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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수컷들 / 권혜민

부흐고비 2022. 2. 15. 08:13

전화벨 소리가 꿈결처럼 아득하다. 놀라 눈을 뜨니 밤 12시가 넘었다. 낮에 큰아이가 운영하려는 펜션을 돌아보느라 피곤했는지 불도 켜놓은 채 깜빡 졸았나보다. 부산에서 경찰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작은 아들이다. 요즘 학원 다니랴 헬스장 다니랴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전화통화가 뜸했던 차에 ‛아들’ 하며 끝소리를 길게 늘어뜨리면서 와락 반가움을 표한다. 그러나 들려오는 아들 목소리는 꼿꼿하게 성이 나있다. 화들짝 잠이 깬다.

아이가 아빠와 언쟁이 있었나보다. 남편은 주말은 거제도에 있지만 평일에는 본업인 광고 간판 제작을 하느라 부산 집에 아들과 머물고 있다. 선을 따라 들려오는 작은아이 목소리가 스타카토로 똑똑 부러지며 단호하다.

오호라. 이놈이 성이 단단히 났구나 싶다. 말수가 많지 않은 놈이 폭포처럼 쏟아내는 말인즉슨, 수업이 늦게 끝나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카페에서 그룹스터디를 하느라 아빠의 전화를 못 받았단다. 뒤늦게 여러 통의 부재중 알림 확인을 하고 연락을 했더니 이번에는 아빠가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 했다. 두세 번 둘이는 그렇게 서로 연락이 엇갈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연락을 하려는데 마침 아빠에게서 전화가 오기에 얼른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첫마디부터 귓속을 파고드는 잔뜩 화난 음성에 아들은 기분이 몹시 상했나보다. 자초지종을 들어보지도 않고 화를 내는 아빠의 술 취한 음성이 아이를 더욱 골이 나게 만들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작은아이가 취기로 흔들리는 아빠를 여유롭게 대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들의 논리대로라면 둘 다 제때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저는 공부하느라고 못 받았고 아버지는 술자리에 계시느라 못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는 제가 혼날 일은 분명 아니라는 게다. 아버지라고 해서 무조건 잘못도 안했는데 그걸 감수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난감하다. 아이는 엄마에게 아버지와의 언쟁을 따박따박 따지듯 풀어내고 있다. 아들 둘을 키우는 동안 남편은 거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로써 아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 오래 참아주고 기다려주었고, 강요하지 않는 교육철학을 지닌 사람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골 깊은 부자간의 싸움이 되었는지 난감했다. 옷에 솟아난 보푸라기만 속절없이 잡아 뜯으며 말없이 아이의 화를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오늘 아빠와 한집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래서 친구 집으로 갈 거야.” 갑자기 작은아들이 내게 선전포고처럼 일갈한다. 오늘만큼은 아빠와 마주치기 싫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쏟아낸 말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집에 안 들어가겠다는 결론을 위한 서막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미련하게도 이 일이 그냥 푸념을 들어주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을 그제야 직감한다.

갑자기 머릿속을 헤집으며 뒤죽박죽 얽히고설킨 온갖 말들 속에서 아이를 진정시키고 마음 토닥여 줄 언어가 몹시 그리웠다. 퍼즐을 맞추듯이 아들의 말을 조목조목 동조하고 온전히 너의 억울함을 이해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스물세 살 먹은 아들에게 가족이란 것이 1+1=2, 1-1=0 이라는 수학으로는 계산도 소통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다.

작은아이는 쉽게 수긍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화기 너머로 아이의 숨소리가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왜 꼭 집에 들어가야 하는가를 나에게 되물었다. 느닷없는 아이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왜지? 순간 나도 혼돈이 온다. 서로가 안 좋을 때는 좀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가지만 얼른 머리를 흔든다.

나는 아이에게 가족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본다. 스물세 살이 가지는 가족이라는 가치관과 육십이 된 엄마가 가진 개념의 거리가 얼마나 좁혀질지 자신감이 급하게 하향곡선을 그리며 내리닫는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생각만이라도 해보자고 다독였다. 잠시 아이는 말이 없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엄마의 허락을 구하려는 것이었는데 집에 들어가라면 들어갈 것이라면서 말을 메다꽂듯이 던진다. 내던지는 아들놈의 말꼬리를 서둘러 붙잡으면서 아이의 사춘기 시간을 다급하게 소환했다.

“그때 엄마는 집에 있는 너를 피해 시장을 울면서 몇 바퀴나 돌아다녔는지 모른단다. 그렇다고 엄마가 너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집에 안 들어올 수는 없잖아. 가족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남이면 뭐가 걱정이야. 안보면 되잖아. 부모 자식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비비면서 녹아들며 살아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내가 생각해도 자신 없고 설득력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는 제 아버지하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언쟁을 했을 것을 나는 안다. 작은 아들과 남편은 성격이 흡사하다. 단지 아들은 논리적이고 아버지는 감정적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또한 남편은 자신이 실수를 하더라도, 저를 좀 귀찮게 하더라도 내가 아비인데 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른 후반에 낳은 늦둥이 아들과 아버지가 가치관이나 논리가 어찌 같기를 바랄 것인가. 또한 아버지가 느끼는 조금과 아이가 느끼는 서운함의 차이는 분명 클 수밖에 없다.

남자 셋과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치열하다. 부모 자식임에도, 형제 사이에도 이 수컷들의 자존심이 맞붙으면 참으로 무섭다. 그걸 알기에 나는 하룻밤의 외박에 선뜻 동조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남편은 아이의 반역을 눈치 챌 것이고 그 상처는 클 것이다. 아이 또한 반기를 들고 외박을 한들 그 하루가 아버지와의 갈등을 해소하기 보다는 더욱 거리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남편은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내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남편도 말을 안 하고 나도 내색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긴 하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 집 수컷들 가슴 밑바닥에 깔린 애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감대와 신뢰는 의외로 깊고 은밀하다.

여자인 내가 느끼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소통 방법이 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들은 밤 새워 프리미어리그를 같이 보다가 잠시 여백의 시간에 슬그머니 서운했던 마음을 고백할 것이다. 그날의 지나쳤던 감정에 대해 세상 다시없게 시원시원 사과를 주고받으며 의기투합 할 게 뻔하다. 골 깊은 갈등이 있어도 피하지 않고 들이받다 부비기를 되풀이 하면서 천천히 꼬인 매듭을 풀어낼 게다.

말없이 지켜보는 내 심장만 속절없이 쫄깃쫄깃하다.



권혜민 님은 제 23회 신라문학대상 수필부문 수상, 2013 ‘젊은 수필‘ 18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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