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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순례자의 길 / 차하린

부흐고비 2022. 2. 7. 09:03

올 가을 단풍이 유난히 곱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에도 가을바람이 불었다. 내설악 단풍을 구경하면서 봉정암까지 가보기로 했다.

용대리에서 버스를 탔다. 용꼬리처럼 굽이치는 꼬불꼬불한 백담계곡을 따라와서 백담사에 내렸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강만큼 넓은 백담사 앞 영실천이었다. 아침 햇살이 하얗게 퍼지는 그곳에는 빼곡하게 쌓아올린 작은 돌탑들이 죽순처럼 돋아나 있었다. 큰 물살이 흐르거나 거센 바람이 불면 여지없이 쓰러지고 말 돌탑을 누가 여기에 쌓아놓았을까.

톨탑에 마음이 홀려서 백담사는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쳤다. 억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살이 만들어낸 작은 돌멩이들이 모난 곳 없이 동그스름하다. 긴 세월이 담긴 동글납작한 돌멩이에 사람들이 가슴속 근심 덩어리를 하나씩 풀어놓았나 보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6km다. 잰걸음으로 간다면 서너 시간 안에 도착한다고 한다. 급할 것도 없고 빨리 걸을 자신이 없어서 천천히 걷기로 했다. 산길에는 평일인데도 가을단풍이 불러들인 사람들로 넘쳐났다. 등산객들의 알록달록한 옷차림도 단풍만큼 곱다.

가을빛으로 물든 울창한 숲길을 느긋하게 걸었다. 햇살을 가슴에 안고 걸으니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은 애기단풍잎이 꽃등보다 화려하다. 길옆에는 바닷물보다 더 푸른 수렴동계곡 물소리가 청아하다. 맑디맑은 물속에는 가을산이 거꾸로 섰다. 계곡을 따라 작은 돌탑들이 여러 군데 무리를 지었다. 발걸음마다 갈망하던 기도가 하늘 끝에 닿기를 소망하며 쌓았을 돌탑이 애틋한 풍경이 되었다.

한 시간쯤 걸으니 영시암이 나왔다. 영시암은 오세암이나 봉정암으로 오르는 사람들과 이른 아침 봉정암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집을 나선 길손들이 고단할까봐 영시암 마루 기둥에는 편히 앉아서 쉬어가라는 글귀가 공손하게 붙어있다. 마음 편히 쪽마루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에는 한여름처럼 뭉게구름이 떴다.

갈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비를 밟으며 다시 걸었다. 얼마 안 가서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했다. 취사장까지 있는 대피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잠깐 휴식을 한다. 나도 한자리 차지해서 본격적으로 산행 준비를 했다. 허기부터 채우고 커피를 마셨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향이 단풍과 어우러지니 가을정취를 물씬 풍겼다. 세상에 없는 노천카페가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서부터 봉정암까지 길이 평탄하지 않다. 아홉 개의 폭포와 담이 이어진다는 구곡담계곡이 시작된다. 계곡 옆 나무데크를 따라 걸었다. 길 위에는 꽃무릇보다 붉은 단풍잎과 샛노란 생강나무 잎사귀가 무더기로 얼굴을 내밀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에 취하니 내 가슴에도 고운 단풍물이 스며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골짜기가 깊어졌다. 골짜기 사이로 암릉으로 이어진 기세등등한 용아장성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삐주룩하게 솟은 화강암 봉우리가 햇살을 받아 백설처럼 눈부셨다. 길이 없을 것 같은 곳에는 철제다리가 계곡을 넘나들며 이어갔다. 가파른 계단과 바위틈 사이로 제멋대로 난 돌길이 숨찬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가끔 맞닥뜨리게 되는 인생의 고비처럼 굽이굽이에 까다로운 길이 숨어있다. 25년 만에 찾아온 설악산을 걸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보았다.

이따금씩 혼자 걷는 사람이 보였다. 사람들에게 보시할 커다란 미역봉지를 배낭에 지고 묵언의 수행자처럼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꿋꿋하게 앞만 보고 걸어갔다. 저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어쩌면 부처님께 고할 다급한 사연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골이 깊은 구곡담계곡은 수렴동계곡과 확연이 달랐다. 구비를 돌 때마다 멋스러운 기암괴석이 단풍과 어우러졌고 크고 작은 폭포가 연달아 이어졌다. 폭포 소에는 점묘화처럼 떠있는 낙엽들이 제자리만 뱅글뱅글 맴돌고 있다. 쳇바퀴처럼 사는 인생과 닮았다.

어느새 봉정암이 오백 미터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젠 다 왔다고 안심을 하는데 막다른 길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맞닿을 것 같은 암벽 사이로 가파른 골짜기가 보였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바위틈으로 서너 사람이 거미처럼 납작 붙어서 올라가고 있다. 짧은 밧줄도 보이는 이 길이 봉정암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깔딱고개다. 일명 해탈고개라는 이 고개만 오르면 세상의 번뇌쯤이야 시시해지는 경지에 이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 고비에서 해탈이라는 심오한 뜻을 붙인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더 힘내라는 뜻이 담겼지 싶다. 피안의 세계가 바로 고개 너머에 있다는 달콤한 유혹처럼.

바윗길을 올려다보니 아찔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해탈은 고사하고 어떻게 올라야 할지 겁부터 났다. 저만치 올라간 노스님의 굽은 등을 보니 용기가 났다. 등산스틱을 배낭에 집어넣고 디카도 호주머니에 넣었다. 차마고도를 따라 오체투지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춥고 언 땅을 몇 달이나 걸려 라싸 조캉사원으로 가는 순례자들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네 발로 기어서 오르기 시작했다. 손과 발을 옮길 때마다 헛디딜까봐 오금이 저렸다. 등줄기에서 진땀이 흘렸다. 뻣뻣한 자세로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이곳은 몸을 낮추고 마음을 낮추어야 오르는 천상의 길이다.

봉정암에 도착하니 대웅전 기와 위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백담사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여덟 시간 걸렸다. 종무소에서 배정해준 방을 찾아 들어갔다. 방바닥 중앙에는 세로로 이등분해서 절 방석만 한 크기로 양쪽으로 줄을 그어놓고 칸마다 번호를 적어 놓았다. 다리를 오므려야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이 하룻밤 지낼 자리다. 그것을 보니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去者不追 來者不拒”는 종무소 기둥에 쓴 커다란 글귀가 떠올랐다. 밀려드는 사람들을 내칠 수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결정한 방법이라 생각하니 이만한 자리도 감지덕지하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끼니마다 공양을 챙겨주는 이곳 절인심이 본데 야박하지 않아서 방바닥은 손이 데일 정도로 쩔쩔 끓었다.

어둠이 내리자 유리창 너머로 조명을 받은 석가사리탑이 허공에 섰다. 탬플스테이는 아니더라도 하룻밤 조용한 절간에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물거품이 되었다. 늦은 밤까지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스님의 독경 소리에 빈칸 없이 들어찬 사람들 잡담이 보태지니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더러 법당으로 올라가 철야 기도를 하고 드물게는 온몸으로 달아오르는 구들장 열기를 피해 법당으로 달아나기도 했다. 피곤이 몰려와서 쪼그려서 누웠다. 주변사람에게 몸이 부딪히니 신경이 곤두섰다. 무슨 연유인지 눈을 감아도 정신이 더 또렷했다. 몸을 뒤척여보았지만 마음에는 분별없는 잡념만 일었다. 거기다 내일 깔딱고개를 내려갈 걱정이 천근만근 같아서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소란스러워서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다. 밖으로 나오니 하현달이 머리 위에 있다. 갈 길이 먼 등산객들이 벌써 헤드라이트로 발길을 밝혀서 개미처럼 줄지어 소청봉으로 오른다.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새벽길을 밝히는 연등행렬 같다.

아침이 되니 새벽부터 불자와 등산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절간이 적막할 정도로 고요하다. 어젯밤 불빛으로만 봤던 석가사리탑으로 올랐다. 나약한 인간들이 하소연하는 간곡한 말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천년을 넘게 견뎌온 사리탑에는 더께 쌓인 지의류가 풍상의 세월을 말해준다. 사리탑 바로 앞에는 용의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용아장성이 병풍처럼 섰고 멀리 운해가 가로지른 귀때기봉이 우람하게 솟았다. 뒤돌아보니 웅장한 공룡능선으로 아침 햇살이 몰려든다. 사리탑에서 바라본 설악의 품이 크고 웅장해서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꼈다.

봉정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적멸보궁이다. 부처님 뇌사리가 하늘 끝에 모셔져 있고 자연이 만든 풍광이 수려해서 불자가 아니라도 살아생전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한다는 성스러운 곳이다. 속세의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는 높은 곳에서 신성한 하늘의 기운을 제일 먼저 받아 고고하다. 봉황의 품처럼 이 비밀스러운 곳에 암자를 세우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었을까 중생의 뜻이었을까.

다시 길을 떠나기 위해 봉정암을 나섰다. 밤새 걱정거리였던 깔딱고개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처럼 몸을 낮추어서 내려왔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이어진 험한 여정을 순례자들은 희망을 찾아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덥거나 추워도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멈추지 않는 순례자들의 고행이 만들어낸 숭고한 길이다. 불자는 아니지만 이들의 무수한 발자국을 따라 이 길을 걸었다.

훗날 내 발자국 위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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