서 우린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바라봐야만 했다. 유달리 맘이 여리고 밝던 시동생의 얼굴은 핏기라곤 한 점 없이 차디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씻은 듯이 나아서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얼굴을 비비고 눈시울만 적셔야 했다. 형수와 시동생 사이지만 편안하고 각별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형을 대신해 늘 챙겨주고 가끔은 형수인 나의 이름을 부르며 농담을 곧잘 하던 시동생. 불치의 병이란 진단이 나오고 본인에게 알리면서 치료가 시작되었을 때도 찡그린 표정 하나 없이 담담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여간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어른으로 성장해서까지도 큰소리 한번 지름 없이 참고 견뎌낸 그의 마음 한편엔 쌓아 놓은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 같다.

병명이 판명되면서 일은 급진전되어 갔다. 방사능 치료가 시작되었다. 방사능 치료로 빠진 머리를 내게 보이며,

“형수, 다 빠졌었는데 이젠 많이 나오지? 의사들도 신기하다잖아.”

피식 웃는 시동생이었다. 그러나 떨어져 있다가 어쩌다 명절이나 집안행사에서 만나면 몰라보게 수척해 가는 모습이 확연해 보였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아프다거나 힘 든다는 말 한마디 없다며, 동서는 푸념 섞인 말을 내뱉는다. 가끔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냥 심심해서 걸었어요. 괜찮으니 너무 걱정말아요.”

우리를 안심시키곤 했다.

서울에서 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다. 우리 내외가 병문안을 가니 앙상하게 마른 몸을 반은 의자에 기댄 채 우리를 맞이했다.

“형수, 보여줄 게 있어. 아무도 안 보여 줬는데, 형수만 보여줄게.”

수술한 가슴을 보여주는 줄 알았다.

“뭔데……?”

“형 없을 때 봐. 젖꼭지가 하나 더 생겼다.”

“거짓말, 다른 사람 보여 줬잖아?”

옆에 있던 동서가 웃으며 한마디 거든다.

“형님, 또 한 사람 봤어요. 자기 동창 보여줬잖아.”

생각보다 수술 자국은 가슴 쪽이 아닌 등으로 길게 그어져 아물어 가고 있었다.

“서방님, 힘들죠?”

그는 늘 괜찮다고 대답했다. 숨쉬기가 힘들 뿐 아프지도 않단다.

이젠 아픔의 뒤편에서 마지막 작별이 시작되고 있다. 숨조차 자신의 힘으로 쉴 수 없다. 이젠 힘든 싸움에서 손들어 버린 것일까? 아내의 애절함과 아이들의 장래, 노모의 슬픔을 뒤로 하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소리를 몰아쉬고 있다.

“여보, 서방님 가는 길에 심심하지 않게 나 동무되어 갈까?”

어느 날인가, 불쑥 내뱉은 말로 그이와 난 심심찮게 말다툼을 벌였다. 그때의 내 마음은 그랬다. 시동생보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쳐 있었다. 날개가 있으면 훌훌 날고 싶고, 아니면 조용히 눈을 감고 싶었다. 생의 애착이 깡그리 무너져 버린 것 같은 절망감에서 다른 사람에게 아픔이 될 말들로 나는 자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생과 사에 매달려 촌음을 다투는 이에게는 얼마나 사치스럽고 미운 말이겠는가? 아픔이나 죽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혼자만의 싸움이요, 운명인 것이다.

삼십 분 면회시간이 황금 같다. 연신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마지막 순간까지 보고 싶어 하는 형제들과 아내의 타들어 가는 마음을 그는 보고 있는 것일까? 동서는 남편의 마지막 남은 생명의 의미를 혼자 간직하고 싶은지 친족들을 내몰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린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동안 잊고 있었다. 전화 벨 소리에 놀라길 여러 번 하며 그렇게 하루가 갔다.

새벽 네 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비스듬히 열린 문틈으로 어머님의 모습이 보인다. 누워 계신 어머님은 우리들의 몸놀림을 보고 계셨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새벽안개가 짙게 드리워져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우린 아무 말 없이 차에 기대었다. 시동생은 마흔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난 갑자기 복통이 왔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일 분이 한 시간 같았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중환자실로 빨려들어 갔다. 뒤늦게 도착했을 때 모두들 삥 둘러서서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산소호흡기가 떼어지고 그의 아내는 입 주위를 닦아주고 있다. 손놀림이 여간 자연스럽지 않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그녀가 커 보인다. 젊은 아내와 고3인 아들, 중3인 딸이 앞으로 감내해야 할 일들을 남겨놓은 채 시동생은 떠났다. 하느님은 남편과 아버지로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을 데려가야 했을까? 반문하고 싶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골똘하게 생각하거나 슬퍼하기를 포기한 조카의 철없는 행동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혼수상태에서도 아이들에게 자신의 몰골을 보여 주지 말라고 당부했다던 시동생. 작은 수첩에 하나하나 정리할 것을 적어 놓은 자상한 배려. 여리기만 했던 마음이 일순 강한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푸념처럼 바닷가로 며칠만 혼자 여행하고 싶어 하던 시동생의 말이 되살아난다.

잔뜩 울먹이고 있던 하늘이 울음을 터트렸다. 상여꾼의 힘든 발걸음도 멈추었다. 이제 시동생은 많은 형제들보다 일찍이 자리에 누워 편안한 휴식을 취할 것이다.

“고인하고 같은 띠인 사람들은 하관식을 보지 마세요.”

시동생과 나는 동갑이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남편은 저만치 뒤돌아 서 있으라고 이른다.

나는 도중에 산을 내려왔다. 흙 한 삽 덮어주고 싶었는데……. 이젠 우리들의 슬픔보다 더 먼 세계에서 아내와 자녀들과 부모, 형제들을 말없이 지켜볼 것이다. 폐암으로 판명된 지 팔 개월 만에 시동생은 갔다. 본인에게는 고통이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슬픔과 아쉬움의 기간이었다.

수능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동서 집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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