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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섬 / 김광영

부흐고비 2022. 2. 7. 09:09

노인이 산책을 나서면 털복숭이 개 한 마리만 따라나섰다. 산책이래야 탑골 산소를 둘러보는 게 전부였다. 마을 어디를 가도 노인의 벗은 찾을 수 없었다. 간혹 승용차가 들어오면 자식인가 쳐다보다 돌아서기 일쑤였다. 아흔에 드셨던 노인의 어깨에 후회만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이태 전에 위암 수술을 하신 노인은 좀체 구미가 돌지 않았다. 식욕이 떨어지자 귀까지 절벽이어서 대화가 이루어지질 않았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서 돌아오는 대답은 동문서답이었다. 들리지 않는 노인이나 고함을 질러야 하는 안노인이나 답답하기는 매일반이었다. 근래엔 안노인마저 게이트볼을 치러 가고 노인의 곁엔 온종일 사람이라곤 얼씬거리지 않았다. 노인은 몸 아픈 사람을 두고 나다닌다고 역정을 내고, 할멈은 이 나이까지 시집을 살리느냐고 주장을 펴셨다. 두 분이 실랑이를 하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빈자리를 메우려고 노인을 향해 발걸음을 놓곤 했다.

듣지 못하는 당신께 보청기 운운하면 아예 손사래를 쳤다. 윙윙거린다는 핑계지만 실은 애걸복걸 해드리자는 자식도 없었다. 더더구나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딸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정이 별로 없었다. 이복남동생 네 명에게 전답을 죄다 물려주고 그녀에겐 따비밭 한 자락도 물려주지 않는 것이 몹시 서운해서다. 스물아홉에 세상을 뜬 아내의 한 점 혈육에게 그렇게 냉정할 수 있을까 해서 친정걸음을 그만두려고 작심도 여러 번 했었다.

언젠가 그녀가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 딸에게도 상속을 좀 달라고 했더니 일언지하에 “나는, 출가외인에게 상속 주는 법은 인정 못 한다.”라고 쐐기를 박으셨다.

그럼 아들이 허방에 날린 전답은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애비가 번 돈을 자식이 좀 쓰면 어떻노.” 그런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런저런 차별대우로 노인께 굳이 보청기 해드릴 마음이 딸에겐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동생들 역시 상속을 큰형의 지분만큼 물려받지 못했다고 번갈아가며 투덜댔다. 보청기는 당연히 총애를 받는 맏아들이 해드려야 한다는 눈치였다. 한데 아버지의 귀엔 보청기가 없었다. 당신의 요즘 후회는 “자식에게 준 그 돈으로 회사를 차렸더라면 떵떵거리고 살낀데.”였다. 노인처럼 자수성가한 자식은 아무도 없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거년 겨울에 오남매는 거위털 점퍼를 모두 입었지만 노인은 입지 않았다. 20여 년 전 그녀가 짜다 드린 털 스웨터로 숭숭 들어오는 겨울바람을 막아내고 계셨다. 서로 미루는 것인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보다 못한 그녀가 방한화와 깃털 점퍼를 사드렸더니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에도 그 옷만 입고 지내셨다. 청대밭에 바람이 세차게 이는 날 밤엔 잠자리에서도 그 옷을 입고 주무시곤 했다.

그녀의 유년을 돌이켜보면 노인으로부터 자상한 말 한마디, 따뜻한 손 한번 잡혀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 마라, 안 된다, 나쁜 짓이다, 등등의 훈계만이 다 자랄 때까지 못이 박이도록 이어졌다. 철조망 같은 울타리에 갇혀 언제나 자유를 찾아 훨훨 날고 싶었고, 때론 노인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것이 꿈이기도 했다. 바르게 키우려는 의도였지만 제재가 심하면 정이 떨어진다는 것을 노인은 몰랐다. 하물며 핏줄도 그러한데 타인이야 오죽했으랴.

그해 수술을 하신 노인은 병문안 오는 이를 손꼽고 계셨다. 구십 성상을 살다 보니 벗들은 죄다 돌아가셨지만, 집안 친지들만이라도 많이 올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뜸했다. 노인은 친척들에게도 간섭이 많았다. 집안 잔치에 장구를 치고 놀면 남사당패냐고 호통을 쳤고, 처녀총각들이 타성바지와 어울리면 눈 맞춘다고 혼을 냈다. 젊은 시절 호랑이 같은 당신이 읍내에 나타나시면 집안 청년들은 먼발치에서 모두 달아나곤 했다. 그렇다고 노인이 친척들에게 할 도리를 안 하신 것은 아니다. 가난한 조카에게 학자금도 마련해 주었고, 궁핍한 사촌에게는 쌀가마니도 나누었으며, 오밤중에라도 급한 환자가 생기면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그때뿐이고 꾸짖는 말만 가슴에 남는 것이 사람이 아니던가.

노인이 섬이 된 것은 청각을 잃은 탓도 있지만 고루한 성품 탓이 더 크다. 서양문물은 모두 싫고 흘러간 조선시대의 관습만 고집하셨다. 그래서 늘 고독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풍습과 관행은 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했다. 재물유산은 천수답 서 마지기를 받았지만 정신적인 유산은 노적가리만큼 받은 분이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차별 없이 나누어 주고, 변해가는 시대풍조를 받아들였더라면 저렇게 소외되진 않았을 텐데……. 그녀가 자랄 때도 조선시대 말기의 생활을 고집하다 보니 별나다고 호가 났었다. 보이지 않는 전파가 번개같이 날아다니는 소통만능 시대에 당신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이 가엾고 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섬에 가는 길이다. 파도 소리도 물새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가라앉은 섬을 향하는 길이다. 많은 것을 품었던 개펄이 사라진 섬은 절해고도 그 자체이다. 그 옛날 등대가 되어주었던 섬을 이젠 어디에서도 뵐 수 없다. 혹여 지나가는 배가 섬에 닿길 기다리던 외로운 모습만 어른거린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관리자를 날마다 기다리고, 온종일 개 한 마리만 뒤를 따라다니던 인적 없는 섬. 나는 지금 지하에 계신 선친 곁으로 가는 중이다.



김광영 수필가 2004년 《문학예술》, 2005년 《수필과비평》 등단. 《에세이문예사》에서 ‘제1회 민들레수필문학상’을 받았으며, 부산수필문인협회 ‘제1회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객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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